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169화 (169/916)

169화. 신분을 오해하다

허공에 떠오른 석목이 푸른색 부적을 꺼냈다. 곧 그의 전신에 푸른빛이 감돌더니 움직임이 빨라졌다.

촤라락!

석목의 양손에서 흰색 빛의 사슬이 날아가 강철 갑옷을 입은 두 해골의 몸을 묶었다.

이 기환장은 선천중기의 실력을 가진 해골들을 상대로는 한두 번 호흡할 정도의 시간밖에 버틸 수 없었다. 그러나 경신술을 사용해 움직임이 빨라진 석목에게는 그 정도면 충분한 시간이었다.

얼굴을 가린 여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주문을 외웠다. 그녀가 들고 있는 뼈 지팡이가 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해골들을 상대하면서도 줄곧 여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던 석목이 그 광경을 보고 표정이 굳어졌다.

그러나 밝게 빛나던 지팡이의 하얀 빛은 곧 어두워지며 사라졌고,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

석목이 어리둥절해 하는 사이 갑자기 주위의 허공에서 하얀 빛이 나타나 그의 몸을 얽매었다.

순간 석목의 몸이 쇳덩어리처럼 무거워졌다. 이어 사지에 힘이 빠지고 머리가 몽롱해지면서 움직임이 둔해졌다.

기환장의 구속에서 벗어난 두 해골이 포효하며 석목에게 덤벼들어 무기를 휘둘렀다.

놀란 석목은 정신을 집중해 법결을 외웠다. 그의 손에서 흰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은 빛 방패로 변해 앞을 막았다.

두 번의 충돌음이 울리면서 석목의 몸은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동시에 전신을 짓누르던 무력감이 천천히 사라졌다.

땅에서 두어 바퀴를 구른 석목은 즉시 몸을 일으켰다. 기령순과 호신강기의 보호덕분에 부상은 입지 않았다.

그때, 유안이 평온한 표정으로 안쪽 방에서 걸어 나오며 말했다.

“이만 됐으니 멈춰라.”

“예, 대사형.”

여인은 유안의 말에 대답하고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러자 다섯 구의 해골이 전부 사라졌다.

유안의 뒤로 네 사람이 줄지어 걸어 나왔다. 방금 전 본 얼굴이 붉은 사내, 키가 작고 뚱뚱한 남자와 은발의 청년, 그리고 붉은 옷을 입은 소녀였다.

“석 형, 정말 죄송합니다. 제 사제와 사매들이 꼭 석 형의 실력을 시험해보고 싶다고 고집을 부리더군요. 너무 나무라지는 말아주십시오.”

유안이 두 손을 가슴 앞으로 교차하며 허리를 숙였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리며 눈앞에 있는 사람들을 훑어보다가 입을 열었다.

“모임을 가지자는 핑계로 저를 속여 데려와서는 무엇을 하려는 것입니까?”

그러자 얼굴을 가린 여인이 두 손을 몸 앞으로 교차하며 사죄의 뜻을 표했다.

“교우여, 악의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니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저 대사형에게 귀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호기심이 일어 이곳으로 데려와 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석목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교우? 무언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자 유안이 물었다.

“뭘 말인가요? 참, 교우가 명월성교(冥月圣教) 어느 분단의 교도인지 아직 묻지 않았군요.”

석목은 무척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

“명월교라니요?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저는 그 교파의 교도가 아닙니다.”

그 말을 들은 유안 일행이 일제히 유안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유안이 말했다.

“그날 광야에서 본교의 사령생물을 소환한 것을 제가 똑똑히 봤습니다. 그건 하루 이틀 사이에 키울 수 있는 수준의 실력이 절대 아니었습니다.”

그제야 석목은 유안의 말이 무슨 뜻인지 어렴풋이 이해했다.

석목이 한참 동안 입을 열지 않자 유안이 손에 사각형의 붉은색 영패를 들었다. 그가 주문을 외우자 영패가 붉은 빛을 뿜어내더니 손 안에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걸 본 석목의 표정이 흔들렸다. 유안의 손에 들린 붉은색 영패의 한쪽 면에는 인간형 괴물의 그림이 새겨져 있었고, 다른 한쪽 면에는 아주 작은 글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석목이 머릿속에 한 가지 기억이 스치고 지나갔다. 유안의 영패는 국 사숙의 시체가 손에 쥐고 있던 영패와 완전히 같은 것이었다.

