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167화 (167/916)

167화. 연나의 법상

같은 시간, 진형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둘레 길이가 백 장이 넘는 깊은 못이 있었다.

그곳에서는 창을 쥔 연나가 키가 일 장이 넘는 거대한 강시와 격렬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거대한 강시는 노랗게 말라비틀어진 피부에 녹색 털이 났고, 아주 가느다란 두 손 끝에 몇 촌 길이의 청록색 손톱이 자라 있었다. 추한 얼굴에는 은색 부문이 촘촘하게 새겨져 있었으며, 두 눈에는 보라색 영혼의 화염이 타올랐다.

강시는 오른손에 이 척 길이의 해골 팔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휘둘러 연나의 날카로운 공격을 막아냈다.

강시가 휘두르는 해골의 팔에는 바다도 가를 수 있을 것 같은 강력한 힘이 실려 있어서, 연나도 무작정 덤벼들지 못했다.

이미 여러 차례 공격을 실패한 연나는 빠른 속도로 물러났다.

그러자 강시는 해골의 팔을 허공에 휘둘렀다. 즉시 공기 중에서 법력의 파동이 일었고, 수십 개의 은색 불꽃이 이는 뼈창이 허공에 빼곡하게 나타났다.

뼈창들은 연나를 향해 놀라운 속도로 날아갔다. 그 순간, 연나의 몸이 검게 반짝이더니 점점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훅! 훅!

날아간 창들은 연나의 몸을 뚫고 나가서 뒤쪽의 검은 바위에 매섭게 박혔다.

쾅! 쾅! 쾅!

폭음이 연달아 울리며 검은 바위가 순식간에 조각났다.

동시에 창에 뚫린 연나의 몸 역시 흩어졌지만, 그것은 이미 사라진 연나의 잔영일 뿐이었다.

바로 그때, 강시의 뒤에서 연나가 나타났다. 연나는 검게 빛나는 창을 상대의 목을 향해 번개처럼 빠르게 내질렀다.

쩡!

강시의 몸을 찌른 뼈창은 녹색 털에 가로막히자 단단한 것을 찌른 듯 잠시 멈칫했지만, 곧바로 뚫어냈다.

그러나 그 잠깐 사이에 강시는 몸을 비틀어 급소를 꿰뚫리는 것을 피했다.

검은 뼈창이 강시의 어깨에 주먹만 한 크기의 상처를 남겼지만, 상처에서는 어떤 액체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 대신 검은 연기가 감돌았으며, 그 연기는 점차 주위로 퍼져나갔다. 강시의 영혼의 화염도 조금 어두워졌다.

연나는 뼈창을 뽑으려 하는 순간 누군가 두 발을 잡는 것을 느꼈다. 바닥에서 소리도 없이 뻗어 나온 두 회색 해골이 어느새 연나의 발목을 붙잡은 것이다.

그 순간, 몸을 돌린 강시의 얼굴에서 은색 부문이 밝게 빛나더니, 등 뒤에서 회색 연기에 휩싸인 인간 형태의 법상이 나타났다. 법상은 일 장 정도의 크기였고, 온 얼굴에 수염이 자란 호쾌한 인상이 사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내의 법상은 부문이 가득 새겨져 있는 은색 옷을 입고, 뱀 모양의 석장을 들고 있었다.

법상이 들고 있는 석장이 반짝이는 순간, 몇 장 길이의 은색 번개가 허공에 나타나 연나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연나는 다급히 두 팔을 교차해 머리 위를 막았다. 그 위를 은색 번개가 날카로운 검처럼 내려찍었다.

쾅!

폭발이 일어나며 거대한 힘이 담긴 수만 가닥의 은색 빛줄기가 사방으로 뻗어나갔고, 은 빛은 빠르게 사라졌다.

연나는 왼팔이 날아가고 전신의 뼈 갑옷이 거의 부서졌지만, 오른팔만은 손상을 입지 않았다.

법상이 손에 든 석장을 다시 들어 올리며 무언가를 하려 했다.

그때 연나의 발목 쪽에서 하얀 화염이 솟아올랐다. 그러자 연나의 발목을 잡고 있던 해골의 손이 화염에 닿으며 조각나 바닥으로 떨어졌다.

영혼의 화염이 상당히 어두워진 연나는 다시 검은 연기 사이로 사라졌다.

한편 멀지 않은 곳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는 두 군단 중, 연나의 부하인 진형 안쪽의 해골들은 이미 절반 이상 쓰러진 상태였다. 해골기사도 둘 밖에 남지 않았다.

