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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170화 (170/916)

170화. 서하고국(西夏古国)

유안이 말을 마치고 얼굴을 가린 여인과 붉은 옷을 입은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얼굴을 가린 여인이 주문을 외우며 뼈 지팡이를 휘둘렀다.

곧 거대한 해골의 몸이 검은 연기에 휩싸이더니 천천히 모습을 감추었고, 거실에 자욱하게 깔려 있던 사나운 기운이 완전히 사라졌다.

이어 붉은 옷을 입은 여인이 원반을 손끝으로 찍자, 거실을 감싼 검은 빛의 장막이 살짝 흔들리더니 이내 천천히 흩어져 사라졌다.

“제가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통천선교에 알리는 것이 걱정되지 않습니까?”

석목이 유안을 보며 물었다.

“석 형이 그렇게 바보 같은 짓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주의를 드리자면, 통천선교에 본인이 혼사라는 사실을 절대로 들키지 마십시오.”

유안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저는 이만 떠나겠습니다.”

석목은 유안에게 인사를 한 후 즉시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사형, 이대로 그를 보내도 정말 괜찮은 건가요?”

얼굴을 가린 여인이 살짝 걱정되는 표정으로 말했다.

“생각하는 바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거라.”

유안이 대답했다. 여인은 그를 상당히 신뢰하는 듯 곧바로 표정을 풀었다.

유안은 잠시 침묵하다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견 사매, 자신 있나?”

그는 붉은 옷을 입은 여인을 바라보며 종잡을 수 없는 말을 했다.

“안심하세요. 문제없습니다.”

붉은 옷을 입은 여인이 웃으며 말했다.

유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윽한 눈빛으로 전방을 바라보았고, 다른 사람들은 그런 그를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뒤에 서 있었다.

* * *

빠르게 저택을 벗어난 석목은 사람이 붐비는 번화가에 도착해서야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무언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저택 쪽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석목은 고개를 가로젓더니 다시 걷기 시작했다.

명월교는 통천선교와 원한이 상당히 깊은 것 같았다. 석목은 비록 현재 상당한 실력을 갖추긴 했지만 그들 사이의 분쟁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반 시진 후, 석목은 객잔으로 돌아왔다.

“석두, 왜 이제야 돌아온 거야!”

그가 방에 들어가자 채아가 날아와서 소리쳤다. 석목은 견과를 몇 개 꺼내 채아를 달래준 뒤 밀실 안으로 들어갔다.

돌침상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석목은 호흡을 가다듬고 진묘계에서 서적과 옥간을 꺼냈다.

그것들은 찰고의 저장반지에서 얻은 것들로, 대륙의 지리와 야사에 관한 정보가 기록되어 있었다.

석목은 그 정보들을 예전에 대략적으로 한 번 읽어봤을 뿐이지만, 그중에 유안이 언급한 서하고국에 대한 기록이 있었다는 걸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석목은 옥간 하나를 집어들고 이마에 가져다 댔다.

한참 후, 마지막 옥간을 이마에서 떼어내고 두 눈을 뜬 석목의 표정은 상당히 복잡했다.

그는 여러 서적 사이에서 서하고국과 명월교에 관한 기록을 찾았다.

서하고국은 육산왕조의 서쪽에 있는 매우 오래된 나라였으며, 서해와 맞닿아 있어서 기후가 습하고 소택지와 열대 우림 지역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명월교는 혼사의 나라라고 불리는 서하고국에서도 제일의 종문이었다.

명월교의 제자는 대부분이 술사였으며, 그중에는 혼사가 가장 많았고 대부분 사령생물과 관련된 기이한 술법을 익혔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여러 가지 금기를 건드려서 외부인들에게는 사교(邪教)라고 불렸다.

이외에도 석목은 동주대륙 서쪽의 서해를 건너면 동주대륙과 같은 대륙이 하나 더 존재했고, 그곳은 서하대륙(西贺大陆)이라 불린다는 기록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 대륙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석목은 잠시 고민하다가 서적과 옥간을 전부 진묘계에 넣고 탁자로 다가갔다. 그가 탁자 앞에서 팔을 휘두르자 부적지와 법묵, 법붓이 나타났다.

탁자 앞 의자에 앉은 석목은 숨을 길게 내뱉었다.

