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158화 (158/916)

158화. 꽃을 교환하다

“석두, 그 꽃은 뭐야?”

채아가 날아와 석목의 어깨에 앉으며 물었다.

“좋은 물건.”

석목은 채아에게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 않고 옆에 있는 바위로 다가가 앉았다.

“경계를 부탁할게.”

“또 귀찮은 일을 시키는군.”

석목의 말에 채아는 불평을 늘어놓으면서도 결국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석목은 웃으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에는 구름이 점차 흩어지면서 휘영청 밝은 달이 드러나고 있었다.

아름다운 달빛이 주위의 지면을 은빛으로 비추었고, 멀지 않은 곳에는 거대한 돌기둥 모양의 산봉우리가 솟아 있었다.

그 산봉우리는 높지는 않았지만 산세가 매우 험했다. 현지 사람들 사이에서 소천봉(小天峰)이라 불리는 산봉우리였는데, 그 이름이 매우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석목은 산봉우리에서 시선을 거두고 손에 들린 녹색 꽃을 다시 바라보았다.

꽃의 표면에는 액체처럼 보이는 녹색 빛이 감돌고 있었다.

석목은 눈을 살짝 반짝이며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꽃잎을 하나 뜯어냈다.

쨍!

꽃잎은 녹색 꽃에서 떨어지는 순간 깨지며 푸른색 기류를 일으켰다.

그와 동시에 석목의 손바닥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법력이 쏟아져 나와서 그 푸른 기류를 감쌌다.

휙!

푸른 기류는 법력과 닿는 순간 법력 안으로 흡수되었다.

석목은 다급히 눈을 감고 법력을 체내로 끌어당기자, 법력과 합쳐진 차가운 기류가 경맥을 천천히 한 바퀴 돌더니 단전 안으로 흡수되었다.

잠시 후, 눈을 뜬 석목은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예상대로 체내의 법력이 대폭 증가해, 단번에 온신술 7단계에 오르게 된 것이다.

석목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흥분을 가라앉힌 뒤 꽃잎을 한 개 더 땄다.

* * *

사령계, 높이가 족히 백 장 가까이 되어 보이는, 칠흑같이 검은 산봉우리 주위의 분지 중앙.

그곳에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붉은 연꽃을 머리에 꽂은 연나가 나타났다.

분지 주위에는 어렴풋이 붉은 물질이 떠다니는 것이 보이는 깊은 못이 있었다.

갑옷을 입은 해골전사 오십여 구가 못 주변에서 무언가를 경계하듯이 서 있었다. 해골들은 연나가 나타나자 일제히 다가가 그 뒤에 섰다.

못 주위의 공터 곳곳에는 백 구가 넘는 해골의 잔해들이 쌓여 있었다.

제자리에 잠시 서 있던 연나는 곧 검은 산봉우리로 시선을 돌렸다.

산봉우리의 정상은 거무스름한 안개에 뒤덮여 멀리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무거운 위압감이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연나는 산봉우리에서 빠르게 시선을 거두고, 어느 해골의 잔해 옆으로 다가갔다.

연나가 영혼의 화염을 격렬하게 반짝이자 그의 입에서 영혼의 화염 일부가 날아갔고, 그 화염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해골의 두개골 속으로 흡수됐다.

그러자 해골의 눈가에 갑자기 두 개의 녹색 영혼의 화염이 생겨났다. 해골은 몸을 움찔하더니 자기 스스로 몸을 조립해 곧 하나의 완전한 해골이 되었다.

해골은 손발을 조금 움직여보다가 다른 해골전사들의 옆에 섰다.

연나는 또 다시 다른 해골의 잔해로 다가갔다.

한참이 지나자 연나 옆에 서 있는 해골의 수는 칠십 구를 넘어섰고, 연나가 가진 영혼의 화염은 상당히 어두워져 있었다.

연나는 해골의 수를 늘리는 것을 그만두고 못에 다가가 뛰어들려 했다. 그러다 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순간 움직임을 멈췄다.

자신의 머리에 꽂힌 붉은 연꽃이 완전히 메말라 비틀어져 있었던 것이다.

잠시 멍청하게 서 있던 연나는 소리 없이 포효하며 발을 동동 굴렸다.

잠시 후, 겨우 평온을 회복한 연나는 말라버린 꽃을 던져버리고 못 안으로 뛰어들었다.

* * *

반 시진 후, 마지막 녹색 꽃잎이 차가운 기류로 변해 석목의 체내에 흡수됐다.

