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축하
반 시진 후, 광장의 모든 사람이 숨죽이고 5호 연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곳에는 을급제자 중 1위와 2위가 서 있었다.
석목은 분위기가 이상한 것을 느끼고 고개를 들어 연무대 위를 보았다. 얼굴에 흉터가 있는 청년과 키가 크고 마른 청년이 격렬하게 겨루고 있는 중이었다.
흉터가 있는 청년이 휘두르는 창은 창끝에서 은은한 붉은 빛을 뿜어냈다. 그리고 키가 크고 마른 청년은 푸른빛이 감도는 장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석목은 마르고 키 큰 청년을 유심히 보았다. 두 볼이 깊게 파이고 기다란 팔다리를 가진 그의 얼굴이 마치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는 것처럼 익숙하게 느껴졌다.
키 큰 청년은 번개같이 빠른 움직임으로 상대의 주위를 끊임없이 선회하며 공격을 이어갔다. 그의 손에 쥐어진 장검이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며 상대를 압박했다.
흉터가 있는 청년은 진기를 끌어올린 채, 창을 매섭게 휘두르고 있었다. 그는 그러면서 전신을 물샐 틈 없이 보호해서, 상대의 공격이 파고들 틈을 내주지 않았다. 동시에 창끝을 생각지도 못한 곳으로 찔러서, 상대를 여러 차례 애먹였다.
그러나 키 크고 마른 청년은 전혀 조급해하지 않고, 이 각 가까이 공격을 이어나갔고, 결국 상대는 허점을 보였다.
마른 청년은 상대가 창을 회수하는 틈을 노려, 바닥을 박차고 앞으로 쏘아져나갔고, 순식간에 상대의 바로 앞까지 접근했다.
그가 팔을 휘두르자 푸른 장검이 순식간에 열 개가 넘는 검영으로 나뉘어, 상대의 손을 노리고 날아갔다.
그 순간, 흉터를 가진 청년이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오른손을 들자, 소매에서 원통 모양의 암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내는 암기에서 은침이 쏘아지는 순간 뒤로 후퇴했다.
마른 청년은 화난 표정으로 수인을 맺으며 무언가 중얼거렸다. 그러자 푸른빛의 방패가 허공에 나타나 은침을 막았다.
“풍황순술(风蝗盾术), 영계술사다!”
관중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바로 그 순간, 마른 청년의 몸에서 후천 대원만 무인 수준의 강력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후퇴 중인 상대를 순식간에 따라잡은 마른 청년은 장검을 빠르게 휘두른 뒤, 칼등으로 상대의 가슴을 강하게 후려쳤다.
칼등에 맞은 상대는 연무대 밖으로 날아가, 바닥에 떨어지며 몇 바퀴나 굴렀다. 그는 정신을 잃고 있었고, 전신에 생긴 열 개가 넘는 베인 상처에서 피를 콸콸 쏟고 있었다.
그는 후천 대원만의 무인이자 영계술사였다.
연무대 주위는 순간 침묵에 휩싸였다. 연무대 위에서 심판을 맡은 종문의 장로마저 크게 놀란 것 같았다.
그때, 사람들 사이에서 두 명의 잡역제자가 다시 나왔다. 그들은 쓰러진 청년의 상처를 지혈한 뒤 빠르게 이송했다.
“저 자는 누구죠?”
석목이 호기심에 찬 눈으로 마른 청년을 바라보며 백석에게 물었다.
“석 형, 설마 단천리도 모르는 겁니까? 저 자는 과거 병급제자 중에서 1위를 차지했던 자예요. 그가 이 정도까지 강한지는 저도 몰랐습니다. 어쩌면 이번에 갑급제자 중 한 명을 끌어내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백석이 존경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너무 소식에 어두웠군요.”
그때, 심판을 맡은 장로가 큰 소리로 외쳤다.
“단천리의 승리다!”
그의 목소리가 한참 동안 광장에서 울리며 제자들의 환호성을 덮었다.
* * *
저녁 무렵, 백석과 소명을 따라 13호 산봉우리에 위치한 천향루에 도착한 석목은 바로 삼 층까지 올라갔다.
