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배신하다
쾅!
네 개의 늑대 머리가 보호막과 충돌하자 폭발이 일어났다. 사방으로 폭풍이 일었으나 보호막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평온했다.
네 사람이 행동을 하기도 전에 석목은 입을 벌려서 네 개의 기폭술을 쏘았다.
체내에 일정 법력이 쌓인 이후 석목은 한 번에 여러 개의 기폭술을 뿜어낼 수 있게 되었고, 위력도 크게 증가했다. 전력으로 날린 기폭술은 후천 대원만 무인이 전력을 다한 일격에 비할 수 있을 정도였다.
펑! 펑! 펑!
가죽옷을 입은 세 남자의 가슴에 기폭술이 명중했다. 그들은 옷이 찢어지고 피범벅이 된 채 폭발과 함께 뒤로 날아갔다.
체내의 기혈이 들끓게 된 세 사람은 안색이 창백해져서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세모눈의 남자는 제때 창을 휘둘러 기폭술을 쳐냈다. 그러나 기폭술이 폭발하며 창대를 통해 거대한 힘이 몰려왔다. 그는 연달아 네 걸음을 물러난 후에야 겨우 충격을 중화할 수 있었다.
“영계술사!”
세모눈 남자의 얼굴이 굳어지는 순간, 석목의 손에서 쏘아져나간 빛줄기가 눈 깜짝할 사이에 그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남자가 창으로 빛줄기를 쳐내려 하는 순간, 빛줄기가 갑자기 반짝이더니 일 장 길이의 빛의 사슬로 변해서 그를 단단히 묶었다.
현재 석목의 기환장은 선천초기의 무인도 제대로 막아내지 못할 정도로 빨랐고, 세 번 호흡할 만큼의 시간 동안 상대를 구속할 수 있었다. 그러니 후천무인이 상대하기에는 당연히 힘겨울 수밖에 없었다.
“석두, 잘했어! 때려죽여!”
채아가 날개를 퍼덕이며 꽥꽥 소리를 질렀다.
석목은 채아를 한 번 흘겨보고는 노인과 부녀자들에게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가족들을 풀어주고 집으로 돌아가세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석목이 싸우는 장면을 지켜보던 이들은 그의 말을 듣고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많은 이들이 가족과 함께 석목에게 다가와서 허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했다.
소란스럽게 떠드는 사람들에 둘러싸인 석목은 순간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바로 그때, 기환장의 구속에서 벗어난 세모눈의 남자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가죽옷을 입은 세 무인도 비틀거리며 일어나 그의 곁에 섰다.
그 모습을 보고 공포에 질린 마을 주민들이 석목의 뒤로 몸을 숨겼다.
“감히 우리 수산종의 일에 간섭하다니. 두고 보자!”
세모눈의 남자가 석목을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꺼져!”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무언가 말하려 할 때 채아가 가슴을 내밀며 기고만장하게 소리쳤다.
석목의 차가운 눈빛을 본 남자는 황급히 몸을 돌려 달아났고, 다른 세 무인도 그를 따랐다.
그들이 도망가자 마을 주민들은 석목에게 감사를 표한 후 흩어져 사라졌다.
“이 늙은이는 임산진의 진장(镇长) 유두입니다. 도와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귀하의 존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백발의 노인이 석목에게 다가와 감사를 표하며 말했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근심이 남아 있는 듯 아주 밝지는 않았다.
“저는 석목이라고 합니다. 별일 아니었습니다.”
석목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여로에 지쳐 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아직 식사를 하지 않았겠지요. 저희 집이 마침 식당을 하고 있으니, 불편하지 않으면 같이 가시는 게 어떻습니까?”
노인이 말했다.
“잘됐다! 배고파 죽는 줄 알았어.”
채아가 날개를 퍼덕이며 환호성을 질렀다.
석목은 채아의 머리에 꿀밤을 날린 후 노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은 마른 소년의 부축을 받고 왔던 길을 따라 걸어갔고, 석목은 그와 속도를 맞춰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었다.
“유 진장님, 수산종이 왜 저런 짓을 하는 것이죠?”
석목이 물었다.
“이야기하자면 깁니다. 우리 임산진은 사실….”
노인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이어 유 진장의 설명을 들은 석목은 중심 대륙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임산진은 육산왕조의 동쪽에 위치한 소국인 송국(宋国)의 변두리에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그런데 송국의 종문인 수산종이 임산진이 등지고 있는 산이 영석 광산이라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하고, 사람을 파견해 영석을 채굴할 마을 주민을 모집했다.
