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163화 (163/916)

163화. 천위(天位)

반 시진 후, 석목이 종수가 머무는 곳에 도착했다.

그가 도착했을 때 마당의 대문은 이미 열려 있었고, 그 안에서 대화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종 소저, 안녕하세요. 오늘은 앙선대회가 열리는 날입니다. 제가 가장 좋은 위치에 자리를 잡아놨으니….”

석목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이 목소리는 파란 옷을 입은 그 청년의 것이었다.

“신저 공자님의 호의에 감사하지만 필요 없습니다.”

종수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하, 종 소저, 아실런지 모르겠지만 저희 신저 가문에는 과거 등선한 선조가 있습니다. 이번에 강림하는 선인이 어쩌면 우리 신저 가문의 선조일 수도 있는 것이지요. 종 소저의 타고난 자질이 비범하니, 이번 승선대회에서 제 도움을 받는다면 반드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추후 선계에 오른 후에도 서로 도움을 줄 수 있겠지요.”

청년이 계속 말했다.

“공자님의 호의에 감사하지만 이번 영선대회는 이미 함께 가기로 한 사람이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한 명이 더 있으면 한 명 더 함께 하면 되는 것이지요. 셋이 함께 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청년이 포기하지 않고 밀어붙였다.

여기까지 들은 석목은 미간을 찌푸리며 재빨리 정원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그곳에서는 청년이 종수에게 치근덕거리고 있었다. 그와 같이 있던 무리는 없었다.

종수는 짜증을 참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성격상 단호한 거절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라버니!”

석목을 발견한 종수가 순간 얼굴에 웃음꽃을 피우며 다가갔다. 그녀는 그의 뒤에 섰다.

청년이 몸을 돌려 석목을 보더니 표정이 굳어지며 말했다.

“너는 도대체 어디서 온 누구냐?”

“제가 누구인지 귀하와는 아무 관련이 없으니 신경 쓰지 마시지요. 종 소저는 저와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돌아가십시오.”

석목이 뒷짐을 지고 서서 말했다.

“돌아가십시오.”

채아가 종수의 어깨로 날아가며 석목의 말을 되풀이했다.

“네가 누구든 머리가 있다면 나와 종 소저를 방해하지 말거라. 흥, 등선의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 어찌 종 소저와 어울린단 말이냐?”

청년이 말했다.

“정말 시끄럽군!”

채아가 청년을 한 번 흘겨보고는 머리를 돌려 종수를 바라보았다.

“예쁜 누님, 저 자는 거들떠도 보지 마세요. 이 성에는 사기꾼이 정말 많답니다. 가난뱅이들이 좋은 옷을 빌려 재산을 갈취하고 여인의 몸을 탐하는 등 공공연히 사기를 치지요.”

채아가 큰 소리로 말하자 석목이 웃었고, 종수도 참지 못하고 살짝 미소를 지었다.

“헛소리! 천우성에서 내가 신저 가문의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는 자가 없거늘, 이런 모욕을 주다니!”

청년이 벌컥 화를 내며 소리쳤다.

“그럼 가문에 좋은 물건이 많이 있겠네?”

채아가 말했다.

“그야 당연하지!”

청년이 가슴을 펴며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너희 집에도 나처럼 말할 수 있는 앵무새가 있어? 누님은 나를 제일 좋아하는데.”

채아가 말했다.

청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신저 가문은 분명 대가였지만, 채아와 같이 지능이 있으며 사람과 대화가 가능한 앵무새는 없었다.

종수는 채아의 털을 가볍게 만지며 무척 아낀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채아는 털이 보송보송한 머리를 종수의 아름다운 손에 비볐다.

“내가 그 앵무새를 사겠으니 마음껏 가격을 부르시게.”

청년이 시선을 돌려 석목에게 말했다.

“팔지 않습니다.”

석목이 귀찮아하며 말했다.

청년이 다시 한 번 말문이 막혔다.

“종 소저, 영선대회가 곧 시작할 테니 어서 가지요.”

석목이 고개를 돌려 종수에게 말했다.

종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방문을 닫았다.

두 사람은 더 이상 청년을 상대하지 않고 함께 마당 밖으로 사라졌다.

청년은 화가 나서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그들이 이미 나가버렸으니 그 역시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숙소를 떠난 석목과 종수는 통천선교의 분교가 위치한 성의 서쪽으로 향했다.

“곤경에서 구해줘서 고마워요.”

종수가 비단옷을 입은 석목을 힐끔힐끔 보며 말했다.

