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기회를 놓치다
이어진 여정 동안 석목은 밤마다 꿈속에 들어가 탄월식을 수련했다.
꿈속의 흰 원숭이가 탄월식을 대성한 덕분에, 석목은 짧은 시간에 달빛의 정수를 통째로 흡수할 수 있었다. 달빛의 정수가 다시 원래대로 회복되려면, 한 시진 가까이 걸렸지만, 하룻밤이면 달빛의 정수를 여러 차례 흡수할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이전에는 반 년 정도 걸려 만들었던 호두 크기의 결정을 이제는 한 달 안에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호두 크기의 결정을 연달아 세 개 흡수한 석목은 결국 세 달 만에 온실술 5단계에 오를 수 있었다.
석목은 숲속의 공터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는 충만한 법력의 흐름을 느끼고 매우 기뻐했다.
법력뿐만 아니라 정신력도 이전보다 훨씬 증가했고, 머리에서는 청량함이 느껴졌다.
온실술 5단계에 오른 석목은 드디어 영계술사가 된 것이다. 정식으로 술법의 길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갑자기 무언가를 떠올린 석목은 두 눈을 감고, 기환용(气环桩)에 관한 내용을 떠올렸다. 이는 온신술이 5단계에 이르면, 자연스레 사용할 수 있게 되는 술법이었다.
몸을 일으킨 석목은 멀지않은 곳에서 풀을 뜯어먹고 있는 말에게 다가갔다.
두 말과의 거리가 일 장 정도 남았을 때, 석목은 발걸음을 멈추고 한 손을 들어 수인을 맺었다. 동시에 주문을 외우자 체내의 법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석목이 두 말을 향해 손을 뻗자 흰색 빛이 쏟아져 나가더니, 허공에서 빛의 사슬로 변했다.
두 말은 흰 빛이 날아오는 것을 보고 놀라, 본능적으로 도망가려 했지만, 사슬의 빠르기는 말들이 피할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흰색 빛의 사슬은 말들의 복부를 감아서 한데 묶어버렸다. 말들은 발버둥 치며 비명을 질렀으나, 강력한 속박으로 인해 마치 샴쌍둥이처럼, 붙어서 떨어지지 못했다.
대략 여덟 번 정도 호흡할 시간이 흐르자, 하얀 빛의 고리는 천천히 흩어져 사라졌다. 말들은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자, 바로 마차를 끌고 도망가려 했으나, 커다란 나무에 밧줄로 묶여 있어서 불가능했다.
그 모습을 본 석목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 시간이라면 적을 세 번은 더 죽일 수 있었다.
* * *
몇 달 후, 태양이 작열하는 오후.
기이한 나무가 자란 숲속에서 석목이 걸어나왔다. 그는 긴 여행길에 지쳐 있었다.
석목은 멀지 않은 곳에 우뚝 솟아 있는 검은 산봉우리들을 보며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열사부족의 저주에 당해 어쩔 수 없이 야만족 황무지에 들어간 지 무려 이 년, 그동안 갖은 고생을 한 뒤 드디어 흑마문으로 돌아온 것이다.
석목은 흑마문으로 돌아오는 여정 동안 끊임없이 쉬골단과 혈강단을 복용해 반야천상공 11단계에 올라 후천 대원만의 경지에 도달했고, 종종 연나와 대련을 하며 실전 감각을 크게 키웠다.
석목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13호 산봉우리를 향해 곧장 발걸음을 내딛었다.
일 각 후, 돌집이 모여 있는 구역에 도착한 석목은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이곳으로 오는 내내, 거리가 너무 한산했던 것이다.
펑소 인파가 넘치는 골짜기의 중심에 위치한 광장에도 인적이 매우 드물었으며, 돌집이 밀집된 구역에는 거의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석목은 자신의 집에 도착했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돌아왔다!”
방 안은 먼지가 두텁게 쌓인 것을 제외하면, 몇 년 전과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석목은 들고 있던 유성추와 배낭을 내려놓고 방 안을 간단하게 청소했다. 그 뒤 광장에서 현재 종문의 상황을 들어보려는 생각으로 밖으로 나섰다.