수산종은 산에 들어가 채굴을 하는 이들에게 매우 높은 보수를 제공했고, 한동안 사내들이 앞 다투어 지원하면서 마을이 번영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후 채굴을 하러 간 사람 중 대다수가 마을에 돌아오지 못했고, 돌아온 이들조차 얼마 지나지 않아 급사하는 일이 반복됐다.
수산종은 그들에게 막대한 보상금을 지급하고 채굴에 대한 보수를 계속 늘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마을의 사내가 점점 줄어들면서 더 이상 지원하는 이가 나오지 않게 되었다.
송국이 최근 몇 년간 각지에서 이토록 다급하게 영석을 채굴하는 이유가 있었다. 육산왕조에서 삼십 년에 한 번 성대한 대전이 열리는데, 그때마다 주변국에 있는 종문에서는 대량의 영석을 바쳐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수산종은 사흘이 멀다 하고 마을에 사람을 보냈고, 두 배의 보수를 주겠다는 조건을 빌미로 마을 장정들을 강압적으로 끌고 갔다.
수산종은 비록 작은 종문에 불과했지만, 송국 내에서는 매우 높은 지위에 올라 있어서 마을 주민들로서는 마땅히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 * *
대화를 나누는 사이 노인과 석목은 식당 앞에 도착했다.
노인은 고개를 돌려 석목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수산종에는 강자가 매우 많습니다. 이곳 영석 산맥을 지키는 사람만 하더라도 향사자보다 훨씬 강하지요. 식사를 마친 후에 최대한 빨리 임산진을 떠나는 것이 좋을 겁니다.”
“호의는 감사하지만 저는 괜찮습니다.”
석목이 대답했다.
노인이 고개를 가로젓더니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마른 남자의 부축을 받아 식당 안으로 들어갔고, 석목도 그 뒤를 쫓았다.
식당은 한눈에 보아도 매우 깨끗했지만 탁자와 의자는 상당히 낡아보였다.
석목이 대접받은 음식은 모두 일반적인 가정식이었지만, 석목은 벌써 반 년 가까이나 제대로 된 식사를 먹어보지 못한 탓에 볼이 터지도록 음식을 밀어 넣었다.
식사 후 노인은 한사코 밥값을 받으려 하지 않았고, 그래서 석목도 억지로 돈을 건네지는 않았다.
밥과 술을 배부르게 먹은 석목은 다시 노인의 추천을 받고 퍽 괜찮은 객잔에 머무르게 되었다.
객잔은 마을에 있는 대부분의 건물과 마찬가지로 매우 화려했다. 석목이 머무는 곳은 가장 고급스러운 방으로, 문을 나서면 넓은 마당이 나왔다.
마당에는 밖으로 나가는 대문 외에 세 개의 객실 문이 있었는데, 석목이 머무는 방을 제외하고는 모두 비어 있어서 마당은 매우 조용했다.
* * *
한편 마을 안의 어느 화려한 정원에서 사람들이 논쟁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 백 대인이 분명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그가 온다면 석목은 절대 적수가 되지 않을 거예요. 만일 대인이 우리에게 화풀이를 하게 된다면 어떡하죠?”
마른 남자가 의자에 앉아 있는 유두를 바라보며 말했다.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여라. 우리 임산진은 산 때문에 흥하고, 결국은 산 때문에 망하겠구나.”
노인이 탄식하며 말했다.
“저에게 이 재앙을 피해갈 수 있는 한 가지 묘안이 있습니다.”
마른 남자가 눈알을 굴리며 말했다.
“그게 무슨 방법이지? 설마 너….”
노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손가락으로 마른 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마른 남자가 말을 이었다.
“아버지, 어차피 백 대인은 절대 석목을 놓아주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우리가 직접 그의 소재를 알리면 이 일과 관련해서 우리를 추궁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술사는 영석을 갖고 있다고 하니 석목 역시도 상당한 영석을 지니고 있을 것이고요. 백 대인이 영석을 챙기게 되면 우리 마을에서 끌고 가는 사람 수를 줄여줄 수도 있습니다. 이 주위에 우리 마을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안 된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일을 한다면 천벌을 받을게다.”
노인은 단칼에 거절했다.
“아버지, 이 일은 우리 임산진 전체의 안위와 관련이 있는 일이에요. 마을의 많은 사람이 말은 하지 않지만 속으로는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요. 제가 알기로는 아명은 벌써 정보를 넘기러 광산에 갔어요.”
