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146화 (146/916)

146화. 서쪽으로 향하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 천마종으로 출발할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석목은 늦은 밤까지 거처의 물건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는 진묘계를 가지고 있는 만큼 거처에 물건을 남겨놓지 않을 작정이었다. 대륙의 중부로 떠나면 어느 세월에 다시 돌아오게 될지 몰랐기 때문이다.

탁자 위에는 진묘계에 넣을 수 없는 운철곤봉과 운철흑도 외에 일부 영석과 부적, 손가락 두께의 쇠사슬로 묶인 소형 유성추가 있었다.

유성추의 머리 부분에는 바로 종수가 선물한 주먹 크기의 흑색 운철이 달려 있었다. 시간이 부족해서 조평에게 병기를 제작해달라고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전과 같은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석목은 며칠 전 조평에게 고급 정철을 사용한 쇠사슬 제작을 의뢰해 새로운 유성추를 만들었다.

석목은 유성추를 잠시 바라보다가 허리띠처럼 허리춤에 묶고 몇 걸음 걸어보니 전혀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유성추를 풀어 탁자 위에 던졌다.

쿵!

유성추가 떨어지며 탁자가 흔들렸다.

그 진동으로 탁자 위에 있던 화속성 하급 영석이 굴러가서 옆에 있던 운철흑도에 닿았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화속성의 영석이 갑자기 붉은 빛과 함께 강력한 법력의 파동을 뿜어내더니, 곧 눈에 보일만큼 빠른 속도로 붉은 빛이 약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고작 두세 번 호흡하는 사이에 붉은 빛이 감돌던 영석은 회색으로 변했다.

석목이 영석을 만져보니, 그 안에 들어 있던 화속성 영력이 전부 사라져 느껴지지 않았다.

석목은 황당한 표정이 되었다. 이삼 만 은자의 값어치를 하는 하급 영석이 순식간에 쓸모없는 돌덩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석목은 이번에는 운철흑도를 보았다. 겉보기에는 이전과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

석목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영력을 잃은 영석을 던져버리고 운철흑도를 손에 쥐었다. 그러자 무언가 달라진 점을 즉시 발견할 수 있었다.

운철흑도는 이전보다 훨씬 무거워져 있었다.

흑도와 곤봉은 이전부터 중량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긴 했지만, 석목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생각에 잠겨 있던 석목은 운철흑도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수속성 영석을 들고 아깝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이번에는 곤봉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방금 전과 동일한 현상이 반복됐다. 수속성 영석은 순간 파란 빛을 뿜어냈다가 빠르게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곧 회색으로 변했다.

석목이 그제야 확신할 수 있었다. 운철은 영석의 속성과는 상관없이 영력을 흡수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잠시 뒤, 석목은 무언가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영석에 흐르는 정순한 영력은 자연의 기가 농축된 것과 같았다. 알고 보니, 이 운철은 자연의 기를 흡수하면서 무게를 늘려가는 것이었다.

운철이 하급영석 하나를 흡수했을 때 증가하는 중량은 최근 며칠간 증가한 것에 필적하는 정도였다.

순간 석목은 기뻐했지만, 한편으로는 근심이 생겼다.

영석만 있다면 중량을 빠르게 올릴 수 있으니, 자신의 힘만 충분하다면 위력을 더욱 키울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운철에 전부 투자하기에는 영석은 매우 진귀한 자원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석목은 다음날 길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 일에 대한 고민은 잠시 뒷전으로 미뤄놓기로 했다.

이어 석목은 남은 영석과 부적을 전부 진묘계에 넣은 후 검은 천으로 감쌌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 * *

다음날 새벽이 되었다.

석목은 이른 시간에 13호 산봉우리 아래에 있는 광장에 도착했다. 일행과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였다.

아직 해가 떠오르지 않은 골짜기에는 안개가 짙게 깔려 있었으며, 주위에 있는 여러 건물도 문이 열려 있지 않아 상당히 차갑고 한산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광장의 중앙에는 세 제자가 이미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뒤에는 검은 말이 한 마리씩 서 있었고, 말 위에는 배낭이 실려 있었다.