그 순간, 갑자기 그들 사이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그 안에서 연나가 튀어 나왔다.

연나는 나타나자마자 팔을 휘둘렀고, 뼈창이 커다란 도처럼 허공에 반월형으로 빛의 궤적을 남기며 강시의 목을 향했다.

강시가 주먹을 쥔 두 손을 연달아 내지르자, 수박만한 크기의 회색 권영 두 개가 창영을 향해 앞뒤로 날아갔다.

찌익! 찌익!

창영은 두 개의 회색 권영을 마치 얇은 종이처럼 찢어버린 뒤, 그대로 회색 강시의 몸을 베었다.

푹!

회색 강시의 몸이 단번에 두 동강이 났다.

연나가 입을 벌리자 강시의 몸으로부터 남색 영혼의 화염이 날아와서 연나의 입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러자 연나의 영혼의 화염은 상당히 밝아졌다.

그때, 녹색 털을 가진 강시가 날듯이 빠른 속도로 바람을 가르며 다가왔다.

사내의 모습을 한 법상은 연나가 있는 곳에 도착하기도 전에 석장을 휘둘렀다.

그러자 강력한 법력의 파동이 일었고, 동시에 허공에 나타난 백여 개의 뼈창이 폭우가 내리듯 바닥으로 거세게 내리꽂혔다.

쾅! 쾅! 쾅!

엄청난 폭발음이 연달아 울리며 지면에서 먼지가 일어났다. 먼지 안에서 은색 불꽃이 이리저리 튀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먼지가 가라앉자 창에 맞아 조각난 몇 십 구의 강시와 해골의 모습이 드러났다.

바로 그때, 녹색 털의 강시 뒤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어 그 안에서 검게 빛나는 창이 강시의 등 뒤를 노리고 뻗어 나왔다.

창은 다시 한 번 녹색 털에 가로막혔고, 강시는 그 틈에 몸을 급하게 피했지만 팔에 기다란 상처를 입었다.

연나는 땅에서 해골의 손이 다시 나타나기 전에 즉시 창을 거두고 몸을 숨겼다. 그리고 다시 해골 진형 안에 나타났다.

그와 거의 동시에 백여 개의 뼈창이 비가 오듯 쏟아져서 주위의 강시와 해골들을 전부 싹 쓸어버렸다.

이런 상황이 몇 번 반복되자 양측의 군대는 거의 전멸 직전에 이르게 되었다.

이 각 후, 녹색 털 강시의 전신에는 일고여덟 개의 상처가 생겨 있었다. 강시는 분노가 극에 달한 듯 영혼의 화염을 들썩였는데, 그 빛은 처음보다 확연히 어두워져 있었다.

그때 갑자기 강시 뒤의 법상이 반짝이더니 흩어져 사라졌다.

그 순간, 법상 옆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며 연나의 몸이 다시 나타났다.

한 시진이 지나자 강시의 왼팔은 이미 절단되어 없었다. 수십 개의 상처가 생긴 몸은 이미 검은 연기에 완전히 뒤덮여 움직임이 느려진 상태였다. 영혼의 화염도 어두워져 있었다.

그때 검은 연기와 함께 연나가 다시 한 번 강시의 뒤에 나타났다. 이어 연나는 하얀 화염에 휩싸인 창을 강시의 머리를 향해 내질렀다.

위기일발의 순간, 강시는 머리를 옆으로 기울여 가까스로 공격을 피했다. 하지만 창에서 타오르는 하얀 화염이 강시의 귀에 닿으며 머리로 옮겨 붙었다.

펑!

하얀 화염에 휩싸여 타오르던 강시의 머리가 폭발했다.

폭발 속에서 솟아나온 보라색 화염은 눈 깜짝할 사이에 십 장 밖으로 도망갔다. 그러나 연나는 도망가는 영혼의 화염 앞에 나타나서, 상대가 반응하기도 전에 입을 벌려 그것을 집어삼켰다.

연나의 영혼의 화염이 떨리면서 절반이 보라색으로 변했다.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도 대폭 증가했다.

연나는 고개를 돌리더니 강시가 쓰러진 곳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강시가 있는 곳에 도착한 연나는 상대가 들고 있던 해골의 팔을 자신의 왼팔이 잘려나간 부위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해골의 팔과 접촉한 자리에서 흰 빛이 반짝이더니 팔이 몸과 완전히 합쳐졌다. 새로 생긴 왼팔은 오른팔과 마찬가지로 영롱한 빛이 맴돌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연나의 몸에서 대량의 흰 빛이 솟아나왔다. 그 빛은 한참 뒤 눈에 보이는 속도로 수축했고, 하얀 빛의 구로 변해서 연나의 머리 안으로 들어갔다.

