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159화 (159/916)

159화. 승선경매

“홍 공자를 보니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오르는군.”

소년이 떠나자 유안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자신도 모르게 남자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석목은 눈앞에 있는 이 기품 있어 보이는 미남자와, 걷을 때조차 부축을 받아야 하는 허약한 소년 사이에 도저히 비슷한 점을 찾아볼 수 없었다.

석목이 유안과 그 행렬을 만난 것은 참으로 우연이었다.

하루 전, 석목은 협소하고 험한 골짜기를 지나던 중이었다.

당시 행렬은 검은 옷을 입고 복면을 쓴 알 수 없는 무리의 습격을 받고 있었다. 행렬을 포위한 스무 명이 넘는 일당 중에는 무려 네 명의 선천무인이 있었으며, 나머지도 전부 후천후기 이상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중년 남자는 호통을 치며 자신들이 천우성에서 매우 높은 신분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그러나 복면을 쓴 일당은 아랑곳하지 않고 매서운 공격을 퍼부었다. 그들의 목표는 마차인 것 같았다.

뛰어난 실력을 가진 중년의 남자가 수하와 함께 필사적으로 막았으나, 상황은 그들에게 확연히 불리했다.

위기의 순간, 어디선가 나타난 유안이 행렬 측에 가세해 상대편 선천무인 한 명을 상대하자 정세가 크게 바뀌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석목도 채아를 날려 보내고 싸움에 끼어들었다. 석목 역시 복면 무리에 있는 선천무인을 한 명 맡았다.

두 사람이 가세하자 행렬 측이 빠르게 우위를 점했고, 습격을 감행했던 상대는 후천무인의 시체 몇 구를 버려두고 결국 후퇴했다.

그 후 중년 남자는 두 사람에게 많은 보수를 제시하고 천우성까지의 호위를 제안했다.

유안은 자신이 마침 같은 방향이라며 단번에 승낙했고, 석목 역시 잠시 고민했지만 거절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석목은 행렬의 일원이 되었다.

바로 그때, 소란스러운 소리가 회상에 빠져 있던 석목을 현실로 끌어당겼다.

고개를 들어보니 행렬이 모든 정비를 마치고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 * *

며칠 후, 먹구름에 달이 가려 천지가 적막과 어두움에 휩싸였다.

호화로운 마차가 광야에 서 있었고, 그 주위에 크기가 다양한 열 개 이상의 천막이 달을 둘러싼 별들처럼 펼쳐져 있었다.

불침번 두 명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은 모두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상태였다.

바로 그때, 행렬의 구석에 있어서 눈에 잘 띄지 않은 천막에서 석목이 나왔다. 그는 소리 없이 어디론가 몰래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 각 후, 그는 어느 강기슭에 있었다.

석목은 신속하게 강기슭 주위의 나무 사이를 수색했지만 이상한 점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제야 강가의 공터로 가서 선 석목은 두 손으로 수인을 맺으며 법결을 외우기 시작했다.

꽃을 교환한 이후로 연나는 줄곧 석목의 소환에 응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주문을 외운지 얼마 지나지 않아, 멀지 않은 곳에서 갑자기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석목은 매우 기뻐했다. 이것은 연나가 나타날 전조였기 때문이다.

연나가 결국 그를 용서하기로 한 것 같았다.

곧 검은 연기 사이에서 뼈창을 든 해골이 걸어 나왔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생각지도 못한 일이 발생했다.

연나의 모습이 흐릿해지더니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연나는 석목이 반응하기도 전에 멀지 않은 곳의 나무 사이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석목을 향해 하얀 빛이 흐르는 뼈창을 맹렬하게 내질렀다.

그 순간, 나무 사이에서 하얀 검광이 튀어나와 연나의 공격을 정확하게 막아냈다.

깡!

은빛과 하얀빛이 동시에 사라지면서 연나가 움직임을 잠시 멈췄다.

“석 형, 나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누군가 번개처럼 빠른 움직임으로 나무 사이에서 뛰쳐나와 석목에게 다가왔다.

그 순간, 그의 옆에서 검은 연기와 함께 연나가 다시 나타나 창을 휘두르자 수십 개의 창영이 상대를 벌집으로 만들어버릴 기세로 날아왔다.

