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흡일식(吸日式)
두 원숭이는 뜨거운 눈빛으로 눈앞의 과수원을 바라보며 콧구멍을 벌렁거렸다. 그들은 취한 듯 몽롱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즉시 뛰쳐나가지 않고 참고 있었다.
그 과수원은 높고 커다란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었다. 문은 하나 있었고, 푸른 옷을 입은 동자(童子)가 그 근처에 기대고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무슨 좋은 꿈을 꾸는지 그의 입가에는 은은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두 원숭이는 눈을 맞추고 손짓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흰 원숭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끼끽!
흰 원숭이는 숲에서 뛰쳐나가더니 팔다리를 휘저으며 울부짖었다.
동자가 그 소리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그러나 동자가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흰 원숭이가 입을 벌려 화염을 뿜어내자 유성처럼 날아간 화염이 청의의 동자의 몸에 부딪히며 옷에 불이 붙었다.
흰 원숭이는 득의양양한 표정이 되어 입을 벌리고 웃었다.
이때 화가 잔뜩 난 동자가 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푸른빛이 나타나 옷에 붙은 불을 전부 껐다.
이어 동자는 붉은색 채찍을 꺼내 흰 원숭이를 향해 휘둘렀다. 채찍은 갑작스레 몇 십 배의 길이로 늘어나며 붉은 화염에 휩싸였다.
흰 원숭이는 십 장 정도 떨어진 곳으로 벗어나며 채찍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콰쾅!
채찍이 지면을 가격하자 커다란 진동과 함께 바닥에 까맣게 탄 구덩이가 생겨났다.
흰 원숭이는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고, 붉은 엉덩이를 동자를 향해 씰룩씰룩 흔들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상당히 얄미워보이는 모습이었다.
이에 단잠에서 깨어나 화가 나 있던 동자는 원숭이에게 농락까지 당하자 더 분노했다. 그는 솟아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원숭이를 향해 채찍을 휘두르며 달려갔다.
우끼끽!
그러나 흰 원숭이는 멀리 도망가면서도 고개를 돌려 각종 해괴한 표정을 지으며 약을 올렸다. 그리고 매번 채찍이 날아올 때마다 간발의 차로 피하며 동자를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동자와 원숭이는 쫓고 쫓기며 순식간에 짙은 운무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 자취를 감췄다.
휙!
그때 회색 원숭이가 숲속에서 뛰어나왔다. 원숭이는 먼 곳을 한 번 바라보더니 번개같이 빠른 속도로 과수원으로 뛰어 들어갔다.
회색 원숭이는 과수원에 있는 많은 선과를 보고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그리고 곧장 나무 위로 뛰어올라가 선과를 베어 먹기 시작했다.
회색 원숭이가 상당히 만족스러운 듯 두 눈을 반짝이는 것으로 보아 선과의 맛은 훌륭한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과수원 바깥의 먼 곳에서 흰 원숭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배 모양의 흰색 선과를 베어 물던 회색 원숭이는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난 방향을 바라보니, 멀리서 동자가 다급한 표정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회색 원숭이는 먹던 선과를 던져버리고, 몸을 뒤적이더니 커다란 천을 꺼내 보따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나무 위를 뛰어다니며 선과들을 따서 보따리에 넣었다.
이어 보따리에 선과가 가득 차자 원숭이는 그것을 등에 지고 날듯이 뛰어갔고, 원숭이는 곧 선과원의 입구를 통과해서 숲속으로 사라졌다.
한 발 늦게 도착한 동자는 선과를 훔쳐 도망가는 회색원숭이를 숲 앞까지 쫓아갔다. 동자는 화가 잔뜩 나서 고함을 질렀지만 더 이상 쫓아가지는 않았다. 숲 속에서는 원숭이의 속도를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을 뿐더러, 얄미운 흰 원숭이도 아직 근처에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회색 원숭이는 물이 흐르는 산골짜기에 도착했다.
원숭이는 그곳에서 등 뒤의 보따리를 내려놓고 가장 큰 선과 몇 개를 꺼내 수풀 사이에 숨겼다. 그리고 다시 보따리를 들고 산골짜기로 걸어 들어갔다.
산골짜기에는 흰 원숭이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흰 원숭이는 회색 원숭이가 등에 매고 있는 커다란 보따리를 발견하고 기뻐하며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회색 원숭이가 다가와서 보따리를 내려놓자 그 안에서 커다란 선과가 모습을 드러냈다.