쾅!

연나의 머리를 중심으로 엄청나게 강력한 영혼의 파동이 사방으로 몰아쳤고, 그것이 휩쓸고 지나간 경로에 하얀 빛의 점이 무수히 나타났다.

연나가 오른팔을 뻗자 흰 빛의 점들이 연나의 앞으로 모여들었다. 누에고치처럼 타원형으로 모여든 그것의 크기는 연나의 덩치와 비슷했다.

연나가 영혼의 화염을 빛내자 빛의 누에고치는 격렬하게 파동을 일으키며 이리저리 비틀리기 시작했다.

이 각 후, 빛의 누에고치 안쪽에 하얀 색의 사람 형상이 나타난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

연나가 입을 벌리자 보라색과 남색이 섞인 영혼의 화염 일부가 날아갔다. 그리고 화염은 사람 형상의 머리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러자 빛의 누에고치는 순간 눈부신 빛을 뿜어내더니, 무수히 많은 흰 빛의 점으로 흩어져 사람의 형상에 흡수됐다.

빛을 흡수하자 사람의 형상은 점차 뚜렷해졌다. 그것은 소매가 넓은 비단 옷을 입고 아름다운 몸매를 가진 소녀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연나의 머리 위에서 허리까지 오는 장발과 옷자락을 펄럭이고 있었다.

전신이 하얀 빛에 뒤덮여 있는 소녀의 모습에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성스러움이 느껴졌다. 비록 얼굴 생김새까지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환영은 매우 아름다웠다.

연나가 오른손을 들자 머리 위에 나타난 법상은 주먹 크기의 흰 빛의 구로 변했다. 그것이 연나의 머릿속으로 흡수되는 순간, 연나의 영혼의 화염이 연한 보라색으로 변했다.

동시에 산처럼 무거운 위압감과 서늘함이 느껴지는 하얀 바람이 연나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사방으로 몰아친 서늘한 바람이 전부 흩어지자, 연나는 어느새 전신을 덮는 하얀 갑옷을 입고 있었다. 뼈창의 표면에도 하얀색 부문이 생겨나 있었다.

연나는 못에 다가가서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감상했다. 연나가 입을 벌리자 무형의 흡입력이 생겨나며 못의 수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곧 이어, 붉은색 안개가 그 안에서 솟아올라 연나의 입 안으로 흡수되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연나는 붉은색 안개를 전부 흡수했다. 커다란 못에는 이제 어떤 색도 남아 있지 않았다.

* * *

다음날, 이른 아침.

석목은 일찌감치 일어나서 한 달 뒤에 있을 승선경매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는 경매에 나올 원숭이 괴수의 정혈을 반드시 얻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과거 그가 찰고의 공격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5단계에 오른 대력마원탈태결이 육신을 강화해준 덕분이었다. 탈태결을 수련하지 않은 일반적인 선천무인이었다면, 아무리 부적이나 다른 수단을 사용했다 해도 찰고의 공격에 전신이 토막 났을 것이다.

물론 석목은 경매에서 정혈 말고도 다른 좋은 물건이 있다면 입찰을 시도해볼 생각이었다. 이런 기회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다만 이 경매에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닌 영석이었다.

석목은 방금 진묘계를 뒤져보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영석이 많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의 수중에 있는 영석은 중급 두 개와 하급 스물한 개였다.

이 정도면 흑마문에서는 엄청난 자산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각 종문의 천재가 운집한 승선경매에서는 부족할 수도 있었다.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그 사이에 영석을 더 벌어야 했다. 그 방법에 대해 석목은 이미 생각해놓은 것이 있었다.

그가 손을 흔들자 현부묘적이라는 제목이 적힌 서적 한 권이 나타났다.

성계술사에 올라 고급 부적을 제작할 수 있게 된 그로서는 중급 부적을 만드는 것은 재능 낭비였다. 그리고 뛰어난 시력의 도움을 받는다면 많은 영석을 소모하지 않고도 고급 부적을 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현재 그의 수중에는 고급 부적 제작법이 기록된 서적이 없었다. 현부묘적을 뒤적이던 석목은 잠시 고민을 하다가 객실의 문을 열었다.

“나가려고?”

옆에서 졸고 있던 채아가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날아와 석목의 어깨에 앉았다.

“응.”

석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우성에서 중급 부적은 수요가 많은 편이기는 했으나, 비싼 가격에 거래되지는 않았다. 빠르게 영석을 벌기 위해서는 고급 부적을 제작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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