한편, 석목은 등 뒤에 검은 천으로 감싼 운철흑도와 곤봉을 매고 허리에 유성추를 두르고 있었고, 어깨에는 채아가 올라앉아 있었다.

석목은 머리에 뿔이 자란 건장한 갈색 말을 끌고 있었다. 이 말은 오각마(乌角马)라 불리는 말로, 무거운 중량을 버틸 수 있는 말이었다.

이런 말은 인족 입장에서는 매우 드물었다. 비록 속도는 야만족 황무지의 사불상과 비교할 바가 되지 않았지만, 무거운 짐을 짊어지는 능력은 대단했다. 한 마리가 치중차 한 대에 버금가는 힘을 가지고 있어서, 가격이 매우 비싼 데다, 돈이 있다고 해도 구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석목은 이번 여정을 위해 며칠 전 진귀한 물건을 취급하는 가게를 찾았고, 증급부적 세 장과 영석 몇 개를 말과 교환했다.

“대사형!”

세 사람이 다가오는 석목을 보고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석목은 세 사람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들의 옆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두 눈을 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금색 옷을 입은 금소채가 붉은 말을 끌고 나타났다.

“금 사숙!”

석목이 앞장서 세 사람과 함께 예를 표했다.

고개를 끄덕인 금소채는 석목을 보더니 조롱하듯 말했다.

“앵무새를 데리고 오다니, 어디 놀러 가는 줄 아는 것이냐?”

석목은 바람에 실려 날아오는 그윽한 향기를 맡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리고 그가 대답하기도 전에, 채아가 고개를 치켜들고 가슴을 내밀며 소리쳤다.

“고귀한 건앵인 이 몸을 석두가 버리고 갈 리가 없지! 너는 누구지? 이렇게 가까이 다가와 얘기하는 걸 보니 석두를 좋아하나보지?”

금소채는 채아의 말을 듣고 멍청한 표정이 되었다가, 곧 화가 나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금소채의 표정 변화를 본 석목과 옆에 있던 세 제자는 얄궂은 표정을 지었고, 그 모습을 본 금소채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이 잡스러운 털을 가진 앵무새가 뭐라 지껄이는 것이냐! 내가 네 털을 모두 뽑아 잘게 썰어서 찌개를 끓여먹겠다!”

금소채가 선천고수의 강력한 기운을 뿜어내며 검은 채찍을 꺼내 휘둘렀다.

놀란 채아가 날개로 머리를 감싸며 석목에게 소리쳤다.

“주인, 저 여자가 날 죽이려 한다. 살려줘! 너는 채아의 주인이니 날 지켜야해!”

방금까지 위풍당당하던 채아가 순식간에 겁쟁이의 모습을 보이자, 금소채의 움직임이 멈췄다.

채아의 행동을 본 석목은 화가 나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어쨌든 채아는 자신이 데리고 온 것이니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다.

“금 사숙, 화를 가라앉히세요. 존귀하신 분이 설마 이런 앵무새와 말다툼을 하시려는 건 아니겠죠.”

그러자 금소채가 채찍을 거두고 웃으며 물었다.

“아, 그렇군. 그렇다면 존귀한 이 몸의 말이라면 당연히 따르겠지?”

석목이 대답하기도 전에 시끄러운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석두, 저 여자의 말을 들으면 안 돼. 분명 나를 죽이라고 시킬 거야. 채아가 말을 잘 들을게. 난 맛이 없어!”

채아는 날개로 얼굴을 감싸고 한 쪽 눈으로 금소채를 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순간, 석목은 말문이 막혀 어쩔줄 몰라 했고, 금소채는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석목은 그녀가 입을 열기 전에 다급히 고개를 돌려 말했다.

“채아, 금 사숙은 우리 종문의 어르신이야. 나보다도 훨씬 강해서 그녀가 너를 죽여서 국을 끓여먹는다 해도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석목의 말을 들은 채아가 공포에 찬 눈빛으로 다급하게 금소채의 비위를 맞추기 시작했다.

