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잊혀진 산맥
보름 후, 흑색산맥으로 들어가는 진입로.
이곳은 눈에 보이는 것은 돌이든 흙이든 전부 검은색이었다. 다른 야만족의 영토와 같이 매우 황량해서 식물은 거의 보이지 않았으며, 바닥 곳곳에는 파인 흔적들이 있었다.
“하하, 이곳이 흑석산맥인가? 과연 명실상부하구나.”
전웅이 주위를 둘러보며 비웃듯이 말했다.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어서 들어가.”
금소채가 전웅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의 말에 전웅이 살찐 목을 움츠렸다. 그 모습을 본 나머지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서둘러 산맥으로 진입했다.
야만족의 영토는 지형이 험한 탓에 인족의 영토에서 데려온 말들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더욱이 산맥에 들어서니 말들은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기 때문에 일행은 말을 버리고 이동하기로 했다.
“황량하다고 방심하지 마세요. 흑석산맥에는 수많은 독충과 괴수가 서식하고 있으며 간혹 자연재해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석목이 걸어가며 주의를 줬다.
그러자 세 제자는 그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주위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물론 석목은 독충과 괴수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그는 몸에 삼수흉망의 기운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들이 감히 덤벼들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줄곧 맥이 없던 채아는 산맥에 들어온 뒤로 날아오르고 활강하기를 반복하며, 독충을 잡는 등 신나게 놀고 있었다.
“네 앵무새는 상당히 특별하구나. 그 정도의 지능을 가진 영물은 흔치 않은데.”
금소채가 주위에서 날아다니는 채아를 보며 말했다.
“그저 말 많은 새일 뿐입니다. 탐색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더라면 절대 데리고 다니지 않았을 거예요.”
석목이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그 순간 그의 표정이 갑자기 변했다.
석목은 산맥에 진입한 이후 줄곧 채아와 시야를 공유하고 있었는데, 방금 채아의 눈을 통해 먼 곳에서 검은 구름이 날아오고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무슨 일이지?”
금소채가 석목의 표정을 보고 물었다.
“모래폭풍이 다가옵니다. 바람을 피할 동굴을 찾아야 해요!”
석목이 큰 소리로 말했다.
그의 말을 들은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다행히 흑석산맥에는 동굴이 많았다. 일행은 곧 주위의 산자락에서 동굴을 찾아 몸을 피할 수 있었다.
빠르게 다가온 모래폭풍은 일행이 동굴에 들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난 기세로 몰아쳤다.
모래바람이 온 하늘을 가리는 바람에, 주위는 해질 무렵처럼 어두컴컴해졌다. 폭풍에 휩쓸린 돌덩어리들이 산봉우리를 때리자 천둥 같은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석목 일행은 이동 중에 이미 두세 번의 모래폭풍을 마주쳤다. 그러나 이 정도로 커다란 규모는 처음이었다.
“모래폭풍의 규모로 보니 오늘은 더 이상 이동하지 못할 것 같다. 이곳에서 하루 쉬어갈 준비를 해라. 내일 다시 출발한다.”
금소채가 동굴의 입구를 보며 말했다. 그녀에 말에 모두 대답을 한 뒤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곳과 비슷한 동굴은 지금까지 오는 동안에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들이 들어간 동굴은 누군가 파낸 흔적이 분명하게 남아 있는 곳이었으며, 어디까지 통해 있는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버려진 광산의 갱도로 보였으며, 모습을 보아하니 버려진지 최소 수백 년은 된 것 같았다.
일행도 호기심에 찬 눈빛으로 동굴 내부를 살펴보았다.
“이 동굴, 그리고 이곳으로 오는 길에 보았던 산은 모두 버려진 영석 광산이다.”
“영석 광산!”
금소채의 말에 석목이 놀란 표정으로 외쳤다.
그가 성설궁에서 읽은 야만족의 서적에는 야만족 영토에 여러 금속 광산이 존재한다고 기록되어 있었을 뿐이다. 영석의 광산이 존재한다는 기록은 어디에서도 본 적 없었다.
“정말입니까?”
다른 세 사람 역시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이 사실은 종문의 숨겨진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다. 장로들만이 읽을 수 있으니 너희가 들어본 적이 없는 것도 당연하다.”
금소채는 계속해서 설명했다.
