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갑급제자 대 을급제자
단천리는 석목의 우왕좌왕하는 표정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석목은 여전히 태연자약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단천리는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 석목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진기를 끌어올려서, 오른 팔에 집중시켰다.
뒤이어 그의 유성추가 강풍을 일으키며 유성처럼 빠르게 날아갔다.
펑! 펑!
유성추에 부딪힌 검영과 바람의 칼날이 마치 계란처럼 가볍게 깨졌다.
그럼에도 기세가 전혀 줄지 않은 유성추는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단숨에 단천리의 몸 앞까지 다가갔다.
“응(凝)!”
단천리는 공격을 피할 겨를이 없자, 급하게 두 손으로 수인을 맺으며 외쳤다. 그러자 푸른 바람의 방패가 휙 소리와 함께 그의 몸 앞에 나타났다.
쾅!
그러나 유성추와 충돌한 방패는 일격에 박살이 났다.
유성추는 속도가 전혀 줄어들지 않고 날아가서, 단천리의 가슴을 가격하려했다. 순간, 절망에 찬 단천리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런데 유성추가 단천리의 가슴에 닿기 직전, 회색의 빛이 날아왔다. 그 빛은 단천리의 가슴 앞에서 간발의 차로 방패를 형성했다.
쾅!
회색빛의 방패는 유성추와 충돌한 뒤 맹렬하게 빛을 발산했고, 그 상태로 잠시 동안 버티다가 결국 파괴됐다.
두 개의 방어를 뚫으며 위력이 크게 감소한 유성추가 단천리의 가슴을 가격했다. 선혈을 뿜으며 날아간 단천리는 연무대의 결계를 강하게 들이받고 힘없이 바닥으로 미끄러졌다.
석목은 눈을 번뜩이며 앞으로 달려 나가려 했다.
바로 그 순간, 회색 옷을 입은 노인이 귀신처럼 단천리의 앞에 나타나 석목을 막아섰다.
“승부는 이미 갈렸다.”
회색 옷을 입은 노인이 석목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석목은 살짝 웃으며 쇠사슬을 당겨 유성추를 회수했다.
회색 옷을 입은 노인은 그의 유성추를 유심히 보며 눈가를 실룩거렸다. 그리고 단천리의 옆에 쪼그려 앉아서, 그의 가슴에 녹색 부적을 가져다 댔다.
부적에서 뿜어져 나온 녹색 빛이 가슴의 상처를 덮자, 단천리의 얼굴에서 고통스러운 기색이 천천히 줄어들었다. 그는 곧 고개를 꺾고 기절했다.
이어 회색 옷을 입은 노인이 손을 흔들자, 연무대 주위의 결계가 반짝이더니 흩어져 사라졌다.
“승자, 석목!”
회색 옷을 입은 노인이 선언했다.
잠시 정적에 휩싸여 있던 광장에 순간, 하늘을 뒤흔드는 함성이 울려 퍼졌다.
검은 비석 앞에 있는 막녕은 계면쩍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가 승리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단천리가 석목에게 일격에 당해버린 것이다.
백수수는 그런 막녕을 조롱하듯 힐끗 보았다.
전웅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석목의 손에 들린 유성추를 진지하게 보고 있었다.
중상을 입고 기절한 단천리는 잡역 제자에게 실려 내려갔다. 그는 전날 놀라운 실력으로 상대를 쓰러뜨리고 영광을 누렸지만, 바로 다음날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연무대를 떠나게 된 것이다.
연무대 주위의 관중들은 그런 단천리에게 동정하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관람대 위의 장문인과 장로들도 모두 놀란 표정으로 석목을 보고 있었다. 그중 금소채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석목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눈을 반짝였다.
“정숙! 을급제자의 경기가 전부 끝났다. 이어서 10위 안에 오른 을급제자가 갑급제자에게 도전할 것이다!”
회색 옷을 입은 노인이 연무대 위에서 말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시끌벅적하던 주위가 조용해졌다. 그리고 아홉 명의 을급제자가 모두가 바라보는 가운데 걸어 나왔다.
연무대에서 내려온 석목은 그들의 가장 왼쪽에 섰다.
“석 사형, 을급제자 1위에 오른 것을 축하드려요.”
“정말 대단합니다!”
다른 을급제자 아홉 명이 일제히 석목을 축하했다. 석목은 거만한 태도 없이 그들에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했다.
석목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갑급제자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들을 전부 훑어본 석목은 마지막으로 막녕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러자 석목의 시선을 느낀 막녕도 곧 석목 쪽을 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히자, 허공에 강력한 파동이 일었다.
막녕은 눈이 살짝 따가워지는 것을 느끼고, 깜짝 놀라서 눈가를 떨었다.
