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예상 밖의 일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은 석목과 청년을 번갈아보았다.
“석목 사제, 여기 장문인의 명령서네. 오늘밤 잘 생각해보고 내일까지 대답을 주게나. 물론 내일 등급전에 참여할 생각이 없다면 참여하지 않아도 되네.”
석목은 명령서를 받아들며 청년에게 말했다.
“이곳까지 와서 전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장문인과 장로님들께서 이토록 배려해주시니, 당연히 받아들여야지요.”
“좋네. 그럼 석 사제는 누구에게 도전할지 오늘밤 잘 생각해보게나.”
청년은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 순간, 석목이 말했다.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을급제자 단천리 사형에게 도전하겠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크게 놀란 표정이 되었다.
청년 역시 놀라서 몸을 돌려 석목을 바라보았다.
“좋네, 석사제의 말을 전달하도록 하지.”
청년은 대답한 즉시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
“석 사제, 이게….”
금환은 멍한 표정으로 석목을 바라보며 한참 동안이나 말을 잇지 못했다.
“석 형, 오늘 단천리 사형의 실력을 보지 않았습니까. 그는 후천 대원만의 무인이며 동시에 영계술사예요. 정말 그를 이길 수 있겠어요?”
백석이 물었다.
“맞아요. 종문에서 이렇게 좋은 기회를 줬는데, 다른 사람에게 도전하는 것이 어떤가요? 을급제자의 순위를 얻을 수 있도록 말이에요.”
소명도 걱정스레 덧붙였다.
그러나 석목은 웃으며 말했다.
“배려 감사하지만 이미 마음을 굳혔습니다. 술이나 더 마시지요.”
사람들은 자신감 넘치는 석목의 모습을 보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금환은 석목에게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결국 입을 다물었다.
그는 석목이 도대체 야만족 전쟁 때, 무슨 공을 세웠기에 장문인과 장로들이 그동안의 관례를 깨트렸는지 궁금했다.
* * *
다음날 이른 아침, 흑마문의 5호와 6호 산봉우리 사이의 광장에 거대한 연무대가 세워졌다.
연무대의 크기는 족히 백 장에 달했으며, 네 귀퉁이에 거대한 돌기둥이 세워져 있었다. 돌기둥에는 은은한 빛을 발산하는 부문이 새겨져 있었다.
관례대로라면 등급전의 마지막 날인 오늘은 을급제자 중 10위 안에 든 자들이 갑급제자에게 도전하는 날이었다. 기회는 단 한 번씩 주어졌다.
만약 을급제자가 대결에서 승리하면, 바로 상대와 순위가 바뀌고, 갑급제자로 최고의 자원을 제공받는 등, 종문의 대대적인 육성을 받게 된다.
다만 갑급제자의 실력은 상당히 강했다. 선천무인이 된 갑급무인이 종문의 장로가 되어 공석이 나지 않는 이상, 을급제자가 도전에 성공해, 갑급제자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을급제자의 도전이 종료된 후에는 열 명의 갑급제자가 서로 도전을 할 수 있었다. 규칙은 모두 같았다. 승자가 패자의 순위를 뺏을 수 있으며, 도전의 기회는 한 번 뿐이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었지만, 이미 거의 모든 흑마문의 제자가 이곳에 모여 있었다. 족히 이삼천 명에 달하는 사람이 연무대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연무대 옆에는 몇 장 높이의 검은색 사각형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비석에는 갑급제자 열 명의 이름이 순위에 따라 순서대로 적혀 있었다.
비석에 앞에는 열 명의 남녀 제자가 일렬로 서 있었는데, 하나하나의 기운이 비범했다. 모두 후천 대원만의 경지에 오른 것이 분명해보였다.
석목은 연무대 아래에서 백석과 소명, 금환 등과 함께 서 있었다. 석목은 그들과 대화를 나누며, 검은색 비석과 열 명의 갑급제자를 바라보았다.
“막녕, 전웅, 백수수….”
모두 검은 비석에 적힌 갑급제자의 이름이었다.
석목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갑급제자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던 석목에게는 그 이름들마저 낯설게 느껴졌다.
“석 형은 항상 수련에만 몰두해서 갑급제자들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지요?”
백석이 석목의 표정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석목 역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그렇다면 제가 간단하게 소개해줄게요.”
백석이 말했다.
“열 명의 갑급제자 중 1위는 가장 왼쪽에 서 있는 막녕이라는 남자예요. 몇 년 전 이미 후천 대원만의 경지에 올랐으며 수속성의 심법을 수련했죠. 사용하는 무예는 은운검결(隐云剑诀)이며, 소문으로는 그를 상대하는 자는 그의 공격조차, 보지 못하고 당한다고 하더군요.”
