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유안의 초대
객실을 나선 석목은 복도를 따라 객잔의 밖을 향해 걷던 석목이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그의 시선은 젊은 점소이가 청소하고 있는 객실로 향했다.
그 객실은 금소채가 머물던 곳이었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리며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시키실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석목이 들어오는 것을 발견한 점소이가 말했다.
“이 객실에서 머물던 손님은 어디 갔죠?”
석목이 물었다.
“그 분은 오늘 아침 방을 빼고 나갔습니다.”
점소이가 대답했다.
석목은 잠시 침묵하다가 몸을 돌려 밖으로 나왔다.
“누님이 벌써 떠난 거야?”
채아가 물었다.
마양대전에 대해서 금소채에게 여러 가지 물어보려 했던 석목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쉬었다. 채아도 살짝 풀이 죽어 꼬리를 힘없이 흔들었다.
그때 누군가가 석목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석 형, 오랜만이군요.”
석목은 고개를 돌렸다. 은색 옷을 입은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유 형.”
석목은 조금 놀랐다. 그는 바로 유안이었다.
“이곳에서 유 형을 만나다니 정말 우연이군요. 유 형도 이 근처에 머무르고 있나요?”
석목이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그건 아닙니다. 석 형을 찾아왔어요.”
유안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며칠 안 본 사이에 석 형의 경지가 더욱 높아졌군요. 축하합니다!”
유안이 석목을 위아래로 바라보더니 말했다.
“경지가 아주 조금 올랐을 뿐인데 알아보다니, 유 형의 눈썰미는 정말 대단하군요. 감탄했습니다.”
석목이 말했다.
“오히려 제가 석 형에게 감탄했지요.”
유안이 웃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무슨 일 때문에 저를 찾아오신 것이죠?”
석목이 물었다.
유안은 석목에게 한 걸음 다가오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전에 석 형에게 혼사 친구를 소개시켜 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마침 그들이 천우성에 있으니 모임을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 해서요. 흥미가 있나요?”
그 말을 들은 석목은 마음이 크게 동했다.
석목은 연나 때문에 혼사에 대해서 큰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국 사숙이 세상을 떠난 이후 혼사에 관한 정보를 스스로 얻으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만약 다른 혼사와 교류를 한다면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연나의 공격을 가볍게 받아낸 유안의 정체에 대해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 모임은 언제 하는 것이죠?”
석목이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그들은 전부 성의 동쪽에 머물고 있습니다. 시간만 된다면 지금 바로 가서 만나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유안이 말했다.
석목은 잠시 고민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영석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을 만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을 테니 가서 견문을 넓히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잘됐군요. 석 형에 대해 말했더니 모두 만나보고 싶어 했습니다.”
유안이 말했다.
“채아, 넌 객실에서 기다려. 따라올 필요 없어.”
석목이 채아에게 말했다.
“싫어. 혼자 객실을 지키는 건 지루해.”
“말 들어. 돌아오면 맛있는 거줄게.”
석목은 어린아이를 달래듯이 말하며 머릿속으로 채아에게 다른 말을 전달했다.
채아는 눈을 반짝이며 유안을 한 번 보았다. 그리고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객실로 돌아갔다.
“가지요.”
석목이 유안에게 말했다.
“저 앵무새는 석 형의 소환수겠죠? 흔치 않게 정말 지능이 높군요. 함께 가도 무방합니다.”
유안이 말했다.
“천우성의 다른 친구가 저를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저 아이를 남겨두어야 이야기를 전해줄 수 있을 거예요.”
석목이 말했다.
유안은 웃으며 채아를 한 번 바라보더니 더 이상 권유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담소를 나누며 목적지로 향했다.
반 시진 후, 석목과 유안은 외진 곳에 위치한 한 넓은 저택 앞에 도착했다.
저택은 매우 낡았으며 문과 담장의 칠이 벗겨져 있었다. 문 앞도 청소가 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긴 시간 동안 방치된 것 같았다.
“이곳은 제 친구가 조상으로부터 대대로 물려받은 저택입니다. 마침 아무도 거주하지 않아서 우리가 사용할 수 있도록 빌려줬죠. 객잔보다 훨씬 조용할 겁니다.”
유안이 말했다.
석목은 고개를 끄덕이며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저택 안은 굉장히 적막했으며 사람의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석목은 무언가 묘한 분위기를 느끼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가시죠. 친구들은 모두 안쪽에 있습니다.”
유안은 앞장서서 안쪽의 넓은 방으로 향했다. 지금까지 지나온 방 중에서 이곳만 청소가 된 것 같았다.
