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150화 (150/916)

150화. 몽호(梦虎)

다음 날 이른 아침, 동굴 밖에는 모래폭풍이 여전히 거세게 몰아치고 있었다.

석목은 동굴 구석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석 사제, 물 한 통만 좀 줘.”

금소채가 갑자기 고개를 돌리며 석목에게 말했다.

그러자 석목이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제 물이 한 통 밖에 남지 않았어요.”

“물을 많이 챙겨온 것이 아니었어?”

금소채의 아름다운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정 내내 사저가 시도 때도 없이 씻으니 물이 빨리 떨어질 수밖에 없죠.”

석목이 입술을 실룩거리며 말했다.

“온통 먼지가 가득한 이런 곳에서 금 누나처럼 아름다운 분이 자주 씻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석목의 옆에 있던 채아가 금소채에게 아첨을 했다.

금소채가 살짝 웃더니 자신의 저장반지에서 청준과의 과핵을 꺼내 채아에게 던져주었다. 이 과핵은 그녀가 석목으로부터 강탈한 것이었다.

입으로 과핵을 받아낸 채아는 그것을 맛있게 쪼아 먹었다.

“마지막 한 통이라면 됐다. 수원을 찾은 후 마시도록 하지.”

금소채가 말했다.

“지도에 따르면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수원이 있어요. 구체적인 위치가 적힌 것은 아니지만 찾는데 문제는 없을 거예요.”

석목이 말했다.

석목과 금소채의 대화를 듣던 다른 일행들은 모두 깜짝 놀라서 석목을 바라보았다.

석목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여전히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웠지만, 미묘한 변화가 생긴 것이 느껴졌다. 그의 몸에서는 선천강자의 위엄이 간혹 풍겨 나왔다.

전웅과 백수수 역시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석 사숙, 기부를 열고 선천강자가 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백수수가 가장 먼저 일어나 예를 표했다.

“축하합니다. 석 사숙.”

막녕과 전웅 역시 급하게 일어나 예를 표했다.

“예의 차릴 필요 없습니다.”

석목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세 제자는 그제야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석목에게도 금소채와 같이 넓은 공간을 마련해주었다.

오시가 지나서 모래폭풍이 멈추자 일행은 다시 길을 재촉했다.

한 시진 후, 석목은 과거 야만족 영토에서의 경험을 살려 산골짜기에서 육장 둘레의 못을 찾아냈다.

못의 물은 한 눈에 봐도 상당히 맑았으며 주변도 깨끗했다.

석목을 제외한 네 사람은 빠른 걸음으로 못을 향해 걸어갔다.

“기다리세요!”

그때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손을 뻗어 그들이 못에 다가가는 것을 막았다.

“무슨 일이지?”

금소채가 물었다.

“채아, 네가 가서 주위를 한번 둘러봐.”

석목이 대답하지 않고 어깨 위의 채아에게 명령했다.

“석두, 채아 목말라….”

채아는 투덜거리려다가 석목이 눈을 부릅뜨자 즉시 날개를 펼쳐 날아갔다.

일 각이 지날 때까지 석목은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고 제자리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별 일 없는 것 같으니 물을 채우고 서둘러 출발하지.”

금소채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

세 제자가 각자의 물주머니를 들고 못을 향해 바삐 걸어갔다.

못에 가장 먼저 도착한 채아는 흥분한 듯 수면 위로 스쳐지나가며 발로 물보라를 일으켰다.

금소채도 못에 다가가 씻을 준비를 했다. 야만족의 영토는 너무 건조해서 피부에 좋지 않았다.

석목은 아무 말 없이 그들의 뒤를 쫓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언가 빠뜨린 것이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못에 도착한 금소채의 왼손 중지에 끼워진 반지가 은빛으로 반짝였다. 곧 커다란 나무 물통이 손에 나타났다.

그 순간, 물통을 막 못에 넣으려던 그녀의 전신에 있는 솜털이 곤두섰다. 시력이 좋은 그녀가 못의 바닥이 새하얀 해골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바로 그때, 그녀의 몸 뒤의 지면이 노란 빛으로 빛났다. 곧이어 노란 털에 검은 줄무늬를 가진 거대한 호랑이가 바닥을 뚫고 나와 그녀를 덮쳤다.

호랑이는 허공에서 날카로운 발톱이 자란 앞발을 휘둘렀다. 그러자 열 개가 넘는 반 장 길이의 조영(爪影)이 엄청난 기세로 금소채의 등을 향해 날아갔다.

“조심하세요!”

석목이 소리를 지르며 오른손으로 빠르게 수인을 맺자, 일 장 길이의 흰색 빛의 사슬이 호랑이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금소채의 반응도 매우 빨랐다. 들고 있던 물통을 던져버리고 몸을 돌리는 순간, 그녀의 손에는 어느새 검은 채찍이 들려 있었다.

