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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147화 (147/916)

147화. 돌아서 가다

이틀 후, 늦은 밤.

석목은 천막 안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앵무새 채아는 그와 멀지 않은 곳에서 단잠을 자고 있었다.

그 순간 석목이 갑자기 두 눈을 뜨며 옆에 놓인 운철흑도를 쥐었다.

찌익!

석목의 뒤에서 천막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소리가 난 곳에서 송아지만한 크기의 물체가 천막 안으로 뛰어 들어와 그를 덮쳤다.

석목은 바닥에서 튀어 오르듯이 일어나며 손에 쥔 흑도를 휘둘렀다. 그를 덮친 상대의 목이 잘려 머리가 떨어져나가면서, 피의 비가 허공에 흩뿌려졌다.

석목을 습격한 것은 늑대의 몸에 도마뱀의 머리, 독전갈의 꼬리가 달린 괴이한 형태의 괴수였다.

“갈미수(蝎尾兽)!”

무리지어 사는 습성을 가진 이 괴수는 강하지는 않았지만, 꼬리에 극독이 있어서 매우 성가신 상대였다.

“이게 뭐야!”

놀란 채아가 괴성을 지르며 날개를 펼쳐 날아갔다.

바로 그때, 천막이 뜯기는 소리가 연달아 울리며 갈미수 세 마리가 세 방향에서 덤벼들었다.

석목이 오른팔을 흔들자, 세 개의 검은 검광이 파공성을 내며 갈미수의 몸을 갈랐다. 그 즉시 갈미수 세 마리가 땅에 나뒹굴며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석목은 천막에서 나와 주위를 둘러봤다. 다른 일행도 천막 밖에서 각자의 무기를 휘두르며 몰려온 갈미수와 싸우고 있었다.

석목이 먼 서쪽을 바라보니, 서쪽에서 천여 마리는 되어 보이는 갈미수 무리가 이곳을 향해 밀려오고 있었다.

금소채는 채찍을 휘둘러 전신을 감싸 보호하는 한편, 진기에 둘러싸인 채찍을 끊임없이 날리고 있었다. 그 채찍에 맞은 갈미수는 즉시 피와 살이 터지며 다진 고기로 변해버렸다.

막녕은 하얀 운무에 사이에 숨어 있었는데, 그 운무 안으로 달려든 갈미수는 금세 기척이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곧바로 막녕에게 죽음을 당한 것이다.

파란 석장을 들고 있는 백수수는 전신이 파란 빛의 장막에 뒤덮여 있었다. 그녀가 손을 휘두르자 허공에 나타난 다섯 개의 투명한 하늘색 장창이 갈미수 두 마리를 꿰뚫었다.

전웅은 두 손에 검은 막대기를 들고 마구 휘둘렀고, 그의 공격에 맞은 갈미수는 즉시 뼈가 부러지며 쓰러졌다.

“갈미수는 대부분 후천초기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지만, 꼬리와 발톱에 극독이 있으니 닿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석목이 붉게 반짝이는 운철흑도로 자신을 보호하며 소리쳤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일행이 깜짝 놀랐다.

그 순간, 금소채가 무언가 떠오른 듯 갑자기 동쪽 언덕을 향해 급하게 달려 나가며 소리쳤다.

“모두 말을 보호해!”

금소채의 말에 모두 말을 묶어둔 곳으로 다급하게 이동했다.

반 시진 후, 말들을 둘러싼 석목 일행의 주위에는 육백 마리 정도의 갈미수 시체가 쌓여 피의 강을 이루고 있었다.

남은 사백여 마리의 갈미수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울부짖으며 사방으로 도망쳤다.

그때 어딘가로 피해 있었던 채아가 날아와서, 석목의 머리 위로 한 바퀴 돌더니 다시 서쪽으로 날아갔다.

석목은 눈을 살짝 찌푸리며 빠르게 채아를 쫓아갔고, 나머지 일행은 그 모습을 보고 잠시 어리둥절하다가 석목의 뒤를 따랐다.

* * *

일 각 후, 석목 일행의 숙영지에서 서쪽으로 십 리 정도 떨어진 어느 언덕 위.

언덕의 서쪽으로 수 십 장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야만족의 숙영지에서 모닥불이 흔들거리고 있었다.

모닥불 옆에는 이틀 전 석목 일행이 관문에서 만났던 얼굴이 누런 야만족 사내가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었다. 한 야만족 토템용사의 보고를 듣는 그의 주위에는 스무 명이 넘는 야만족 토템용사가 서 있었다.