뛰어나온 상대는 민첩한 움직임으로 연나의 모든 공격을 침착하게 피해냈고, 석목의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그는 바로 유안이었다.

연나는 다시 한 번 그에게 달려들려 했고, 석목은 다급히 명령을 내려서 연나의 행동을 저지했다.

연나는 석목의 앞에 서 있는 유안을 보며 영혼의 화염을 반짝이더니 몸을 돌렸다. 연나의 몸이 검은 연기에 휩싸이더니 다시금 모습을 감췄다.

석목은 눈앞에 있는 유안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유 형, 설마 저를 미행한 겁니까?”

그러자 유안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석 형, 오해하지 말게나. 밤에 잠이 안와서 강가에 바람을 쐬러 왔을 뿐이라네. 이곳에 마침 석 형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다가가 인사를 하려 했는데 석 형의 소환수가 저리도 대단한지 어찌 알았겠는가. 자칫 잘못했으면 큰 코 다칠 뻔했네.”

“그렇군요.”

“하하, 석 형은 무공에만 조예가 깊은 줄 알았더니 혼사였나 보군. 나 역시 혼사 친구가 여럿 있으니, 이후 기회가 된다면 깨달음을 나눌 수 있도록 소개시켜주도록 하지.”

유안이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안심하게나. 이 일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겠네.”

석목이 입을 열기도 전에 유안이 석목을 향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그는 석목이 잡담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아챈 듯, 곧 구실거리를 찾아 자리를 피했다.

석목은 그 자리에 서서 유안의 사라져가는 뒷모습을 보며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지었다.

* * *

동주대륙에서 가장 강대한 국가인 육산왕조는 중앙대륙의 가장 중앙 핵심 구역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땅덩이는 굉장히 넓고 31부 108주로 나뉘어 있었다.

그중 수도인 천우성은 육산왕조는 물론 동주대륙 전체에서 가장 번화한 성이었다.

둘레의 길이가 수십만 리에 달하는 천우성은 물로 둘러싸인 난공불락의 성인 동시에, 동주대륙의 동부와 서부의 교류가 이루어지는 중추가 되는 곳이기도 했다.

천우성의 성벽 높이는 이십 장이 넘었으며, 쇠처럼 단단한 높이 일 장, 너비 반 장의 바위를 쌓아서 만든 것이었다.

거대한 용의 몸처럼 웅장한 성벽의 북쪽으로는 만 리가 넘는 삼청산맥(三青山脉)이 이어져 있었고, 남쪽으로는 너비가 백 장이 넘는 낭사강(琅邪江)이 흐르고 있었다.

성벽 위에는 깃발이 꽂혀 휘날리고 있었고, 오십 장 간격으로 세워진 성루에서는 병사들이 완전무장을 한 채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고 감시하고 있었다.

막 떠오른 태양이 드넓은 낭사강을 금빛으로 물들이고 있는 아침, 웅장한 천우성의 동문 밖에는 이미 몇 리에 달하는 인파의 줄이 늘어서 있었다.

그곳에는 말에 탄 무인과 등에 광주리를 멘 공예가, 마차에 탄 상인, 농부 등 각양각색의 사람이 모여 있어서 무척이나 소란스러웠다.

승선대전의 시기가 가까워져서인지 성문 입구의 검문 역시 전보다 까다로웠고, 성문에는 성을 지키는 병사 외에도 파란 도복을 입은 사람들이 뒤섞여 있었는데, 병사들이 이 도인들을 대하는 언행이 매우 공경했다.

이들 도인은 은은한 금빛이 쏘아져 나오는 금색 거울을 들고 있었다. 성문을 통과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사병의 검문검색을 받은 뒤, 도인들의 거울을 통해 검사를 받고 나서야 성에 들어갈 수 있었다.

바로 그때, 열 명이 넘는 사람이 빈틈없이 둘러싼 호화로운 마차가 멀리서 나타났다. 그들은 두 줄로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호기심에 찬 시선을 받으며, 인파를 뚫고 성문으로 곧장 향했다.

석목은 이 일행의 가장 끝에서 걸어가며 성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겉으로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전율을 느꼈다.

천우성은 실로 웅장했다.

그와 비교하면 풍성은 성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작은 마을에 불과했다.

