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160화 (160/916)

160화. 천우성(天虞城)

석목은 느긋하게 길을 걸으며 동주대륙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를 둘러보았다.

성 안 곳곳에는 인파가 붐비고 있었다. 비단옷을 입은 사람들과 호화로운 마차, 물건이 가득 실린 차량의 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행상인과 일반 백성들은 더욱 많았다.

양쪽 길가에 줄지어 있는 각종 가게는 한눈에 보아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았다. 그 가게들은 이른 시간부터 이미 문을 열고 고객을 모으고 있었다.

성 안에는 오륙 층 높이의 건축물이 상당수 있었고, 칠팔 층의 대형 건축물도 있었다. 심지어 성의 서쪽 멀리에는 백 장 정도 높이의 작은 산이 있었는데, 정상은 운무에 가려져 있었지만 규모가 엄청난 대전이 여럿 지어져 있는 게 어렴풋이 보였다.

다른 성에서는 커다란 편에 속하는 삼사 층 높이의 건축물만 해도 이곳에서는 굉장히 흔했다.

석목은 야만족 영토를 벗어나 천우성까지 오는 길에 본 경관들을 자신도 모르게 떠올렸다.

그는 오는 동안 척박한 토지, 그리고 인가가 드문 마을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본래 영기가 충만했다가 점차 시든 임산진 같은 마을도 적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마을의 밖에는 커다란 묘지가 있기도 했다. 어떤 곳은 그조차도 없어서 황야에 시체와 해골들이 널려 있었다.

그 모든 광경이 이곳의 번화한 모습과 극명하게 대비되었다.

“석두, 취향루(翠香楼)에 가서 밥을 먹자. 배고파 죽겠어!”

채아가 갑자기 석목의 귓가에 대고 소리쳤다.

채아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화려한 주루를 날개로 가리키며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성에 들어오기 전에 분명 음식을 많이 먹었을 텐데?”

석목이 말했다.

“흥, 치사하기는!”

채아가 볼멘소리를 하며 날개를 펼쳐 날아갔다.

석목은 개의치 않고 객잔과 상점 등을 드나들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채아가 돌아왔다.

“석두, 저쪽에서 누군가 곡예를 하고 있어. 정말 화려하니 같이 가서 보자!”

채아가 석목의 머리 위를 선회하며 외쳤다.

“석두, 저쪽에서 누군가 보석을 팔고 있어. 정말 예뻐!”

“그리고 저기 저쪽을 봐. 저건 무슨 물건이지? 재미있게 생겼어!”

* * *

채아가 쉬지 않고 재잘대는 사이에 석목은 천우성에서의 첫째 날 일정을 마쳤다.

하늘이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 석목은 아무 객잔이나 찾아들어갔다. 그는 독립된 마당을 사용할 수 있는 방에 묵었다.

이날 들은 소식을 종합해봤을 때, 서문설과 같이 승선대전에 참여하는 각 종문의 제자는 육산왕조가 승선대전을 위해 설립한 숙소에서 머무는 것 같았다.

천우성은 너무 컸으며 이런 숙소 역시 굉장히 많았기 때문에, 그중에서 사람 한 명을 찾는 것은 사막에서 바늘 찾기와 다를 것이 없었다.

하지만 마양대전이 열리기까지 대략 칠 개월이 넘는 시간이 남아 있었고, 천우성에서 대진국의 천마종까지는 삼사 개월 정도면 충분히 갈 수 있었다. 그러니 시간은 아직 충분한 편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석목은 오늘 어느 상점의 주인으로부터 승선경매가 열리는 정확한 일시를 들었다. 경매는 한 달 후에 열릴 예정이며, 상당히 좋은 품질의 원숭이 정혈이 경매품으로 나온다고 했다.

그것은 대력마원탈태결의 5단계에 막혀 있는 석목에게는 매우 기쁜 소식이었다.

그래서 석목은 경매가 시작될 때까지 성에 머물며 서문설을 찾아본다는 계획을 세웠다.

* * *

천우성의 어느 외진 곳에 위치한 대저택.

건물은 겉으로 보았을 때 매우 낡아보였으며, 문과 창문의 염료도 상당히 벗겨진 채였다.

곳곳에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고 바닥에 마른 낙엽이 쌓여 있는 것으로 보아, 사람이 살지 않은지 굉장히 오래된 것 같았다.