잠시 후, 골짜기의 광장이 눈앞에 보일 때쯤 뒤에서 반가움이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석 형, 돌아왔군요!”
석목은 발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청년을 바라보았다.
그는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내려오는 장발을 하고, 입가에 검은 수염이 자라 있었다.
청년을 본 석목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는 몇 년 전 자신과 함께 종문에 들어온 백석이었다.
백석은 이전과 다르게 상당히 성숙해진 분위기였으며, 몸에서는 후천중기 무인 정도의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백 형, 길거리에 사람이 왜 이렇게 적죠? 종문에 무슨 일이 있나요?”
석목이 백석에게 인사를 한 뒤 물었다.
“하하, 종문에서 진행하는 등급전이 열리는 중이에요. 모두가 시합에 참가하러 갔죠!”
백석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서 백석은 그제야 석목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자신보다 강하다는 것을 깨닫고 놀랐다.
“등급전이요?”
석목이 의외라는 듯이 되물었다.
“야만족과 동맹을 맺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종문에서는 다시 일 년에 한 번씩 등급전을 시행하기로 했어요. 그리고 얼마 전 올해의 등급전이 시작됐죠. 몇 년 만에 이루어지는 등급전이니만큼, 종문에서 십 위 안에 드는 제자에게 평소보다 더 많은 포상을 주기로 약속했어요.
듣기로는 일 등에게는 아주 진귀한 물건을 준다고 하더라고요! 석 형이 조금만 일찍 돌아왔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이미 병급제자의 순위는 정해졌고, 을급제자의 순위를 정하는 시합이 이루어지는 중이에요. 석 형의 지금 실력이라면 분명 가볍게 을급제자에 오를 수 있었을 텐데 말이에요.”
백석의 말을 들은 석목이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도량이 큰 석목은 다시 백석과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어차피 과거에 등급전에 참여하고자 했던 것은 자원을 얻어 반야천상공을 수련하기 위해서였다. 현재 그는 심법 11단계에 올랐으니 한동안은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참, 백 형, 이번에 몇 등을 했죠?”
석목이 물었다.
“하하…. 그건 한동안은 비밀이에요. 때가 되면 알게 될 거예요.”
백석이 웃으며 대답했다.
“소명은 잘 지내요?”
석목은 백석의 대답에 그다지 개의치 않고 다시 물었다.
“하하, 잘 지내죠. 남풍과 곽무 두 사람 역시 야만족과의 전쟁에서 무사히 돌아왔어요. 마침 오늘 저녁에 천향루에서 함께 식사하기로 약속했는데, 함께하는 것이 어떤가요?”
“그야 당연히 좋지요!”
옛 친구와의 재회로 기분이 좋아진 석목이 대답했다.
“우선 등급전을 구경하러 가죠. 오늘 정해지는 을급제자 상위 열 명에게는 갑급제자에게 도전할 자격이 주어지니, 시합이 흥미진진할 거예요!”
백석이 석목에게 말했다.
석목도 을급제자의 실력에 대해서 굉장히 궁금했던 참이라, 별로 고민하지 않고 대답했다.
두 사람은 곧바로 8호 산봉우리와 7호 산봉우리 사이에 위치한 골짜기를 향해 출발했다. 현재 등급전은 그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석 형, 그런데 왜 이렇게 종문에 늦게 돌아온 거예요?”
출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백석이 석목에게 물었다.
석목은 씁쓸하게 웃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야만족의 저주에 걸려 황무지에 들어갔을 당시의 이야기였다. 물론 그중에서 알리고 싶지 않은 일부 사건은 슬그머니 숨겼다.
그럼에도 백석은 석목의 이야기를 듣고 크게 놀랐다. 단신으로 야만족의 영토에 들어가서, 대제국의 화무공주를 구하고 야만족 성산까지 갔을 뿐만 아니라, 들어본 적도 없는 용사의 문이라는 금지에 들어갔다니, 백석으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백석이 석목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감탄과 놀라움이 가득했으며, 벌어진 입은 한동안 다물어지지 않았다.
