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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140화 (140/916)

140화. 뜻밖의 사고

“무기를 하나 제작해줬으면 좋겠어요.”

석목은 바로 본론을 꺼내며 운철흑도와 유성추를 조평 앞에 놓았다.

조평은 운철흑도에 생긴 균열을 보고 놀랐다. 그리고 이어서 유성추에 달린 검은색 돌을 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이것은….”

흥분해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조평은 말까지 더듬었다.

석목이 말했다.

“반응을 보니 제 추측이 맞았나보군요. 밖에서 우연히 발견했어요. 운철흑도와 재질이 비슷해서 가지고 왔죠.”

“맞습니다. 제가 과거에 드렸던 운철과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때 드렸던 것은 주먹보다 조금 큰 정도였습니다. 석사형이 가져온 이것보다는 훨씬 작았죠.”

조평이 흥분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이 물건에 대해서 달리 아는 것이 있습니까? 중량이 늘어나는 것 말고도 조금 이상한 점이 있는 것 같아서요.”

“다른 이상한 점이요? 어떤 점이 이상한가요?”

조평이 놀라 물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석목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별 것 아니에요.”

그는 운철흑도가 진묘계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은 조평에게 밝히지 않고, 다른 것으로 화제를 돌리며 말했다.

“마침 또 운철을 한 덩어리 얻었으니, 조형이 새로운 무기를 하나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건 문제가 없지요. 어떤 무기를 원하죠?”

조평도 석목이 화제를 돌린 것에 대해 캐묻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석목은 품속에서 종이를 한 장 꺼내 조평에게 건넸다. 그 종이에는 협도의 설계도가 그려져 있었다.

협도는 칼의 윗부분과 긴 손잡이가 분리되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분리한 칼의 윗부분은 운철흑도와 별다른 차이가 없었으며, 손잡이 부분은 삼 척 길이의 곤봉 형태였었다.

“설계도가 자세해서 제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설계도를 한 번 들여다본 조평은 석목의 요구를 바로 이해하고 말했다.

“다행이군요.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좋으니 모든 운철을 전부 사용해주세요.”

석목이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가 도와 곤봉으로 분리가 가능한 협도를 만들려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 이유는, 비록 수련자급 무예이긴 하지만, 다년간 사용해 손에 익은 풍치도법을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적원화경에는 심법 외에도 정묘한 곤법무예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협도는 공격의 범위가 넓은 무기였다. 게다가 중량이 많이 나가면 전투 시에 훨씬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운철을 정련하는 과정이 매우 복잡해서 시간이 많이 소요됩니다. 이전에 흑도를 제작한 경험이 있긴 하지만, 아무리 빨라도 두 달은 걸릴 것입니다.”

조평이 잠시 망설이다가 덧붙였다,

“괜찮습니다. 그럼 두 달 후에 찾으러 오겠습니다. 보수는 섭섭지 않게 드릴게요.”

석목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보수는 필요 없습니다. 석 사형처럼 존귀한 분이 대장간에 찾아온 것만으로도, 가게에는 큰 이익이니까요.”

조평이 손사래를 치며 사양했다.

석목은 웃으며 조평과 대화를 몇 마디를 더 나눈 뒤 대장간을 떠났다.

대장간을 나온 석목은 잠시 고민하다가, 거처로 바로 돌아가지 않고 국 사숙의 거처로 향했다. 새로운 무기에 술법진을 새기기 위해 화금석의 독액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반 시진 후, 석목은 국 사숙의 거처 앞에 도착했다.

문을 두드리려던 석목은 문 앞의 바닥을 보고 갑자기 미간을 찌푸렸다.

바닥에는 발자국이 전혀 없었다. 상황을 보아하니 한 달 정도는 아무도 이 방에 드나들지 않은 것 같았다.

‘설마 줄곧 방에서 폐관수련을 한 것인가?’

석목은 그렇게 생각하며 문을 두드렸다.

“국 사숙, 제자 석목이 용무가 있어 방문했습니다!”

큰 소리로 부르고 잠시 기다려봤지만, 안에서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석목은 눈썹을 찌푸리며 다시 큰 소리로 외쳤지만, 귓가에는 바람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아무도 없나?”

하지만 방금 전 장경각에 방문했을 때, 국 사숙은 그곳에도 없었다.