흰 원숭이가 군침을 흘리며 손을 뻗는 순간, 회색 원숭이가 그를 제지했다. 흰 원숭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회색 원숭이는 보따리의 선과를 전부 꺼내 반으로 나눈 후 절반을 흰 원숭이에게 주고, 나머지 절반은 다시 보따리에 넣었다. 그리고 흰 원숭이에게 손을 흔들며 골짜기 밖으로 걸어 나갔다.
흰 원숭이는 회색 원숭이가 떠나는 것은 신경도 쓰지 않고, 바닥에 놓인 선과들을 바라보며 기쁜 듯 웃고 있었다.
원숭이는 붉은색 선과를 껍질째로 다 먹은 뒤, 곧바로 다른 선과를 집어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흰 원숭이는 바닥에 놓인 선과를 전부 먹어 치웠다.
잠시 후, 배가 볼록하게 차오른 원숭이는 입을 만지작거리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바로 그 순간, 원숭이가 갑자기 입을 벌리고 배를 움켜쥐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차갑고 뜨거운 기운으로 변한 뱃속의 선과가 원숭이의 경맥에 침입했고, 그 기운은 무수한 칼날이 몸 안을 헤집는 것 같은 고통을 선사했다.
바로 그때, 흰 원숭이는 갑자기 바닥에서 뛰어오르더니 산의 정상을 향해 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 속도가 매우 빨라서 원숭이는 순식간에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흰 원숭이는 하늘 높이 뜬 태양 아래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고개를 높게 들어 입을 크게 벌렸다.
흰 원숭이가 그런 자세를 취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허공에 흰색 빛들이 모여 들더니 빛의 기둥으로 변해 원숭이의 입으로 들어갔다.
빛의 기둥이 입으로 들어간 순간, 흰 원숭이의 얼굴에서 고통스러운 기색이 크게 줄어들었다. 동시에 체내에서 요동치던 여러 기운이 조금씩 평온하게 가라앉으며, 따뜻한 기운으로 바뀌어 체내를 천천히 순환하기 시작했다.
흰 원숭이가 자세를 계속 유지하자 허공에서 떨어지는 빛의 기둥은 점점 밝고 두꺼워졌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흰 원숭이가 눈을 떴을 때, 원숭이의 동공에서는 금색 화염이 타오르고 있었다.
동시에 원숭이의 머릿속에 다양한 크기의 금색 부문이 무수히 떠올랐다. 부문들은 곧 하나로 합쳐져 한 편의 법문으로 변했다.
법문의 앞표지에는 ‘흡일식’이라는 세 글자가 커다랗게 적혀 있었다.
* * *
석목은 몸을 떨며 꿈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보고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어느새 자리에 앉아 꿈에서 원숭이가 취했던 것과 똑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동시에 그의 머리 위 지붕창 사이로 흰 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 빛은 석목의 몸으로 흡수되며 따뜻한 기운으로 변해 체내를 천천히 순환하는 중이었다. 석목이 깨어나자 빛은 더 이상 생겨나지 않았다.
“흡일식….”
석목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또 다시 신묘한 심법을 깨우친 것을 깨닫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다만, 다시 한 번 떠올려보려고 아무리 애써도 흡일식의 내용은 한 글자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석목은 이전에 탄월식을 경험해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전혀 조급해하지 않았다.
석목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여전히 정호 화실에 있었고, 중앙의 화로아래에서 화염이 소리를 내며 타오르고 있었다.
석목은 기절하기 전의 상황을 떠올리며, 눈을 감고 몸 상태를 확인해보았다.
단전에서 날뛰던 진기는 이제 고치처럼 한데 뭉쳐 꿈틀거리고 있었다.
석목이 마음을 먹자, 고치의 꿈틀거리는 속도가 빨라지며 방대한 진기의 파동을 뿜어냈다. 순간 피부에 붉은 빛이 감돌더니 전신에 강대한 힘이 솟아났다.
그러자 석목이 참지 못하고 고개를 젖혀 길게 소리를 내질렀다.
눈을 뜬 석목은 기뻐서 그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단전에 생긴 이 기의 고치는 선천의 경지에 올라 체내의 기부가 열리기 전에 형성되는 기배(气胚)였다.
기배를 만들었으니, 절반 정도는 선천의 경지에 오르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이제 적원화경의 7단계를 수련해 기배에 충분한 진기만 쌓는다면, 기부를 열어 진정한 선천의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
석목은 체내에 용솟음치는 진기를 천천히 거두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수련을 계속하려 했다.
쿠구궁!
바로 그때, 커다란 소리를 내며 대문이 천천히 열렸다.