마른 남자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
그의 이야기에 노인은 순간 기가 막혀 자리에 털썩 앉았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마른 남자는 노인이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살짝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 * *
그날 밤, 임산진의 밝은 달빛을 받은 화려한 건물이 은백색으로 물들였다.
석목은 객실의 침상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은 채 수련을 하고 있었다.
그때 석목의 머릿속에 갑자기 어떤 장면이 떠올랐다.
창을 들고 괴수의 가죽옷을 입은 무인 열여섯 명이 객잔의 대문으로 들어오고 있었고, 그 뒤를 마른 남자와 검은 피부의 청년이 쩔쩔매며 따르고 있었다.
석목은 몸을 일으켜 방문을 열고 나갔다. 그리고 마당에 서서 침입해오는 자들을 기다렸다.
잠시 후, 체구가 우람한 중년의 남자가 앞장서 마당 안으로 돌진해 들어왔다.
그는 마당에 조용히 서 있는 석목을 보고 느릿한 발걸음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이어서 그의 뒤로 열다섯 명의 무인이 숙련된 움직임으로 석목을 둘러쌌다. 그들은 다섯 명이 하나씩 세 개의 진형을 형성했다.
중년 남자의 몸에서 풍기는 기운을 보니, 그는 선천초기의 강자였다.
또 석목을 포위한 무인들 중 각 진형의 우두머리 세 명은 후천후기의 무인이었으며, 나머지는 후천중기의 무인이었다.
이전에 석목이 보았던 세모눈의 남자 역시 세 진형 중 하나의 우두머리로 서 있었다.
“누가 우리 수산종의 일에 겁도 없이 개입했다더니, 선천무인일 줄은 몰랐군. 나는 수산종의 백소풍이다. 그대는 어느 종문의 누구지?”
중년 남자가 말하며 한걸음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의 말을 들은 세모눈의 남자가 몸을 살짝 떨었다.
“나를 이긴다면 가르쳐주지.”
석목이 말했다.
“좋다!”
백소풍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말을 마치자마자 바닥을 박차고 맹수와 같은 몸놀림으로 석목을 향해 달려갔다.
동시에 그가 전방을 향해 창을 맹렬하게 내질렀다. 이어 창끝이 은빛으로 반짝이더니 일 장 가까운 길이의 은색 표범 형상이 나타나 석목을 덮쳤다.
그 순간, 석목을 둘러싼 모든 이의 창이 푸른빛을 뿜어내더니, 중간에서 하나로 합쳐지면서, 반 장 크기의 푸른색 늑대 머리 세 개가 나타났다.
그 후 세 푸른 늑대의 머리가 파공성을 내고, 세 방향에서 달려들며 석목의 퇴로를 막았다.
석목은 제자리에 서서 기령순을 시전했다. 그의 왼손이 하얗게 빛나기 시작하더니 몸이 은백색 보호막에 뒤덮였다.
석목은 등 뒤에서 운철곤봉을 꺼내 들었다.
그는 팔을 휘둘러 푸른 곤영(棍影)으로 좌측의 늑대 머리를 거세게 날리고, 거의 동시에 우측으로 고개를 돌리며 기폭술을 쏘았다.
쾅!
은색 표범이 석목의 보호막과 충돌하자 눈부신 은빛 폭발이 일어났다. 은백색 보호막은 심하게 떨리며 색이 어두워졌지만 완전히 소멸하지는 않았다.
그때 푸른 곤영과 다섯 개의 기폭술이 양측의 푸른 늑대 머리와 각각 충돌했고, 커다란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다.
두 푸른 늑대 머리의 형상이 비틀리며 터지자 열 명의 무인이 양측으로 날아갔고, 모두 바닥에 떨어져 기절했다.
그때 마지막 하나 남은 늑대 머리가 석목의 뒤로 바짝 접근했다.
쾅!
푸른빛이 폭발하며 늑대 머리가 흩어져 사라졌다. 석목을 둘러싼 은백색 보호막 역시 점차 투명해지다가 완전히 없어졌다.
바로 그때, 석목이 몸을 돌리며 입에서 다섯 줄기의 하얀 광선을 뿜어냈다.
쾅!
결국 마지막 진형도 폭발에 휩쓸려 날아가 쓰러지며 정신을 잃었다.
그 순간, 석목의 머리 위 허공에서 법력의 파동이 일었다. 그리고 붉은 빛이 반짝이며 검은 우리가 나타나서 그를 가두었다.
그와 동시에 백소풍이 석목에게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