천향루는 이 층까지 웅장하고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지만, 삼 층에 올라가는 순간 분위기가 확 변했다. 화려한 장식은 많지 않았지만 굉장히 고풍스럽고 고급스러웠다.
“오늘 식사는 저렴하지 않겠는데요?”
석목이 주위를 둘러보고 웃으며 말했다.
“당연하죠.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요.”
소명이 비밀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석목이 더 묻기 전에 별실로 끌고 들어갔다.
안에는 석목이 이미 알고 있는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몸매가 아름답고 외모가 수려한 남봉, 그리고 호탕한 외모의 곽무였다.
몇 년 만에 본 두 사람의 외모는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몸에서 느껴지는 진기의 파동은 이전과 비교해 확연히 강해져 있었다.
“석목….”
“석 사제!”
남봉과 곽무는 석목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
“두 분, 정말 오랜만입니다!”
석목이 살짝 웃으며 두 사람에게 인사했다.
석목과 서로 잘 아는 사이가 아니었던 남봉은 고개를 끄덕여 인사한 후 바로 자리에 앉았다.
곽무는 석목과 이전부터 관계가 매우 좋았다. 그는 석목을 잡아 끌어 옆에 앉힌 후, 몇 년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묻기 시작했다.
백석과 소명은 그 옆에 앉아서 남봉에게 인사했다.
곽무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면서, 석목은 자신이 야만족 황무지에 들어가 야만족과 동맹을 맺는데, 도움을 준 사실이 흑마문의 일반 제자들 사이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것을 알았다.
물론 석목 역시 별로 자랑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그저 전선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만 대강 설명했다.
잠시 후, 소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웃으며 잔을 들고 말했다.
“오늘 모두가 한 자리에 모인 것은 남봉 사매와 백석 형이 이번 등급전에서 을급제자 50위 안에 든 것을 축하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랬군요! 축하합니다!”
석목이 술잔을 들어 올리며 백석과 남봉 두 사람을 축하했다.
“운이 좋았을 뿐이에요.”
두 사람은 모두 을급제자 50위 안에 든 것을 매우 자랑스러워하는 듯했다. 평소에 표정이 늘 차가운 남봉도 미소를 지었다.
“하하, 소 사제, 어째서 자신은 쏙 빼놓나. 이번에 을급제자 중 30위 안에 들지 않았는가. 기존 제자들보다 낫네!”
곽무가 웃으며 말했다.
“과찬입니다!”
소명이 곽무를 향해 인사한 후 네 사람은 동시에 술잔을 비웠다. 그 뒤 소명은 무언가 떠오른 듯, 안타까운 표정으로 석목에게 말했다.
“등급전에 참여하지 못한 것은 정말 아깝게 되었어요. 석 형의 실력이라면, 분명 을급제자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높은 순위를 차지했을 텐데요.”
“괜찮아요. 다음에 다시 참가하면 되죠.”
석목이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석목은 현재 기운을 숨기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그가 이미 후천대원만의 경지에 오른 것을 모르고 있었다. 단지 그가 자신들보다 살짝 강하다고 느끼는 정도였다.
바로 그때, 별실의 문이 열렸다.
석목이 고개를 돌려보니,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청년이 들어왔다. 그는 존영각의 간부 금환이었다.
그는 이전보다 상당히 강해져 있었고, 약간 건방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뿜어내는 기운으로 보아 후천후기에 도달한 것 같았다.
“금 사형께서 이곳에 와주시다니 감격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어서 자리에 앉으시지요.”
백석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반겼다.
남봉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도 공손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직 석목만 자리에 앉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예의 차릴 필요 없네. 우리 모두 존영각의 사람이 아닌가. 이번에 소 사제와 함께, 을급제자중에서 낮지 않은 순위에 이름을 올렸으니, 자네를 추천한 사람으로서 굉장히 자부심을 느꼈다네. 당연히 와서 축하해줘야지.”
금환이 웃으며 다가와 말했다.
“금 사형은 이번에 을급제자 중 무려 16위에 올랐으니 내년의 등급전에서 분명 10위 안에 들 수 있을 겁니다!”
금환은 미소를 지은 채 시선을 돌리다가, 여전히 자리에 앉아 있는 석목을 보고 낯빛을 살짝 흐렸다.
