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141화 (141/916)

141화. 건앵일족

석목은 영패를 한참 바라보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데 영패를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으려던 그는 국 사숙의 왼손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매끄럽던 국 사숙의 왼손이 어느새 몸의 다른 부위처럼 검푸른 색으로 변해 악취를 뿜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석목은 어리둥절했다.

‘어떻게 된 일이지? 설마 이 영패를 떼어내서 그런 건가?’

아무래도 이 핏빛 영패는 시체의 부패를 방지하는 작용을 하는 것 같았다.

석목은 다시 한 번 고개를 가로저은 뒤, 영패를 다시 시신의 왼손에 돌려놓았다. 매우 흥미를 끄는 물건이었지만, 국 사숙의 유품을 마음대로 가져갈 수는 없었다.

석목은 몸을 돌려 천천히 밀실 밖으로 걸어 나왔다.

국 사숙은 영계술사로 종문 내에서 상당히 귀한 대접을 받아왔다. 그의 죽음을 가장 먼저 알게 된 사람으로서 이 사실을 종문에 알려야만 했다.

“아래의 상황은 어떻지? 그 돼지는 어떻게 됐어?”

잠시 후, 석목이 밀실의 통로에서 나오자 채아가 즉시 날아와서 물었다.

“국 사숙은 이미 죽었고 시체는 부패하기 시작했어.”

석목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의 말을 들은 채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석목은 채아를 오래 상대하지 않고, 빠르게 집을 나섰다. 그리고 집법당으로 향했다.

반 시진 후, 석목은 회색 옷을 입은 노인과 함께 국 사숙의 거처로 돌아왔다.

그 노인은 바로 등급전에서 심판을 맡았던, 견 씨 성을 가진 장로였다. 알고 보니 그는 흑마문 집법당의 집법장로였다.

국 사숙의 거처 안으로 들어온 석목이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채아가 어디로 도망갔는지 전혀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곳인가?”

석목이 잠시 딴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노인이 밀실로 향하는 통로를 바라보며 숙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맞습니다.”

정신을 차린 석목이 대답했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인 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밀실에 도착해 국 사숙의 시체를 본 노인은 조금 동요하는 기색이었다. 이어 그가 손을 흔들자 흰 빛이 뿜어져 나와서 국 사숙의 시체를 감쌌다.

잠시 후, 노인이 다시 손을 흔들어서 흰 빛을 흩어지게 했다.

노인이 입을 열었다.

“국 사질이 사망한지는 거의 한 달이 다 되었군. 육신에 상처를 입은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사인은 영혼의 소멸인 것 같구나.”

이어 노인은 석목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그런데 석 사질, 오늘 이곳에는 무슨 일로 온 것이지?”

석목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개인적인 일로 국 사숙을 보러 왔다가, 한참 동안 문을 두드려도 반응이 없어서 문이 잠기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제멋대로 들어왔습니다. 밀실의 존재는 이전에 국 사숙과 함께 진법을 연구한 적이 있어서,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밀실 안에서, 이런 참상이 일어난 사실은 알지 못했습니다.”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네 덕분이다. 네가 아니었다면 국 사질의 시체가 얼마나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고 방치돼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이 일은 내가 종문에 알리고 처리하도록 하겠네.”

노인은 석목에게 이제 떠나도 된다는 뜻으로 손짓을 했다.

“견 장로님, 사실 제가 국 사숙을 뵈러 온 것은 법기를 만들 때 필요한 화금석의 독액을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 안에 죽어 있는 도마뱀이 바로 화금석인데, 몸 안에 있는 독주머니를 제가 챙겨가도 될까요?”

석목이 손가락으로 바닥에 있는 은색 우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의 말을 들은 노인이 화금석을 힐끗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견 장로님.”

석목이 기뻐하며 노인에게 예를 표했다.

그는 우리를 열고 화금석의 시체를 꺼냈다. 그리고 비수로 조심스럽게 도마뱀의 배를 갈랐다.

야만족 황무지에서 상당수의 도마뱀 괴수를 사냥한 경험이 있는 석목은 도마뱀의 신체 구조를 비교적 잘 알고 있었다.

금속성(金属性)의 괴수인 화금석은 육질이 단단해서인지 부패한 흔적이 전혀 없었다.

