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불의를 목격하다
석목은 깊게 호흡을 하다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찰고의 시체 옆으로 걸어갔다.
그는 한쪽에 떨어져 있는 푸른 채찍과 단검을 주워들어, 그것들을 자세히 살펴보고는 매우 기뻐했다.
이 푸른 채찍은 그의 운철흑도에 새겨져 있는 것보다 더 복잡한 술법진이 새겨진 상급 법기였다.
게다가 단검 역시 흔하게 구할 수 없는 중급 법기였다.
석목에게는 필요 없는 물건이었지만, 가져다 판다면 상당한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이 두 개의 법기 외에도 바닥에는 수혼 주머니가 하나 떨어져 있었지만, 그 안은 이미 텅텅 비어 있었다.
잠시 어리둥절하던 석목은 갑자기 경지가 크게 오른 연나를 떠올리고 어떻게 된 일인지 깨달았다.
세 물건을 챙긴 뒤 계속 찰고의 시체를 뒤지던 석목이 그의 왼손으로 시선을 돌렸다. 손가락에는 은은한 빛을 뿜어내는 회색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석목은 그 반지를 뽑아 자신의 피를 떨어뜨린 뒤 즉시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역시나 그 반지는 저장법기였다. 석목의 진묘계보다는 공간이 상당히 작았지만, 그렇다 해도 매우 희귀한 보물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석목은 저장반지의 절반 가까이 물건이 차 있는 것을 보고 기뻐했다.
그가 손을 흔들어서 반지 안에 있는 물건을 전부 바닥에 쏟아보니, 그중 대부분은 각종 상급 광석이었다.
석목은 광석에 대해서 상당히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안에 있는 것들이 법기를 만들기 위한 광석이며, 매우 진귀해서 가치가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반지 안에는 광석 외에도 금덩어리와 약병, 서적, 옥간, 그리고 여러가지 색의 영석들이 들어 있었다.
또 약병에는 해독 단약이 들어 있는 한 병 외에는 전부 회복 단약이 들어 있었다.
석목은 야만족의 단약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어디에 사용하는 것인지는 대략적으로만 판별할 수 있었다.
금덩어리는 최소 삼백 만 은자의 값어치는 되어 보였다. 그리고 열 개가 넘는 영석 사이에는 중급 수속성 영석과 화속성 영석이 각각 한 개씩 들어 있었다.
석목은 그것들을 몽땅 자신의 진묘계에 넣은 후 서적을 들고 읽기 시작했는데, 서적의 내용은 별 것 없었다. 지리에 관한 설명과 대륙의 야사가 기록되어 있는 책이었다.
마지막으로 옥간을 들어 이마에 가져다 댄 석목은 순간 기쁜 표정을 지었다. 옥간에는 야만족 영토의 지도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현재 석목이 위치한 흑석산맥의 상황 역시 매우 자세히 표기되어 있었다. 이 지도만 있으면 야만족 영토를 훨씬 수월하게 지나 갈 수 있을 듯했다.
석목은 가볍게 숨을 뱉으며 마음을 가라앉힌 후 나머지 물건들도 전부 진묘계에 넣었다.
그 후 찰고의 시체를 태워버린 석목은 안전한 곳을 찾아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회복단약을 한 알 복용한 뒤, 가슴의 상처에 회춘부를 두 장 붙였다.
* * *
사령계의 그리 크지 않은 어느 분지.
그 한가운데에서 연나가 뼈창을 들고 서 있었다.
연나의 주위에는 이백 여 구는 되는 해골의 잔해 더미가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한 더미를 조립하면 하나의 온전한 해골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고, 상태가 매우 온전한 것으로 보아 전투로 인해 파괴된 것 같지는 않았다.
컴컴한 하늘에는 여전히 열한 개의 핏빛 달이 걸려 있었지만, 그중 하나의 달빛은 다른 것에 비해 확연히 어두웠다.
* * *
한 시진 후, 석목은 어느 언덕의 비탈길에서 먼 서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에는 황금색 석양이 걸려서 찬란하고 부드럽게 만천하를 비춰주고 있었고, 석목의 뒤에서는 끊임없이 굽이치는 흑색산맥이 석양을 받아 금빛으로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지계의 존재를 쓰러뜨리다니 정말 대단해! 국돼지보다도 열 배, 아니, 백 배는 더 대단해.”
