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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165화 (165/916)

165화. 빗속의 이별

석목은 침울한 표정으로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서문설 역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방 안은 한동안 침묵에 휩싸였다.

“설 사저, 오늘 이후 다시 만날 기회가 있을까요?”

한참 후, 석목이 말했다.

“얼마 뒤 나를 포함해 선택될 가능성이 높은 제자들이 폐관수련에 돌입할 거야. 통천선교에서 단기간 내에 높은 성과를 이룰 수 있도록 단약과 밀실을 준비해놨어.”

서문설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확고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동주대륙에서는 자질이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천위의 경지에 오를 기회가 거의 없어.”

“동주대륙 내에 천위의 경지에 오른 자가 몇이나 있죠?”

석목이 찻잔을 만지작거리다가 갑자기 물었다.

“구체적인 수는 알 수 없지만, 통천선교의 교주 무진도인과 대진국 천마종의 종주 사도호를 포함해서 인족에서 천위의 경지에 오른 이는 다섯 명이 넘지 않을 거야.”

서문설이 말했다.

“그렇게나 적어요?”

석목이 의외라는 듯 물었다.

“동주대륙의 자연의 기운은 제한적이야. 전승되는 고급 심법 역시 마찬가지지. 지계에 오르는 것조차 굉장히 뛰어난 자질을 가져야 할 뿐만 아니라 운도 좋아야 하지. 사제는 이렇게 어린 나이에 선천의 경지에 올랐으니 지계의 경지에 오를 가능성이 매우 높겠지. 사제는 지계의 경지에서 수련을 멈추고 앉아서 수명이 다할 날만을 기다릴 거야?”

서문설이 물었다.

“당연히 아니죠.”

석목이 망설임 없이 말했다.

“천마종의 마양대전도 곧 열리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네가 마양단(魔阳丹)을 먹는다 해도 우리가 다시 만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할 거야…. 참, 이건 고혼단(固魂丹)이야. 원래 사람을 시켜 보내려 했는데 이미 종문을 떠났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

서문설은 오른손에 끼워진 은반지에서 옥상자를 꺼내 석목에게 건넸다.

“등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가지고 있다가 사저가 먹어요.”

석목이 사양하며 말했다.

“난 이미 한 알 복용했기 때문에 필요 없어. 이전에 네가 준 청명과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하고 받아줘.”

서문설이 옥상자를 흔들며 말했다.

“고마워요, 설 사저.”

석목은 잠시 망설이다가 상자를 받았다.

“제가 천우성에 온 것은 설 사저를 만나기 위해서였어요. 이제 소원을 이루었으니 저는 금 사저와 함께 천마종으로 갈 거예요.”

석목이 말했다.

“금 사저가 너를 데려온 것은 내가 승선대전을 포기하도록 설득시키기 위해서야?”

서문설이 갑자기 물었다.

“맞아요. 하지만 설 사저가 이미 마음을 굳힌 것을 알았으니 더는 말리지 않겠어요.”

석목이 말했다.

“그녀는 줄곧 제멋대로 살아와서 너무 많은 사람의 원한을 샀어. 만일 금 씨 가문의 어르신이 미래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내가 떠난 이후 네가 금 사저를 잘 보살펴주길 부탁할게. 너의 자질이라면 늦든 빠르든 흑마문의 주축이 될 테니까.”

서문설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금 사저는 저에게 잘해주니 저 역시 반드시 그녀를 잘 보살필 거예요.”

석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석목, 고마워. 나가서 잠시 정원을 걷자. 선천의 경지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궁금한 것이 있다면 묻도록 해. 너는 몰랐겠지만, 사실 난 무공과 술법을 동시에 수련하니까.”

서문설이 찻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마워요.”

석목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따라와.”

서문설은 앞장서 통로를 향해 걸어갔다.

석목은 서문설의 뒤를 따르며, 그녀의 우아하고 매혹적인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반 시진 후, 정원의 입구.

하늘에서 가랑비가 내려서 옷이 모두 젖었지만 두 사람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서문설의 하얀 옷은 완전히 몸에 달라붙어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가 더욱 돋보였다.

비록 밤이 깊었지만 어둠은 석목에게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았다. 서문설의 몸에 눈길이 닿는 순간, 석목은 가슴이 뛰는 것을 느끼며 바로 시선을 거두었다.

“오늘 사저와의 대화를 통해 정말 많은 것을 배웠어요. 역시 3국 7종의 천재라는 명성에 어울리는 실력을 갖고 있네요.”

