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161화 (161/916)

161화. 타향에서 지인을 만나다

요 며칠간 석목은 성 안에서 승선대전 참가자의 숙소를 몇 군데 찾아봤지만, 아무런 수확이 없었다.

사실 어찌 보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그런 숙소는 천우성 내에 백 개 넘게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나씩 찾다보면 세 달이 지나도 전부 돌아볼 수 있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었다.

석목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되는 것이 아닐까 고민했다.

바로 그때, 소란스러운 소리가 그의 생각을 방해했다.

“하하, 주 형의 실력이라면 이번 승선대전에서도 두각을 나타낼 것입니다. 등선하여 선인의 반열에 오르게 될 걸 미리 축하드립니다.”

“아닙니다. 곳곳에서 운집한 고수들이 대전에 참여할 텐데 저의 하찮은 재주는 말할 거리도 못 됩니다. 갈 씨 가문의 원령진공(元灵真功)은 육산왕조 내에서도 굉장히 유명하고, 갈 형은 이미 선천중기의 무인이니 저보다도 마지막으로 선택될 가능성이 훨씬 높을 겁니다.”

“과찬입니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리며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는 곳을 바라보았다. 멀지 않은 자리에 화려한 옷을 입은 청년 다섯 명이 앉아 있었다.

청년들은 모두 이십 대로 보였으며, 마치 주위에 사람이 없는 듯 큰 소리로 웃고 떠들며 서로를 추켜세우고 있었다.

그들은 몸에서 풍겨져 나오는 기세로 보아 모두 선천의 경지에 오른 것 같았으며, 복장을 보니 모두 유력한 가문의 자제인 것 같았다.

방금 들은 대화로 미루어보아 저들은 승선대회에 참여하는 각 종문의 제자들인 듯했다.

석목은 그들을 한 번 보고 시선을 거두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시끄럽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화제는 점점 다른 곳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신저 형, 오후에 시간 있습니까? 황 씨 상점에서 경매가 열린다고 하던데, 규모는 크지 않지만 가볼만 할 겁니다.”

노란 옷을 입은 덩치 큰 청년이 파란 옷을 입은 청년을 바라보며 말하자, 다른 이들의 시선도 그를 향했다.

균형 잡힌 몸매를 가진 파란 옷의 청년이 신비롭게 웃으며 말했다.

“오후에는 할 일이 있네.”

“벽옥(碧玉)거리에 가려는 것이죠? 그곳에 절세미녀가 한 명 나타났다고 하던데, 요즘 틈만 나면 그곳에 갔잖아요.”

다른 청년이 웃으며 말했다.

“어떤 여자이기에 신저 형이 그렇게 마음에 들어 하는 거죠?”

노란 옷을 입은 청년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나도 단 한 번 밖에 본적이 없네. 확실히 선녀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아름다웠지. 육산왕조에서 아름답기로 유명한 월애공주와 비교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을 것이네.”

석목은 미간을 찌푸리며 한 입에 차를 털어 넣은 뒤 바로 아래로 내려가려 했다.

“그녀는 반 년 전 천우성에 도착했는데, 대륙 동부에 위치한 반도의 작은 종문에서 왔다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들은 석목이 눈을 반짝이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신저 형,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을 우리에게 소개시켜주지 않다니, 설마 혼자만 즐기려 했던 겁니까?”

노란 옷을 입은 청년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갈 형이 잘 모르시는군요. 그녀는 천우성에 도착한 이후 숙소에서 거의 나오지 않고 있죠. 듣기로는 그녀의 성격은 매우 차가워서 쉽게 사람을 만나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신저 형마저 몇 번이나 문전 박대를 당했죠. 몇몇 사람은 그녀를 얼음선녀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다른 청년이 웃으며 말했다.

“흥! 그때는 준비가 부족했을 뿐이네. 이번에는 다를 것이야.”

파란 옷을 입은 청년이 그렇게 말하며 반지를 손가락으로 누르자 파란색 비단함 한 개가 나타났다. 그가 비단함을 열자 그 안에는 녹색 팔찌가 들어 있었다. 표면에 부문이 새겨져 있고 담청색 빛을 뿜어내는 그 팔찌는 상당히 등급이 높은 법기인 것 같았다.

“역시 선계에 등선해 가문을 돌보는 조상이 있어서인지, 신저 가문은 정말 대단하군요. 최소 중급 영석 두 개의 값어치를 하는 옥팔찌를 여성의 환심을 사기 위해 내놓다니요.”

노란 옷을 입은 청년이 말했다.

“하하, 그럼 우리도 함께 가는 것이 어떻습니까?”

한 청년이 말했다.

“좋네, 지금 바로 가지.”

