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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172화 (172/916)

172화. 짜고 치는 연극

결국 부적은 어느 종문의 복장을 한 사람이 하급 영석 백구십 개에 구입하는데 성공했다.

시작가의 세 배에 달하는 가격에 낙찰되자 현장의 분위기는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어 나온 물건들도 하나같이 진귀한 것이었다.

석목은 경매 물품이 하나씩 팔려나가는 것을 보며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영석이 이토록 유용한 것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깊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고급 법기나 진귀한 단약, 심법서 등도 영석만 충분하다면 경매에서 모두 얻을 수 있었다.

수속성 원소 친화력을 두 단계 높여주는 파란 보석 목걸이는 무려 열 번이 넘는 가격 경쟁이 벌어졌고, 결국 월예공주가 영석 이천삼백 개라는 놀라운 가격에 낙찰받았다.

평범한 경매 물품이 이 정도라면 성석의 가격은 얼마나 올라갈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석목은 자신의 저장반지에 보관된 주먹만 한 크기의 성석을 떠올리며 엄청난 흥분을 느꼈다.

“이번 물품은 선천등급의 괴수 적미미후(赤尾猕猴)의 정혈입니다. 법기와 부적 제작에 쓰이는 귀한 재료지요. 하급 영석 백 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석목은 기쁜 표정으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중년 남성이 황옥호리병을 들고 사방에 보여주고 있었다.

석목은 흥분을 누르며 조급히 나서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았다.

선천 괴수의 정혈은 상당히 희소한 물건이기 때문에, 그 가치를 알아본 이들이 끊임없이 가격을 높여 불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격은 영석 이백육십 개까지 치솟았고, 그러자 더 이상 가격을 높이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

그 순간 석목이 나섰다.

“영석 이백팔십 개.”

그러자 방금 전까지 가격을 경쟁하던 이가 다시 말했다.

“삼백 개.”

석목도 지지 않았다.

“삼백이십 개.”

그러자 상대는 결국 침묵했다.

“더 이상 없습니까? 없다면 이 적미미후의 정혈은 마지막에 가격을 외친 분의 것입니다.”

중년 남자가 말했다.

석목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드디어 탈태결을 한 단계 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바로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울렸다.

“삼백사십 개를 내겠습니다.”

석목은 소리가 난 앞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바로 종수에게 끈덕지게 달라붙던 신저광이었다.

신저광은 시선을 느낀 듯 석목을 향해 살짝 미소를 지으며 도발했다.

“사백 개.”

석목이 말했다.

장내의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선천등급 괴수의 정혈이 아무리 진귀하다고는 하나, 그만큼의 가격을 지불해 구매할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백이십 개.”

신저광이 천천히 말했다.

“오백 개.”

석목이 잠시 망설이다가 받았다.

“오백이십 개.”

신저광이 덧붙였다.

장내는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석목에게 쏠렸다.

표정이 어두워진 석목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그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은 것이다.

“화나 죽겠네!”

석목의 어깨에 앉아 있던 채아가 신저광을 노려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더 이상 없습니까?”

중년의 남자가 석목을 바라보며 말했다.

신저광도 석목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는 조롱하는 듯한 눈빛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좋습니다. 위로 올라와서 적미미후의 정혈을 가져가시지요.”

중년의 남자가 말했다.

신저광은 경멸하는 듯한 표정으로 석목을 다시 한 번 바라보고는, 득의양양하게 앞으로 나가서 영석 주머니를 내고 황옥 호리병을 받았다.

그 이후로도 경매는 계속 진행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진귀한 물품이 나왔고, 현장의 분위기도 그에 따라 점점 뜨거워졌다. 경매품이 나올 때마다 격렬한 각축이 벌어진 후에야 낙찰자가 정해졌다.

석목은 여러 차례 마음이 동했지만 안타깝게도 가진 영석이 부족했다.

그 순간, 석목은 갑자기 고개를 들어 머리 위를 바라보았다. 비록 매우 희미했으나 공간의 파동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 파동은 마치 물결처럼 장내의 상공에서 넘실거렸다.

