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137화 (137/916)

137화. 대기를 가르는 일격

석목의 지목을 받은 막녕은 살의에 찬 눈빛으로, 천천히 연무대 위로 걸어 올라갔다.

유성추를 들고 운철흑도를 등에 멘 석목도 그를 따랐다.

석목은 본래 운철흑도를 사용하지 않으려 했고, 그래서 단천리에게 도전하기 전 백석에게 운철흑도를 잠시 맡겨놓았다. 그리고 방금 휴식을 취하는 사이에 백석에게 다시 돌려받은 참이었다.

곧 흰 빛이 반짝이며 연무대가 결계에 덮였다.

막녕이 차갑게 말했다.

“감히 나에게 도전하지 못할까 걱정했건만, 다행이구나. 곧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막녕은 시합 전 석목과 시선이 잠시 마주쳤을 때, 마치 싸우기도 전에 진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자존심이 상한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석목을 혼쭐 내주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도를 뽑아라!”

막녕이 소리치며 파란 장검을 뽑았다. 맑고 푸른 바다 같은 색을 띤 그의 장검은 중급 법기였다.

그의 말을 들은 석목이 등 뒤의 운철흑도를 뽑더니 바닥으로 던졌다.

콰득!

운철흑도가 연무대 바닥 절반 가까이 박혀 들어갔다. 그러자 석목은 막녕을 바라보며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뽑았습니다.”

그 모습을 본 연무대 아래의 제자들은 깜짝 놀랐다. 그리고 곧바로 떠들썩하게 웃어대기 시작했다.

“네놈이 죽고 싶은 게로구나!”

화가 난 막녕이 석목을 향해 뛰어들었다.

그의 장검에서 파란색 검기가 끊임없이 나타나, 석목을 향해 날아갔다. 그것은 검을 휘두르는 속도가 너무 빨라 생겨난 환영이 아닌, 진기가 실려 있는 검기였다.

그러나 석목은 콧방귀를 뀌며 팔을 흔들었다. 그러자 유성추가 마치 독사처럼 고개를 들더니 상대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막녕은 유성추가 날아오자, 발걸음을 멈추고 몸을 신속히 뒤로 날렸다.

쾅!

유성추와 부딪힌 수십 개의 파란 검기가 손쉽게 부서졌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렸다. 물론 유성추의 위력이 강하긴 했지만, 상대의 공격이 이렇게 쉽게 파괴되는 것은 의외였기 때문이다.

그 순간 석목의 표정이 바뀌었다.

파괴된 검기는 흩어져 사라지지 않고, 하얀 안개로 변하더니 빠르게 확산됐다. 석목은 눈 깜짝할 사이에 안개에 뒤덮였고, 주위의 모든 것이 점점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막녕 역시 점차 안개에 파묻혀 모습을 감췄다.

석목은 문득 깨달은 게 있었다.

“은운검결(隐云剑诀)이라…. 이런 것이었군.”

휙!

그 순간 파란색 검기들이 갑자기 옆에서 날아들었다. 동시에 안개의 깊은 곳에서 빠르게 지나가는 그림자가 보였다.

석목은 차가운 표정으로 팔을 휘둘렀다. 유성추는 파란 검기들을 가볍게 깨트린 뒤 그림자를 향해 질풍 같은 속도로 날아갔다.

그러나 유성추는 그림자를 그대로 뚫고 지나갔고, 그림자는 곧 환영처럼 흩어졌다.

석목은 낯빛을 흐리며 유성추를 회수했다. 실체를 가격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유성추를 맞고 깨진 검기는 빠르게 흰 안개로 변하면서, 주위의 안개는 더욱 짙어졌다.

결계로 둘러싸인 연무대의 공간이 제한적인 탓에 안개는 매우 빠른 속도로 짙어졌고, 급격히 시야가 좁아졌다. 이제 가시거리는 수 척도 되지 않을 정도였다.

석목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다.

연무대 밖에서 지켜보던 백석 일행은 걱정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벌써부터 진기를 쏘아낼 수 있다니, 이미 기부를 형성했나보군. 선천의 경지에 절반 정도는 진입했다고 봐도 되겠어.”

시합을 지켜보던 장문인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긴 수염을 기른 장로가 수염을 만지며 덧붙였다.

“석목 역시 상당히 강하니, 갑급제자 중 순위가 낮은 이에게 도전했다면 승산이 있었을 것 같은데…. 하필이면 막녕을 선택했군요.”