유안이 들고 있던 영패가 더욱 강하게 빛을 뿜어내자, 다른 다섯 사람의 몸에서 동시에 붉은 빛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유안은 살짝 놀란 표정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그의 몸에서는 시종일관 아무런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유안의 표정이 가라앉았다. 그는 전신에서 차가운 기운을 뿜어내며 물었다.

“우리 명월교의 영패를 지니지 않은 것으로 보아 확실히 우리 교도는 아니군요. 그렇다면 그 사령계의 생물은 어디서 얻은 것이지요?”

석목은 얼음과 눈에 뒤덮인 곳에 나체로 서 있는 듯한 추위를 느끼고 몸을 살짝 떨었다. 호신강기도 유안이 뿜어내는 한기는 조금도 막아내지 못했다.

석목은 전력으로 체내의 진기를 운기하기 시작했다.

“저는 대륙의 동부 반도에 위치한 대제국 출신입니다. 종문의 한 장로에게서 사령계의 생물을 소환하는 혼사의 술법을 전수받았지요. 하지만 그는 저에게 명월교에 관련된 어떠한 이야기도 해주신 적이 없습니다.”

석목이 말했다.

“동부의 반도? 들어본 적이 있는 것도 같군요.”

유안이 확신을 하지 못하는 말투로 얼굴을 가린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여인이 막힘없이 설명했다.

“그가 말한 동부의 반도는 이곳에서 굉장히 먼 곳에 위치해 있으며, 야만족의 황무지에 가로막혀 있습니다. 그곳에는 대제국, 염국, 황국이라는 인족의 세 나라가 있지요. 세 나라에는 천음종, 묘음종, 현무종, 흑마문, 풍화문, 음부궁, 천검종까지 일곱 개의 종문이 있습니다. 실력은 모두 평범하지요.”

석목이 놀란 표정으로 여인을 바라보았다.

대륙 외진 곳에 위치한 반도의 상황에 대해서 이렇게 자세히 알고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우리 명월성교에서 과거 그곳에 사람을 파견해 포교 활동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효과가 너무 적어 최근 백이십삼 년 동안은 포교 활동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여인은 손가락으로 미간을 주무르며 말했다.

유안은 석목을 위아래로 한 번 훑어본 뒤 차가운 기운을 거두어들였다.

“아무래도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군요. 우연이지만 우리 성교의 비술을 연마하였으니 석 형 역시 절반 정도는 우리 교도입니다.”

유안이 온화하게 웃으며 말했다.

석목은 아무 대꾸를 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우리 명월성교는 무공과 술법을 동시에 수련한 석 형처럼 뛰어난 인재를 언제나 갈구하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 성교의 비술까지 수련했으니 성교에 가입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석목은 여전히 침묵했다.

유안 역시 조급하게 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다른 다섯 명 역시 그의 뒤에서 석목을 바라보며 조용히 서 있었다.

“최근 며칠 동안 통천선교가 찾아다닌 이단이 명월교입니까?”

석목이 유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맞습니다.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통천선교와 우리 명월선교 사이의 마찰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어져 왔습니다. 몇 마디 말로 간단히 설명할 일은 아니죠. 그러니 성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도 이상할 것은 없습니다.”

유안이 거리낌 없다는 듯 말했다.

“통천선교가 이렇게 나올 것을 알면서도 천우성에 잠입한 이유가 무엇이죠?”

“우리가 천우성에 온 것은 돌아가신 선배 한 분을 기리기 위해서입니다.”

석목의 질문에 유안이 약간 어두운 말투로 대답했다.

동시에 그의 등 뒤에 있던 다섯 사람의 표정도 어두워지면서 방 안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그걸 본 석목은 어리둥절했다.

한참 후, 유안이 침묵을 깨며 말했다.

“하하, 오래된 일이니 거론할 필요도 없습니다. 기연이 닿아 혼사가 되어 본교의 술법을 수련했다고 하지만, 석 형은 기본적으로 뛰어난 공간친화력을 지닌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소환할 수 있는 사령생물은 선천등급의 해골 하나뿐인 게 분명하고, 본교의 현묘한 술법도 알지 못하겠죠. 이대로는 석 형의 재능을 낭비하는 게 될 겁니다.”

석목은 이어지는 말을 기다리는 듯 고개를 살짝 들어올렸다.

“우리 명월성교는 서하고국에서 탄생했습니다. 수만 년의 역사를 가진 만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실력과 지식을 축적했죠. 예를 들어 이 사매는 석 형과 같은 성계술사지만, 그녀가 전력을 다한다면 지계의 존재라 하더라도 그녀를 상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유안이 얼굴을 가린 여인을 보며 말했다.