석목은 유안의 뒷모습을 보며 방으로 따라 들어갔다.
그들이 들어간 방은 응접실이었다. 탁자 위에 놓여 있는 다기는 전부 새것이었으며, 찻잔에 뜨거운 차가 담겨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응? 다들 어디 갔지?”
유안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쿵!
석목이 방 안으로 들어가자 방 깊숙한 곳에서 갑자기 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안쪽 방에 있나보군요. 우선 이곳에 앉아 있으면 제가 모두를 불러오겠습니다.”
유안은 석목에게 웃어 보인 후 안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석목은 자리에 앉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이 장소에서 무언가 위화감을 느끼고 정신력을 몸 밖으로 뿜어냈다.
순간 석목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의 정신력이 거실의 네 벽에 닿는 순간, 강력한 힘에 의해 튕겨 나온 것이다.
쾅!
바로 그때, 석목이 들어왔던 문이 저절로 닫혔다.
그와 동시에 네 면의 벽에서 검은 빛이 뿜어져 나와서 온 방이 어둠에 파묻혔다.
놀란 석목은 즉시 흑도와 곤봉을 뽑아들고 붉은 호신강기로 전신을 보호했다.
“누가 수작을 벌이는 것이냐?”
석목은 성난 목소리로 외치며 주위를 빠르게 둘러보았다.
그 순간, 커다란 해골전사가 석목 등 뒤의 바닥에서 소리 없이 솟아났다. 석목보다 머리 하나 정도 더 큰 해골전사는 강철 갑옷을 입고 검은 대검을 들고 있었으며, 눈에는 파란 영혼의 화염이 반짝이고 있었다.
해골은 나타나자마자 석목을 향해 달려들며 대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베었다.
석목은 등 뒤의 바람소리를 듣고서야 눈치를 채고 급하게 몸을 돌렸다. 동시에 붉은 화염에 휩싸인 운철흑도를 휘둘렀다.
금속이 충돌하는 소리와 함께 불똥이 사방으로 튀었다.
석목은 도와 검이 충돌한 순간 해골의 놀라운 힘을 느끼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비록 그가 한 손으로 도를 휘두르긴 했지만, 만 근에 달하는 힘으로도 해골을 압도하지 못한 것이다.
해골이 들고 있는 대검 역시 평범한 무기는 아닌 듯했다. 운철흑도와 정면으로 충돌하고도 검날이 전혀 손상을 입지 않았다.
석목은 콧방귀를 뀌면서 다른 손에 쥔 곤봉을 해골의 팔을 향해 빠르게 휘둘렀다.
빠각!
강철 갑옷으로 감싸여 있던 해골의 팔이 힘없이 부러졌다.
그 순간, 운철흑도에서 불빛이 솟아오르더니 대검을 튕겨내고, 반월 모양의 붉은 검광으로 변해 해골의 가슴을 비스듬히 베었다.
해골의 거대한 몸이 한 순간 두 동강이 나며 바닥에 쓰러졌다.
“악! 내 해골장군!”
그때 놀라움의 외침과 함께 검은 옷을 입고 피부가 붉은 사내가 방 안에서 뛰어나왔다.
회색 뼈 지팡이를 들고 있는 그 사내는 매우 아깝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내를 발견한 석목은 붉은 잔영을 남기며 빠르게 다가가 운철흑도를 아래로 내려베었다.
붉은 얼굴의 사내는 석목의 움직임에 전혀 반응하지 못한 채, 자신에게 다가오는 검광을 멍청하게 바라보았다.
“다섯째 사형, 조심해요!”
또 다른 놀란 외침이 들려왔다.
동시에 사내의 옆 바닥에 검은색 진법이 순식간에 형성되더니, 그 안에서 거대한 구렁이 백골의 머리가 나타났다.
구렁이는 운철흑도의 도신을 물었지만, 그 즉시 이빨이 박살나며 땅에 머리가 내리찍혔다.
화가 난 구렁이는 파란색과 보라색이 섞인 영혼의 화염을 밝게 빛냈다.
구렁이의 몸은 이제 진법에서 완전히 나온 상태였다. 구렁이의 몸길이는 팔 장 가까이 되어 응접실 대부분의 공간을 차지했다.
또 뼈는 두껍고 단단해 보였으며, 코에서는 두 줄기의 붉은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분노한 구렁이는 포효하며 꼬리를 휘둘렀다. 두꺼운 꼬리가 산과 바다를 뒤집을 것 같은 기세로 석목을 덮쳤다.
