132화. 염무(焰舞)
아름다운 달빛이 세상을 하얗게 비추는 깊은 밤이었다.
어느 시냇물 근처에 마차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마차 옆에는 모닥불이 피어오르고 있었고, 그 앞에서 한 청년이 두 손을 들고 기괴한 자세를 취한 채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모닥불의 화염이 청년의 얼굴을 가물가물 비추었다.
그 청년은 바로 석목이었다.
그의 주위에는 빼곡한 달빛의 정수가 모여 흡수되고 있었다.
한참 후, 몸을 흠칫 떨며 천천히 눈을 뜬 석목이 기쁜 표정을 지었다.
석목은 낮에는 이동하며 틈틈이 반야천상공을 수련했고, 달빛이 있는 밤에는 꿈속에서 탄월식을 수련했다.
그는 흑마문으로 돌아가는 여정 내내 그렇게 조금의 시간도 낭비하지 않았다.
야만족의 금지에서 흰 원숭이로 변신했던 영향인지, 탄월식의 수련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석목이 성설궁을 떠난 지 겨우 몇 달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누에콩 크기의 결정이 다시 생겨나 있었다. 결정에서 뿜어져 나오는 차가운 기운이 머릿속을 편안하게 했다.
온신술의 4단계 끝자락에 도달한 석목은, 한동안 달빛의 정수를 흡수해 5단계 돌파를 시도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탄월식의 수련을 멈춘 석목은 쉬골단과 혈강단을 하나씩 복용한 뒤 반야천상공을 운기했다.
현재 석목은 반야천상공 11단계 돌파에 임박한 상태였다.
시간이 흘러 동이 트자 석목은 두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체내에 진기가 흐르며 온몸에서 강력한 힘이 솟아나오자, 석목은 몸이 근질근질해졌다.
그는 크게 소리를 지르며 옆에 놓여 있던 유성추를 쥐고 휘두르기 시작했다.
기다란 유성추가 마치 검은 교룡처럼 석목을 맴돌며 주위에 폭풍을 일으켰다. 큰 소리를 내며 일어난 강풍은 지면의 모래를 말아 올렸고, 주위 시냇물에 파도를 일으켰다.
쾅!
유성추가 물가에 놓여 있는 맷돌 크기의 바위를 거세게 가격하자, 바위는 가루가 됐다.
석목이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홀로 유성추를 휘두려르니 조금은 단조로운 느낌이 들면서 심심했기 때문이다.
석목은 순간 연나를 떠올리고 즉시 주문을 외웠다. 검은 연기가 허공에 나타나더니 그 안에서 연나가 나왔다.
“연나, 무예 연습을 도와라!”
석목이 팔을 휘두르자 유성추가 강풍을 몰며 연나의 가슴을 향해 날아갔다.
바로 그 순간, 흐릿한 목소리가 석목의 머릿속에서 들려왔다.
“…네!”
놀란 석목은 유성추를 잡아끌었다. 연나의 몸 앞까지 날아갔던 추가 멈췄다.
“지금… 말을 했어?”
석목이 놀란 눈으로 해골을 바라보았다.
그는 그제야 연나의 영혼의 화염이 남색으로 변한 것을 발견했다.
“맞…습니다….”
연나가 불분명한 목소리로 말하며, 석목의 허리춤에 걸려 있는 수혼 주머니를 바라보았다.
연나의 시선을 느낀 석목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다.”
그러자 연나의 영혼의 화염은 실망하기라도 한 듯 살짝 어두워졌다.
아마도 예전이었다면, 연나는 절대 이렇게 빠르게 반응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래도 실력이 상승하는 동시에 상당히 똑똑해진 모양이었다.
연나에게 지혜가 생긴 것은 석목에게 있어서 나쁜 일은 아니었다.
한동안 머리를 굴리던 석목은 모든 생각을 떨쳐버리고 다시 팔을 휘둘렀다. 유성추가 연나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석목은 유성추를 다루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지만, 스스로 그 사용법을 익혀나가고 있었다.
연나는 옆으로 일 장 가까이 이동해서 석목의 공격을 피했다.
석목이 살짝 웃으며 팔을 흔들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여러 개로 나뉜 유성추가 연나를 향해 사방으로 몰아쳤다. 마치 어디로 피할지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연나의 뼈창이 순식간에 여러 개로 나뉘어 날아오는 유성추와 충돌했다.