사내의 옆에는 몸길이가 이 장이 넘는 거대한 갈미수가 엎드려 있었고, 그 갈미수는 전신에서 후천 대원만의 중후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때 야만족 사내가 갑자기 일어나더니 숙영지 밖을 바라보며 외쳤다.

“누구냐?”

그가 소리친 방향에서 채찍을 든 금소채가 어둠속에서 걸어 나왔다.

“괴수를 지휘해 야간에 우리를 습격하다니, 인족과 야만족 간의 전쟁을 다시 일으키고 싶은 것인가?”

금소채가 서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어 석목과 세 제자가 각자의 무기를 들고 살기어린 표정으로 걸어 나와서 그녀의 옆에 일렬로 섰다.

“이곳에서 그대들을 만나다니 정말 우연이군요. 우리 야만족의 영토에서 밤에 괴수가 출몰하는 것은 매우 일반적인….”

야만족 사내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귀를 찌르는 파공성이 울렸다.

금소채가 휘두른 채찍이 마치 구렁이처럼 뻗어나가 야만족 사내를 휘감으려 했다.

그 순간, 야만족 사내가 섬뜩하게 웃었고, 그의 왼팔에 새겨진 전갈 토템이 밝게 빛났다.

이어서 그의 왼팔이 일 장 길이의 붉은색 전갈의 꼬리로 변했다. 오른팔은 거대한 전갈의 집게로 변했으며, 전신에서 붉은색 껍질이 돋아났다.

그가 거대한 전갈의 집게를 뻗자 뜨거운 열기의 파도가 금소채의 검은색 채찍을 향해 몰아쳤다.

콰르릉!

검고 붉은 두 색이 뒤섞이며 폭발이 일어났고, 광폭한 진기의 파동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쉬익!

야만족 사내의 전갈꼬리가 폭발 사이를 뚫고 나와서 순식간에 금소채의 머리를 위에서 아래로 거세게 내려찍었다.

그러나 금소채는 그 모습을 보고도 전혀 몸을 피하지 않고 팔을 흔들었다. 순간 검은 채찍이 열 개 이상의 잔영을 만들며 야만족 사내를 덮었다.

붉은 전갈의 꼬리가 금소채의 몸에 닿기 직전, 그녀의 몸에 금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러자 전갈의 꼬리는 금소채의 몸에 닿자마자 미끄러지듯 방향을 틀어 허공을 찔렀다.

놀란 야만족 사내는 어느새 자신의 몸에 다가온 채찍을 집게발을 휘둘러 필사적으로 막을 수밖에 없었다.

같은 시간, 그의 곁에 있던 야만족 토템용사들은 석목을 포함한 네 제자와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대부분 후천중기 혹은 후천후기인 그들은 모두 토템을 발동시킨 상태였고, 몸에 단단한 붉은색 껍질을 두르고 거대한 집게로 변한 두 팔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러나 흑마문의 갑급제자인 석목과 세 제자는 다수를 상대하면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석목은 운철흑도에 법력을 주입하며 휘둘렀다. 그러자 화염이 활활 타오르는 열세 개의 검광이 좌우로 다가오는 두 토템용사를 향해 몰아쳤다.

검광은 눈 깜짝할 사이에 두 토템용사를 조각냈다. 그들의 몸에 돋아난 붉은 껍질은 운철흑도와 닿는 순간 마치 종잇장처럼 찢겨졌으며, 까맣게 타들어간 상처에서는 피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다.

다른 일행도 각자 토템용사 한 명씩을 순식간에 처리했다.

한편, 금소채의 채찍은 촘촘한 잔영을 만들며 야만족 사내를 덮치고 있었다.

야만족 사내는 금소채의 공격에 전혀 밀리지 않고 공격을 주고받으며 막상막하로 싸웠다.

바로 그 순간, 야만족 사내가 입에서 녹색의 독안개를 토하듯 뿜어냈고, 동시에 갈미수 한 마리가 어느새 금소채의 등 뒤에 나타나서 그녀를 향해 전갈꼬리를 찔러왔다.

야만족 사내는 잔인한 표정을 지으며 공격의 속도를 올렸고, 전혀 피할 틈이 없던 금소채는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전갈꼬리가 금소채의 몸에 닿기 직전, 검은 그림자가 옆에서 날아와 갈미수의 머리를 찍었다. 일격에 머리가 터져 즉사한 갈미수가 멀리 날아가며 허공에 붉고 하얀 액체를 흩뿌렸다.