하지만 저택의 규모와 구조, 치마와 기둥 장식의 정교함을 볼 때 이곳에는 엄청난 대부호가 살았던 게 분명했다. 또한 ‘천지무급(天地无极)’이라고 적힌 건물 앞의 웅장한 순금 편액으로 미루어, 이곳의 예전 주인은 신분이 굉장히 높은 사람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해가 지며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는 시간, 은색 옷을 입고 이마에 은색 띠를 두른 삼십 대 남자가 마당에서 무언가를 느끼려는 듯 두 눈을 감고 서 있었다.

그는 석목과 함께 입성한 유안이었다.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밤바람에 그의 붉은색 장발이 흩날렸다.

잠시 후, 두 눈을 뜬 유안은 평온한 눈빛으로 묵묵히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본 후, 동쪽의 한 방으로 들어갔다.

매우 넓은 그 방에는 가구가 완비되어 있었으며, 안의 장식은 단순하게 보였지만 고풍스러웠다.

방에 들어간 유안은 곧장 침상에 다가가더니 팔을 뻗어 침상머리를 누르고 돌렸다.

딸깍!

순간 그의 등 뒤에 있는 벽의 중앙이 갈라지더니 지하로 통하는 통로가 나타났다.

유안은 주저 없이 통로 안으로 들어가 사라졌다. 통로는 길지 않아서 곧 어두컴컴한 밀실이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둘레의 길이가 몇 장 되는 작은 밀실에는 중앙에 놓인 제사상 하나를 제외하고는 아무 가구도 놓여 있지 않았다.

제사상 위에 놓인 양초 두 개의 희미한 빛에 의해, 밀실의 양측에 세 남자와 두 여자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들은 유안이 들어온 것을 발견하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자 셋은 체구가 큰 얼굴이 붉은 사내, 상인으로 보이는 뚱뚱한 남자, 그리고 은색 단발의 청년이었다.

두 여자 중 한 명은 얼굴을 면사로 가리고 있었으며 키가 컸다. 다른 한 명은 키가 작았으며 붉은 옷을 입고 있었다.

“대사형!”

밀실에 있던 다섯 사람이 일제히 외쳤다.

유안이 아무 말 없이 다섯 사람의 앞을 지나 밀실 가운데의 탁자에 다가갔다. 그에게서는 매우 차가운 분위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제사상에는 ‘동방승천(东方冼天)’이라고 적힌 검은 위패가 올라 있었다.

퍽!

유안이 제사상 앞에 무릎을 털썩 꿇었다. 어느새 이마에 두르고 있던 은색 띠가 어느새 풀리면서, 이마의 정중앙에 새겨진 핏빛 초승달 문양이 드러났다.

세 남자와 두 여자도 유안의 뒤로 다가와서 똑같이 무릎을 꿇었다.

그 순간 밀실 내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스승님, 비록 사숙은 동의하지 않았지만 제가 왔습니다.”

“이번에는 그들이 대가를 치르게끔 할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나천귀왕(罗天鬼王)이 인간계에 현신해, 그들의 피를 천우성에 흩뿌릴 겁니다. 그들의 영혼으로 스승님의 영혼을 기리겠습니다.”

유안은 위패 앞에서 말한 뒤 머리를 바닥에 강하게 세 번 찧었다.

“교주님, 편히 잠드십시오.”

그의 뒤에 있는 다섯 사람 역시 유안과 함께 숙연한 표정으로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 * *

늦은 밤, 천우성의 서쪽 구역.

백 장 높이의 작은 산 정상에 있는 대전들 사이에서 규모가 가장 큰 금색 대전이 눈에 띠었다.

이 대전은 낮에는 일곱 색깔의 구름에 덮이고 저녁이 되면 금빛을 뿜어냈다. 성 곳곳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 빛을 볼 수 있었다.

이곳은 통천선교가 천우성에 설립한 분교였다.

통천선교는 육산왕조의 국교로 각 성에 분교가 설립되어 있지만, 그중 천우성의 분교가 가장 컸으며 그곳에서 승선대전이 이루어졌다.

교주가 있는 선교의 본교가 어디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누군가는 만 리 넘게 이어지는 삼청산맥에 있다고도 하고, 누군가는 천우성의 분교가 사실은 본교라고도 했다. 심지어 본교가 허공에 떠 있는 섬 위에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승선대전 전에는 선교의 교주가 반드시 천우성에 와서 대전을 직접 주최한다는 사실이었다.

금색 대전의 어느 편전 안, 파란 도복을 입은 노인이 꼿꼿하게 앉아 있었다.