깡! 깡! 깡!
금속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무게가 엄청난 유성추와 비교하면 연나의 창은 너무도 가벼웠다.
그러나 연나의 창은 유성추의 공격을 전부 막아내지는 못했지만, 그 기세를 상당히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그 사이 연나는 다시 몸을 움직여서 날아드는 유성추 사이로 빠져나갔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렸다.
보기에는 간단해 보였지만 거의 자신의 전력을 다한 공격이었는데, 연나는 가볍게 피해버린 것이다.
석목은 낯빛을 흐리며 체내의 진기를 끌어올렸다. 그러자 유성추의 잔영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수가 가장 많을 때는 열 개 이상까지 늘어났다.
곧 유성추가 산도 엎어버릴 수 있을 것 같은 대단한 기세로, 연나를 향해 날아갔다.
그때, 깜짝 놀랄만한 장면이 펼쳐졌다.
연나가 석목의 필사적인 공격을 전부 가볍게 피해낸 것이다.
유성추가 일으킨 강풍이 주위의 나무를 흔들자 나뭇잎이 비 오듯 떨어졌다. 연나는 흩날리는 낙엽과 유성추 사이를 좌우로 움직였다.
연나는 때로는 허리를 숙이고 때로는 팔을 펼치며, 마치 바람에 휘날리는 버들나뭇잎처럼 유연하게 몸을 움직였다. 아직 꺼지지 않은 모닥불에 비춰진 하얀 해골의 몸이 영롱하게 빛났다.
연나는 공격을 피하고 있는 것보다는 마치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마치 하늘을 나는 제비의 움직임 같기도 했으며, 서생의 책 위에서 노니는, 붓의 움직임처럼 보이기도 했다.
숲속의 시냇물을 배경으로, 모닥불과 낙엽, 유성추를 휘두르는 청년과 춤을 추는 듯, 움직이는 해골이 한데 어우러진 광경은 괴이하면서도 우아해보였다.
깡!
연나가 뼈창으로 쇠사슬을 찌르자 유성추가 경로를 살짝 틀며 연나의 몸을 스쳐지나갔다.
석목은 유성추를 던져버리고 연나에게 뛰어들며 등 뒤의 운철흑도를 뽑았다. 칼날이 반짝이며 열세 개의 검광이 연나를 향해 몰아쳤다.
그러자 연나의 창이 하나의 커다란 호선을 그리며 열세 개의 검광에 정면으로 맞섰다.
금속이 충돌하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열세 개의 검광이 모두 부서지며, 거대한 힘이 운철흑도를 통해 흘러들어왔다. 석목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한 보 물러났다.
연나는 바람 속의 나뭇잎처럼, 뒤로 일 장 가까이 날아가, 가볍게 바닥에 착지했다.
표정이 변한 석목은 더 이상 공격을 이어나가지 않았다.
그는 방금 일련의 공방으로 연나의 실력이 자신보다 위라는 것을 명확히 깨달았다.
아마도 방금 대결에서, 연나는 실력의 절반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석목은 자신이 토템비술을 사용해 변신한다 해도 연나를 확실히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지 않다.
“하하!”
석목이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연나는 고개를 살짝 갸우뚱하며 석목을 의아하게 보았다.
석목은 기분이 좋아졌다. 연나의 실력이 강할수록 석목에게는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앞으로는 선천고수인 연나가 수련을 도울 테니, 자신이 무예를 연습하고 실전경험을 쌓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그 즈음, 하늘이 점점 밝아오고 있었다.
석목이 지금 있는 곳은 대제국과 염국의 경계였다. 이곳은 황야였지만 왕래하는 사람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석목은 손을 흔들어 연나를 사령계로 되돌려 보낸 후 짐을 챙겼다.
하늘이 완전히 밝아진 후, 석목은 마차를 타고 흑마문을 향해 계속 이동했다.
* * *
그로부터 반년이 지난 후의 어느 밤.
도로변의 풀숲에 마차가 세워져 있었다.
마차의 옆에서 노란 말 두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달빛 아래에서 여유롭게 풀을 뜯어먹고 있었다.
석목은 마차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가부좌를 틀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는 반년 동안 끊임없이 탄월식을 수련해왔고, 그 결과 그의 머릿속에 있는 달빛의 결정은 드디어 호두만큼 커졌다.