석목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다른 한 손에 든 곤봉을 휘둘렀다. 곤봉이 푸른빛으로 반짝이더니 겹겹이 겹쳐진 곤영으로 변해 구렁이의 꼬리를 가격했다.
구렁이의 꼬리와 충돌한 곤영이 순식간에 흩어져 사라졌다. 그 충격에 뒤로 날아간 석목은 바닥에 착지한 뒤 다시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안색은 살짝 창백해졌지만 상처는 입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조금 뒤로 밀려난 거대한 구렁이의 꼬리는 끝부분이 잘려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분노에 찬 구렁이는 포효하며 다시 석목을 항해 달려들려 했다.
바로 그때, 방 안쪽에서 검은 빛이 날아와 구렁이의 몸으로 흡수됐다. 그러자 구렁이의 거대한 몸이 즉시 멈춰 섰다.
검은 빛을 날린 사람은 어느새 방 안에 나타난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이었다. 그녀는 몸이 늘씬하고 면사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으며, 거무스름한 뼈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지팡이의 가장 윗부분은 검은 빛에 휩싸여 있었다.
여인은 눈빛을 반짝이며 석목을 바라보았다.
“너희는 누구냐? 유안은 어디 있지? 그를 불러와라!”
석목이 곤봉과 흑도를 내밀며 외쳤다.
그 순간, 석목은 여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법력의 파동을 느꼈다.
“성계술사!”
그 파동은 석목의 것보다도 강력했다. 석목은 놀랐지만 표정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맞습니다. 제 구렁이에게 상처를 입히다니 대단하군요. 아직 숨기고 있는 실력을 전부 드러내 보이시죠.”
여인이 눈을 은 빛으로 반짝이며 말했다.
그녀가 뼈 지팡이를 휘두르자 구렁이의 몸에 검은 빛이 감돌았다. 이어 구렁이의 거대한 몸이 천천히 사라졌다.
동시에 석목의 앞에서 검은 빛이 반짝이더니 바닥에서 다섯 구의 해골이 솟아올랐다.
해골 중 두 구는 앞서 두 동강난 해골과 같이 강철 갑옷을 입고 있었다. 둘 중 하나는 대검을, 다른 하나는 대도를 들고 있었다.
다른 세 구의 해골은 기운이 상대적으로 약했으며 뼈 활을 들고 있었다.
“이곳은 저에게 맡기고 우선 내려가세요.”
여인이 붉은 얼굴의 사내에게 말했다.
사내는 대답한 후 뼈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러자 두 동강난 해골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모습을 감췄다.
사내는 성난 표정으로 석목을 한 번 노려보고는 몸을 돌려 안쪽의 방으로 돌아갔다.
석목은 사내를 무시하고 눈앞의 해골들과 여인에게서 시선을 잠시도 떼지 않고 있었다.
석목이 크게 기합을 지르자 그의 몸에서 붉은 빛이 감돌았다. 동시에 운철흑도와 곤봉에 붉은 빛과 푸른빛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해골들도 영혼의 화염을 반짝이며 각자의 무기를 들어올렸다.
하지만 바로 그때, 석목은 번개처럼 빠르게 몸을 돌려 뒤의 대문을 향해 내달렸다.
석목이 운철흑도를 휘두르자 반월 모양의 검광이 대문을 내려찍었다.
그러나 대문을 감싼 검은 빛의 장막은 빠르게 깜빡이긴 했지만, 석목의 일격을 견뎌냈다. 크게 놀란 석목은 다시 한 번 운철흑도를 휘두르려 했다.
그때 등 뒤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석목은 얼굴을 살짝 굳히며 급하게 옆으로 몸을 피했다.
딱! 딱! 딱!
세 줄기의 검은 빛이 바닥에 박혔다. 검은 빛은 곧 흩어지며 그 안에서 팔뚝만한 두께의 뼈 화살 세 개가 모습을 드러났다.
석목이 숨을 돌리기도 전에 이번에는 검은색 대검과 대도가 석목을 향해 교차로 베어 들어왔다.
석목은 크게 기합을 지르며 흑도와 곤봉을 동시에 휘둘렀다.
쾅! 쾅!
석목은 몸을 흔들며 뒤로 두 걸음 물러난 후 균형을 바로잡았다. 갑옷을 입은 두 해골 역시 뒤로 한 걸음씩 밀려났다.
쉭! 쉭! 쉭!
조금의 틈도 주지 않고 세 개의 뼈 화살이 날아왔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리며 지면을 박차고 뛰어올라 화살을 가까스로 피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