석목의 어깨에 올라타 있는 채아는 호기심 넘치는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성에 도착하기 전, 이곳에서 떠들면 성문을 지키는 병사에게 털을 다 뽑힌 뒤 찌개에 넣어질 것이라고 석목이 겁을 줬기 때문이다.

유안은 석목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고 있었는데, 그는 무언가 생각에 빠진 듯 정신이 팔린 모습이었다.

성문까지 거리가 이십 장 정도 남았을 때, 평범해보이는 한 마른 남자가 도사의 거울 앞에 섰다가 병사들에게 다짜고짜 체포됐다.

“내가 무슨 짓을 했다고 체포하는 것이오!”

마른 남자는 저항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

줄지어 있던 수많은 사람이 그 모습을 보고 호기심에 찬 표정을 지었다. 석목의 시선 역시 그쪽으로 향했다.

바로 그 순간, 성을 지키는 군관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와서 소리쳤다.

“소란피우지 말거라! 이단으로 의심되는 사람은 전부 구금하여 조사한 후, 신분이 확인된 자만을 풀어주라는 통천선교의 명령이다. 사람을 잘못 잡을지언정 하나라도 놓쳐서는 절대 안 되니, 반항하는 자는 그 자리에서 죽일 것이다!”

마른 남자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그는 더 이상 저항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두 명의 병사에게 얌전히 끌려갔다.

석목은 그들이 말하는 이단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어쨌든 성을 지키는 군관이 선천초기의 강자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대제국에서 선천무인은 호국무인으로 대접받으며 하나같이 높은 지위에 올라 있었다. 그런데 이 육산왕조의 수도인 천우성에서는 성을 지키는 군관조차도 선천등급의 경지였다.

한편 석목 일행과 성까지의 거리는 이제 십 장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누구냐? 어째서 줄을 서지 않는 것이냐!”

성문을 지키는 병사 한 명이 다가오는 마차를 보며 고함을 질렀다.

병사와 도복을 입은 이들이 그 모습을 보고 마차에 다가가려 했다.

그때 마차의 옆에 있던 위엄 있는 중년 남자가 오히려 그들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는 성을 지키는 군관을 향해 손바닥 크기의 금색 영패를 들어올렸다.

영패를 본 군관의 표정이 갑자기 굳었다. 그는 양쪽의 병사를 헤치고 빠르게 나아가서 공경하게 말했다.

“존사 대인이셨군요. 어서 길을 열어라!”

그의 지시가 떨어지자 문을 지키던 병사와 도복을 입은 이들이 놀란 표정으로 다급히 길을 열었다.

호화로운 마차는 주위 인파의 주목을 받으며 성문을 지났다. 석목 역시 어떤 검문 절차도 거치지 않고 마차와 함께 성에 진입했다.

성문을 지나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열 마리의 말이 동시에 지날 수 있을 것처럼 넓은 도로였다. 앞쪽의 멀지 않은 곳에는 교차로가 있었으며 그곳에는 수많은 인파가 오가고 있었다.

바로 그때, 유안이 중년 남자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마차가 무사히 천우성에 도착했으니 저는 이만 떠나보겠습니다.”

그러자 중년의 남자가 말했다.

“급하지 않다면 저희와 함께 잠시 쉬다 가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혹시 어려운 일이 있다면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감사하지만 괜찮습니다.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오래 머물 수 없습니다.”

유안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떠나겠다는 유안의 의지가 굳은 것을 본 중년 남자는 더 이상 만류하지 않았다. 그는 품속에서 비단 주머니를 하나 꺼내 유안에게 건넸다.

주머니를 받아 든 유안은 몸을 돌려 석목에게 인사한 후 인파 사이로 사라졌다.

이어 석목도 중년의 남자에게 다가가 작별인사를 했다. 그는 석목에게도 유안과 마찬가지의 권유를 했지만, 석목이 떠나겠다고 고집하자 보수를 지급했다.

비단 주머니를 확인한 석목은 기뻤다. 그 안에는 은빛으로 반짝이는 중급 부적 한 장과 초급 영석 열 개가 들어 있었다. 은색 부적은 용사의 금지에 갔을 때 위급 상황에서 화무공주에게 받았던 순이부였다.

비단 주머니를 진묘계에 넣은 석목은 오른쪽 길로 꺾어 들어갔다. 마차는 여러 사람의 호위를 받으며 그대로 직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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