“지계의 존재를 이길 수 있다니, 설마 그녀가 지계의 사령생물을 소환해 낼 수 있다는 말인가요?”

석목이 물었다.

유안은 살짝 웃으며 아무 말 없이 여인을 바라보았다.

여인은 반걸음 앞으로 걸어 나오더니 주문을 외우며 지팡이를 앞으로 들어올렸다.

그러자 거실의 지면이 갑자기 검게 빛나기 시작했고, 엄청난 위압감과 함께 빛 사이로 검은 부문이 튀어나왔다.

이어 거대한 형체가 검은 빛 사이에서 천천히 떠올랐다.

그 형체는 점점 실체를 갖추어갔고, 검은 빛이 완전히 사라지자 키가 보통 사람의 두 배만 한 거대한 해골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 해골은 정교한 무늬가 새겨진 검은색 금속 투구와 갑옷을 입고 있었다. 갑옷 사이로 드러난 뼈는 광택이 흐르는 금색이었다. 주먹만 한 크기의 두 눈에서는 보라색 영혼의 화염이 타오르고 있었다.

해골은 팔뚝만큼 두꺼운 뼈창을 들고 있었으며, 창끝에는 보라색 화염이 타오르고 있었다.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하고 사나운 기운은 찰고 이상이었다.

거대한 해골의 기운을 견디기 버거운지 거실을 둘러싼 검은색 빛의 장막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유안의 뒤에 있던 붉은 옷을 입은 여인의 안색이 살짝 굳어졌다. 그녀는 검은색 원반을 꺼내 난해한 주문을 외우며 다섯 손가락을 빠르게 튕겼다.

촤악!

원반에서 검은 빛줄기가 쏘아져나가 검은 빛의 장막에 흡수됐다. 그러자 장막은 점점 안정을 되찾았다.

거대한 해골은 고개를 돌려 석목을 바라보았다. 해골의 눈에서 보랏빛 영혼의 화염이 반짝였다.

순간 석목의 표정이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흑도와 곤봉을 꽉 쥐었다. 마치 거대한 괴수의 표적이 된 것처럼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전율이 느껴졌다.

얼굴을 가린 여인이 뼈 지팡이를 휘둘렀고, 그러자 거대한 해골은 즉시 얌전해졌다.

유안이 말했다.

“이 황금 해골왕은 최근 사령계에서 얻었습니다. 그럭저럭 실력이 나쁘지 않지요.”

석목은 깜짝 놀랐다. 아무렇지도 않게 한 말 같았지만, 유안의 말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명월교는 그의 말대로 자신의 실력을 훨씬 뛰어넘는 사령생물을 소환할 수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그 와중에도 얼굴을 가린 여인의 표정에는 여유가 넘치고 있었다.

물론 연나 역시 석목보다는 훨씬 강력했지만, 그녀는 과거 후천무인도 되지 못한 작은 해골이었기에 우연히 표식을 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사령계에서 얻은 소환수의 실력은 어떤 방법으로 올리죠?”

잠시 생각에 잠겼던 석목이 물었다.

그는 계속해서 비약적으로 실력이 좋아지는 연나에 대해 줄곧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력을 올리는 방법이야 있지요. 하지만 사령생물의 성장속도는 매우 느립니다. 십 년이 걸려도 한 단계도 오르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니, 처음부터 강한 사령생물을 얻는 편이 빠르지요. 하지만 정말 강력한 일부 사령생물은 혼사가 직접 성장시킨 것입니다. 일정한 수준 이상의 실력을 가진 사령생물을 얻는 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유안이 당당하게 말했고, 석목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령생물을 성장시키는 방법은 본교의 비밀에 속합니다. 다만 석목 형이 우리 명월성교에 들어온다면 전부 가르쳐주도록 하죠.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유안이 물었다.

“만약 제가 가입하지 않겠다고 하면 죽여서 입을 막을 생각입니까?”

석목이 말했다.

“하하, 당연히 아니지요. 본교에 가입을 하고 안 하고는 석 형의 자유입니다. 본교의 술법을 가진 이상 이미 절반은 명월성교의 교도나 마찬가지니, 우리 사람에게 손을 댈 리가 없지요.”

유안이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안심하며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보아하니 금세 결정을 내리지 못할 것 같으니 돌아가서 고민을 해보시지요. 머지않아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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