“별일 아니니 고마워하지 않아도 돼요, 종 소저.”

석목이 말했다.

“어려서부터 함께 알고 지냈는데, 그렇게 서먹서먹하게 대하지 말고 수아라고 불러주세요.”

고개를 살짝 숙인 종수가 석목에게 약간 가까이 다가가며 말했다.

석목의 얼굴에 조금 난처한 빛이 떠올랐다.

“영선대회가 곧 시작할 테니 조금 서둘러 가지요.”

석목이 말하며 걷는 속도를 높였다.

종수는 작은 소리로 대답하고 그를 쫓았다.

종수가 머무는 곳은 성의 서쪽구역에서 멀지 않았기에, 두 사람은 곧 산자락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해보니 인파가 평소보다 몇 배 이상 많았으며, 전부 일반 백성이었다. 그들은 산에 오를 자격이 없었지만 선인에 대한 호기심을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멀리서라도 선인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 산 아래 모여든 것이었다.

사람들은 벌써부터 잔뜩 흥분한 채 선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몇몇은 선인이 얼마나 신통한지, 혹은 선인이 거주하는 선계는 어떤 모습인지에 대해 목에 핏대를 세우고 논쟁을 하고 있었다.

석목과 종수는 군중 속을 비집고 들어가서 목적지인 통천선교의 분교에 도착했다.

분교의 밖에 있는 거대한 광장에는 이미 몇 만 명이 넘는 사람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광장의 바깥에는 고관과 세력가, 그리고 일부 성의 명망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복장이 화려했고, 식솔과 몸종까지 데리고 있었다. 육산왕조의 귀족, 각지의 가문과 종문에서 모인 사람들도 모두 그 자리에 있었다.

“반 대인, 정말 선인이 강림할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반평생을 관직에 몸을 바치고 낙향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선인의 강림을 목도하게 되다니…. 충분히 만족스러운 일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겠구나.”

“나는 자산을 탈탈 털어서라도 내 손자아이를 통천선교에 보낼 것이네. 그럼 이후에 선인이 될 수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선인이 강림한다는 소문으로 떠들썩한 천우성의 모든 사람이 경건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산자락의 백성들이든 이곳에 있는 고관과 세력가들이든, 선인의 모습을 한 번 보고 싶다는 마음은 똑같았다.

“정말 시끌벅적하군요.”

석목이 눈앞의 상황을 보며 감탄했다.

광장의 중앙에는 거대한 제단이 하나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제단의 주위에는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으며, 때때로 빛줄기가 하늘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거리가 너무 멀어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여기는 외곽이라 잘 보이지 않네요.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 봐요.”

종수가 석목을 잡아끌며 한쪽에 있는 문으로 향했다. 통천선교의 파란색 도복을 입은 제자들이 그 문을 지키고 있었다.

종수가 승선대전의 참가영패를 내보였다. 문을 지키던 제자들은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두 사람을 광장의 내부로 들여보냈다.

광장 안쪽에 서 있는 사람 대부분은 이번 승선대전에 참가하는 재능이 뛰어난 청년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온 일행이었다. 모두 마찬가지로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석목과 종수는 사람이 비교적 적은 곳을 찾아서 자리를 잡고 섰다.

광장의 중앙에는 거대한 제단이 서 있었는데, 그 주위를 통천선교의 제자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제단 위에는 열 명이 넘는 사람이 앉아 있었다. 거리가 비교적 멀었지만, 석목은 그들 중 몇 사람이 찰고 이상의 강력한 기운을 풍기는 것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가운데 용포 차람의 중년 남자의 옆에 있는, 도복을 입은 백발의 노인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깊고 커다란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

“가운데의 도복을 입은 노인이 통천선교의 교주인 무진도인이에요. 그의 경지는 이미 지계를 뛰어넘어 전설 속 천위(天位)의 경지에 올랐다고 하죠. 그리고 그 옆에 용포를 입고 있는 사람이 육산왕조의 황제 육선인이에요.”

종수가 석목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알아차리고 말했다.

“천위요?”

석목이 놀라서 말했다. 그가 아는 무인의 경지는 수련자부터 시작해서 후천, 선천, 지계뿐이었다. 지계 위에도 경지가 있긴 하겠지만, 천위라는 단어는 처음 들어본 것이었다.

“오라버니도 이제껏 들어본 적이 없나보군요. 사실 저도 과거에 스승님께 듣고 매우 놀랐어요.”