파란 옷을 입은 청년은 상자를 저장반지에 넣은 후,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이들과 함께 아래로 내려갔다.

석목 역시 몸을 일으켜 그들을 따라갔다.

“석두, 벌써 가려고?”

채아가 말했다.

석목은 대답하지 않고 순식간에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채아가 다급히 날개를 퍼덕이며 쫓아왔다.

화려한 옷을 입은 청년들은 주루를 나선 뒤 파란 옷을 입은 청년의 안내에 따라 빠르게 걸었다.

그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뒤따라 가다보니 석목은 곧 어느 한적한 거리에 도착했다.

그때, 청년들이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섰다.

“네놈은 뭔데 우리를 따라오지?”

음침하게 생긴 한 청년이 다가와 석목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마침 이 길을 걷고 있었을 뿐입니다.”

석목이 말했다.

“흥! 시치미 떼지 마라. 도연거에서 나온 순간부터 줄곧 따라오고 있지 않느냐? 우리가 알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청년이 말했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저는 정말로 제 갈 길을 가고 있을 뿐입니다.”

석목이 계속해서 시치미를 뗐다.

그러자 청년이 화가 난 표정을 지으며 석목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뭐하는 거지? 지금 싸우자는 건가? 우리가 무서워할 줄 알고?”

석목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채아가 옆에서 먼저 크게 소리를 질렀다.

“진 형, 승선대전이 얼마 남지 않았네. 선종(仙宗)에서 싸움을 금지시켰으니 괜한 짓을 해서 눈 밖에 나지 않는 것이 좋겠네.”

파란 옷을 입은 청년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렸다.

“흥, 운 좋은 줄 알거라!”

음침하게 생긴 청년은 차가운 눈빛으로 석목을 한 번 바라보고 몸을 돌려 걸어갔다.

그들이 다시 발걸음을 옮기자 석목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그들을 쫓았다.

“네가 정말 죽고 싶구나!”

음침하게 생긴 청년이 분노해서 외쳤다. 다른 이들의 표정도 굳었다.

“아무 짓도 하지 않을 테니 가던 길 가시지요.”

석목이 말했다.

“서로 갈 길을 가면 될 것을, 우리가 어디로 가든 무슨 상관이지?”

채아가 말했다.

그러자 화가 난 청년의 몸에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 파란 옷을 입은 청년이 그의 어깨를 붙잡았고, 청년이 몸의 푸른빛을 거두어들였다.

파란 옷을 입은 청년이 석목을 유심히 바라보며 말했다.

“귀하가 누구고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지만 하나만 가르쳐주겠소. 이곳 천우성에서는 누구에게든 원한을 사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오.”

“가르침 감사합니다.”

석목이 웃으며 예의바르게 대답했다.

파란 옷을 입은 청년은 콧방귀를 뀌고 계속해서 걸어갔다.

반 시진 후, 일행은 어느 조용한 숙소 앞에 도착했다. 통천선교 복장을 한 두 명의 보초가 숙소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파란 옷을 입은 청년 일행이 주먹만 한 크기의 옥패를 꺼내보였다. 그러자, 두 보초는 그들을 제지하지 않고 바로 안으로 들여보냈다.

“이곳은 승선대전 참가자들의 숙소요. 관련이 없는 사람은 들어가지 못하오.”

석목이 숙소로 들어가려 하자, 보초 중 한 사람이 팔을 뻗어 그의 앞을 막으며 말했다.

석목은 웃으며 진묘계에서 영석 두 개를 꺼냈다. 두 보초의 눈빛이 순간 탐욕스럽게 변했다.

들어가 보니 파란 옷을 입은 청년 일행은 방에 딸린 작은 마당 문 앞에 모여 있었다.

파란 옷을 입은 청년이 뜨거운 눈빛으로 문을 두드렸다.

“신저광이 소저를 만나러 왔습니다. 얼굴을 한 번 보여주실 수 있겠습니까?”

파란 옷을 입은 청년이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신저 공자, 소녀는 오늘 몸이 좋지 않으니 돌아가 주세요.”

꾀꼬리 같은 목소리가 안에서 들려왔다.

“소저, 어디가 편찮으신지요? 제가 의학에 정통해 있고 각종 단약과 부적을 가지고 있으니 도움이 될 겁니다. 마음에서 우러러 나오는 성의니 소저께서 단호하게 거절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파란 옷을 입은 청년이 말하자 안에서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그들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며 석목이 빠르게 다가왔다.

석목은 먼 곳에서 그들의 대화를 어렴풋이 들었다. 내용을 정확히 듣지는 못했지만, 방 안에서 들리는 여자의 목소리는 아주 귀에 익은 것이었다.

“설마….”

석목의 가슴속에서 감격이 솟아올랐다.

