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혼신의 일격
은빛과 붉은빛이 한데 섞여 잇따라 폭발했다. 이어 불의 파도가 연속으로 일어나며 주위가 마치 붉은 불바다처럼 변했다.
바로 그 순간, 주먹만큼 커다란 검은 쇠공이 파공성을 내며 불의 바다를 가르고 날아갔다.
찰고는 왼손에 든 단검을 휘둘러 쇠공을 쳐내려 했다.
쩡!
단검을 타고 전해지는 거대한 힘을 느낀 찰고의 얼굴이 굳었다.
그것은 평소의 그라면 쉬이 받아낼 수 있는 위력이었으나, 연나에게 왼팔을 공격당한 탓에 힘이 다소 부족한 상태였다. 그는 쇠공을 쳐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거대한 힘이 체내로 밀어닥치는 것을 느꼈다.
평소였다면 뒤로 몇 걸음 물러나며 힘을 중화시켰겠지만, 덩굴에 몸이 속박당해 있는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순간 찰고의 전신의 기혈이 뒤틀렸다.
석목은 자신을 구속한 채찍이 살짝 느슨해진 틈을 타, 몸을 움츠려 속박에서 벗어났다.
이어 전신에 상처를 입은 석목은 바닥에 떨어지며 고통에 이를 악물었지만, 잠시도 머뭇거릴 엄두를 내지 못하고 몸을 돌려 도망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뒤에서 분노가 가득한 포효가 들려왔다.
“꼬마야, 넌 죽었다!”
순간 찰고의 몸에서 푸른빛이 강하게 뿜어져 나오더니 그의 몸을 얽매고 있던 덩굴이 전부 터졌고, 몸이 자유로워진 찰고는 즉시 석목을 쫓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 찰고의 뒤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그 속에서 연나가 귀신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연나의 전신은 하얀 화염에 감싸여 있었으며, 하얗게 타오르는 화염 속에서 오른팔이 눈부신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연나는 오른손으로 주먹을 강하게 쥐고 찰고의 등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주먹을 내질렀다.
등 뒤에서 소름끼치는 한기가 덮쳐오는 것을 느낀 찰고는 크게 놀라 몸을 피하려 했다.
그때 연나가 갑자기 입을 쩍 벌리자, 남색 영혼의 화염 일부가 입에서 날아가더니 찰고의 머릿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그 순간, 찰고의 몸이 굳어졌고, 그의 몸을 보호하던 푸른빛이 거세게 흔들리더니 곧바로 흩어져 사라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연나가 주먹을 쥔 손을 살짝 펴서 찰고의 등을 찔렀다. 연나의 손을 감싼 하얀 화염과 닿은 푸른 비늘이 눈 녹듯이 녹아내렸다.
푹!
연나의 손이 찰고의 왼쪽 가슴을 뚫고 나왔고, 손에는 찰고의 빨간 심장이 쥐어져 있었다.
연나가 영혼의 화염을 반짝이며 손에 힘을 주자 찰고의 심장이 그대로 터져버렸다.
찰고는 밑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숙여 가슴을 뚫고 나온 해골의 손을 보았다. 이어 힘겹게 고개를 돌려 등 뒤의 연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연나가 손을 뽑아내자 찰고가 입에서 피를 뿜어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찰고의 기운이 빠르게 흩어졌다. 아무리 지계의 존재인 그라 해도 심장이 터졌으니 살 방도가 없었다.
“연나!”
그때 등 뒤에서 벌어진 상황을 확인하고 급하게 돌아온 석목이 놀란 표정으로 연나를 바라보았다.
지계의 존재인 찰고가 연나의 일격에 이렇게 무력하게 쓰러지다니…. 석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랐다.
찰고가 쓰러지자 연나의 전신에서 타오르던 하얀 화염이 빠르게 사그라졌다. 연나는 비틀거리며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석목은 얼굴을 굳히며 연나의 곁으로 뛰어갔다.
바로 그때, 석목의 머릿속에 채아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석두, 조심해!”
죽은 줄 알았던 찰고가 꼼짝도 하지 않고 쓰러져 있다가 갑자기 머리를 쳐들고 잔인하게 웃었다.
“같이 죽자!”
그 순간 찰고의 가슴과 등, 목이 푸른색, 붉은색, 노란색으로 빛났다.
이어 수혼의 환영 세 개가 몸 밖으로 날아올랐다. 하나는 집채만 한 크기의 푸른색 뱀이었고, 다른 하나는 삼 장 길이에 등에 날개가 달린 뱀, 또 하나는 길이가 일 척 밖에 되지 않고 눈이 없는 노란색 뱀이었다.