석목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손잡이를 잡고 문을 가볍게 밀었다.

돌문은 그리 두껍지도 않았고 잠겨 있지 않았다. 그러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한 진법을 설치해두었는지, 이상하리만큼 무거웠다.

돌문은 석목이 거의 절반의 힘을 사용하고 나서야 마찰음을 내며 천천히 열렸다.

집 안은 매우 어두웠고, 사람이 드나든 지 오래 되었는지 먼지가 상당히 쌓여 있었다.

석목은 바로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 서서 다시 한 번 소리쳤다.

“국 사숙 계십니까? 제자가 실례를 무릅쓰고 방문했습니다!”

그러자 집 안 깊숙한 곳에서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누군가 왔나? 굶어죽을 뻔했구나….”

그 목소리는 쉬어 있었지만, 석목은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채아?”

석목이 소리를 따라 들어가자 구석진 곳에 금색 새장이 걸려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안에는 앵무새 채아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석두!?”

축 처져 있던 채아가 석목을 보고 고개를 들며, 흥분이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다.

석목이 어처구니없어 하며 대답했다.

“석두가 아니고 석목이다.”

“석두든 석목이든 이름은 상관없어! 어서 나를 풀어주고 물과 음식을 줘! 벌써 열흘 넘도록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어!”

채아가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말했다.

석목은 새장을 열어주는 대신, 물주머니를 꺼내 채아의 물통에 물을 가득 채워주었다. 검은색 견과도 몇 개 꺼내서 새장 안으로 넣었다.

검은색 견과는 청준과의 씨였는데, 석목이 이곳에 오기 전에, 채아에게 먹이기 위해 가게에서 구입한 것이었다.

흥분한 채아는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었고, 물을 단숨에 절반이나 마신 뒤 게걸스럽게 견과를 먹었다.

“굶어죽을 뻔했네. 배가 부르니 살 것 같구나.”

배가 충분히 불러오자 채아가 날개로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어째서 집 안에 사람의 흔적이 없는 거지? 국 사숙은?”

석목이 물었다.

“죽어 마땅한 그 돼지는 한 달 전에 지하의 밀실에 들어가서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어. 하마터면 진짜로 굶어죽을 뻔했네!”

화가 난 채아는 자신이 굶어죽을 뻔했다는 이야기를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석목은 채아의 말을 듣고 뭔가 좋지 않은 예감이 머리를 스쳤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채아에게 물었다.

“국 사숙이 아래에서 뭘 하고 있는지 알아?”

“내가 어떻게 알아!”

채아는 언짢은 기색으로 소리치더니 다시 풀어달라고 재촉했다.

그러나 석목은 시끄러운 앵무새를 무시하고 벽면 앞으로 걸어갔다. 과거 지하밀실에 들어갈 때, 지났던 통로의 문이 위치한 곳이었다.

석목은 국 사숙이 밀실을 열었던 방법을 떠올리며, 손바닥으로 벽을 두들겨보았다.

그러나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

“깔깔깔!”

뒤쪽에서 앵무새가 비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석목은 몸을 돌려서 채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밀실의 문을 여는 방법을 알아?”

“당연히 알지. 방법을 알고 싶다면 우선 이 몸을 이곳에서 꺼내줘.”

채아가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석목은 한숨을 쉬며 금색 새장을 열었다.

채아는 날개를 펄럭이며 새장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몸을 풀 듯 허공을 천천히 선회하며, 흥분한 듯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가 유유히 하강했다.

“이제 밀실의 문을 여는 방법을 가르쳐줘.”

석목이 말했다.

“그 돼지보다는 마음에 드니 가르쳐주도록 하지.”

채아가 석목의 어깨에 착지하며 말했다.

“국 사숙은 쥐새끼처럼 속이 좁아서, 밀실의 입구를 개방하는 방법을 매우 복잡하게 만들어놨어. 방금 네가 두드린 위치는 정확했지만 서 있는 위치가 틀렸어.”

채아가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석목은 예전에 이 밀실에 들어갈 때는 그런 사소한 부분까지는 발견하지 못했다. 고작 밀실일 뿐인데, 확실히 채아가 말한 대로 조심스러움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석목은 채아의 지시에 따라 바닥의 어느 지점에 서서, 다시 손바닥으로 벽을 눌렀다.