그러나 맞은편에 있는 석목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입 꼬리를 살짝 올렸다.
“규정에 따라 모든 을급제자에게는 한 번의 기회만 주어진다. 전투를 하는 도중에 생사는 따지지 않으나, 상대가 전투불능이거나, 패배를 시인한다면 공격을 멈추어야 한다.”
“네.”
회색 옷을 입은 노인의 말에 갑급제자와 을급제자가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좋다, 도전을 시작한다!”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큰 소리로 외쳤다.
연무대 주위의 관중들이 다시 시끌벅적하게 떠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가장 먼저 나서는 사람이 누구일지를 각자 추측했다.
매년 등급전의 가장 마지막에 이루어지는 갑급제자 사이의 도전에서는 순위의 변동이 자주 일어나지 않았다. 심지어 아예 도전을 하지 않는 경우도 허다했다.
즉, 등급전에서 가장 치열하고 볼거리가 많은 경기는 을급제자와 갑급제자 간의 대결이라고 할 수 있었다.
믈론 갑급제자를 상대로 을급제자가 승리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화려한 시합은 언제나 관중들의 눈을 호강시켜줬다.
노인의 말이 끝나는 순간, 을급제자 사이에서 산발머리를 한 마른 청년이 걸어 나왔다. 그의 손에 들려 있는 붉은 창은 등급이 꽤나 높아 보이는 법기였다.
청년이 말했다.
“저 매호가 갑급제자 9위인 교지 사형에게 도전하겠습니다.”
마른 청년은 을급제자 중 5위로 후천 대원만의 경지에 매우 근접해 있었다. 그는 특별한 혈맥을 지녔는지 두 눈이 암홍색이었다.
그가 상대로 지목한 교지는 키가 작은 사내였다. 그는 두 팔이 매우 길어서, 늘어뜨리면 무릎까지 닿았다. 교지는 권법을 수련했는지, 두 손이 마치 커다란 부채처럼 컸다.
석목은 교지를 바라보다 웃음을 지으며 두 눈을 감았다.
도전을 받은 교지는 아무 말 없이 연무대 위로 뛰어올라갔다. 그리고 상대를 바라보며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청년은 교지의 빠른 움직임을 보고 순간 낯빛을 흐렸다.
그가 교지에게 도전한 것은 몸이 작아서, 속도가 느려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잘못 생각한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 와서 무를 수도 없는 일이었기에, 청년은 이를 악물고 연무대 위로 올라갔다.
“시작!”
노인이 큰 소리로 외치며 연무대 주위의 결계를 활성화시켰다.
순간, 청년이 바닥을 박차고 화살처럼 빠르게 쏘아져 나가며, 장창을 휘둘렀다. 그의 창이 만들어낸 수많은 잔영이 교지의 몸을 덮었다.
그러자 교지는 차갑게 웃으며 낮게 소리를 질렀다. 그의 몸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리더니, 순간 교지의 키가 일 척 가까이 늘어나고, 손바닥도 두 배 가량 커졌다.
어느새 그의 두 손에는 광택이 나는 검은색 장갑이 끼워져 있었다.
훅!
교지의 주먹이 커다란 권풍을 일으키며 뻗어나갔다. 그 권풍은 연무대 위의 거의 모든 공기를 끌어당겼다.
금속이 충돌하는 소리와 함께, 암홍색 창의 잔영들이 흩어졌다. 청년은 얼굴이 붉어진 채, 연달아 뒤로 후퇴했다.
교지는 그 기세를 그대로 몰아서 후퇴하는 청년을 쫓았다.
훅! 훅!
교지의 두 손이 동시에 뻗어나갔다.
놀란 청년은 쥐고 있던 창을 두 손으로 꺾었다. 그러자 장창은 두 개의 단창으로 나뉘었다.
청년은 두 개의 단창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쾅! 쾅!
교지의 주먹과 단창이 충돌한 순간, 청년의 몸이 뒤로 밀려 날아갔고, 두 개의 단창도 그의 손에서 멀리 떠났다.
손아귀가 찢어진 청년은 결계에 강하게 몸을 부딪치고 바닥에 떨어지며 선혈을 뿜었다.
“져…졌습니다.”
청년은 자신을 향해 흉흉한 기세로 돌진해오는 교지를 보고,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급하게 소리쳤다.
날아들던 교지의 주먹은 청년의 머리에서 반 척 떨어진 곳에서 우뚝 멈춰 섰다.
교지는 차갑게 웃으며 주먹을 거두었다.