“하하, 아마도 이전의 승리에 취해 이성을 잃은 것이겠죠. 너무 경솔했어요.”

“나이가 어린 제자이니 이런 고난을 한 번쯤 겪는 것도 필요하겠죠.”

* * *

한편 연무대 위의 석목은 아예 두 눈을 감고 있었다. 그는 그대로 가만히 서서 두 귀를 쫑긋거렸다.

갑자기 안개 속에서 흐릿한 그림자 하나가 나타나서 석목을 향해 뛰어들었다.

순간 석목이 눈을 뜨자 동공이 금빛으로 빛났다. 그리고 뛰어든 그림자를 향해 유성추가 날아갔다.

바로 그때, 이번에는 석목의 뒤에서 안개가 꿈틀거리더니 팔 하나가 소리 없이 나타났다.

진기를 두른 손가락은 아무 소리도 없이 석목의 등을 노리고 찔러왔다.

그러나 그 순간, 석목의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는 번개처럼 몸을 돌리더니 백옥처럼 하얀 주먹을 뻗었다.

뚜둑!

뼈가 골절되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이어 권풍이 몰아치며 공기 중에 일으킨 소용돌이로 인해 안개 속에 숨어 있던 막녕의 모습이 잠시 드러났다.

그의 팔은 비정상적인 각도로 비틀어져 있었다.

막녕은 놀란 얼굴로 자신의 부러진 팔을 잡고 다시 안개 속으로 숨으려 했다.

“어딜!”

석목이 차갑게 웃으며 팔을 휘둘렀다. 빠르고 강력하게 날아간 유성추가 막녕의 움직임을 순식간에 따라잡았다.

당황한 막녕은 멀쩡한 팔로 파란색 장검을 휘둘러 몸을 막았다.

쾅!

그러나 파란 검을 튕겨낸 유성추는 전혀 줄어들지 않은 속도로 막녕의 가슴을 향해 날아갔다.

이전의 시합을 보고 유성추의 놀라운 위력을 이미 알고 있는 막녕의 얼굴에 공포가 떠올랐다.

막녕이 소리를 지르자, 그의 목에 걸려 있는 옥패에서 하얀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빛은 장막을 형성해 막녕의 몸 앞을 막았다.

그러나 빛의 장막과 거세게 충돌한 유성추는 그대로 장막을 깨트리고 날아갔다. 비록 두 번의 방어를 뚫으며 조금은 약해졌다고는 하나, 유성추의 기세는 여전히 강렬했다.

퍽!

유성추가 막녕의 가슴을 가격했다.

그대로 날아간 막녕은 뒤쪽의 결계에 강하게 충돌하며 입에서 피를 뿜어냈다.

석목은 눈을 차갑게 빛내며 진기를 발등에 주입했고, 연무대 바닥에 꽂혀 있는 운철흑도를 강하게 걷어찼다.

휙!

운철흑도는 자욱한 운무 사이로 대기를 가르면서 막녕의 왼쪽 어깨를 향해 날아갔다. 이 일격을 맞는다면 그는 팔이 통째로 떨어져 나가는 상황을 면치 못할 것 같았다.

막녕은 방금 전 가슴을 공격당할 때 호신강기를 써서 유성추의 위력을 절반 정도 막아냈다. 그럼에도 엄청난 충격으로 몸을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을 때, 한 줄기 회색빛이 옆에서 날아오더니 운철흑도를 가격했다.

깡!

회색 빛줄기를 맞고 방향을 튼 운철흑도는 막녕의 왼쪽 어깨를 스치고 연무대의 결계를 찔렀다.

웅-.

결계는 격렬하게 흔들리며 부서질 뻔했지만, 가까스로 운철흑도의 진격을 막아냈다.

그때 심판을 맡은 회색 옷차림의 노인이 조금은 어색한 표정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방금 날아온 회색 빛줄기는 그가 쏜 것이었다.

운철흑도의 위력을 과소평가했던 그는 하마터면 막녕을 구하지 못할 뻔했다.

“막녕이 더 이상 전투를 할 수 없으니 시합은 중지다.”

노인의 말에 석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은 치료부적을 꺼내 막녕의 상처에 가져다댄 후 연무대의 결계를 해제했다.

결계가 해제되는 동시에 연무대의 안개가 흩어졌고, 바깥의 사람들은 비로소 안쪽의 상황을 볼 수 있었다.

“석목의 승리다!”