노인은 나이에 비해 혈색이 좋고 신체가 강건해보였다. 또한 품격이 비범해 보여 세속을 초월한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그의 우측에는 몸이 마르고 허약해 안색이 창백한 소년이 의자에 쭈볏거리며 앉아 있었고, 반대쪽에는 위엄 있게 생긴 중년의 남자가 서 있었다.

파란 도복으로 옷을 갈아입은 그는 석목이 호위한 마차를 지키던 그 선천무인이었다.

“홍아야, 몇 년간 고생이 많았다. 네가 이전에 당한 일에 대해서는 본좌 역시 어느 정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제 천우성에 들어왔으니 이곳을 네 집이라 생각하고 편하게 지내도록 해라. 며칠간 푹 쉬면 이레 후에는 네 선조인 주진종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노인이 자상한 표정으로 말했다.

소년은 아무 말 없이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은 몇 마디를 더한 후에 두 젊은 도사를 불러 소년을 부축해서 나가게 했다.

“사람을 시켜 육선인에게 알려라, 홍아 역시 선인의 후손이니 반드시 알맞은 직위를 줘야 한다고…. 왕야로 봉하는 것이 좋겠구나.”

소년이 자리를 떠나자 노인은 중년 남자를 보며 말했다.

“교주님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중년 남자가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 * *

눈 깜짝할 사이에 며칠이 지났다.

천우성 서쪽 구역의 한 넓은 도로 위에서 회색 옷을 입은 청년이 느린 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그의 어깨 위에는 앵무새 한 마리가 앉아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청년은 바로 석목이었다.

이곳은 천우성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 중 하나인 서쪽 구역의 통마(通玛)거리였다. 길 위에는 인파가 북적였으며, 길가에는 각종 대형 상점과 주루가 흔하게 보였다.

하지만 석목은 한가하게 길거리를 감상할 여유가 없는 듯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석두, 오전 내내 걸었더니 피곤해 죽겠어. 잠시 쉬었다 가는 것이 어때?”

채아가 갑자기 말했다.

“네가 언제 걸었는데?”

석목은 채아의 머리에 딱밤을 날렸지만 시선은 여전히 앞을 보고 있었다.

그곳에는 눈에 띠는 커다란 건물이 있었다. 문이 크고 장식이 화려한 주루였다.

번화한 거리에서도 이 커다란 주루는 굉장히 눈에 띄었다.

주루의 정문에는 ‘도연거(陶然居)’라는 이름이 걸려 있었다. 꽤나 정취가 느껴지는 이름이었다.

채아의 말대로 오전 내내 걷느라 약간의 피로를 느낀 석목은 곧바로 주루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식사를 할 시간은 아니었기 때문에 주루 안에 손님은 많지 않았다.

“손님, 안으로 드시지요!”

석목이 들어오는 것을 본 점소이가 다가와 열성적으로 환영했다.

어깨에 앵무새를 올리고 있는 석목의 모습은 조금 특이해보였지만, 감히 얕볼 수 없는 위풍당당하고 사나워 보이는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게다가 천우성에는 현재 온갖 종류의 사람이 모여 있었다. 심지어 길거리에서 호랑이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까지 있었기 때문에, 새를 데리고 다니는 것 정도는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석목은 점소이의 안내를 받아 이층의 별실로 들어갔다. 그곳은 매우 고상한 분위기를 풍기는 공간이었고, 탁자와 탁자 사이는 병풍과 화분으로 가려져 있었으며 매우 조용했다.

이층은 탁자가 십여 개 밖에 놓여 있지 않아서 전혀 혼잡한 느낌이 없었다. 손님이 거의 없는 일층에 반해 이층에는 손님이 절반 가까이 차 있었다.

“차 한 잔과 간식 부탁해요.”

석목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나는 견과를 먹고 싶어.”

채아가 말했다.

점소이가 놀란 표정으로 채아를 바라보았다.

“간식은 견과류로 부탁할게요.”

석목이 말했다.

점소이는 다시 한 번 놀란 표정으로 채아를 보며 대답을 한 뒤 물러났다.

잠시 후, 점소이가 견과류와 향기로운 차를 내왔다.

석목은 손이 가는 대로 은자 몇 냥을 주고 점소이를 돌려 보냈다.

채아는 매우 즐거워하며 견과류를 먹고 차를 마셨다. 채아의 입맛에 상당히 잘 맞는 것 같았다.

그러나 채아처럼 마음이 편하지는 못한 석목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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