그러자 벽이 천천히 열리며 그 안쪽의 칠흑같이 어두운 통로가 드러났다.

석목은 기쁜 표정으로 무언가 말을 하려 했으나, 순간 표정이 굳어버렸다.

벽이 열리는 순간 통로에서 구역질나는 악취가 올라왔기 때문이다.

악취를 참지 못한 석목은 한 손으로 코를 막으며 뒤로 한걸음 물러났고, 채아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날개를 펼쳐 날아갔다.

“이것은 시체가 부패한 냄새인데… 설마….”

석목은 통로의 깊은 곳을 바라보며, 불길한 생각을 떠올렸다. 그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석목은 바로 밀실로 들어가려다 말고, 갑자기 몸을 돌려서 채아를 바라보았다.

“채아, 아무래도 국 사숙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 같아. 내려가서 상황을 보려고 하는데 함께 갈래?”

석목이 물었다.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우리 건앵(乾鹦) 일족은 저런 더러운 곳에 결코 들어가지 않아!”

채아가 꼬리털을 살짝 떨며 말했다.

석목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앵무새는 시끄러운 줄만 알았더니 겁도 많았다.

석목은 더 이상 채아를 상대하지 않고, 진기로 전신을 보호하며 조심스럽게 통로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는 이미 이곳에 한 번 온 적이 있었기 때문에, 손쉽게 통로를 지나서 밀실에 도착했다.

밀실에 들어서니 썩은 냄새가 더 강하게 진동을 했다.

밀실의 정중앙에는 일 장 크기의 원형 진법이 그려져 있었고, 그 위에는 영석들이 꽂혀 있었다. 영석들은 안에 영력이 아직 남아 있는 듯,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진법을 운행하던 중에 갑자기 멈춘 것이 분명해보였다.

진법의 옆에는 국 사숙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악취는 바로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었다.

석목은 밀실 안을 자세히 관찰한 뒤, 위험한 기색이 느껴지지 않자, 국 사숙에게 빠르게 다가갔다.

그는 이미 사망한지 오랜 시간이 지나 있었고, 시신이 썩기 시작한 상태였다.

석목은 국 사숙의 시체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몸에 어떤 외상의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살해당한 것은 아닌 듯했다.

국 사숙의 시체와 멀지 않은 곳에는 화금석이 든 은색 우리가 놓여 있었다. 화금석 역시 이미 호흡이 멎었지만, 죽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는지, 시체는 아직 썩지 않은 상태였다.

석목은 쓴웃음을 지으며 국 사숙 앞에 그려진 원형 진법을 바라보았다.

그 진법은 과거 국 사숙과 함께 사령계를 탐색했을 때, 사용했던 것과 같은 충허성현진이었다.

“설마 사령계를 다시 한 번 탐색하려다가 봉변을 당한 것인가….”

국 사숙은 이세계를 탐색하는 과정에는 수많은 위험이 따르며, 봉변을 당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여러 차례 말한 적이 있었다.

석목은 어두운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흑마문에서 그와 친밀한 관계의 어른은 오직 국 사숙 한 명뿐이었다.

그때, 국 사숙의 왼손으로 시선을 돌린 석목이 갑자기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국 사숙의 몸은 부패가 진행되면서 색이 변해 있었지만, 왼손만은 유일하게 부패의 흔적이 전혀 없이 원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석목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국 사숙의 왼손을 살짝 펼쳐보았다.

시신의 왼손에는 핏빛 영패가 하나 쥐어져 있었다.

영패의 표면에서는 옅은 붉은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는데, 그것은 마치 액체처럼 국 사숙의 손바닥에 스며들고 있었다.

“이게 뭐지?”

놀란 석목은 국 사숙의 손에서 영패를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삼 촌 크기의 영패는 직사각형 모양이었다. 한쪽 면에는 기괴한 문양이, 다른 한쪽 면에는 아주 자그마한 문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그 문자는 석목이 이제껏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붉은 영패를 쥔 석목의 손에는 차가운 감각이 전해져왔다. 영패가 뿜어내는 붉은 빛이 석목의 손바닥에 닿았지만, 국 사숙처럼 손에 스며들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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