석목은 하늘의 보름달을 한 번 바라본 후, 두 눈을 감고 빠르게 꿈속으로 들어갔다.
예의 그 은색 바위 위에서 흰 원숭이가 탄월식을 수련하고 있었다.
원숭이의 머릿속에서, 흰 소용돌이가 달빛의 정수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수련이 유난히 오래 걸렸고, 지루해진 석목은 주위의 경치를 감상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석목은 원숭이를 보며 정신을 집중해보고 크게 놀랐다. 원숭이의 머릿속에 있는 달빛 결정이 오리알만 하게 커져 있었다.
석목은 무언가 특별한 일이 생기려 한다는 것을 예감했다.
원숭이 머리의 소용돌이는 달빛의 정수를 끊임없이 빨아들였지만, 결정에는 더 이상 변화가 생기지 않았고, 소용돌이가 점점 밝아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소용돌이의 중심에서, 흰 빛이 솟아나와 원숭이의 정수리를 뚫고 수십 장 높이까지 뻗어 올라갔다.
오리알만 한 크기의 결정이 흰 빛의 기둥 속에서 점점 떠오르더니, 원숭이의 정수리를 통과해서 근처에 멈췄다.
결정이 허공에서 빛을 뿜어내며 빠른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하자, 하늘에 있는 달빛의 정수가 결정을 향해 세차게 밀려들어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결정은 더 밝고 강한 기운을 뿜어냈다.
그 순간, 원숭이가 고개를 들고 포효를 하자, 순간 하늘이 어두워졌고, 동시에 석목은 꿈에서 깨어나며 두 눈을 떴다.
석목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꿈을 자세히 떠올려보았고, 곧 다시 두 눈을 감고 꿈속으로 들어갔다.
반 시진 후, 석목은 다시 꿈에서 깨어났다. 그는 무언가를 시도해보더니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런 식으로 꿈속에 들어갔다 깨어나기를 열한 번이나 반복하고 나서, 석목은 마침내 무언가를 깨달았다.
다시 꿈에 들어갔을 때, 석목은 흰 원숭이가 포효하는 순간, 모든 달빛이 결정에 흡수되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흰 원숭이에게 전부 먹힌 후, 하늘의 달빛은 눈으로 분별할 수 없을 정도의 느린 속도로 밝아졌다.
순식간에 원숭이의 머릿속에 들어온 달빛은 소용돌이를 빠르게 회전시켰다. 백회혈에 위치한 오리알만 한 결정이 크게 빛을 뿜어내더니, 갑자기 보름달처럼 동그랗게 변했다. 동시에 신선의 후광 같은 동그란 빛의 고리가 머리 뒤에 어렴풋이 생겨났다.
흰 원숭이는 흥분해서 박수를 치며 소리 질렀다. 이어 산 아래의 어느 커다란 나무 꼭대기에 뛰어오르더니, 다른 나무로 건너갔다.
원숭이는 그렇게 한동안 나무와 나무 사이를 끊임없이 뛰어다녔다.
석목은 흰 원숭이의 흥분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다. 그는 원숭이가 탄월식을 대성한 것이라고 어렴풋이 추측했다.
원숭이가 다른 나무로 뛰어 넘으려는 순간, 석목은 갑자기 어지러움을 느끼며 꿈에서 깨어났다.
잠에서 깨어난 석목은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호두만한 결정이 어느새 이전보다 훨씬 커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또 체내에 쌓여 있던 법력은 텅텅 비어 있었다.
석목은 매우 기뻤다. 원래대로라면 호두 크기의 결정이 이 정도까지 커지려면 며칠은 걸리기 때문이다.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석목은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두 눈을 감고 온신술을 운기했다.
그러자 곧이어 익숙한 상황이 발생했다.
법력이 머릿속의 결정과 닿는 순간, 결정이 쾅 소리를 내며 터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전의 초승달 모양이 아닌, 원반처럼 둥그런 흰 보름달 모양으로 변했다.
석목 자신의 몰랐지만, 그 순간 그의 머리 뒤에 동그란 빛의 고리가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러자 머릿속의 보름달은 법력의 홍수로 변했고, 석목의 인도에 따라 단전으로 흘러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전신의 경맥이 더욱 넓어졌고, 단전에 담긴 법력 역시 크게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