석목은 화금석의 뱃속을 잠시 뒤적거리다가 주먹만 한 크기의 노란색 둥근 주머니를 비수로 잘라냈다. 기이한 냄새를 풍기는 이 주머니가 바로 화금석의 독주머니였다.

석목은 기뻐하며 독주머니를 상자에 조심스럽게 넣은 뒤, 그 상자를 다시 진묘계에 넣었다.

“감사합니다.”

석목은 자리에서 일어나 노인에게 예를 표했다.

국 사숙의 시체를 보며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던 노인이 그의 말을 듣고 정신을 차렸다.

노인이 말했다.

“별일 아니니 신경 쓸 필요 없다. 이곳에는 죽음의 기운이 만연해서 오래 있어봐야 좋을 것이 없으니 빨리 떠나도록 해라. 남은 일은 이 노부에게 맡기면 된다.”

“네.”

석목은 국 사숙의 시체를 한 번 보고 몸을 돌려 밖으로 걸어나갔다.

잠시 후, 건물을 나선 석목은 이미 평정심을 회복한 상태였다.

수련의 길에는 언제나, 죽음의 위험이 함께한 다는 사실을, 그는 예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산길을 따라 하산하는 도중 갑자기 날개를 퍼덕이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오더니, 수풀 속에서 앵무새 한 마리가 날아와 석목의 앞에 착지했다.

바로 채아였다.

“채아, 왜 도망친 거야?”

석목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물었다.

“온통 악취가 가득해서 더 있을 수가 없었어!”

채아가 말했다.

“국 사숙이 죽었는데 어째서 원래의 차원으로 돌아가지 않은 거야?”

“흥! 그 돼지가 갑작스레 죽어버리는 바람에 더 이상 원래의 차원으로 갈 수 없게 됐어.”

석목이 묻자 채아가 꽥꽥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희미하게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채아와 화금석은 살아 있는 생물이기 때문에, 이 세계에 머무르기 위해 많은 정신력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국 사숙은 그 둘의 소환 상태를 유지한 채, 애완동물로 삼았던 것이다.

국 사숙이 사망한 지금, 채아를 원래의 세계로 돌려보내줄 사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이지?”

석목이 다시 물었다.

“이곳에는 아는 사람도 없고 환경도 낯설어. 그래서 새로운 주인을 따르려고 해. 마침 네가 비교적 마음에 드니, 앞으로 너를 따르면 되겠네.”

채아가 날개를 퍼덕이며 말했다.

“안 돼!”

채아의 말에 석목은 생각해볼 것도 없다는 듯 즉시 거절했다.

채아는 너무 시끄러울 뿐만 아니라, 말을 할 줄 알고 지능이 조금 높은 것을 제외하면, 전혀 쓸모가 없었다. 데리고 다니면 성가실 것이 분명했다.

“뭐라고! 고귀한 건앵인 이 몸이 따른다는데 감히 거절을 하겠다고!?”

채아가 화가 나서 꽥꽥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석목은 눈을 흘기며 언짢은 듯 말했다.

“네가 말이 많은 것을 빼면 어디에 쓸 데가 있는데?”

“흥, 그 돼지가 나에 대해서 말한 것은 전부 사실이 아니야. 그걸 다 믿다니, 너 정말 순진하구나! 만약 이 몸이 정말 그렇게 쓸모없다면, 그 돼지가 어째서 그렇게 큰 대가를 지불하고 이 세계로 소환했겠어?”

앵무새가 석목을 비웃으며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이지?”

석목은 떠보듯 물었다.

“우리 건앵 일족은 인류와 계약을 맺으면, 그 계약의 힘을 통해 서로의 시야를 공유할 수 있는 특수한 능력을 가졌어.”

앵무새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채아의 말을 들은 석목의 눈이 커졌다. 그 말이 거짓이 아니라면 엄청난 능력이었다.

게다가 채아는 날아다닐 수 있는 새인 만큼, 정탐꾼으로 사용하기에 더없이 적합했다.

석목은 잠시 침묵하다가 천천히 물었다.

“그 말이 사실이야?”

“당연하지. 내가 왜 너를 속이겠어?”