“금 사숙, 방금은 장난이었으니 마음에 두지 마세요. 이렇게 아름답고 지혜롭고 또 영명하신 분이 어찌 석두를 좋아하겠습니까!”

“다시 한 번 시끄럽게 떠든다면 금 사숙이 손을 쓰기 전에 내가 네 털을 전부 뽑아버릴 거야!”

석목이 채아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옆에서 이 광경을 구경하던 세 제자는 웃음을 참지 못해 못 견딜 지경이었다. 그러나 금소채와 석목에게 미움을 사서는 절대로 안 되기 때문에, 그저 고개를 숙이고 얼굴만 붉힐 뿐이었다.

“됐다. 상당히 재미있는 앵무새구나. 대인배인 내가 용서하도록 하마.”

금소채가 채아의 아첨을 즐기는 듯,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채찍을 거두어들였다. 그리고 말에 올라타서 골짜기 밖으로 향하며 말했다.

“석목, 너는 할 말이 있으니 이리 가까이 오너라.”

그녀의 말을 듣고 석목도 오각마에 올라 금소채를 따라갔고, 다른 세 제자도 각자 말에 올라 그들의 뒤를 바짝 쫓았다.

“너는 이전에 화무공주를 호위하며 성산에 가본 적이 있으니, 야만족의 영토에 대해서 잘 알겠지?”

금소채가 물었다.

“야만족의 영토에서 몇 달 지냈으니 잘 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석목이 대답했다.

“이전까지는 천마총에 가기 위해서 바닷길을 통했지만, 최근에는 해족과의 분쟁 때문에 바닷길을 이용할 수 없다. 야만족의 영토를 경유하는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하니, 네가 그 경로를 구상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석목은 금소채의 지시에 우렁차게 대답했다.

금소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고삐를 끌어당겨 골짜기의 입구를 향해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다른 네 사람도 금소채를 따라 속도를 높였다.

그때,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의 눈부신 햇살이 골짜기를 찬란하게 비추었다. 그러면서 안개가 점점 흩어지고 있었다.

일행은 막 솟아오르는 햇빛을 맞으며 서쪽으로 이동했고, 그들의 모습은 점차 작은 점으로 바뀌다가 사라졌다.

* * *

열흘 후, 일행은 염국의 변경을 넘어섰다.

좀 더 이동하자 작은 두 산 사이에 있는, 규모가 상당히 큰 야만족의 병영이 나타났다. 병영의 옆에는 붉은 전갈이 그려진 커다란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이 병영은 마치 관문처럼 정확히 산길의 입구를 막고 있어서, 그 길을 지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만 했다.

잠시 후, 야만족 병영의 천막 안.

얼굴이 누런 삼십 대의 야만족 사내가 상석에 앉아 있었다. 그의 왼팔에는 붉은색 독 전갈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기운으로 보아 선천중기의 경지에 있는 무인인 것 같았다.

사내는 무표정한 얼굴로 앞에 서 있는 석목 일행을 바라보았다.

“종문의 강자인 그대가 상당한 실력이 있는 수하들까지 데리고 야만족의 영지에 들어가려는 이유가 무엇이죠?”

야만족 사내가 금소채를 위아래로 바라보며 물었다.

“종문의 명을 받아 남기부(蓝麒部)에 약초를 사러 왔습니다. 야만족 영토 내의 안전 문제에 대해서는 말씀을 안 드려도 잘 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금소채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대답했다.

남기부는 작은 평만부족었다. 이들은 야만족 영지 깊은 곳의 기철산(蕲铁山) 옆에 위치해 진귀한 약초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 다만 그곳으로 향하는 길에는 상당히 많은 흉만부족이 있었다.

사실 남기부로 약초를 사러 간다는 것은 금소채와 석목이 미리 생각해둔 핑계거리였다.

야만족 사내는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통행료는 은자 십만 냥입니다.”

“감사합니다.”

금소채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은표 한 장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상대가 은표를 받아들자 금소채 일행은 인사를 하고 바삐 그곳을 떠났다.

장막 안이 조용해지자 야만족 사내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점점 멀어지는 일행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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