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138화 (138/916)

138화. 단약을 받다

강한 힘은 때때로 천 마디 말보다 더 확실하게,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법이었다.

제자들은 연무대 위에 서 있는 갑급제자들을 선망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두 주먹을 꽉 쥐었다. 마침 금빛 노을에 물든 갑급제자들의 모습은 더욱 장엄하게 보였다.

장문인은 연무대 아래를 천천히 훑어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시선을 거두고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검은 옷을 입은 몇 명의 제자가 붉은 천으로 덮인 받침을 들고 연무대 위로 올라왔다.

연무대 아래의 제자들은 그 모습을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매년 등급전에서 10위 안에 든 이들은 커다란 보상을 받았다. 특히 이번에는 1위를 한 사람에게 특별한 보상이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미리 돌았던 만큼, 모두가 궁금해 하고 있었다.

석목 역시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사실 그가 이번에 실력을 드러낸 이유는 이 특별한 보상을 받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석목에게 다가간 장문인이 붉은 천을 거두자, 받침 위에 있는 흰색 반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반지는 백옥으로 만든 것으로 보였는데, 언뜻 보기에는 매우 평범하게 여져길 만큼 외형이 소박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표면에 은은하게 흰 빛이 흐르는, 평범하지 않은 반지라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저것은… 설마 저장반지….”

관람대에서 지켜보던 한 장로가 반지를 보고 흥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보상이 무엇인지 사전에 알지 못했던 장로들도 모두 놀란 표정이 되어 있었다. 심지어 그중 몇몇은 부럽다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저장반지는 제작에 특수한 재료가 필요한데다, 제련하기가 극도로 어려워서 매우 희귀한 것이었다. 선천무인조차 소유하고 있는 경우가 흔치 않았고, 흑마문의 장로 중에서 이 반지를 가진 이는 다 합해도 다섯 명이 되지 않았다.

“이 반지는 본문의 대장로가 직접 만든 법기인 진묘계다. 잘 사용하기를 바란다.”

장문인이 석목에게 반지를 건네며 엄숙하게 말했다.

진기를 주입해 말하는 장문인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광장 전체에 뚜렷하게 울려 퍼졌다.

“네.”

석목은 대답한 뒤 두 손으로 반지를 받아들고, 그것을 오른손 중지에 끼웠다. 그리고 곧바로 진기를 주입해보았다.

그러나 반지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때 장문인이 석목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작게 말했다.

“이 반지는 일반적인 법기와 다르게 피를 매개로 한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즉시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피 한 방울을 반지에 떨어뜨렸다.

핏방울은 빠르게 반지에 스며들었고, 동시에 석목은 피를 흡수한 반지가 마치 손가락과 연결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 순간, 반지 안에 방 하나만한 크기의 정육면체 공간이 생겨난 것이 감지됐다.

매우 기뻐하던 석목은 반지 안의 공간에, 이미 무언가가 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백 개는 족히 되어 보이는 흑염령이었다.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던 장문인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

“그 안에 있는 백 개의 흑염령 역시 이번 등급전의 상품이다.”

석목이 감격한 목소리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후한 선물에 감사드립니다.”

장문인은 별 것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치더니, 다른 사람들에게 상품을 마저 수여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주어진 상품 역시 영석과 단약, 그리고 흑염령 등, 진귀한 물건들이었다. 연무대 아래의 제자들은 그 모습을 보며, 부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장문인은 상품을 모두 나누어준 뒤, 대회의 종료를 선언하고, 연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다른 장로들도 모두 자리를 떠났다.

그러나 금소채는 관람대 위에 홀로 남아 있었다. 그녀는 석목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곧 몸을 돌려 사라졌다.

* * *

석목은 연무대 아래로 천천히 걸어 내려갔다.

그러자 아래에 있던 제자들이 좌우로 길을 열어주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경외의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그때 군중 사이에서 네 사람이 걸어 나왔다. 가장 앞선 이는 백석이었고, 그의 뒤로 소명과 남봉, 곽무가 뒤따르고 있었다.

“흑마문의 대사형이 된 것을 축하해요!”

백석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

“축하해요, 대사형!”

나머지 세 사람도 모두 공손한 말투로 축하했다.

그러자 석목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서로 알고 지낸지도 매우 오래됐는데 예의 차릴 필요 없습니다. 이전과 같이 석목이라고 불러주세요.”