방문에 대고 무언가 말하려던 청년이 갑자기 나타난 석목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끼익!

바로 그때, 방문이 천천히 열렸다.

파란 옷을 입은 청년은 매우 기뻐하며, 드디어 열리는 문을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방 안에 있는 여자를 처음 보고 한 눈에 반한 청년은 그 뒤로 그녀에게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근래에 이곳을 찾아온 횟수는 이미 열 번이 넘었다. 그러나 그의 부름에 그녀가 응해서 나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으니, 어찌 감격스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문이 열리며 녹색 옷을 입은 아름다운 소녀가 나타났다.

소녀의 생김새는 마치 그림과 같았다. 목은 길었으며, 얇은 허리에 은백색 옥대를 차고 있었다. 선녀 같은 그녀의 모습은 우러러보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을 것처럼 아름다웠다.

그런데 그 소녀를 본 석목은 순간 멍해졌다.

그녀는 서문설이 아니었지만, 석목이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바로 종수였다.

종수는 속으로 짜증을 내며 문 밖에 있던 청년을 훑어봤다.

이들은 모두 신분이 높기 때문에 원한을 사서 좋을 것이 없었고, 그래서 종수는 단호하게 거절을 할 수가 없었다.

바로 그때, 사람들을 훑어보던 그녀의 시선이 회색 옷을 입은 청년에게 고정됐다.

파란 옷을 입은 청년은 뜨거운 눈빛으로 종수에게 다가가 입을 열려 했다.

그 순간, 눈앞의 아름다운 여인이 갑자기 녹색 잔영을 남기며 석목을 향해 달려들었다.

“석 오라버니!”

그녀가 그윽한 향기를 풍기며 석목의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종 소저….”

좋은 향기가 나는 종수의 부드러운 몸을 품에 안은 석목은 순간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 광경을 본 청년들은 모두 크게 놀랐다.

얼굴이 파랗게 질린 파란 옷의 청년은 마치 불이라도 뿜어져 나올 듯한 두 눈으로 석목을 표독스럽게 바라보았다.

쾅!

청년의 몸에서 파란 화염이 솟아올랐다.

주위의 다른 청년들은 잠시 서로 마주보더니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그들은 모두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찾았다는 듯 설레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우성에는 현재 싸움 금지령이 내려진 상황입니다. 게다가 이곳은 승선대전을 위한 숙소지요. 만약 이곳에서 싸움을 벌인다면 상부에 보고해서 당신들의 참가 자격을 박탈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 뒤에 어느새 중년의 남자가 서 있었다.

남자는 문을 지키는 이들의 것보다 훨씬 화려한 통천선교의 복장을 하고 있었고, 몸에서는 선천무인의 강력한 기운이 느껴졌다.

파란 옷을 입은 청년은 놀란 표정이 되어 파란 불꽃을 거두어들였다.

그때, 석목과 떨어져서 얼굴을 붉히고 있던 종수가 주위의 사람들을 한 번 보더니, 살짝 넋이 나간 석목을 잡아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흥, 이만 돌아가지!”

파란 옷을 입은 청년은 흉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벌컥 화를 내고 가버렸다. 그의 일행들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청년의 뒤를 쫓았다.

중년의 남자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고, 굳게 닫힌 문을 한 번 보더니 자리를 떠났다.

한편 석목과 종수는 방 안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종수는 얼굴에 홍조를 띤 부끄러운 표정이었지만, 꿋꿋하게 석목을 마주보고 있었다.

석목과 종수를 번갈아 보던 채아는 심심한 듯 하품을 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방안을 둘러보았다.

마당의 내부는 매우 아름다웠다. 왼쪽에는 푸른 소나무가 한 그루 있었고, 오른쪽에는 사람 키의 세 배 정도 되는 곧게 뻗은 대나무가 자라 있었다.

채아는 날개를 펼치더니 대나무 위로 날아갔다.

석목은 날아가는 채아를 한 번 본 뒤 종수에게 잡힌 손을 천천히 뺐다.

종수의 눈에 상심한 기색이 희미하게 스쳐지나갔지만 이내 사라졌다. 그녀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오라버니, 이곳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어요.”

“나 역시 마찬가지예요. 이곳에 종 소저가 있다니 정말 놀랐어요. 종 소저도 승선대전에 참가하는 건가요?”

석목이 물었다.

“맞아요. 승선대전은 흔치 않은 기회니까요. 비록 제 실력이 특출하지는 않지만 종문의 신임을 받아 도전하게 됐어요.”

그녀는 웃으며 대답했다.

“얘기하느라 오라버니를 계속 밖에 세워뒀네요. 안으로 들어와 앉으세요.”

종수가 미안해하며 석목을 방 안으로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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