석목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가장 왼쪽에 서 있는 은발의 청년을 바라보았다.
“2위는 검은 옷을 입은 전웅이라는 사내예요. 굉장히 드문 반석(磐石)혈맥을 지녔으며, 중후하고 튼튼한 것으로 유명한 심법을 익혀 방어가 굉장히 강하죠. 3위인 백수수 사저는 수속성 영계술사로서, 성계술사에 오를 가능성이 높은 천재예요.”
백석은 차분하게 열 명의 갑급제자를 전부 소개했다.
석목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속으로 무언가 결심을 한 듯 그의 눈빛이 살짝 반짝였다.
비석 옆에 세워진 삼 장 높이의 거대한 관람대에는 흑마문의 장문인과 장로들이 있었다.
장문인은 주위의 장로들을 바라보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야만족과의 전쟁에서, 흑마문의 장로가 다섯이나 목숨을 잃었다. 스무 명이 훨씬 넘게 있던 장로는 이제 스무 명도 채 남지 않게 되었다.
물론 야만족과의 전쟁에서 손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전쟁 이전보다 제자의 수가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혹독한 시련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제자들은 모두 상당한 성장을 이루었다. 그것은 요 며칠간의 시합 내용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장문인은 고개를 돌려서, 정신을 딴 데 팔고 있는 금소채를 바라보았다.
“소채, 요즘 정신이 없어 보이는 것 같구나.”
장문인이 말했다.
“별 일 아니에요. 관심 가져주셔서 고맙습니다.”
금소채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장문인은 흰 눈썹을 살짝 꿈틀거린 후, 금소채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두어 걸음 나아갔다.
그 모습을 본 연무대 주위의 제자들이 순간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오늘은 등급전의 마지막 날이다. 먼저 을급제자 중에서 10위 안에 든 제자가 갑급제자에게 도전할 것이고, 을급제자의 도전이 종료되면, 갑급제자가 서로간의 도전을 통해 순위를 확정할 것이다. 구체적인 과정은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장문인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좌중의 귀에 분명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오늘 등급전을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 알릴 사항이 있다.”
장문인이 화제를 돌렸다.
그러자 백석과 소명 등은 흠칫 몸을 떨며 석목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매우 평온해 보이는 석목의 침착함에 감탄했다.
“야만족과의 전쟁이 종식되기 전, 본문의 제자 석목이 홀몸으로 야만족 금지에 들어가서 연맹의 사자단을 도왔다. 그래서 야만족과의 정전협정을 체결해내는 큰 공을 세웠다.”
장문인이 연무대 아래의 석목을 바라보며 말했다.
연무대 아래의 제자들도 놀라서 일제히 석목을 바라보았다. 열 명의 갑급제자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석목은 주위의 시선에 전혀 반응하지 않고,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사정으로 인해, 어제 막 본문에 복귀한 석목은 이번 등급전에 참여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와 장로들은 상의를 통해, 이번 한 번만 관례를 깨고, 등급전 시작 전 을급제자에게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석목에게 제공하기로 했다.”
장문인이 단숨에 말했다.
그러자 순간 장내가 소란스러워졌지만, 이의를 제기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이의가 없으니 나머지는 견 사제에게 맡기겠네.”
장문인은 옆에 있는 회색 옷차림의 노인에게 말한 뒤 자리에 앉았다.
산양 수염이 있는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몸을 날려 연무대에 착지했다.
“어제 석목에게 미리 물어본 결과, 그는 을급제자 1위인 단천리에게 도전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회색 옷의 노인이 연무대 아래를 내려다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
전날 놀라운 실력으로 1위를 차지한 단천리에게 석목이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이야기에, 연무대 아래의 제자들은 모두 크게 놀랐다.
“석목, 단천리, 위로 올라오거라.”
회색 옷을 입은 노인이 말했다.
석목은 느린 걸음으로 연무대 위로 걸어 올라갔다. 주위의 제자들이 그 모습을 보고 좌우로 길을 열어주었다.
석목은 운철흑도가 아닌, 쇠사슬을 감아서 만든 유성추를 들고 있었다.
“저건 뭐지? 설마 유성추인가?”
석목이 들고 있는 유성추를 본 백석 일행이 멍청한 표정이 되었다.
그들은 이제껏 석목이 도를 사용하는 것만 보아왔을 뿐, 유성추를 사용하는 것은 전혀 본 적이 없었다.
연무대 아래의 제자들도 석목을 멍청하게 바라보다가, 곧 떠들썩하게 웃어대기 시작했다. 석목의 유성추는 누가 보기에도 보잘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무기를 들고 등급전에 참여하니 우스워보였던 것이다.