종수는 석목의 표정을 보고 아름답게 웃으며 계속 설명을 이어갔다.

“지계의 경지에 오른 자는 이미 초월적인 존재로 적수를 찾기가 어렵지요. 하지만 거기서 다시 한 단계가 올라 천위의 경지에 오르면, 독수리로 변해 아흐레 동안 하늘을 나는 등 거의 반 선인의 존재로 탈바꿈할 수 있다고 해요. 육산왕조에서 천위의 경지에 오른 이는 무진도인 한 사람 뿐이에요.”

“그렇군요.”

석목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 도인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채아도 그의 강력한 기운을 느꼈는지 석목의 어깨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비록 두리번거리는 것은 멈추지 않았지만,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석목은 시선을 거두고 주위 사람들 너머로 사방을 둘러보며 서문설의 모습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시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이토록 많고 많은 사람 사이에서 한 사람을 찾는 것은 바다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는 천천히 시선을 거두고 쓴웃음을 지었다.

“오라버니….”

종수는 그런 석목을 보고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지만,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더니 무언가 말하려 했다.

바로 그 순간, 파란 하늘에서 갑자기 알록달록하고 눈부신 빛이 나타났다. 그 빛은 멀리서부터 가까워지면서 빠르게 커지더니 하늘의 반쪽을 밝게 비췄다.

점점 밝아지는 빛 속에서는 듣기 좋은 풍악소리가 들려왔으며, 그 소리도 점차 커졌다.

사람들이 놀란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멀리서 일곱 빛깔의 구름이 나타났다. 구름은 빛을 따라 빠르게 광장을 향해 날아왔다. 그 위에는 두 사람이 타고 있는 게 어렴풋이 보였다.

“세상에! 어서 봐! 선인이야!”

“정말 선인이 강림했어!”

“두 명이 있어!”

“내…내가 선인을 보다니!”

광장 안팎에서 놀라움의 외침이 수없이 울려 퍼졌다.

산자락에 있던 백성들은 모두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구름의 방향을 향해 각자 절을 하거나 두 손을 모아 기도하기 시작했다.

이어 아래로 내려오는 일곱 빛깔의 구름에서 노을빛이 뿜어져 나와 구름을 감쌌다.

광장의 상공에 멈춰선 구름 위에는 두 사람이 서 있었다. 한 사람은 눈썹과 머리카락이 전부 하얗게 센, 흰 도복을 펄럭이는 노인이었다.

세속을 초월한 듯한 그의 모습은 제단 위에 있는 통천선교의 교주와 비슷했다. 다만 그 정도가 한층 더하다는 차이가 있었다. 손에 들고 있는 눈처럼 하얀 불자, 그리고 몸에서 뿜어내는 하얀 빛살이 그에게 신성한 분위기를 더해주고 있었다.

다른 한 사람은 보라색 옷을 입은 준수한 외모의 중년 남자였다. 전신에 보라색 붗꽃이 튀는 모습이 마치 고대의 뇌신(雷神)이 빙의한 것처럼 위협적이었다.

중년 남자는 몸이 작고 마른, 안색이 창백한 남자아이를 부축하고 있었다.

두 선인의 모습을 관찰하던 석목은 마지막으로 작은 남자아이에게 시선을 돌렸다가 놀란 표정이 되었다.

그 아이는 그가 천우성으로 오던 길에 위험에서 구해준, 마차에 타고 있던 바로 그 아이였다.

“무진이 두 분의 왕림을 환영합니다!”

통천선교의 교주 무진도인이 천천히 날아올랐다. 그는 두 선인의 앞에 멈춰서 허리를 숙여 예를 표했다.

“환영합니다!”

이어 아래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그치고, 육산왕조의 왕과 통천선교의 모든 사람, 그리고 승선대회 참가자들이 허리를 숙여 예를 표했다. 몇몇은 바닥에 두 무릎을 꿇기도 했다.

“예의 차릴 필요 없다. 명을 받고 인간 세상을 순시하러 왔다가 마침 천우성에서 곧 승선대회가 열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특별히 와보았다.”

백발의 노인이 불자를 휘두르자 온 광장에 부드러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허리를 숙여 예를 표하고 있던 석목은 부드러운 힘에 의해 몸을 폈다. 주위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몸을 일으키는 것을 본 석목은 크게 놀랐다.

노인은 손짓 한 번만으로 광장에 있는 수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몸을 동시에 일으켜 세운 것이다.

석목으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고강한 실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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