세 수혼은 석목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석목은 찰고와 겨우 일 장 밖에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수혼들은 거의 눈 깜짝할 사이에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바로 그 순간, 연나의 입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흡입력이 생겨났다. 세 수혼 중 크기가 가장 작은 노란색 뱀이 그 힘에 끌려가서 연나에게 한입에 삼켜졌다.
그 사이 다른 두 환영은 석목의 체내로 흡수되고 있었다.
수혼을 하나 삼키면서 영혼의 화염이 다시 풍성해진 연나가 찰고의 머리를 손으로 쥐었다.
퍽!
찰고의 머리가 마치 수박처럼 터지면서 녹색 빛의 구가 떠올랐다. 찰고의 영혼이었다.
빛의 구에는 연나가 날려 보냈던 남색 영혼의 화염이 붙어 있었다.
빛의 구는 멀리 날아가려 했지만, 연나가 입을 벌리자 다시 거꾸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휙!
빛의 구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고, 영혼의 화염과 함께 연나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연나의 몸속에서 비명소리가 어렴풋이 들리더니 곧 조용해졌다.
영혼을 하나 더 삼키자 연나의 영혼의 화염은 더욱 커졌다. 하지만 그 사이 석목의 몸은 나무토막처럼 뻣뻣하게 굳어서 쓰러지고 있었다.
연나는 다급하게 손을 뻗어 석목을 받아낸 뒤, 잠시 머뭇거리다가 천천히 바닥에 눕혔다.
“석두가 어떻게 된 거야?”
허공에서 급강하해서 내려온 채아가 석목의 옆에 내려앉으며 물었다.
연나는 채아를 완전히 무시하면서 석목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 * *
석목은 끝이 없는 암흑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는 자신이 혼돈의 공간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위의 모든 것이 흐릿했으며, 곳곳에서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석목은 현재 사람의 모습이 아닌 하얀 빛으로 변해 있었다. 그의 옆에는 커다란 삼수흉망의 환영이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석목은 주위를 둘러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바로 그때, 주위의 안개가 넘실대더니 다른 구렁이들이 나타났다.
그중 하나는 전신에 하얀 빛이 감돌고 있었고 등 뒤에 날개가 달려 있었다. 그 위세는 삼수흉망에 뒤지지 않았다.
다른 하나는 푸른 비늘을 가진 더욱 커다란 구렁이었다. 그 크기는 거의 삼수흉망의 두 배에 달했으며, 선천등급을 훨씬 넘어서는 지계의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런, 찰고의 수혼이군!”
놀란 석목이 정신을 잃기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가 뭔가 깊게 생각하기도 전에 두 구렁이가 입을 크게 벌리고 석목을 향해 흉흉한 기세로 덮쳐왔다.
그 순간, 석목 옆에 있던 삼수흉망이 커다랗게 포효하며 앞으로 나섰다.
삼수흉망은 두 구렁이보다 체구가 약간 작았지만 용감하게 맞섰다. 거대한 세 구렁이가 한데 엉켜 서로 물어뜯기 시작했다.
그러나 삼수흉망은 금세 열세에 처했고, 모습이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본 석목은 마음이 급해졌다. 그러나 지금의 그로서는 도울 방법이 전혀 없었다.
그때, 푸른 구렁이가 몸을 비틀면서 꼬리를 휘둘러 삼수흉망과 붉은 구렁이를 한꺼번에 멀리 날려버렸다.
이어 푸른 구렁이가 고개를 돌려 흥분한 눈빛으로 석목을 향해 달려들었다.
삼수흉망은 석목의 곁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붉은 구렁이가 필사적으로 물고 늘어지는 바람에 여의치 않았다.
이때 푸른 구렁이는 커다란 입을 벌려 석목을 물어뜯으려 했다.
석목은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구렁이에게 물리거나 잡아먹힌다면 혼이 소멸될 것이라는 강렬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석목의 영혼에서 매우 흉포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 기운은 석목의 몸에서 한 줄기 빛처럼 쏘아져 나와 하얀 원숭이의 모습으로 변했다.
원숭이를 본 푸른 구렁이가 공포에 질려서 즉시 몸을 돌려 도망가려 했다.
그러나 원숭이는 고개를 젖히고 한 차례 포효를 한 뒤 푸른 구렁이를 향해 거세게 주먹을 날렸다.
그러자 푸른 구렁이의 뒤에서 파동이 일며 소용돌이가 생겨났다. 소용돌이가 거세게 회전하자 푸른 구렁이의 몸이 산산이 조각났고, 곧 푸른빛으로 변해 원숭이의 하얀 소용돌이에 섞여들었다.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붉은 구렁이도 흰 원숭이가 뿜어내는 위압감을 느낀 듯 몸이 굳었다.