어느덧 해가 지며 붉은 석양이 대지를 점차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 * *

같은 시간, 동주대륙 어딘가의 끝이 보이지 않는 숲 속.

숲을 가로지르는 일 장 너비의 도로를 열 명이 넘는 사람이 지나고 있었다. 그들은 말을 타고 남에서 북으로 천천히 이동하는 중이었다.

일행은 모두 검은 옷을 입고 있었으며, 가장 앞에서 이동하는 네 사람을 제외하면 전부 허리에 도를 차고 등에 활을 메고 있었다.

맨 앞에 있는 사십 대쯤의 남자는 외모에서 기품이 느껴졌으며, 검은색 나무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그를 따르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사십대 남자의 뒤로는 세 사람이 나란히 서서 이동하고 있었다.

가장 왼쪽의 청년은 푸른색 창을 들고 있었으며, 가운데 청년은 두 눈이 짙은 파란색이었고 등에 도와 방패를 메고 있었다. 가장 우측에 있는 사람은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로, 등 뒤에 장검을 메고 있었다.

“창우진(沧雨镇)에는 어찌 한 사람도 없는 것이죠? 덕분에 곧 해가 지게 생겼는데 투숙할 곳이 마땅치 않게 됐습니다.”

창을 든 청년이 말했다.

“듣기로는 십 년도 전에 마을 주위의 영석 광맥을 전부 파내서, 주위의 토지가 척박해지는 바람에 사람들이 전부 떠났다고 하더군.”

중간의 파란 눈의 청년이 말했다.

“대사형, 앞쪽의 산봉우리만 넘으면 바로 가하관(嘉河关)이죠?”

붉은 머리의 소녀가 전방에 보이는 낙타 혹처럼 생긴 산봉우리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렇다. 일찍 출발했으니 도착하면 사백과 사숙들에게 가르침을 청할 수 있겠구나.”

파란 눈의 청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 *

세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앞서 가던 중년의 남자가 갑자기 미간을 찌푸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 사질, 경계를 해라. 주위를 한번 둘러봐야겠다.”

중년의 남자가 갑자기 말했다.

“예, 사숙!”

파란 눈의 청년은 고개를 끄덕이며 경계하는 눈빛으로 주위를 보았다.

곧 중년의 남자가 들고 있는 나무지팡이의 표면이 검게 빛났다. 이어 그 주위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검은 구름으로 변해서, 그를 태우고 좌측으로 날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왼쪽의 숲 속에서 회색 인영이 귀신처럼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 인영은 순식간에 검은 구름의 주위로 접근했다.

그러나 중년 남자의 반응은 매우 빨랐다. 그가 나무 지팡이를 휘두르자 화염의 방패가 생겨나면서 검은 구름 앞을 막았다.

동시에 그가 다른 한 손으로 수인을 맺자, 허공에 열 자루가 넘는 화염의 검이 나타나 상대를 향해 질풍같이 날아갔다.

순간 상대의 모습이 흐릿해지며 모든 화염의 검이 비껴갔다.

쾅!

다음 순간, 화염의 방패가 사방으로 불꽃을 뿌리며 부서졌고, 뒤이어 상대가 구름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으악!”

처절한 비명소리가 구름 속에서 들려왔다.

구름 사이에서 대량의 피와 내장이 흩뿌려지더니, 곧 절반으로 찢긴 중년 남자의 몸이 구름 아래로 떨어졌다.

정체불명의 인영이 나타나고 중년의 사내가 살해당하기까지의 과정은 고작 두세 번 호흡을 할 정도의 짧은 시간 내에 이루어졌다.

아래에 있던 사람들은 그제야 겨우 반응했다. 초승달 모양 푸른색 창날의 환영과 은색 검광, 여러 개의 검영이 검은 구름 속으로 동시에 몰아쳤다.

쉭! 쉭!

뒤따라 수십 개의 화살이 구름 속으로 날아갔다.

쾅!

이어 검은 구름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정체불명의 인영은 이미 종적을 감춘 후였다.

“어서 진형을 쳐라!”

파란 눈의 청년이 굳은 표정으로 말에서 내리며 소리쳤다.

붉은 머리의 소녀와 창을 든 청년 역시 말에서 내려 그의 청년 곁으로 모였다. 열 명이 넘는 나머지 기사도 청년의 주위로 다가왔다.