그녀가 팔을 흔들자 검은 채찍이 허공에서 휘날리며 일 장 둘레의 검은 빛 장막이 나타났다.

쾅! 쾅! 쾅!

노란 빛이 연달아 충돌하자 검은 빛의 장막이 흔들리더니 순식간에 흩어져 사라졌다. 여전히 절반 가까이 남은 조영이 그녀의 몸에 충돌했다.

그러나 공격은 전신에 금빛이 흐르는 금소채에 몸에 닿자 미끄러운 얼음공에 부딪히기도 한 것처럼 방향이 꺾여 엉뚱한 곳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그녀의 전신을 감싼 금빛도 어두워졌다.

그때 발톱 위로 빛이 솟아난 거대 호랑이의 앞발이 이미 금소채의 목 지척까지 다가왔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빛의 사슬이 날아오더니 호랑이의 몸을 순식간에 묶었다.

어흥!

천지를 뒤흔드는 호랑이의 울음소리가 울리는 동시에 깨진 기환장이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그러나 금소채는 이 틈을 타 십 장 밖으로 벗어날 수 있었다.

호랑이는 석목과 금소채의 사이에 내려서서 흉흉한 눈빛을 뿌렸다.

석목은 그제야 그 호랑이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호랑이는 네 개의 눈이 있었으며, 미간에 기이한 부문이 새겨져 있었다. 몸에서 매우 강력한 기운을 뿜어내는 것을 보니 선천후기나 선천 대원만의 경지에 속하는 괴수였다.

거대한 호랑이가 나타나 금소채를 습격하고 석목에게 저지를 당하기까지의 시간은 고작 한두 번의 호흡 정도였다. 물가에서 물을 뜨던 다른 세 제자는 이제야 겨우 반응했다.

백수수가 주문을 외우자 파란 빛이 그녀의 몸을 감쌌다. 그대로 수면 위로 뛰어 올라간 그녀는 못의 중심으로 달려가 오른손의 법장을 흔들었다. 그러자 몇 척 높이의 물기둥이 솟아나 그녀를 위로 들어올렸다.

어느새 검을 든 막녕의 주위에는 공작이 꼬리를 편 것처럼 무수히 많은 파란색 검기가 나타났다가 곧바로 깨졌다. 안개로 변한 검기가 주위 몇 장 범위를 덮자 막녕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와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전웅은 무기를 꺼내들고 뒤로 조용히 물러났다.

바로 그때, 거대한 호랑이의 미간에 새겨진 부문에서 노란 빛이 반짝이더니, 곧 몸 전체가 노란 빛에 감싸였다. 뒤이어, 호랑이의 모습이 순간 땅속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본 석목은 놀라서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전 사형, 조심해요!”

수면 위에 떠 있던 백수수가 큰 소리로 외치며 석장을 맹렬하게 들어 올리자 파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전웅은 금소채와 팔 장 가까이 떨어진 못의 한 구석까지 후퇴해 있었다. 그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다가 백수수의 외침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 순간 그의 등 뒤에서 지면이 노랗게 빛나더니 호랑이가 다시 튀어나왔다. 호랑이는 몸을 맹렬하게 흔들며 놀라운 기세로 꼬리를 휘둘렀다.

전웅은 급하게 몸을 돌렸지만 피하기에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그는 별 수 없이 검은 빛을 뿜어내는 두 개의 철 막대기를 휘둘러 호랑이의 공격을 맞받아쳤다.

쾅!

무기와 호랑이의 꼬리가 충돌하는 순간, 전웅은 저항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이 몰아치는 것을 느꼈다. 손아귀가 흔들리며 전웅의 무기가 튕겨져 날아갔고, 그 역시 비틀거리며 뒤로 뒷걸음질 쳤다.

호랑이의 꼬리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전웅의 가슴을 향해 공격을 몰아쳤다.

바로 그 순간,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더니 전웅의 몸 앞에 파란색 얼음벽이 생겨났다.

퍽!

파란색 얼음벽이 깨지는 동시에 호랑이의 꼬리 역시 움직임을 멈췄다.

전웅은 겨우 한숨을 돌리며 작은 녹색 방패를 꺼내들었다. 그는 순식간에 일 장 가까이 커진 방패로 몸을 막으며 전속력으로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그 순간 금속이 충돌하는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다.

열 개가 넘는 조영이 녹색 방패와 전웅의 몸을 한 번에 찢고 지나가서 뒤의 바닥까지 파낸 것이다.

전웅의 몸이 토막 나며 사방으로 핏물이 흩뿌려졌다.

수면 위에 떠 있던 백수수는 그 광경을 보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줄곧 허공에서 선회하던 채아도 놀라서 울부짖으며 더 높은 곳으로 날아올랐다.