광장에 모여 있는 다른 제자들은 그런 석목의 모습을 호기심과 질투, 부러움이 뒤섞인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인파 사이를 느긋하게 걸어가던 석목은 순간, 군중 속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하고 멈춰 섰다. 그의 뒤를 뒤따르던 네 사람도 석목의 시선을 쫓아 고개를 돌렸다.

석목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후천후기의 무인으로 보이는 키 크고 마른 남자가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는 석목이 자신을 발견한 것을 깨닫고, 몸을 펴며 석목을 바라보았다.

그는 과거에 석목의 운철흑도를 빼앗으려 했던 을급제자 좌언이었다.

석목은 빠른 걸음으로 좌언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그의 열 보 앞에서 멈춰 섰다.

그 모습을 본 주위의 제자들은 상황이 심상치 않은 것을 느꼈는지, 두 사람과 거리를 벌리고 물러섰다.

좌언에게 모욕을 당한 경험이 있거나, 그의 악명을 들은 적이 있는 제자들이 주위에서 작은 소리로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홀로 자리에 남은 좌언은 자신에게 향하는 강력한 기운을 느끼고,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이 도가 좋다고 했지? 받아낸다면 너에게 주도록 하마!”

석목은 그렇게 말하며 운철흑도를 칼집 째로 좌언에게 던졌다.

좌언은 무의식적으로 두 손을 뻗어 그것을 받았다.

그 순간, 운철흑도에서 상상을 뛰어넘는 엄청난 힘이 전해졌고, 곧 좌언의 전신에 있는 기혈이 들끓기 시작했다.

좌언이 연달아 뒷걸음을 치다가, 결국 엉덩방아를 찧으며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본 주위의 제자들이 크게 웃으며 환호성을 질렀다.

안색이 창백해진 좌언은 부끄러움과 분노로 전신을 떨기 시작했다.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하며 몸을 일으킨 그는 두 손으로 운철흑도를 받쳐 들었고, 석목에게 다가가 공손히 도를 건넸다.

그는 입술을 살짝 움직였지만 한 마디도 내뱉지 못했다. 석목은 운철흑도를 받아들고 몸을 돌려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떠나갔다.

이 광경을 지켜본 백석은 무슨 사연인지 궁금했으나, 상황을 보니 그들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대략 눈치 챌 수 있었다. 백석은 좌언을 한 차례 차갑게 바라본 후 석목의 뒤를 바짝 쫓았다.

좌언은 핏기가 가신 얼굴로 석목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뒤 겨우 정신을 차린 그는 주위의 조롱 섞인 시선을 받으며, 풀이 죽은 모습으로 광장을 떠났다.

* * *

사령계의 음침하고 어두운 하늘 아래.

전신에 갑옷을 두른 연나가 백 구 가까이 되는 해골 병사를 이끌고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었다.

연나의 군단은 이전에 사막에서 손실한 병력을 어느새 완전히 회복하면서, 전보다 더욱 강해져 있었다.

그들이 지나고 있는 곳은 검은색 진흙과 물웅덩이가 즐비하고, 썩은 나무가 솟아 있는 늪지대였다.

그러나 몸이 가벼운 연나와 해골들은 늪지대 위에서도 아무 문제없이 거닐 수 있었다.

그때, 가장 앞서가던 연나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더니 고개를 돌렸다.

연나는 십 장 이상 떨어진 곳의 늪에 자란 녹색 식물을 바라보았다. 그 식물의 가운데에는, 녹색 연기를 뿜어내는 아름다운 녹색 꽃이 한 송이 자라 있었다.

연나는 눈가에서 남색 영혼의 화염을 살짝 반짝이더니, 몸을 돌려서 그 꽃으로 다가갔다.

바로 그 순간, 녹색 꽃 옆에서 흰 물체가 튀어나와 연나를 덮쳤다. 사람 머리만한 크기의 흰색 뼈 전갈이었다.

눈가에 짙은 녹색 영혼의 화염이 타오르는 전갈은 연나의 다리를 노리고 칼처럼 날카로운 두 집게를 휘둘렀다.