노인의 말이 끝나자 연무대 아래가 순간 소란스러워졌다. 대부분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머지 아홉 명의 갑급제자도 모두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 가장 강한 막녕이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패할 줄은 예상 못했던 것이다.

연무대가 안개에 휩싸였던 탓에 그들은 두 사람의 움직임을 뚜렷하게 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전투의 상황 자체는 확실하게 보였다. 그들은 우위를 점하고 있던 막녕이 순식간에 패배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석목은 겨우 몇 개의 초식을 사용했을 뿐이었다. 그의 공격은 그만큼 깔끔하고 간결했다.

흑마문 장문인과 장로들도 모두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석목이 경솔하다고 이야기했던 몇몇 사람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루 사이에 을급제자 1위에 오르고, 갑급제자 1위까지 쓰러뜨린 것은 흑마문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막녕은 여전히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자신을 스치고 날아간 운철흑도를 바라보았다. 그의 등은 이미 식은땀에 젖어 있었다.

만약 심판을 맡은 노인이 나서지 않았더라면, 그의 팔은 여지없이 떨어져 나갔을 것이다.

막녕은 원망에 찬 눈으로 석목을 한 번 바라본 뒤, 몸을 일으켜서 비틀거리며 연무대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석목도 유성추를 허리에 두르고 바닥의 운철흑도를 주워들었다. 그리고 노인에게 인사를 한 뒤 연무대 아래로 걸어 내려갔다.

아래로 내려온 석목은 원래 막녕이 서 있던 자리로 가서 태연하게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시합을 계속 진행하겠다. 갑급제자에게 도전할 자가 또 있나?”

노인이 정신을 가다듬고 큰 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을급제자들은 서로를 한 번씩 바라보았다.

그들은 석목이 막녕을 상대로 승리하는 모습에 자신감을 얻었다. 그중 두 사람의 을급제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갑급제자에게 도전을 청했다.

한편 갑급제자들은 석목의 경기를 보고 교훈을 얻은 뒤였다. 그들은 상대를 더 이상 무시하지 않고 정신을 집중했다.

결국 도전장을 내밀었던 두 을급제자는 순식간에 참패를 당하고 인사불성이 된 채 실려 나갔다.

그중 갑급제자 3위인 영계술사 백수수에게 도전한 자는 그녀의 빙박술(冰雹术)에 맞아 전신의 뼈가 거의 전부 조각났다. 아마도 그는 상처에서 회복된다 해도 상당한 후유증을 겪을 듯했다.

그러자 겁을 집어먹은 나머지 을급제자들은 더 이상 도전에 나서지 못했고, 노인은 별다른 말없이 경기 종료를 선언했다.

이어서 갑급제자의 순위를 정하는 순서가 돌아왔다.

해마다 이 단계에서는 대결을 하더라도, 치열한 전투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조금 더 나은 혜택을 얻으려고 사활을 건 전투를 펼칠 경우, 오히려 이후의 수련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두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미 종문으로부터 최고의 자원을 제공받고 있었기에, 선천무인의 경지에 오르거나 성계술사가 되어 종문의 장로 자리에 앉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올해는 이변이 일어나는 것도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닌 듯 보였다. 갑작스럽게 나타나 1위를 차지한 석목이 있었고, 종문에서 1위에 오른 자에게 약속한 진귀한 보상도 있었기 때문이다.

연무대 주위의 관중들은 다시 흥분한 표정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석목이 앞선 두 시합에서 너무 대단한 실력을 보여서인지, 예상과 다르게 아무도 그와의 대결에 나서지 않았다. 다른 갑급제자들끼리 두세 번의 시합이 펼쳐졌을 뿐이었다.

갑급제자들은 두 눈을 감고 있는 석목을 완전히 잊은 것처럼, 그에게 시선조차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렇게 반 시진이 흐른 뒤 등급전이 완전히 종료됐고, 석목을 포함한 갑급제자 열 명이 순서대로 연무대 위에 도열했다.

연무대 위로 올라온 장문인은 이들 열 명을 차례로 바라본 뒤, 몸을 돌려 관중들에게 선언했다.

“이것으로 등급전이 모두 종료됐다. 너희의 눈앞에 있는 이 열 사람은 갑급제자로서, 한 해 동안 종문으로부터 최고의 지원을 받을 것이다. 누구든 본문의 이념을 잊지 않고 열심히 수련한다면, 언젠가 이 자리에 설 수 있을 것이다!”

장문인의 우렁찬 외침은 연무대 아래에 있는 수천 제자의 피를 끓게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