석목은 백석에게도 그동안 겪은 일을 물었다. 백석은 자신이 야만족과의 전투에서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석목처럼 엄청난 경험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 역시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
석목은 백석의 이야기를 통해, 그와 함께 종문에 들어온 삼사백 명의 신입제자 중 절반이 야만족과의 전쟁에서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기존에 있던 제자인 주광과 곡곤 등도 전투 중에 목숨을 잃었다고 했다.
물론 종문에서는 그만큼 새로운 제자를 많이 모집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석목과 백석은 이야기를 나누던 중 목적지인 8호 산봉우리와 7호 산봉우리 사이의 골짜기에 도착했다.
이곳은 11호와 12호 산봉우리 사이의 산골짜기보다 훨씬 넓었으며, 도처에 알록달록한 꽃들이 자라 있어서, 마치 거대한 화원처럼 보였다. 중앙에 위치한 만 평 가까이 되는 사각형 광장에는 열 개의 대형 연무대가 일렬로 서 있었다.
광장은 이미 무수히 많은 흑마문의 제자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그 수는 대강 보아도 이천 명은 넘어 보였다. 예전의 순위전과 비교하면 두 배가 넘는 숫자였다. 아무래도 그동안 흑마문에서 상당히 많은 제자를 모집한 것 같았다.
주위를 둘러본 석목은 많은 연무대가 비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열 개의 연무대 중 중간에 있는 다섯 개의 연무대 위에서만, 격렬한 전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 다섯 개의 연무대 주위에는 이미 사람이 가득 서 있었다. 그래서 석목과 백석은 십 장 정도 떨어진 곳에서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대화를 멈추고 시합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시력이 뛰어난 석목은 십 장이 넘게 떨어진 거리에서도, 마치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처럼 모든 장면을 명확히 볼 수 있었다.
가장 왼쪽의 3호 연무대에는 백의의 청년과 흑의의 사내가 겨루고 있었다. 두 사람은 모두 후천후기의 무인이었다.
백의의 청년은 은빛으로 반짝이는 장검을 사용했다. 비 오듯 쏟아지는 은색 검광이 흑의의 사내의 방어를 뚫으려,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었다.
그와 맞서는 흑의의 사내는 일 장 가까이 되는 길이의 검은색 채찍을 들고 있었다. 사내는 채찍을 마치 뱀처럼 움직이며, 청년의 공격을 빈틈없이 막아내고 있었다.
펑! 펑!
검은색 채찍과 은색 검광이 충돌하며, 기의 파도가 주위로 몰아쳤다. 몇 장 밖에 떨어져 있던 사람들까지, 강풍이 날아오는 것을 느낄 정도였다.
“석 형, 저 흑의의 사내는 우초이예요. 소문으로는 육 년 전까지 후천 중기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요. 저 백의의 청년은 도염입니다. 그는 같은 시기에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병급제자였으나, 지금은 을급 제자 중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서, 제자들 사이에서 그 이름이 자자합니다. 하지만 삼 년 뒤에는 우리도 저들에게 절대지지 않을 거예요.”
백석이 연무대 위의 백의의 청년과 흑의의 사내를 보며 말했다.
“패기가 대단합니다. 무인의 길을 걷는 자라면 응당 그래야지요.”
석목의 칭찬에 백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청년의 공격이 열 초식 정도 이어졌을 때 허점이 드러났다. 그러자 검은 채찍이 그 사이로 파고들었다.
퍽!
채찍에 복부를 거세게 가격당한 청년이 연무대 밖까지 날아가서 바닥에 처박혔다. 청년은 입에서 피를 토해낸 뒤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연무대 아래의 관중들 사이에서, 두 명의 잡역 제자가 빠르게 뛰어나왔다. 그들은 익숙한 듯 쓰러진 청년을 들고 갔다.
흑의의 사내가 채찍을 오른팔에 감은 채, 천천히 연무대 아래로 내려왔다. 그는 을급제자 중 5위에 올랐다.
관중들 사이에서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사내의 심법과 채찍술에 관한 논의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석목은 입술을 삐죽이며, 다른 몇 개의 연무대도 둘러보았지만, 급격하게 흥미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백석이 여전히 흥미진진하게 경기를 구경하는 것을 보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속으로는 다른 일에 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