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잠시 위험에서 벗어나다
석목을 날려버린 찰고 역시 채찍에서 전해지는 커다란 힘에 의해 몸이 흔들렸다.
“삼수흉망이라니, 몸속에 비밀을 많이도 숨겨놨구나!”
금세 몸을 가눈 찰고가 콧방귀를 뀌었다. 그리고 석목이 깔려 있는 돌무더기를 향해 날아갔다.
바로 그때, 그의 옆에서 검은 연기와 함께 연나가 다시 나타났다. 영혼의 화염이 격렬하게 파동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아 화가 머리끝까지 난 것 같았다.
연나는 찰고의 가슴을 향해 뼈창을 내질렀다. 그것은 이전보다 몇 배 이상이나 강력한 검은 빛을 뿜어내고 있다.
그러나 찰고는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이미 연나와 여러 번 공방을 펼치면서 성향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찰고는 줄곧 주위의 기척을 예의주시하고 있었고, 뼈창이 날아온 순간 이미 몸을 옆으로 피하고 있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연나가 입을 벌리며 소리 없는 포효를 질렀다. 찰고는 보이지 않는 칼날이 머리를 헤집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순간, 찰고는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움직임이 살짝 느려졌다.
연나는 그 잠깐의 틈을 놓치지 않고, 찰고의 왼팔에 뼈창을 깊게 쑤셔 박았다. 뼈창의 검은 연기가 흘러들어가며 찰고의 팔 절반이 순식간에 검게 물들었다.
찰고는 팔이 저릿해지는 것을 느끼고, 눈가에 핏대를 세우며 포효했다. 그러자 그의 몸에서 푸른빛이 터져 나오며 몸 뒤에 푸른 뱀의 법상이 나타났다.
뱀이 연나를 향해 꼬리를 거세게 휘둘렀다. 찰고의 몸에서 뼈창을 뽑은 연나는 뱀의 꼬리에 맞기 직전 모습을 감췄다,
하지만 이전보다 움직임이 조금 느려진 탓에, 연나는 사라지기 직전 꼬리의 풍압에 맞아 왼손의 뼈에 손상을 입었다.
찰고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번에 입은 왼팔의 상처는 너무 깊었고, 이전보다 괴이한 기운이 체내로 훨씬 많이 흘러 들어와서 팔이 거의 마비됐다.
상처를 통해 머릿속까지 침투한 괴이한 기운이 찰고를 괴롭혔다. 머릿속에 두 차례나 충격을 받은 그는 급격한 피로와 함께 눈앞에서 별이 반짝이는 것 같은 환각을 느꼈다.
숨을 헐떡이던 찰고는 흰색 단약을 꺼내 먹었다. 그리고 안색이 조금 좋아지자 왼팔을 보며 상처를 치료하려 했다.
쾅!
그때 절벽 아래의 돌 더미가 폭발하더니 흩날리는 돌조각 사이에서 석목이 튀어나왔다.
미처 왼팔을 치료하지 못한 찰고는 오른팔을 휘둘렀다.
순간 비늘까지 뚜렷하게 보일 정도로 모습이 선명해진 법상이 입을 크게 벌리더니 두꺼운 푸른 광선을 뿜어냈다. 그 광선은 순식간에 수많은 가닥으로 나뉘어져 석목을 덮쳤다.
이때 석목의 표정이 굳어졌고, 찰고의 공격 속도가 너무 빨라 도저히 피할 틈이 없었다.
석목은 체내의 진기와 토템의 힘을 밖으로 뿜어냈다. 그러자 그의 몸 주위로 검은 빛과 붉은 빛의 보호막이 생겨났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삼수흉망의 가죽으로 제작한 금강부를 꺼내들었다. 그것을 사용하자 마치 금색 갑옷을 입은 것처럼 석목의 피부 위로 금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석목은 금강부를 사용하는 동시에 입으로는 주문을 외웠다. 그의 손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가장 바깥쪽에 하얀 보호막이 한 겹 더 생겨났다.
수많은 부문이 회전하며 밝게 반짝이는 하얀 보호막은 유난히 견고해 보였다.
이 보호막은 석목이 최근 온신술 7단계에 오르며 새롭게 익히게 된 기령순(气灵盾)이라는 술법이었다.
그렇게 석목이 기령순까지 시전했을 때 찰고의 공격은 이미 그의 눈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쾅! 쾅! 쾅!
석목은 푸른빛이 연달아 폭발하며 생겨난 폭풍 속에 순식간에 파묻혔고, 기령순과 두 겹의 호신강기, 금강부가 연이은 충격에 의해 마치 종이처럼 하나하나 찢겨져 나갔다.
대적할 수 없는 거대한 힘에 휩쓸린 석목은 다시 한 번 날아가며 입에서 선혈을 토해냈다.
다행히 보호막들이 위력을 경감시켜준 덕분에 가슴의 비늘이 완전히 파괴되지는 않았지만, 오장육부가 충격에 터질 듯 뒤틀렸다.
대력마원탈태결 5단계에 올라서 강화된 육체를 가지지 않았더라면 내장이 전부 파열됐을지도 몰랐다.