이어 연무대 아래에서 우레와 같은 환호성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곧 연무대 주위의 결계가 반짝이며 흩어졌다. 청년은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었고, 바닥에 떨어진 단창을 서둘러 줍더니, 연무대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교지 역시 연무대에서 뛰어 내렸다. 그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며 하찮다는 듯한 표정으로 을급제자들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교지가 청년을 상대로 손쉽게 승리를 거두자, 남은 을급제자들은 서로 얼굴만 바라볼 뿐 아무도 나서지 못했다.
잠시 후, 등에 검을 멘 흰 옷의 청년이 천천히 걸어 나오며 말했다.
“저 악정은 갑급제자 10위 서릉 사저에게 도전하겠습니다.”
백의의 청년이 지목한 악정은 을급제자 중 2위로, 석목의 바로 다음 순위였다.
곧 빨간 옷을 입은 여인이 연무대 위로 걸어 올라왔다. 얼음같이 차가운 표정을 한 그녀는 허리에 붉은색 장검을 차고 있었다.
“나에게 도전하다니 겁이 없구나.”
붉은 옷을 입은 여인이 차갑게 말하며, 몸에서 강력한 기운을 뿜어냈다. 그러자 불같이 뜨거운 열기가 청년을 압박했다.
흰 옷을 입은 청년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그러나 그는 곧 깊게 호흡하며 평온을 되찾았고, 등 뒤에서 눈처럼 하얀 장검을 뽑아들었다. 얼음처럼 차가운 기운이 뿜어져 나와, 상대의 뜨거운 기운과 팽팽하게 맞섰다.
두 사람이 동시에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서로의 검영이 상대를 향해 몰아쳤다.
깡! 깡! 깡!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는 그들의 몸이 검영에 점차 파묻혔다. 이리저리 오가는 흰 신영과 붉은 신영 주위로 검영이 몰아치며, 때때로 불똥이 튀었다. 동시에 금속이 충돌하는 소리가 빗소리처럼, 경쾌하고 빠르게 울려 퍼졌다.
바로 그 순간, 여인의 붉은 검에 화염이 솟아오르더니 커다랗고 붉은 검영 세 개가 쏘아져 나갔다.
그러자 청년이 비명을 지르며 마치 고무공처럼 튕겨져 날아갔다.
피가 콸콸 흐르는 청년의 어깨에는 하얀 뼈가 살짝 보일 정도로 깊은 상처가 나 있었다. 검을 쥔 오른팔을 힘없이 늘어뜨린 그의 얼굴은 보기 흉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계속 싸우겠다면 기꺼이 상대해주지.”
붉은 옷을 입은 여인이 차갑게 웃으며 화염처럼 붉게 빛나는 장검을 들어올렸다.
“아닙니다. 열염분광검법(烈焰分光剑法)이 후천 대원만의 경지에 올랐군요. 제가 졌습니다.”
흰 옷을 입은 청년이 깨끗하게 패배를 시인했다.
2위 악정을 포함한 두 을급제자가 연달아 패배하자, 남은 을급제자들은 모두 침묵에 휩싸였다.
이후 이 각 가까이 시간이 흘렀지만 누구도 도전하려 나서지 않았다.
연무대 아래의 관중들이 슬슬 무료함을 느낄 때쯤, 회색 옷의 노인이 눈을 감고 있는 석목을 힐끔 보며 말했다.
“도전자가 없다면 모든 을급제자가 도전을 포기한 것으로 간주하고, 다음 경기를 진행하도록 하겠다.”
바로 그때, 석목이 두 눈을 떴다.
그는 갑급제자 중 가장 오른쪽에 있는, 붉은 옷을 입은 여인 서릉 쪽을 바라보았다.
서릉은 석목의 시선을 느끼고 분노한 표정이 되었다. 그녀가 반걸음 정도 내딛으며 허리춤의 칼자루를 뽑으는 순간, 석목은 그녀의 옆에 있는 교지에게 시선을 돌렸다.
여인은 허공에 뜬 발을 거두지도, 내딛지도 않은 채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그녀는 한편으로는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안심했다.
반면 교지는 석목이 자신을 바라보자 긴장했지만, 다행히도 석목의 시선은 그에게 오래 머물지 않았다.
석목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시선을 움직이며, 한 사람당 반 호흡씩 갑급제자들을 전부 한 명씩 훑어보았다.
그의 시선을 받은 갑급제자의 반응은 제각각이었지만, 모두 사냥감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몇 사람은 이마에 땀방울이 송송 맺히기도 했다.
바로 그때, 석목의 시선이 가장 왼쪽에 서 있는 은발 청년의 몸에 머물렀다.
“저 석목은 막녕 사형에게 도전하겠습니다.”
석목이 말을 내뱉자 관중들 사이에서 놀라움의 탄성이 터졌다.
“갑급제자 1위에게 도전하겠다고?”
“너무 거만하군. 갑급제자와 을급제자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고!”
“재미있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