석목의 어깨 위에서 채아가 날개를 펄럭이며 말했다.
“내가 죽인 것이 아니라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
“그 해골이 죽인 것 역시 네가 죽인 거나 마찬가지지. 너를 따르기로 한 건 정말 잘한 선택인 것 같아!”
“그녀는 해골이 아니라 연나야.”
석목이 시선을 거두고 언덕 아래로 내려가며 말했다.
“해골이 널 안고 있는 걸 보고 정말 깜짝 놀랐잖아.”
“그러다가 연나에게 혼난다.”
“…연나는 명역(冥域)의 것이야?”
“명역이 뭐야? 아참, 그러고 보니 찰고가 말했던 명월교는 또 뭐야?”
“가르쳐주면 뭘 줄 건데?”
채아가 석목의 어깨 위에서 더 편한 위치를 찾아 움직이며 말했다.
“그런 건 없어. 어차피 결국 참지 못하고 알아서 말하게 될 걸.”
석목이 지면을 박차고 길을 막은 바위를 뛰어넘으며 말했다.
“반드시 참을 거야.”
채아가 말했다.
석목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조용히 길을 재촉했다. 채아는 몇 번이나 입을 열려다 꾹 참았다.
그때, 석목이 갑자기 물었다.
“채아, 국 사숙은 명월교의 사람이었어?”
“…안 가르쳐줄 거야!”
“말하기 싫으면 하지 마.”
* * *
한 달 후, 뙤약볕이 내리쬐는 오시.
민둥민둥한 산맥 곳곳에는 시냇물과 샘물이 흘렀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무슨 연유인지 전부 말라붙은 채였으며, 그 옆에는 동물의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가장 눈에 띠는 것은 길가에 있는 검은 동굴이었다. 동굴 입구의 흔적을 보니 인위적으로 만든 것인 듯했으며, 상당한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었다.
산맥의 깊은 곳에서 체구가 우람한 한 사람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검은 옷을 입은 그는 피부가 구릿빛이었고 이목구비가 굉장히 뚜렷했으며, 긴 흑발을 아무렇게나 묶고 있었다. 등 뒤에는 흑도와 곤봉이 교차해 매여 있었고, 허리에 유성추를 두르고 있는 모습이 상당히 야성미가 넘쳤다.
그는 석목이었다.
찰고를 쓰러뜨린 후 석목은 채아를 시켜 자신의 일행을 찾아보았으나, 마치 증발이라도 해버린 것처럼 종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석목은 어쩔 수 없이 홀로 길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찰고에게서 얻은 지도 덕분에, 일부 괴수의 습격을 받은 것을 제외하고는 어떤 위험과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는 낮에는 길을 재촉했고, 달이 없는 밤에는 연나를 소환해 실전 경험을 쌓았다.
산의 정상에 오른 석목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러자 그의 어깨에 있던 채아는 시키기도 전에 푸른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지도에 표시된 대로라면, 석목은 이미 이틀 전에 야만족 영토를 벗어나 중심대륙 구역에 들어선 상태였다.
하지만 황량하고 척박한 이곳의 환경은 야만족 황무지와 비교해도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그가 상상했던 자연의 기가 충만한 중심 대륙의 풍경과는 현저히 달랐기 때문에, 그는 찰고의 지도에 무슨 문제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잠시 후, 석목은 새롭게 방향을 조정하고 산 아래로 내려갔다.
* * *
사흘 후, 변경의 작은 마을에 석목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을은 산 가까이에 위치해 있었고 상당히 넓었다. 석목이 가진 지도에는 ‘임산진(临山镇)’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산세가 가파르고 아득히 높은 산을 등지고 있어서 이런 이름이 붙은 것 같았다.
마을 주위에 인공적으로 파낸 도랑이 매우 많은 것을 보니 과거 이곳은 수원이 충분하고 비옥한 땅이었던 듯했다. 하지만 현재 도랑은 마른지 한참 되어 보였으며 토지는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는 상태였다.
“석두, 드디어 배터지게 밥을 먹을 수 있겠어!”