“기록에 따르면, 수천 년 전 야만족의 영토는 매우 비옥했다고 한다. 특히 오행 영석이 많이 배출되어 대륙 중앙의 종문에서도 사람을 보내 채취를 하곤 했지. 영석이 전부 채굴된 이후, 토지가 점점 생기를 잃으면서 이런 황량한 모습으로 바뀌게 된 것이야.”
그녀의 말을 듣고 석목은 용사의 문에서 봤던 풍경을 떠올리며 감탄했다.
수천 년 전의 야만족 영토는 아마 용사의 문에서 본 것처럼, 초목이 무성하고 푸르른 산과 깨끗한 물이 있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높은 경지에 올라 일반인보다 백 년 정도 더 살 수 있다고는 하지만, 이 세상과 비교하면 아주 보잘 것 없는 존재에 불과했다.
그 사실을 깨닫자 다들 기분이 살짝 가라앉았다.
그때, 줄곧 아무 말도 없이 앉아 있던 백수수가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패전에 하늘도 원망하고 신도 노하여,
전사들은 무참히 살해되어 들판에 버려졌네.
그들은 용맹하고도 전투에 뛰어나,
그 용감함과 강함은 범할 수 없네.
육체는 죽었으나 영혼은 살았으니,
그대 혼백은 망령 중의 영웅이라 일컬으리.”
비록 노랫가락은 구성졌으나, 그 노랫말 안에는 인생의 무상함이 담겨 있었다.
노랫소리에 감동한 일행은 하나둘씩 그녀의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금소채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살짝 넋을 놓고 동굴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노래가 끝나자 동굴의 분위기는 조금 활기를 띠었다.
“하하, 백 사매는 술법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노래도 잘 부르는군요.”
전웅이 웃으며 칭찬했다.
“이야기를 듣다가 고향의 노래가 생각나 조금 흥얼거렸을 뿐이에요.”
백수수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렇군요. 그러고 보니 아직 백 사매의 고향이 어딘지도 모르고 있었군요.”
전웅이 백수수에게 조금 다가가며 물었다.
두 사람은 작은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전웅은 거칠게 보이는 외모와는 다르게 재치가 넘치고 말을 잘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백수수가 몸을 떨며 깔깔 웃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본 막녕은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석목은 세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동굴의 깊은 곳으로 가서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석목의 어깨에 앉아 있는 채아는 이미 잠에 빠진 듯 눈을 감고 있었다.
곧 밖이 완전히 어두워지자, 전웅과 백수수도 대화를 멈추고 각자 자리를 찾아 휴식을 취했다.
잠시 뒤 조용해진 동굴 안에는 사람들의 조그만 호흡소리만 남았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석목이 갑자기 눈을 떴다. 그의 머릿속에 어떤 광경이 떠올랐다.
그것은 빨갛고 뜨거운 용암이 천천히 흐르는 거대한 지하 동굴의 모습이었다. 용암 안에서는 빨간 물고기들이 이리저리 헤엄을 치고 있었다.
그때 채아의 목소리가 석목의 머릿속에서 울렸다.
“어서 이리로 와. 동굴 깊은 곳에 좋은 물건들이 있어.”
석목은 주위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동굴 안은 손을 뻗으면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으나 그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른 일행은 모두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석목은 조용히 몸을 일으켜 동굴의 깊은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석목의 모습이 사라지자 벽에 등을 기대고 있던 금소채가 갑자기 눈을 떴다. 그녀는 석목이 걸어간 방향을 바라보더니 곧 몸을 일으켜 그를 쫓았다.
모두가 휴식을 취하는 곳에서 멀어지자 석목은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동굴의 깊이는 석목의 상상을 초월했다. 일 각 가까이 걸었는데도 끝에 도착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래로 뻗어 있는 동굴의 통로는 이리저리 꺾여 있었지만, 다행히 갈림길은 없어서 길을 잃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공기는 점점 뜨거워졌다. 깊은 곳에 용암이 흐르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석목이 반 각을 더 걸어가자 통로를 막고 있는 거대한 바위가 나타났다. 넓지 않은 틈 사이로 붉은 빛이 새어나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채아는 그 사이를 지나간 것이 분명했다.
물론 고작 바위덩어리가 석목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가 두 손으로 거대한 바위를 가볍게 잡아당겨 한 구석에 옮겨놓자 입구가 드러났다.