이때 피범벅이 된 석목이 힘없이 바닥에 처박혔다. 그의 찢어진 옷 사이로 보이는 가슴의 비늘은 대부분 파괴되어 성한 부분을 찾기 힘들었다.
석목이 자신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찰고는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석목의 모습은 겉보기에는 상당히 처참했지만, 외상만 입었을 뿐 내상은 없는 상태였다.
그 순간, 찰고는 잔인한 표정을 지으며 팽팽해진 채찍을 석목의 머리를 향해 날렸다.
지계강자의 강력한 힘이 실린 채찍은 석목이 반응할 틈을 전혀 주지 않고 순식간에 다가왔다.
힘겹게 몸을 일으키던 석목은 바람을 가르며 다가오는 채찍을 보았지만, 이미 피할 기력이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위기일발의 순간, 연나가 나타나 석목을 멀리 떠밀었다.
빠각!
원래 금이 가 있던 연나의 왼팔이 채찍에 꿰뚫리며 산산조각 났다.
찰고가 팔을 들어 올리자 푸른빛을 뿜어내며 떠오른 채찍이 다시 연나를 향해 날아갔다.
연나는 뼈창을 쥔 오른팔을 재빨리 휘둘러 날아오는 채찍을 정확히 찔렀다.
팔이 하나밖에 남지 않은 연나가 휘두르는 창의 위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지만, 채찍의 궤적을 바꾸기에는 충분했다. 창과 채찍이 충돌하는 순간 살짝 방향이 틀어진 채찍이 연나의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순간, 빠르게 창을 거두고 석목 곁으로 이동한 연나가 오른팔로 그를 감싸 안았다.
그와 동시에 연나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와 주위를 덮었고, 둘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졌다.
연나와 석목이 있던 자리에 다가온 찰고는 둘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낯빛을 흐렸다.
그때, 찰고가 갑자기 비틀거리며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렸다.
잠시 시간을 지체한 사이에 왼팔로 침투했던 검은 연기가 어느새 어깨까지 퍼져 온 팔이 까맣게 변해 있었다.
이마에 핏발이 선 찰고는 깊게 호흡을 한 후, 손가락 길이의 붉은색 못 여덟 개를 꺼냈다.
푹! 푹! 푹!
찰고는 재빠르게 손을 움직여 왼팔의 상처 주위에 못을 하나씩 꼽았다.
마치 팔의 검은 연기를 빨아들이기라도 하듯, 붉은 못이 점차 검은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반면 검은 연기가 사라지면서 찰고의 왼팔은 거의 원래의 색을 되찾았다.
한숨을 돌린 찰고는 색이 다른 두 개의 단약을 꺼내 먹었고, 점차 그의 안색이 회복됐다.
상태가 호전된 찰고는 매서운 눈으로 주위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에는 어느새 노란 빛이 감돌고 있었으며, 그중에서도 유난히 노란 코로 주위의 공기를 끊임없이 흡입하고 있었다.
잠시 후, 찰고는 한쪽 방향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 * *
어느 작은 골짜기에서 파동이 일더니 연나와 석목이 나타났다.
주위를 둘러본 석목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얼마 전, 선천등급 호랑이 괴수의 수혼을 먹은 연나는 경지가 한 단계 더 상승했고, 이제는 선천후기의 고수와 대등한 힘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이 석목이 감히 찰고를 홀로 상대하겠다고 나설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연나에게 순간 이동 능력까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석목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연나는 석목을 내려놓더니 갑자기 오른팔을 뻗어 석목의 허리춤에 걸려 있는 수혼 주머니를 떼어갔다.
연나는 곧바로 입을 벌려 주머니 안의 수혼을 잇따라 집어삼켰다.
이때 석목은 멍한 표정을 지을 뿐 연나를 제지하지는 않았다. 그 수혼은 어차피 연나를 위해 준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연나와 정신이 연결되어 있는 석목은 연나가 현재 굉장히 분노한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수혼을 흡수하자 살짝 어두워졌던 연나의 영혼의 화염이 다시 강렬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최상의 상태까지는 아니지만 팔 할 가량은 기력을 회복한 것 같았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는 연나의 몸에서 선천후기를 넘어서는 무형의 위압감이 은은하게 뿜어져 나왔다.
석목은 문득 눈앞의 연나가 무척이나 낯설게 느껴졌다.
고작 수련자의 실력을 가진 둔하고 작은 해골이 지계강자를 상대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에 오르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국 사숙이 저승에서 이 광경을 봤다면 눈동자가 휘둥그레졌을 것이다.
바로 그때, 석목의 머릿속에서 채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석두, 어서 도망가. 그 자가 다시 쫓아오고 있어!”
채아의 시야를 통해 머릿속에 떠오른 장면을 본 석목의 표정이 굳었다.
찰고가 이곳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날아오고 있었다. 이 정도 거리라면 금세 따라잡힐 것이 분명했다.
순간 연나가 영혼의 화염을 반짝였다. 연나 역시 채아와 석목의 대화를 들을 수 있는 것 같았다.