바로 그때, 반월형의 붉은색 검광과 검은색 채찍이 두 방향에서 호랑이를 향해 동시에 날아들었다.

석목과 금소채 두 사람이 빠른 속도로 호랑이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눈이 네 개 달린 거대한 호랑이의 몸이 노란 빛으로 반짝이더니 다시 모습을 감추었다. 검광과 채찍은 그대로 허공을 갈랐다.

쾅!

거의 동시에 파란색 안개 속에서 거대한 소리가 울리더니, 막녕이 안개 속에서 비틀거리며 나왔다.

그의 손에는 이미 파란 검이 들려 있지 않았고, 손바닥의 상처에서는 피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채찍과 검광이 다시 한 번 몰아치며 파란색 안개를 걷어냈다. 하지만 거대한 호랑이는 이미 그곳에 없었다.

물가에 도착한 석목과 금소채는 막녕을 가운데 두고 보호하며 협공 자세를 취했다.

“조심해!”

금소채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석목이 몸을 돌렸다. 바닥에서 뛰어오른 호랑이가 두 앞발을 휘두르자, 커다란 파공성과 함께 열 개가 넘는 조영이 그를 향해 몰아쳤다.

석목은 재빨리 부적을 사용했다. 그의 몸에 두꺼운 금빛 장막이 생겨났다.

동시에 그의 손에 쥐어진 운철흑도가 붉은 화염에 휩싸였다. 그가 팔을 휘두르자 반월형의 붉은 검광이 공기를 가르며 날아갔다.

쾅!

붉은 빛과 노란 빛이 허공에서 부딪히며 폭발했다. 하지만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남은 조영이 석목의 몸을 감싼 금빛 장막을 가격했다.

강력한 힘에 밀려 연달아 네 걸음을 물러난 석목이 가까스로 균형을 잡고 섰다. 그의 몸을 뒤덮은 금빛 장막은 어둡고 엷게 변해 있었다.

삼수흉망의 가죽으로 제작한 이 금강부의 위력은 거의 고급 부적에 필적했기에 다행히 호랑이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 상태를 봤을 때 두 번째의 공격은 막아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때 귀를 찌르는 날카로운 파공성이 들렸다. 동시에 팔뚝 두께의 채찍이 놀라운 속도로 날아와 거대한 호랑이를 내리쳤다.

그러나 채찍이 막 호랑이의 몸에 닿으려는 순간, 호랑이의 미간에 새겨진 부문이 다시 반짝였다.

쾅!

그때, 석목은 푸른빛에 싸인 삼 척 길이의 곤봉을 휘둘러 거대한 호랑이 아래의 바닥에 일 척 가량 깊이로 꽂아 넣었다.

퍽!

바닥에 들어가려던 호랑이의 몸은 운철곤봉과 부딪혔다. 곤봉은 다시 일 척 가량 바닥을 파고 들어갔고, 곤봉에 가로막힌 호랑이의 몸은 땅속으로 사라지지 못하고 멈췄다.

촤악!

그러자 순간 검은 채찍이 흐릿해지더니 여러 개로 갈라져 괴수의 몸을 단단하게 묶었다.

거대한 호랑이는 울부짖으며 채찍의 속박을 벗어나려고 했다. 그때 엄지손가락 두께의 빛의 사슬이 번개처럼 빠르게 날아와 거대한 호랑이의 몸을 다시 한 번 묶었다.

이어 석목은 거대한 호랑이의 등 위로 올라탔다. 그리고 옥처럼 하얗게 변한 두 주먹으로 호랑이의 머리를 미친 듯이 때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의 주먹이 닿기 직전 노란 빛이 호랑이의 몸을 뒤덮으며 보호했다.

그러나 선천진기를 주입한 쇄석권의 위력은 이미 만 근을 넘어섰다.

두세 번 호흡할만한 짧은 시간 사이에 호랑이의 몸을 감싼 노란 빛이 빠르게 어두워지더니 이내 흩어져 사라졌다.

퍽! 퍽! 퍽! 퍽!

연이은 타격 소리가 멎었을 때 호랑이의 머리는 완전히 묵사발이 나 있었다. 네 개의 눈 중에서 세 개가 튀어나왔으며 피가 사방으로 흩뿌려져 있었다.

호랑이의 거대한 몸은 축 쳐져서 몇 번 경련을 일으킨 뒤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제야 석목도 호랑이의 몸 위에서 내려오며 길게 숨을 내뱉었다.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세 사람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석목은 진묘계에서 붉은색 가죽 주머니를 꺼냈다. 주머니를 거대한 호랑이의 머리로 향하고 체내의 법력을 끌어올리자 수혼 주머니에서 흡입력이 생겨났다.

커다란 노란색 수혼이 거대 호랑이의 머리에서 솟아나와 석목의 수혼 주머니 안으로 들어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