그가 눈을 뜨자 두 눈에서 은은한 빛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녹색 꽃의 모든 꽃잎을 흡수한 석목은 온신술 9단계의 끝자락까지 오른 상태였다. 이제 성계술사까지는 딱 한걸음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단지 다른 물건으로부터 체내의 법력을 얻다보니, 이전에 탄월식으로 얻었던 법력에 비해 안정성은 훨씬 떨어졌다.

하지만 시간만 조금 들인다면, 석목은 새로 늘어난 법력을 전부 제어할 자신이 있었다.

석목은 깊게 호흡하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하늘에 뜬 달을 바라본 뒤 탄월식의 자세를 취했다.

잠시 후, 석목은 꿈에 들어가서 하얀 원숭이로 변했다. 이어 허공에서 달빛의 정화가 내려오더니 원숭이의 몸에 흡수됐다.

주위를 둘러보던 석목은 곧 원숭이가 있는 곳이 이전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흰 원숭이는 현재 하늘까지 솟아 있는 산봉우리 정상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푸른색 산봉우리의 모습은 거대하기 짝이 없는 매끄러운 돌기둥처럼 보였다.

“이 산봉우리는….”

석목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늘에 닿을 만큼 커다란 이 산봉우리는 소천봉과 상당히 닮은 구석이 있었다.

이 산봉우리는 자연의 기가 매우 짙었으며, 수많은 수목이 자라 있었다. 석목은 거대한 수목들을 보고 용사의 문에 있는 식물들을 떠올렸다.

흰 원숭이가 앉아 있는 바위 주위의 멀지 않은 곳에는 수많은 동물들이 있었다. 늑대, 곰, 호랑이, 사자 등등….

동물들은 달의 정수를 흡수하는 흰 원숭이를 존경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몇몇 영리한 동물은 흰 원숭이를 따라 탄월식의 자세를 취해봤지만, 그들에게는 달빛의 정수가 모여 들지 않았다.

산봉우리의 주위에는 끊이지 않는 산맥이 이어져 있었다. 그러나 원숭이가 있는 산봉우리보다 높은 곳은 없었다.

산봉우리 주변에는 몇 개의 화산이 있었고, 그 화산에서는 검은 연기가 끊임없이 뿜어져 나왔으며, 때때로 커다란 소리와 함께 용암이 분출됐다.

바위 주위에 모인 동물들은 주위 화산의 폭발에 적응이 된 듯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원숭이의 몸에 모여드는 달빛의 정수가 점차 늘어났다.

바로 그 순간, 원숭이가 몸에서 흰 빛을 뿜어내며 하늘을 향해 크게 울부짖었다.

그 소리는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공기 중에 파도 같은 물결을 일으켰다.

가까이서 커다란 소리를 들은 동물들은 마치 못이 머리를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이에 동물은 일제히 울부짖으며 머리를 감싸고 바닥에 엎드렸다.

원숭이가 커다란 외침을 멈추자 흰 빛이 그 뒤로 모여 거대한 원숭이의 법상을 형성했다.

열 장이 넘는 높이의 하얀 법상은 그 모습이 상당히 위압적이었고, 몸보다도 더 긴 한 쌍의 날개가 자라 있었다.

원숭이가 두 눈을 뜨자 금색의 동공에서 몇 장 길이의 금색 빛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어 원숭이가 몸을 일으키자 법상은 몸 안으로 흡수되어 사라졌다.

촤악!

원숭이의 등 뒤에 진짜 같은 흰색 날개가 나타났고, 원숭이는 날개를 펄럭이며 새처럼 허공에 떠올라서 자유롭게 비행했다.

그 광경을 본 산봉우리의 동물들이 흥분해 울부짖으며 허공에 뜬 원숭이를 향해 엎드려 절하기 시작했다.

원숭이는 그런 동물들을 바라보며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포효했다. 그리고 위세를 부리듯 산봉우리 주위를 몇 바퀴 배회했다.

잠시 후, 원숭이는 만족한 듯 더 이상 아래의 동물들을 상대하지 않고, 근처의 화산들을 바라보았다.

원숭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날개를 펼쳐 가장 가까운 화산의 분화구로 날아 들어갔다.

원숭이의 몸 안에 있는 석목은 원숭이의 감각을 통해 주위의 열기와 짙은 화속성 영기를 느낄 수 있었다.

거대한 용암의 호수가 눈앞에 나타나자 원숭이는 흥분한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날개를 접으며 용암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와 동시에 석목은 눈앞이 까매지더니 꿈에서 깨어나 자신의 몸으로 돌아왔다.

하늘은 이미 밝아져 있었고, 서쪽으로 기운 달이 흐릿하게 보였다.

그는 멍청한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며 꿈속의 광경을 떠올렸다.