문이 열리자 초조한 표정으로 병급제자가 들어왔다. 그는 석목을 보더니 기쁜 표정을 지었다.
“대사형!”
병급제자가 석목을 향해 예를 표했다.
“무슨 일이지?”
석목이 물었다.
병급제자는 석목의 말을 듣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대사형, 이곳에 들어온 지 벌써 28일이 지났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대사형이 나오지 않아서 걱정되어 찾아왔습니다.”
그의 말에 석목은 깜짝 놀랐다.
“벌써 28일이나….”
병급제자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석목이 예정된 시간을 넘긴 것은 큰 일이 아니었지만, 혹시라도 안에서 무슨 사고가 일어난 것이 아닌가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흑마문의 대사형인 석목이 이곳에서 사고를 당한다면 그에게도 책임의 여지가 있었다.
석목이 웃으며 말했다.
“알려줘서 고맙네. 이곳에 있는 불의 기운을 빌려 심법을 수련하다보니 너무 몰입해 시간이 흐르는 것도 몰랐다네.”
“아닙니다. 대사형께서는 계속 이곳을 이용하실 겁니까?”
병급제자가 표정을 밝히며 물었다.
“아니네.”
석목은 잠시 고민을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옷을 털고 화실 밖으로 나갔다. 이제 천마종으로 출발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수련을 계속할 수 없었다.
석목은 3호 산봉우리를 떠나 서둘러 거처로 향했다.
* * *
며칠 후, 석목은 거처의 밀실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채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몸을 일으킨 뒤 밀실을 나와서 거처의 대문으로 향했다.
대문을 열자 묘음종의 복장을 한 소녀가 서 있었다. 열여덟 살 정도로 보이는 그녀는 상당한 미인이었으며, 등 뒤에 배낭을 메고 있었다.
배낭은 크지 않았지만 소녀의 이마와 볼에 흐르는 땀방울로 보아 꽤나 무거운 것 같았다.
“귀하가 석목 사형이 맞습니까?”
석목이 문을 열자 소녀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맞습니다. 무슨 일로 저를 찾아왔죠?”
석목이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저는 묘음종의 이유선입니다. 종수 장로님의 부탁을 받고 석 사형을 찾아왔습니다.”
소녀가 대답했다.
석목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조금 부드러워진 표정으로 말했다.
“이 사매였군요. 우선 들어오시죠.”
“감사합니다.”
소녀가 아름답게 웃으며 스스럼없이 안으로 들어왔다.
“이곳은 정말 멋진 곳이로군요.”
“과찬입니다. 그런데 종 사숙이 무슨 일로 사매를 보낸 것인지…?”
석목이 소녀에게 차를 따라주며 물었다.
“감사합니다. 석 사형,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소녀는 차를 한 입에 털어 마신 후 길게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등 뒤의 배낭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배낭 안에는 주먹만 한 크기의 검은 돌이 들어 있었다.
소녀는 품속에서 압인이 되어 있는 서신을 꺼내 석목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 운철과 서신은 종 사숙이 석 사형에게 보낸 것입니다.”
검은 돌이 자신의 운철흑도와 같은 재질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본 석목은 멍한 표정이 되었다.
석목이 탁자 위의 검은색 운철을 들어 무게를 가늠해보니 이백 근 가까이 되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소녀를 바라보았다. 소녀가 석목의 표정을 알아채고 설명했다.
“몇 달 전, 우리 묘음종에서 운철 세 덩어리를 얻었습니다. 종 사숙은 그중 한 덩어리를 대장로님으로부터 하사받았는데, 이것이 석 사형에게 유용할 것이라며 전해주라 하셨습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석목은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서신을 열자 아름다운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오라버니, 강녕하십니까. 저는 폐관수련에 들어갔습니다. 인연이 되면 다시 만나요. 언제나 건강에 유의하세요.’
편지를 본 석목은 순간 넋을 잃었다.
“석 사형…, 괜찮으세요?”
이유선이 놀라서 석목의 눈앞에서 손을 흔들며 물었다.
“아, 아무 일 아닙니다. 우스운 꼴을 보였군요. 아직 떠나지 말고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정신을 차린 석목이 말했다.
그의 오른손에 끼워진 진묘계가 반짝이더니 순간 서신이 모습을 감추었다.
놀란 이유선이 그의 저장반지를 바라보며 부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석목은 그녀의 반응은 신경 쓰지 않고 옆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방에서 나온 석목은 이유선에게 중급부적 한 장을 쥐어주었다. 그리고 종수에게 서신을 한 장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이유선은 기뻐하며 서신과 부적을 받은 후 인사를 하고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