삼수흉망은 흰 원숭이의 출현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듯, 세 개의 머리로 붉은 구렁이의 몸을 동시에 물어뜯어 세 토막을 냈다.
흰 원숭이는 두 팔을 흔들며 무언가 행동을 하려 했다. 그러나 갑자기 모습이 흐릿하게 비틀리더니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흰색 소용돌이와 함께 사라졌고, 소용돌이가 있던 자리에는 푸른빛만 홀로 남아 둥둥 떠 있었다.
석목은 놀란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흥분한 삼수흉망은 소리를 지르며 토막 난 붉은 구렁이를 잡아먹고 나서, 가운데 머리의 입으로 푸른 구렁이의 잔해마저 흡수했다.
연달아 두 개의 수혼을 삼킨 삼수흉망의 몸에서 검은 빛이 터져 나오더니 네 번째 머리가 자라났다.
그뿐만 아니라 금방이라도 다섯 번째 머리도 나올 것처럼 그 자리가 불룩 튀어나와 있었다.
그 광경을 본 석목은 매우 기뻤다. 그리고 그 순간 눈앞이 까매지는 것을 느끼며 다시 기절했다.
천천히 잠에서 깨어난 석목은 시끄러운 목소리를 듣고 눈살을 찌푸렸다.
“…너는 무력의 화신이 분명해. 나 역시도 석두 주인의 소환수지만 너와 비교하면 달빛 아래 반딧불이 같이 하찮아….”
“빛이 나는 네 앞에서 나는 그저 한 마리 나약하고 추한 앵무새일 뿐이야... 하지만 주인에게 조금은 쓸모가 있어.”
“그러니 손의 화염을 조금만 멀리 떨어뜨려주시면 안 될까? 나약한 내 몸은 그 화염에 살짝 닿기만 해도 구워질 거라고… 으악!”
시끄러운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채아였다. 채아의 목소리에는 비굴함이 가득했으며, 때때로 처절한 비명소리를 내질렀다.
눈을 뜬 석목은 굉장히 피곤하고 몸이 무거웠다.
그는 억지로 정신을 다잡고 고개를 돌려 주위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누워 있는 자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머리 없는 찰고의 시체가 놓여 있었다.
석목의 옆에 서 있는 연나는 몸이 완전하게 회복되어 이전보다 훨씬 강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연나는 회복된 왼팔로 채아의 다리를 잡은 채, 하얗게 타오르고 있는 오른손을 채아의 몸 주위에서 놀리듯 흔들고 있었다. 놀란 채아는 꽥꽥 소리를 지르며 날개를 끊임없이 퍼덕였지만 발이 잡혀 있어서 도망갈 수가 없었다.
석목이 깨어난 것을 발견한 연나가 채아를 던져버리고 즉시 그의 곁으로 달려왔다.
석목은 멍청한 표정이 되었다. 방금 전까지는 연나가 자신을 등지고 있어서 알아채지 못했는데, 이제 보니 연나의 영혼의 화염이 짙은 남색으로 변해 있었다.
“연나, 너….”
석목은 이런 상황이 낯설지 않았다. 영혼의 화염의 색이 변했다는 것은 연나가 더욱 강한 경지에 올랐다는 뜻이었다.
이제 연나는 선천경지의 최고봉에 올라 지계의 경지까지 겨우 한 단계를 남겨두고 있었다.
석목에게 있어서는 좋은 일인 게 분명했지만, 그는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다. 연나의 경지가 오르는 속도는 실로 놀라웠다. 계속 이렇게 진행된다면 자신이 주인으로 인정을 받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나는 석목을 위아래로 바라보며 안심한 듯 영혼의 화염을 반짝였다.
그리고 석목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즉시 검은 안개 사이로 사라졌다. 사령계로 돌아간 것 같았다.
석목은 멍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석두, 드디어 깨어났구나. 계속 걱정했어.”
연나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채아가 그제야 날아와 석목의 어깨에 앉았다.
“그래, 난 휴식을 취할 테니 망 좀 봐줘.”
석목이 말했다.
채아는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피투성이인데다 피곤해 보이는 석목의 모습을 보고는 날개를 펼쳐 하늘로 날아올랐다.
석목은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천천히 심법을 운기하기 시작했다.
지금 그는 몸 구석구석에 부상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 단전의 진기가 바닥나 있었다. 또 정신력을 과도하게 사용한 탓인지 머리도 어질어질했지만, 다행스럽게도 내상을 입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