석목이 말했다.

“너무 겸손하구나. 나는 네 나이 즈음에 지계의 무인을 상대로 절대 도망치지 못했을 거야.”

서문설이 말했다.

“설 사저, 이만 들어가세요. 사저가 빠른 시일 내에 천위의 경지에 오르기를 바랄게요.”

석목은 정원의 문 밖을 한 번 보고 몸을 돌리며 말했다.

“인연이 있으면 다시 보자. 나와 약속한 일을 잊지 마.”

서문설은 아름답게 웃으면서 이마에 붙은 머리카락을 넘기며 말했다.

석목은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돌려 화원의 밖으로 의연하게 걸어 나갔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발자국이 남아 빗물이 고였다.

서문설은 이미 멀어진 석목을 바라보며 한참을 가만히 서 있었다. 그녀가 서있 는 바닥의 발자국이 점점 깊어져 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서문설은 갑자기 오른손을 들었다. 아마도 옷소매로 얼굴의 빗물을 닦아내는 것 같았다.

잠시 후 그녀는 몸을 돌려 방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눈처럼 하얀 두 발이 바닥의 진흙을 밟을 때마다 흙탕물이 튀어올랐다.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은 점차 빗속으로 사라져갔다.

* * *

금소채는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정자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그녀는 온 몸이 젖은 석목을 발견하고 다가와 물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설아는 마음을 돌렸어?”

채아도 금소채의 어깨에서 맥없이 말했다.

“석두, 드디어 나왔구나. 조금만 더 늦었으면 내가 찾으러 들어가려 했어. 기다리다가 배고파 죽는 줄 알았어.”

석목은 채아를 무시하고 금소채에게 말했다.

“우선 이곳을 떠나서 애기하죠.”

금소채는 잠시 멍청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앞장서 걸었다. 석목은 그녀의 뒤를 쫓아 통천선교의 분교가 위치한 작은 산을 벗어났다.

거리에는 밤이 깊어 인적이 드물었고, 비는 이미 그친 상태였지만 하늘이 우중충해서 달빛은 보이지 않았다. 성 서쪽 구역의 넓은 거리로 나왔는데도 단 한 명의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며칠 후에 폐관 수련에 들어간다고 했어요. 어쩌면 오늘이 제가 그녀를 만난 마지막 날일지도 모르죠. 그녀가 꿈꾸는 것은 천계에요. 그녀는 이곳에서 만족할 수 없어요.”

석목이 걸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나도 알고 있었어. 내가 이기적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저 그녀가 거기서 기댈 곳 없이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하지나 않을까 걱정됐어.”

금소채가 담담하게 말했다.

“만약 동주대륙에서 천위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면, 어쩌면 그녀도 떠나지 않을지 몰라요. 그녀는 사저를 매우 걱정하고 있거든요.”

석목이 말했다.

“내가 원한을 산 사람이 많다고 걱정했겠지? 쓸데없는 걱정은!”

금소채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어요.”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야! 됐어, 이제 우리 사이에 계산은 끝났어.”

“금 사저,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죠?”

금소채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우선 천마종으로 가서 종문의 임무를 완수하려고 해. 마양대전이 끝난 후에는 대륙을 두루 돌아다닐 생각이야. 이렇게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으니 돌아다니면서 기분전환이나 해야지. 너는?”

“누님, 저도 기분전환하고 싶어요. 저도 데리고 가면 안 되나요? 말 잘 들을게요.”

옆에서 듣고 있던 채아가 두 눈을 빛내며 큰 소리로 말했다.

“채아, 넌 조용히 해!”

석목이 채아를 노려보자 채아가 목을 움츠렸다.

“저는 이번 승선경매에 참여할 거예요. 그 후 천마종에 가서 마양대전에 참여해야겠죠.”

석목이 말했다.

“쯧쯧, 야심이 크구나? 참, 서문설이 갔다고 종수로 갈아타려는 것은 아니겠지?”

금소채가 말했다.

“오해하지 마세요. 그녀와는 오빠와 동생 사이니까요.”

석목이 말했다.

“믿을 수 없어. 남자는 예쁜 여자라면 전부 좋아하잖아. 네 성이 석이고 그녀는 성이 종인데, 오빠와 동생이라니? 그걸 누가 믿어?”

금소채가 말했다.

“석두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그리고 종 누님이 매우 예쁘긴 하지만 금 누님에 비해서는 한참 부족한 걸요.”

채아가 또 끼어들었다. 그러나 석목이 다시 한 번 시선을 주자 놀라서 날개로 머리를 가렸다.