“흠, 이 사제는 누구지? 조금 낯선데.”
금환이 살짝 언짢은 목소리로 말했다.
석목은 변경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기간 동안 몇 차례 종문에 돌아왔지만, 금환과는 단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다. 게다가 석목의 분위기와 피부색이 이전과는 상당히 달라졌기 때문에, 금환이 한순간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석목입니다. 귀인은 모든 것을 쉽게 잊는다더니, 저를 깔끔하게 잊으셨나 봅니다.”
석목이 말했다.
그 말을 듣고 금환은 멍청한 표정이 되어 다시 한 번 석목을 자세히 보았다.
“석 사제였군요. 음….”
순간 금환의 표정이 변했다. 후천후기의 실력을 가진 그로서도 석목의 경지를 완전히 파악할 수 없었던 것이다.
“몇 년 못 본 사이에 후천후기의 경지에 오른 줄은 몰랐군요.”
금환이 정중하게 말했다.
석목은 살짝 웃으며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금환의 말을 들은 다른 사람들은 모두 크게 놀랐다. 그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석목이 자신들보다 경지가 살짝 높을 뿐이라고 생각했지, 이미 후천후기의 경지에 올랐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하, 알고 보니 실력을 숨겨두고 있었군요.”
잠시 후, 백석이 웃으며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금 사형, 상석에 앉으세요.”
소명이 황급히 금환에게 자리를 마련해준 후, 원래 차석에 앉아 있던 석목을 금환의 오른쪽으로 밀었다.
석목은 누차 거절했지만 소명과 사람들의 고집을 이길 수 없어서, 결국 그 자리에 앉았다.
“경지가 이렇게 빠르게 오를 수 있다니, 야만족과의 전쟁에서 기연을 얻은 건가요?”
금환이 웃으며 물었다. 들어올 때의 오만한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기연이라는 것이 어디 그리 흔합니까. 그저 제가 수련하는 심법의 특성상 다른 심법보다 수련 속도가 조금 빠를 뿐입니다.”
석목이 웃으며 건성으로 말했다.
그 말에 금환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그는 석목이 속에 없는 소리를 하는 것을 알아챘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금환은 석목이 수련하는 것이 비교적 수련하기 쉬운 반야천상공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끊임없이 단약을 먹는다 해도, 이렇게 빠르게 성장할 수는 없었다.
말재주가 좋은 백석과 소명 덕에 분위기는 금세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때 별실의 문이 다시 한 번 갑자기 열리며, 스물다섯 정도 되어 보이는 마르고 키 큰 청년이 걸어 들어왔다.
청년은 방안의 사람들을 둘러보았고, 자리에 있던 모두는 어이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그들은 그 청년과 친하지도 않았고 초대한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청년은 기운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후천후기의 고수가 분명했다.
“저희는 이 모임에 사형이 올 줄….”
백석이 가장 먼저 일어나 매우 예의바르게 말했다.
“엽 형이군요.”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금환이 자리에서 일어나 웃으며 인사했다.
“모두 내가 소개하지. 이 분은 이번 등급전에서 을급제자 12위를 차지한 엽곤 사형이네. 점잖은 사람이라 모두가 잘 모를 수도 있네.”
금환이 청년을 사람들에게 소개했다.
눈앞의 청년이 금환보다 순위가 높다는 이야기를 듣자 모두의 시선이 변했다.
청년은 엄숙한 표정으로 금환에게 고개를 끄덕인 후 석목에게 시선을 돌렸다.
“혹시 석 사제가 맞습니까?”
“맞습니다. 제가 석목입니다. 무슨 일이지요?”
석목이 살짝 의아해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물었다.
“장문인과 장로들의 명령을 전달하러 왔습니다.”
청년은 품속에서 종이를 꺼내며 말했다. 종이에는 아주 작은 글자가 줄줄이 적혀 있었다.
청년이 종이에 적힌 내용을 또박또박 읽었다.
“장문인의 명령을 받들라. 야만족 전쟁에서 세운 공이 큰 병급제자 석목에게 내일 시합에서 을급제자 중 한 명에게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한다.”
석목은 너무 갑작스러운 소식에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곧 크게 기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