그러나 연나는 전갈을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들고 있던 창으로 전갈의 머리를 살짝 찔렀다. 창에서 얇은 파란 빛이 한 줄기 뻗어나가더니 전갈의 머릿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그 순간 전갈의 눈가에서 영혼의 화염이 흩어지면서, 허공에 짙은 녹색 구가 떠올랐다.

연나가 입을 벌려 그것을 흡수하자, 영혼의 화염을 잃은 전갈은 바닥에 떨어져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연나는 창을 거두고 녹색 꽃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잠시 후, 녹색 꽃을 딴 연나는 자신의 몸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머리 위에 꽃을 꽂고 기쁜 듯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았다.

연나는 자신의 모습에 매우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에서 한동안 머무른 연나는 자신을 기다리는 수하들을 이끌고, 다시 길을 재촉했다.

* * *

흑마문의 1호 산봉우리는 흰 눈에 뒤덮여 있었다.

갑급제자의 복장을 한 누군가가 산길을 따라 빠르게 내려가고 있었다. 산자락에 도착한 그는 곧장 5호 봉우리 방향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그는 바로 석목이었다.

등급전이 끝난 후 장문인은 석목을 1호 산봉우리에 초대했고, 현재 그의 경지와 인족 사자단에 관한 일을 물었다.

석목은 종문에 돌아오는 도중에, 이 같은 질문에 어떻게 대처할지 미리 준비를 해놓았다. 그래서 장문인의 모든 물음에 빈틈없이 대답할 수 있었다.

장문인은 석목에게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열심히 수련해 종문의 튼튼한 기둥이 되라는 격려의 말을 건넨 후 그를 돌려보냈다.

일 각 후, 석목은 다른 산봉우리 앞에 도착했다.

온통 푸르른 그 산은 도처에서 나무와 풀냄새가 그윽하게 풍겨왔다.

산 중턱 위로는 여러 줄기의 폭포가 떨어지고 있었으며, 산자락에서 올려다보면 가장 큰 폭포 근처에, 두 건물이 세워져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산 정상은 일 년 내내, 짙은 운무에 뒤덮여 보이지 않았다.

정상까지는 이 장 너비의 산길이 커다란 구렁이처럼 구불구불 이어져 있었으며, 산허리의 두 건물 앞으로 두 개의 갈림길이 존재했다.

자연의 기가 충만한 이 산봉우리가 바로 갑급제자가 거주하는 세 산봉우리 중 하나인 5호 산봉우리였다.

석목이 숨을 가볍게 들이마시자, 신선한 기운이 공기와 함께 폐로 들어오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곳에 흐르고 있는 자연의 기는 13호 봉우리보다 두 배 이상이나 짙었다.

흑마문 대제자의 거처는 운무에 가려진 산 정상에 위치해 있었다. 석목은 넓은 산길을 따라 기분 좋게 산 정상으로 올라갔다.

* * *

일 각 후, 석목은 산 정상에 거의 다다랐다.

그때 풍만한 몸매를 가진 요염한 미녀가 길가에 웃으며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과 옷을 찢고 나올 듯한 가슴의 두 봉우리가 석목을 아찔하게 만들었다.

그 미녀는 바로 금소채였다.

살짝 긴장한 석목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국 그녀에게 다가갔다.

석목은 금소채에게 인사를 한 후 공경한 목소리로 물었다.

“금 사숙,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신 거죠?”

그러나 금소채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입 꼬리를 올리고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석목의 주위를 돌 뿐이었다.

석목이 안절부절 못하는 사이, 금소채가 갑자기 석목의 앞에 멈춰섰다.

“네가 종문의 대사형이 된 것을 축하기 위해서 왔다. 네 성장속도는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구나!”

그녀는 가늘게 뜬 눈으로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석목에게 두어 걸음 가까이 다가갔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석목은 금소채가 다가오자, 경계하는 눈빛으로 두 걸음 물러났다. 그리고 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않은 투로 말했다.

“오늘 연무대에서 그토록 열심히 싸운 이유는 이름을 날려 마음에 둔 여인의 관심을 끌기 위함이었겠지?”

금소채는 요염한 눈길로 미소 지으며 다시 석목에게 다가갔다.

석목은 한걸음 더 물러났으나, 등 뒤의 벽에 가로막혀 더 이상 피하지 못했다.

매혹적인 향기가 마치 있는 듯 없는 듯, 희미하게 석목의 주위를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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