안으로 들어가자 미칠 듯이 뜨거운 열기가 그를 덮쳤다.
호흡을 할 때마다 폐에서 공기가 끓는 것처럼 뜨거웠다.
“석두, 왜 이제야 오는 거야!”
옆에서 날아온 채아가 석목의 어깨에 앉으며 짜증을 냈다.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견디기 어려웠던 석목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석목은 적원화경을 운기해 불의 기운을 체내로 흡수했다. 그러자 타는 듯한 열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너무 더워서 견디기 힘들었는데 이제 살겠어!”
채아가 날개를 펄럭이며 말했다.
“채아, 네가 말한 좋은 물건이 뭐야?”
석목은 채아의 쓸데없는 말을 무시하고 물었다.
“흑마문 제일의 제자라더니 보는 눈이 너무 없구나.”
채아가 석목을 흘겨보며 말했다. 그러나 석목이 눈을 부라리자 목을 살짝 움츠렸다.
“알겠어. 말하면 되잖아. 자, 저기 용암 속의 물고기가 보이지? 저것들은 용암에 천년 동안 쌓인 불의 정기가 응결되어 생겨난 영물이야.”
채아가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불의 정기라….”
석목이 눈을 빛내며 중얼거렸다.
그가 알기로, 불의 정기는 화속성 술사와 화속성 심법을 수련하는 무인이 꿈에서나 그리는 진귀한 것이었다. 불의 정기는 상급 이상의 화속성 영석에나 존재할 가능성이 있었다.
“석두, 그만 떠들고 우선 이 몸에게 한 마리를 잡아줘.”
채아가 애타게 말했다.
“너도 불의 정기를 흡수할 수 있어?”
석목이 물었다.
“당연하지. 나는 화속성 영물이야. 사실 주작이나 봉황과 비슷한 존재라고 할 수 있지….”
채아가 낯빛 하나 바꾸지 않고 자기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석목은 그런 채아의 자화자찬은 무시하고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손에서 흰색 빛의 사슬이 뻗어 나왔다.
빛의 사슬은 용암 속으로 파고들어가 젓가락만한 길이의 물고기 한 마리를 낚아 올렸다.
채아가 환호성을 지르며 입을 벌려 물고기를 받아먹으려 했다. 그러나 석목이 먼저 붉은 빛이 감도는 손으로 낚아챘다.
석목은 채아의 불만 가득한 외침을 무시하고 손에 들린 물고기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물고기의 몸은 반투명한 붉은색이었으며, 마치 새의 깃털처럼 가벼웠다.
물고기의 모양새를 다 관찰한 석목은 그것을 채아에게 던져주었다. 채아는 입으로 물고기를 낚아채 한 입에 삼켰다. 그러자 채아의 몸이 붉은 빛으로 반짝이더니 털 색깔이 조금 붉어졌다.
석목이 물고기를 한 마리 더 잡은 뒤 적원화경을 운기하자, 손에서 붉은 빛이 뿜어져 나와 물고기를 감쌌다.
물고기는 끊임없이 발버둥을 쳤지만 석목의 손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잠시 후, 물고기는 몸이 조각나며 불의 정기로 변해 석목의 체내로 흡수됐다.
그 기운은 석목의 몸에 들어간 순간, 적원화경이 이끄는 대로 단전의 기배 안으로 흡수됐다.
그러자 순간 기배의 크기가 커지며 색이 더욱 짙어졌다.
석목은 크게 기뻐했다. 고작 물고기 한 마리를 흡수했을 뿐인데, 보름 가까이 수련해야 이룰 수 있는 성과를 얻을 수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석두, 이곳은 내가 발견했으니 네 뱃속을 채울 생각만 하지 말고 내 몫을 먼저 챙겨줘.”
채아가 말했다.
석목은 언짢은 표정으로 채아를 한 번 바라보고는 물고기 몇 마리를 더 잡아 던져줬다. 빛의 사슬이 한 번 날아갈 때마다 물고기가 한 마리씩 딸려왔다.
바닥에 앉은 석목은 적원화경을 운기해 새로 잡은 물고기들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붉은 불의 정기가 그의 체내로 들어가서 단전의 기배에 흡수됐다. 타원형이었던 기배는 점점 커지며 동그래지더니, 천천히 회전하다가 순간 강력한 법력의 파동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