그 검은 그림자의 정체는 석목의 허리에 걸려 있던 작은 유성추였다.

정신을 차린 금소채가 눈썹을 치켜세우며 왼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한줄기 빛이 야만족 사내의 바로 코앞까지 순식간에 뻗어나갔다.

그 순간, 야만족 사내가 집게에 쥐고 있던 붉은색 가죽 부적을 사용하자, 붉은 빛의 장막이 나타나 그의 몸을 보호했다.

그런데 다음 순간, 금소채가 쏜 빛줄기가 폭발하며 일 장 가까운 크기의 검은 구름으로 변했고, 구름 속에서 흰 번개가 요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사내의 몸을 감싼 붉은 빛의 장막 위로 떨어졌다.

장막이 뒤흔들리자 놀란 야만족 사내는 무언가 다른 행동을 하려 했다. 그러나 뒤이어 검은 구름 속에서 천둥소리와 함께 번개가 연달아 내리쳤고, 붉은 빛의 장막은 불안정하게 반짝이면서 곧 흩어지려 했다.

야만족 사내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그가 새로 꺼낸 검은색 가죽 부적을 사용하기도 전에, 검은 채찍이 귀신처럼 소리 없이 다가와 붉은 빛의 장막을 가격했다.

펑!

붉은 빛의 장막이 깨지는 순간, 번개가 야만족 사내의 머리에 떨어졌고, 머리가 수박처럼 터진 그의 시체는 잠시 비틀거리다가 앞으로 쓰러졌다.

같은 시간, 토템용사들은 네 제자에게 절반 가까운 수가 목숨을 잃었다. 이때 살아남은 이들은 야만족 사내가 사망한 것을 보고 놀라 도망가려 했다.

물론 석목 일행은 그들이 마음대로 도망가게 두지 않았다. 약 이 각 사이에 남은 토템용사들이 전부 깔끔하게 처리됐다.

“금 사숙, 이 일 때문에 인족과 야만족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백수수가 모닥불 옆에 서서 바닥에 널려 있는 시체들을 보며 물었다.

막녕과 전웅도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반면 석목은 턱을 쓰다듬으며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었다.

“흥, 저들이 먼저 공격했으니 우리를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소란이 일어나 연맹의 늙은이들의 머리가 아플 수 있겠지만, 우리는 우리의 일이나 신경 쓰면 된다.”

금소채가 개의치 않는다는 듯 말했다.

바로 그때 석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쩌면 이미 그들의 목표가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경로를 바꾸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세 갑급제자가 놀란 눈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금소채도 시선을 돌렸다. 그는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이들은 흉만에 속하는 적갈부족입니다. 비록 8대 부족 중 하나는 아니지만 적미부족에서 갈라져 나온 부족이지요. 다시는 삼국의 영토를 침범하지 않겠다고 연맹과 조약을 맺었다고는 하나, 현재 우리는 야만족의 영토 내에 있습니다. 과거부터 우리 인족을 적대시하던 흉만부족이 우리를 건드리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석목이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우리가 어디로 가는 것이 좋겠느냐?”

금소채가 물었다.

석목이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북서쪽으로 보름 정도 이동하면 흑석산맥에 도착할 것입니다. 그 산맥을 따라 서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조금 멀리 돌아가는 길이긴 해도, 흉만부족은 평만부족과 인접한 흑석산맥에는 거의 다가오지 않으니 훨씬 안전할 것입니다.”

“그럼 그렇게 하지. 가자.”

금소채가 말했다.

다른 세 사람은 흑석산맥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지만, 금소채가 동의한 만큼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석목이 이 길을 선택한 이유가 있었다. 물론 흉만의 네 부족, 그중 특히 열사부족과 상당한 악연이 있는 그였기에 흉만부족의 공격을 피하기 위한 것이 우선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또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흑석산맥은 야만족 영토를 가로로 꿰뚫는 거대한 산맥으로, 상당히 많은 사화산이 존재해 불의 기운이 충만한 곳이었다.

석목은 그동안 매일 새벽 해가 떠오를 때 흡일식을 수련하고, 저녁에는 적원화경과 탄월식을 상황에 맞게 수련해서 체내의 기배에 진기가 거의 가득 찬 상태였다.

이제 선천의 경지에 빠르게 오르기 위해서는 흑마문의 흑염곡(黑炎谷)처럼 불의 기운이 충만한 지역에 가야 했다.

일행은 북서쪽 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고, 그 뒤로는 더 이상 흉만부족이나 괴수의 습격을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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