* * *

두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석목이 머무는 객잔 앞에 도착했다. 금소채는 채아를 석목에게 넘긴 뒤 자신이 빌린 다른 객실로 갔다.

객실 안으로 돌아온 석목은 침상에 누웠다. 그러나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한참 후,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그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오른손에 끼워진 진묘계에서 복잡한 술법진이 새겨진 푸른색 채찍을 꺼내들었다.

잠시 후, 석목은 금소채의 방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 * *

다음날 아침, 누군가 마당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침상에서 몸을 일으킨 석목이 문을 열자 녹색 옷을 입은 종수가 웃으며 서 있었다.

“수아야.”

“오라버니, 무슨 일이에요? 어젯밤에 잘 못 주무셨어요?”

종수는 피곤해 보이는 석목의 얼굴을 보고 물었다.

“별일 아니야. 들어와. 오늘은 무슨 일로 찾아온 거야?”

석목은 손가락으로 미간을 주무르며 마당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종수가 말했다.

“천우성은 동주대륙에서 제일 큰 성이잖아요. 저는 이곳에 온 이후로 제대로 구경을 한 적이 없어요. 오늘은 날씨도 좋고 하니…. 오라버니와 함께 성을 구경했으면 좋겠어요.”

그녀의 앞에서 걷던 석목은 잠시 주저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좋아.”

종수는 기쁜 표정을 지으며 석목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섰다.

석목은 방으로 돌아가 대충 정리를 한 뒤 채아와 종수를 데리고 밖으로 나섰다.

두 사람은 마차를 하나 빌린 뒤 반나절 동안 천우성의 명소들을 구경했다. 향이 타오르는 보국사(报国寺), 장사꾼이 운집해 있는 회남가(淮南街), 한 눈에 천우성의 경치를 내려다볼 수 있는 명주탑(明珠塔)….

두 사람은 곳곳을 돌아다니고 구경하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특히 이전에 풍성의 사유지에서 보낸 나날들, 그리고 종문에서 수련하며 겪었던 재미있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종수는 연약하고 도움 받을 곳 없었던 옛날의 작은 아가씨로 돌아간 듯,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선천의 경지에 오른 데다 탁월한 자질을 인정받은, 곧 승선대회에 참여하는 종문의 핵심 제자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석목도 온갖 번뇌를 잠시나마 떨쳐버리고 그 순간을 즐겼다. 그는 종수가 재잘대는 이야기를 마치 평범한 집안의 큰오빠처럼 묵묵히 들어주었다.

채아는 둘 사이에 틈틈이 끼어들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거나, 석목이 난처해할 만한 폭로를 해서 종수를 웃게 만들었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 어느덧 저녁이 되었고, 종수의 숙소 앞에 마차가 멈췄다.

“오라버니, 고마워요. 오늘은 정말 즐거웠어요.”

종수가 문 앞에 서서 말했다.

“채아도 오늘 매우 즐거웠어요. 누님, 앞으로도 석두를 자주 찾아와요.”

하루 종일 신나게 놀며 종수에게 맛있는 음식을 얻어먹은 채아는 흥분해서 큰 소리로 말했다.

“끼어들지 마!”

석목이 채아의 머리에 딱밤을 날렸다.

“석두, 네가 자꾸 머리를 때리는 바람에 최근 머리가 잘 안 돌아가잖아.”

채아가 목을 움츠리며 불만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귀여워. 채아야, 다음에 누나가 또 와서 놀아줄게.”

종수가 웃으며 말했다.

“약속 꼭 지켜야 해요. 속이면 안 돼요.”

채아가 석목의 어깨 위에서 날개를 퍼덕이면서 말했다.

채아를 향해 웃어주던 종수가 갑자기 무언가 떠올리고 물었다.

“오라버니, 승선경매에 대해서 들어봤어요?”

석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들어봤지. 그 경매에 참여해서 물건을 살 계획이야.”

종수가 기뻐하며 말했다.

“그럼 저와 함께 가요. 저도 마침 가보고 싶었거든요. 이번 경매에서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상품이 전설 속의 성석(星石)이라고 해요.”

“성석이 뭔데?”

“저도 잘 모르지만, 듣기로는 공간의 통로를 안정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고대의 영석이래요. 이제는 더 이상 찾아보기가 힘들어 매우 귀한 물건이라고 해요.”

종수가 대답했다.

석목은 생각에 잠겨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석목은 종수와 작별인사를 나눈 뒤 마차를 타고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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