탄월식을 수련할 때 다른 꿈을 꾼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꿈들은 특별한 의미는 없는 것 같았다. 게다가 탄월식을 수련하거나 흡일식을 수련하는 꿈보다는 수련의 효과가 떨어졌다.

석목이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의미 없는 생각을 떨쳐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먼 곳을 바라보았다.

* * *

한 달 후, 어느 날의 오후.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에서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었다.

수천 평이 넘는 숲 사이에 난 도로가 무성한 나뭇잎에 가려 그늘져 있었다.

도로 좌측에는 두 마리의 하얀 말이 끄는 호화로운 마차가 멈춰 서 있었고, 회색 옷을 입은 마부가 말들에게 물과 여물을 먹이고 있었다.

마차 주위에는 스무 명이 넘는 사람이 있었고, 이들 대부분은 상처를 입고 면포를 감은 채였다. 일행은 두세 명씩 무리를 이루어 휴식을 취하며 건량을 먹고 있었다.

마차에서 멀지 않은 곳의 커다란 나무 아래에는 몸집이 커다랗고 검은 옷을 입은 청년이 있었다. 팔짱을 끼고 나무에 기댄 채 눈을 감은 그의 등 뒤에는 검은 천에 싸인 긴 무기가 포개져 있었다.

그 청년은 바로 석목이었다. 그러나 그의 어깨에 채아는 없었다.

바로 그때, 다른 나무 아래 있던 삼심 대 남자가 석목에게 다가왔다. 은백색 옷을 입고 이마에 은색 띠를 두른 남자였다.

그는 눈썹이 뾰족하고 눈이 컸으며, 붉은색 긴 머리카락을 등 뒤로 아무렇게나 늘어뜨린 멋스러운 미남자였다.

“유안 형, 천우성(天虞城)까지는 얼마나 더 가야 하죠?”

발걸음 소리를 들은 석목이 눈을 뜨며 물었다.

“약 한 달 정도 더 가야 하네.”

유안은 대답을 하며 석목 근처의 나무로 다가갔다. 그리고 나무에 몸을 기대며 물었다.

“천우성에 가는 것은 승선대전에 참여하기 위해서인가?”

“아닙니다. 그저 여행을 하며 견문을 넓히기 위한 것입니다.”

석목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럼 역시 승선경매에 참여하기 위해 온 것이겠군.”

“승선경매요?”

석목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설마 모르는 것이오?”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승선대전이 개최되면 동주대륙에 있는 대부분의 천재가 운집할 뿐만 아니라, 상당히 많은 사람이 참관을 위해 모여 들지. 육산왕조 제일의 상회인 천오상회(天吴商会)에서 이를 노리고 삽십 년에 한 번씩, 승선대회 개최 반년 전부터 성대한 규모의 경매를 연다네. 이 경매에는 없는 물건이 없다고 봐도 좋을 정도지. 다만 이 경매에서는 특이하게도 은표를 받지 않고 오직 영석만을 받는다네.”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렇군요. 설명 감사합니다.”

남자의 말을 들은 석목은 살짝 흥미가 동했다.

그가 무언가 더 물으려 할 때, 갑자기 마차 쪽이 떠들썩해졌다.

석목이 고개를 돌려보니 화려한 옷을 입은 열두세 살쯤의 남자아이가 마차에서 내렸다. 아이는 위엄 있어 보이는 중년 남자의 부축을 받아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중년의 남자는 강대한 기운을 풍기는 선천무인이자 호위대를 이끄는 우두머리였다.

남자아이는 마르고 안색이 창백해 굉장히 연약해 보였다. 다만 수줍게 보이는 표정에 반해 눈빛에는 고집이 담겨 있었다.

석목과 유안이 그 모습을 보고 똑바로 섰다.

“홍 도련님께서 두 사람에게 직접 감사를 표하기 위해 오셨다!”

소년을 부축한 중년 남자가 두 사람에게 다가와 말했다.

두 사람은 멍청한 표정으로 소년을 한 번 바라보았다. 그들은 소년이 마차에서 내린 모습을 지금 처음 본 것이었다.

“일전에 습격을 받았을 때 두 분이 도와주셔서 살 수 있었습니다. 제 인사를 받으세요.”

허약한 소년은 부축을 해주는 중년의 남자를 밀어내고, 석목과 잘생긴 남자에게 허리 굽혀 인사했다.

“홍 공자님,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우연한 기회로 만났지만 그것 역시 우리의 인연 아니겠습니까.”

유안이 소년을 부축해주며 말했다.

“사소한 일이니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석목 역시 살짝 웃으며 덧붙였다.

소년은 감사의 말을 몇 마디 더 건넨 뒤, 힘에 겨운 듯 중년 남자의 부축을 받고 마차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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