채아가 눈앞의 마을을 보더니 날개를 퍼덕이며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했다.
석목은 아무 말 없이 마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마을에 있는 건물은 대부분 상당히 화려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길목에 인가가 매우 드물었으며, 행인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길가의 주루(酒樓)와 식당에도 손님이 없어 적막이 흘렀다.
석목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이에, 어디선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석목이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가서, 길모퉁이로 꺾어 들어가자 울부짖는 부녀자와 아이들이 보였다.
그곳에는 괴수 가죽옷을 입은 네 사람이 고함을 치면서 손에 든 창으로 두 손이 묶인 남자들을 때리며 끌고 가고 있었다.
묶여 있는 남자들의 얼굴에는 분노가 가득했지만, 그들은 차마 말대꾸를 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이들의 주위에는 부녀자와 아이, 노인 등 몇 십여 명이 손발이 닳도록 빌며 울부짖고 있었다.
가죽옷을 입은 네 사람은 전부 후천무인이었다. 세 사람은 후천중기, 우두머리인 세모눈의 중년 남자는 후천후기의 경기에 올라 있었다.
사람들이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석목은 어렴풋이 전말을 추측할 수 있었다. 무인들이 마을사람들을 납치해 광산에 일꾼으로 보내려는 것 같았다.
바로 그때, 한 백발의 노인이 마른 남자의 부축을 받고 석목의 옆으로 지나가며 말했다.
“향 대인, 잠시 기다리시오.”
세모눈의 남자는 짜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백발의 노인을 보았다.
“향 대인, 우리 마을에는 성인 남성이 거의 남지 않았습니다. 만약 저들마저 떠나면 남은 마을 사람들은 전부 굶어죽을 것입니다. 한 번만 너그러이 용서해주십시오.”
노인은 묶여 있는 남자들을 가리키며 애원했다.
“늙은이, 이들에 대한 보수는 우리가 이미 두 배로 지급했을 텐데.”
세모눈의 남자가 말했다.
“당신들의 돈은 필요 없어! 남편을 돌려주세요!”
“내 아들을 데려가지 마!”
* * *
백발의 노인이 애원하자 주위의 노인과 부녀자들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모눈의 남자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다리를 붙잡고 늘어지는 부녀자를 밀치며 출발을 지시했다,
“향 대인, 누군가 길을 막고 있습니다.”
가죽옷을 남자 중 한 명이 갑자기 말했다.
세모눈의 남자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보았다.
어깨에 앵무새를 한 마리 올리고 있는 청년이 어느새 나타나 길을 막고 서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청년은 바로 석목이었다.
백발의 노인이 놀란 표정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바닥에 엎드려 있던 노약자들, 묶여 있는 남자들도 마찬가지로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낯선 얼굴인데, 외부에서 왔는가?”
세모눈의 남자가 석목을 바라보며 떠보듯 물었다.
“저들을 풀어줘라!”
석목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의 어깨에 있는 채아가 말했다.
“험한 꼴을 당하기 싫다면 우리 수산종(兽山宗)의 일에 참견하지 마시지.”
세모눈의 남자는 잠시 멍청한 표정을 짓다가 곧 눈꼬리를 씰룩이며 조금 높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에서 꺼져라.”
석목이 꼼짝도 하지 않고 말했다.
“죽음을 자초하는구나!”
세모눈의 남자는 버럭 화를 내며 손에 쥔 창을 내질렀다. 그 순간 창대가 푸른빛으로 빛나더니 창끝이 급속도로 진동하며 거센 강풍을 일으켰다.
창끝이 반짝이면서 거대한 푸른색 늑대 머리의 형상으로 변해, 석목을 향해 입을 벌리고 달려들었다.
그의 뒤편에 있던 가죽옷을 입은 세 명의 남자도 석목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의 창 역시 급격히 진동하며 세 개의 작은 늑대 머리로 변했다.
그들은 원체 석목과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만큼, 순식간에 석목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들의 공격이 지척까지 다가왔을 때, 석목의 손에서 흰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순간 월백색의 보호막이 생겨났다. 보호막의 표면에는 무수히 많은 흰색 부문이 쉬지 않고 흘러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