그 순간, 회색 인영이 혼란스러운 인파 사이로 파고 들어갔다.

“으악!”

“악!”

두 번의 비명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다.

가장 뒤에 있던 두 기사의 목에 붉은 구멍이 뚫려 피가 콸콸 흘러내리고 있었고, 두 사람은 바닥에 쓰려져 경련을 일으키다가 그대로 절명했다.

막 법기를 들어 올린 파란 눈의 청년과 나머지 두 사람은 어쩔 줄 몰라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고, 그들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상대의 속도는 너무나 빨라서 그들은 손을 쓸 틈조차 없었다.

일행이 파란 눈의 청년을 중심으로 막 진형을 이루었을 때, 검은 그림자가 다시 한 번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악!”

피 웅덩이 위로 쓰러진 또 다른 기사의 왼쪽 가슴에는 그릇만한 크기의 구멍이 나 있었으며, 심장은 사라지고 없었다.

일행 모두는 안색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그때 갑자기 세 명의 기사가 진형에서 뛰쳐나갔다. 그들은 말을 하나씩 잡아타고 왔던 길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세 사람이 얼마 도망가지도 못했을 때, 숲 속에서 나타난 회색 그림자가 그들 앞을 지나 건너편 숲속으로 사라졌다.

이어 말을 타고 도망가던 세 사람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져 데굴데굴 굴러갔다. 목에서 피를 뿜어내는 머리 없는 세 구의 시체를 태운 말은 계속 앞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 * *

이 각 후, 파란 눈의 청년과 다른 두 남녀를 제외한 기사들은 전부 피 웅덩이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시체는 대부분 사지가 끊어진 처참한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얼굴에는 여전히 죽음 직전의 두려움이 가득한 표정이 남아 있었다.

파란 눈의 청년은 가까스로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다른 두 사람은 얼굴이 종잇장처럼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특히 붉은 머리 소녀는 검을 쥔 손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휙!

회색 그림자가 다시 숲 속에서 튀어나와 창을 든 청년 앞에 귀신처럼 나타났다.

청년이 크게 기합을 지르며 창을 뻗자 수많은 창영이 상대를 향해 날아갔다. 동시에 수많은 붉은 검영과 커다란 은색 도광도 상대를 좌우에서 협공했다.

회색 그림자가 창영을 향해 정면으로 파고 들어가자 검영과 도광이 허공을 갈랐다.

펑! 펑! 펑!

푸른 창영은 상대에게 손쉽게 파괴되었고, 이어 끔찍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으악!”

창을 든 청년의 머리가 수박처럼 터지며 빨갛고 하얀 것이 사방으로 흩날렸고, 머리를 잃은 시체는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파란 눈의 청년과 붉은 머리의 소녀는 창을 쥔 청년의 시체 곁에 서 있는 상대의 모습을 그제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전신에 회색 털이 자란 원숭이 괴물이었다. 빨갛게 충혈된 원숭이의 두 눈에는 살의가 충만해 있었다.

“망할 자식, 목숨을 내놓아라!”

파란 눈의 청년이 왼손에 든 방패로 몸을 보호하며 오른손에 쥔 도를 휘둘렀다. 수많은 도영이 회색 원숭이를 향해 몰아쳤다.

붉은 머리의 소녀는 겁에 질린 상태였지만, 파란 눈의 청년이 용감하게 나서자 힘을 얻어 장검을 휘둘렀다. 수많은 붉은 반월형의 검기가 회색 원숭이를 뒤덮었다.

그러나 회색 원숭이가 도영을 향해 두 팔을 휘두르자, 도영과 방패가 거의 동시에 파괴됐다.

원숭이는 그대로 청년의 가슴을 뚫고 심장을 뽑아내서 한 입에 삼켜버렸다. 입가가 피에 젖은 원숭이의 모습은 더욱 흉악했다.

붉은 머리 소녀의 그물처럼 빼곡한 검기가 그제야 다가왔고, 회색 원숭이는 검기를 향해 두 팔을 마구 휘둘렀다.

쾅! 쾅! 쾅!

붉은 머리 소녀의 검기가 흩어지며 그녀가 들고 있던 검도 멀리 날아갔다.

“악!”

처절한 비명 소리가 뒤이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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