석목의 머릿속에 갑자기 연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자가… 내 왼팔을 부쉈다…. 죽일 거다….”
석목이 의아한 표정으로 연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자신 있어?”
“조금만 시간을… 벌어라….”
말을 마친 연나는 검은 연기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연나의 말이 무슨 뜻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석목의 뒤에서 맹렬한 살기가 압박해오기 시작했다.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어느 정도 기력을 회복한 석목은 즉시 도망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석목이 멀리 도망가기도 전에, 푸른 광선이 등 뒤에서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날아왔다.
놀란 석목이 옆으로 움직이며 찰고의 공격을 피했다.
쾅!
석목이 서 있던 자리에 커다란 구덩이가 생기며 돌가루가 날렸다.
그 순간 찰고가 석목의 머리 위를 지나 강하게 착지했다. 그러자 그가 강하게 내딛은 발아래의 지면이 거미줄처럼 갈라지며 먼지가 일었다.
석목이 굳은 표정으로 발걸음을 멈췄고, 앞쪽의 먼지가 흩어지며 찰고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의 모습은 방금 전과 크게 달라져 있었다. 마치 푸른색 갑옷을 입은 것처럼 몸에 손바닥 크기의 푸른 뱀 비늘이 돋아 있었다.
햇빛을 반사해서 눈부시게 반짝이는 그 푸른색 비늘은 매우 단단해보였다.
괴수화를 한 찰고에게서 이전보다 더욱 위압적인 기운이 파도처럼 밀려와 석목을 압박했다. 그의 손에 들린 푸른빛이 감도는 채찍은 마치 구렁이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석목은 무의식적으로 운철흑도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찰고는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주위를 빠르게 둘러보더니, 마지막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내가 너희를 얕본 것을 인정한다.”
찰고가 잔인하게 웃으며 석목을 향해 다가왔다. 그의 손에 들린 채찍은 점점 더 강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원래 찰고는 고작 선천무인을 상대로 괴수화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지계의 괴수인 청명해서(青冥海蛇)의 힘을 빌려 괴수화를 할 경우 정신력의 소모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이제 푸른 비늘의 보호를 받는 이상, 연나가 기습을 하려 해도 뚫기가 쉽지 않을 것이었다.
석목은 금강부를 사용한 뒤 운철흑도를 분리해 흑도와 곤봉으로 나누었다.
“꼬마야, 죽음을 받아들여라!”
찰고가 소리를 지르며 석목을 향해 팔뚝만큼 두꺼워진 채찍을 휘둘렀다.
몇 장 길이에 달하는 채찍의 잔영이 석목의 머리 위를 가득 덮었다.
석목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몸을 피하지 않고 법력을 끌어올렸다. 운철흑도와 운철곤봉이 동시에 빛을 뿜어내며 수많은 붉은 검영과 푸른 곤영(棍影)을 만들어냈다.
그가 시전한 도법은 풍치도법이었으며 곤법은 칠살곤법이었다.
겹겹이 휘몰아치는 검영과 놀라운 기세의 곤영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려오는 채찍의 잔영에 정면으로 맞섰다.
순간 검영과 곤영은 순식간에 채찍의 잔영 사이에 파묻혔다.
이겨낼 수 없는 거대한 힘이 밀려드는 것을 느낀 석목은 흑도와 곤봉을 몸 앞으로 교차하며 전신의 진기를 뿜어냈다.
쾅!
석목이 양손에 들고 있던 무기가 튕겨져 나갔고, 동시에 그의 몸을 덮고 있던 붉은색과 검은색 호신강기와 금강부의 보호막이 주체할 수 없이 떨리더니 거의 동시에 깨졌다.
이어서 석목의 전신을 감싼 비늘 대부분이 파괴되면서 전신의 뼈가 부러졌다. 선혈이 사방으로 튀고 그의 두 다리는 바닥 아래 깊숙이 박혔다.
찰고는 자신의 공격을 막아낸 석목을 멍청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곧 차갑게 웃으며 채찍을 던졌고, 날아간 채찍은 석목의 몸을 감아올려 끌고 갔다.
찰고는 채찍에 묶여 끌려온 석목의 목에 단검을 겨누었다.
“지금이다!”
바로 그 순간, 석목의 왼손에서 푸른빛이 연달아 반짝였다.
그와 동시에 찰고의 발아래서 족히 열 개가 넘는 두꺼운 덩굴이 지면을 뚫고 나와서 그의 몸을 얽매기 시작했다.
이어 석목의 오른손에서 날아간 붉은색 부적들이 활활 타오르는 화염의 창으로 변해 천지를 뒤덮었다.
석목은 자신이 가진 화염창 부적을 거의 전부 사용했다.
가죽 부적지로 제작한 스무 개가 넘는 중급 술법의 공격은 아무리 지계의 강자라 해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러자 찰고는 경멸하듯 웃었다. 그리고 은빛으로 빛나는 단검을 휘둘러 화염의 창을 하나씩 베어나갔다. 자신의 몸을 얽매고 있는 덩굴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