“정말 그렇다면 확실히 쓸모가 있을 테니, 함께하는 것이 안 될 이유도 없지만….”

석목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다가 갑자기 화제를 돌리며 물었다.

“그런데 능력을 알려주면서까지, 내 곁에 있으려고 하는 이유가 뭐지? 이 세계에서 보살펴줄 사람이 필요한 것 외에도, 분명 다른 이유가 있는 거겠지?”

석목의 날카로운 질문에 채아는 눈동자를 굴리다가 한참 뒤에 입을 열었다.

“당연하지. 네가 나를 위해 해줘야 할 일이 있어.”

“무슨 일이지? 자세히 말하는 것이 좋을 거야.”

석목이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채아는 갑자기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그 돼지의 비겁한 수작에 속아서 이 세계로 온 거야. 내가 너를 주인으로 모시고 힘닿는 데까지 도울 테니, 이후에 그럴만한 능력을 얻으면, 나를 고향으로 돌려보내주겠다고 약속해줘.”

석목은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네가 사는 이세계의 좌표도 없고 강력한 생물의 잔해도 없는데, 어떻게 너를 돌려보내지?”

“모든 것은 노력하기에 달려 있어. 지금은 네 실력이 부족하지만, 추후에 충분한 실력을 갖추게 된다면 분명 방법이 생길 거야!”

채아가 말했다.

석목은 놀란 표정으로 채아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그럼 약속할게.”

그러자 채아는 기분이 좋은지 날개를 몇 번 펄럭였다.

석목은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 주문을 외웠다. 그의 손에서 검은색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곧 하나의 검은색 부문으로 변했다. 바로 주종계약의 부문이었다.

석목이 손을 흔들자 검은 부문은 앵무새의 머리로 날아갔다. 채아는 자신의 머리로 들어오는 부문을 얌전히 받아들였다.

계약에 따라, 석목의 의식 일부분이 계약 부문과 함께, 채아의 영혼과 한데 어우러졌다.

반 시진 후, 석목은 채아와 함께 5호 산봉우리의 정상에 있는 거처에 도착했다.

“석두, 집이 나쁘지 않은 걸? 돼지의 낡은 집보다 훨씬 좋아!”

집에 들어온 채아가 넓은 집을 한 바퀴 날아보며 말했다.

석목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곳에는 새장이 없으니 자유롭게 지내.”

이곳으로 오는 동안 석목은 쉬지 않고 떠드는 채아에게 시달렸다. 그는 채아를 거두기로 한 것을 벌써부터 후회하고 있었다.

또 고의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채아는 석목의 이름을 계속 틀리게 불러댔다. 몇 번이나 지적했지만 전혀 들어먹지 않는 바람에, 석목도 포기하고 더 이상은 말하지 않았다.

석목은 채아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망설임 없이 밀실을 향해 걸어갔다.

“이곳은 새장보다 크지만 이곳에서만 날아다니는 것으로는 부족해. 이 몸은 매일 나가서 길을 거닐고 바람을 쐬어야….”

뒤에서 채아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왔지만, 석목은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밀실의 문을 닫아버렸다.

석목은 길게 숨을 내뱉은 뒤 쓴웃음을 지으며 밀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침대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온신술을 운기하자 겨우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영계술사가 된 후 석목의 단전에 자리 잡은 법력이 상당한 규모를 갖추고, 진기와 어렴풋이 뒤섞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단전에서 차갑고도 뜨거운 기이한 감각이 느껴졌다.

잠시 그 감각을 음미하던 석목은 진묘계에서 화금석의 독주머니가 들어 있는 상자를 꺼내 열었다.

석목은 독주머니를 들어서 침으로 조심스럽게 작은 구멍을 뚫었다. 그러자 떫고 비릿한 냄새가 나는 노란색 액체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석목은 흘러나오는 독액을 재빨리 병으로 받아냈다.

잠시 후 독주머니는 완전히 비었고, 석목의 앞에는 독액이 가득한 병 세 개가 놓이게 되었다. 무기에 술법진을 새기기에 충분한 양이었다.

석목은 병을 저장반지에 조심스럽게 넣은 뒤 푸른색 옥간을 꺼냈다. 영법전에서 교환한 현부묘적이었다.

이어 석목은 옥간을 이마에 가져다 대고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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