그것은 유성추라기보다는 그냥 쇠사슬로 묶은 돌덩이에 가까웠다. 비록 유성추의 쇠사슬은 두꺼웠지만 평범한 철로 만들어져서, 끊으려 든다면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모두 한 눈에 알아봤다.
장문인과 장로들마저도 석목이 유성추를 든 것을 보고,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와중에 금소채는 석목의 발아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조금이지만, 그가 밟고 지나간 바닥이 아래로 파여 있었다.
금소채의 아름다운 눈에 놀라움이 가득 차더니, 곧 입 꼬리가 살짝 위로 올라갔다.
석목이 연무대에 올라가자 맞은편에서 단천리가 갑자기 나타났다. 그러자 연무대 아래의 제자들이 탄성을 내뱉었다. 실력이 부족한 사람은 그의 움직임은커녕 그림자조차 보지 못했다.
“막 사형은 둘 중 누가 이길 것 같습니까?”
검은 비석 앞에 서 있던 전웅이 옆에 있는 은발의 청년에게 물었다.
막녕이라고 불린 은발의 청년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석목 역시 후천 대원만의 경지에 오른 것 같군. 무기가 매우 무거운 것으로 보아 힘을 늘려주는 심법을 수련했겠지. 후천 대원만에 오른 둘 모두 무인으로서 각자의 특색을 가지고 있지만, 무인인 동시에 영계술사이기도 한 단천리가 승리할 확률이 조금 더 높다고 보네.”
“하하, 과연 날카로운 분석이군요.”
전웅이 웃으며 말했다. 그의 생각도 막녕과 일치하는 것 같았다.
그들의 옆에 있는 백수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 비웃는 듯한 표정이 어렴풋이 스쳐지나갔다.
막녕이 그녀의 표정을 눈치 채고 약간 차가운 투로 말했다.
“백 사매는 내 말이 틀리다고 생각하는가?”
“설마요. 다만 단천리든 석목이든 승리하는 자는 분명 우리에게 도전할 텐데, 승패를 예상하는 것보다는 실력을 잘 봐두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모두의 앞에서 망신을 당하기 전에요.”
백수수가 살짝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하하, 이제 막 후천 대원만의 경지에 오른 두 사람이 우리에게 위협이 될 리가 있나. 저들을 너무 높게 평가하는 것 아닌가?”
막녕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백수수는 차가운 표정으로 두 사람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더 이상 그들을 상대하지 않았다.
전웅은 자신의 배를 만지작거리며 아무 말을 하지 않았고, 막녕도 눈을 서늘하게 번뜩이며 입을 닫았다.
한편 연무대 위에 선 석목은 눈앞의 단천리를 보며 살짝 웃었다.
단천리는 뽐내듯 빠른 속도로 연무대 위로 올라왔지만, 석목에게 있어서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석목, 나를 상대로 고른 것을 후회하게 해주마!”
단천리가 독사처럼 석목을 매섭게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
“아, 그럼 기대하겠습니다.”
석목이 무표정한 얼굴로 대꾸했다.
단천리는 화가 난 표정으로 얇고 긴 장검을 뽑았다. 푸른빛을 은은하게 뿜어내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등급이 높은 법기 같았다.
단천리가 석목이 들고 있는 유성추를 보며 깔보듯 말했다.
“겁도 없이 그런 무기를 들고 연무대에 오르다니, 멍청한데다 무모하기까지 하구나.”
“제 무기까지 관심을 가져주다니 감사합니다.”
석목이 웃으며 유성추를 가볍게 돌렸다.
그때, 회색 옷을 입은 노인이 주문을 외우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연무대 주위에 있는 네 개의 검은 기둥이 서로를 향해 빛을 뿜으며 투명한 결계를 형성했다.
“시합 개시!”
회색 옷을 입은 노인이 큰 소리로 시합 시작을 선언한 후 옆으로 물러났다.
단천리는 자신만만한 석목을 보며 강력하게 적의를 불태웠다.
그는 큰 기합과 함께 경신술을 시전했다. 푸른빛을 몸에 두른 단천리가 자신의 최고 속력으로 석목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어 단천리는 한 손으로 장검을 휘두르며 다른 한 손으로 수인을 맺었다. 순간 열 개가 넘는 푸른 장검의 검영, 그리고 푸른색 바람의 칼날 다섯 개가 동시에 석목을 향해 몰아쳤다.
단천리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이렇게 많은 공격 앞에서 석목이 후퇴하거나 방어를 하는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된다면 후속공격을 통해, 삼 합 이내에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