공간 원소에 대한 친화력이 없는 사람이라면 실력이 아무리 고강하더라도 공간의 파동을 감지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무슨 일이야?”

채아가 석목의 표정이 이상한 것을 눈치 채고 물었다.

석목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월예공주가 있는 이 층의 공간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 있던 유안이 걸어 나가는 것을 발견했다.

아래로 내려온 유안은 주위의 소란스러운 사람들을 보며 잠시 수상한 표정을 짓더니, 출구를 향해 갔다. 그 표정은 비록 찰나에 스친 것이었지만, 석목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유안의 모습이 사라진 출구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가 몸을 일으켜 다른 쪽 출구로 나갔다.

“석두, 돌아가는 거야?”

채아가 물었다.

“응.”

석목은 대답을 하고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안함이 그의 마음속에서 맴돌았다.

“멈춰!”

석목이 출구로 나가려 할 때 몇 사람이 그의 앞을 막았다. 신저광 일행이었다.

“무슨 일이죠?”

석목이 말했다.

“이 물건, 갖고 싶죠?”

신저광이 적미미후의 정혈이 담긴 황옥 호리병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석목이 아무 말 없이 신저광을 바라보았다.

“이 물건은 나에겐 쓸모가 없으니 귀하가 정말 필요하다면 흥정을 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신저광이 웃으며 말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속 시원하게 하시지요.”

“좋습니다. 그렇다면 돌려 말하지 않지요. 이 정혈과 귀하의 앵무새를 교환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신저광이 말에 석목은 멍청한 표정으로 어깨 위의 채아를 바라보았고, 곧 머릿속에서 누군가를 떠올렸다.

“바라던 바입니다! 석두, 이 가난한 놈은 따라다녀도 맛있는 것 하나 주지 않아요. 공자님은 굉장히 뛰어난 인재이며 집안도 부유하니, 저를 절대 그렇게 대하지 않겠지요.”

석목이 입을 열기도 전에 채아가 말했다.

“하하, 평생을 배불리 먹고 마시게 해주마.”

그 모습을 본 신저광이 석목을 놀리듯 크게 웃어 제쳤다. 그의 곁에 있던 몇몇 일행들 역시 떠들썩하게 웃어댔다.

석목은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채아를 바라보았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석목은 이를 악 물고 말을 내뱉었다.

그러자 채아가 경멸하듯 석목을 한 번 바라보더니 날개를 펼쳐 신저광의 어깨 위로 날아갔다.

“석 공자, 여기 받으시죠. 본래 영리한 새는 나무를 골라 둥지를 트는 법이니 너무 화내지 마시고요.”

신저광은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호리병을 던져주고는 석목의 어깨를 두드렸다.

석목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출구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의 등 뒤에서 다시 한 번 빈정대는 웃음소리가 커다랗게 들려왔다.

신저광은 건물을 나서는 석목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매우 통쾌해했다. 그리고 채아를 보며 말했다.

“이름이 채아였지? 앞으로 이 몸의 말만 잘 따른다면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을 수 있을 게다.”

채아는 닭이 모이를 쪼아먹는 듯 고개를 연달아 끄덕였다.

“내가 종수 소저의 환심을 살 수 있도록 잘 도와야 한다.”

“대수롭지 않은 일이니 걱정 마세요.”

신저광의 말에 채아가 날개를 펄럭이며 가슴을 폈다.

그 말을 들은 신저광은 매우 기뻐했다.

“저는 고귀한 앵무새이기 때문에 우리 안에는 갇히기 싫어요.”

채아가 덧붙였고, 신저광은 별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저 형, 경매가 계속되고 있어요. 아직 좋은 물건이 많이 남았으니 어서 돌아가지요.”

노란 옷을 입은 남자가 재촉했다.

신저광은 무리를 데리고 다시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 역시 오늘 경매에서 더욱 많은 물건을 얻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한편 석목은 경매장 밖 거리의 인파 사이에 서서 숨을 가볍게 내뱉었다. 마음속의 불안감은 이미 완전히 사라진 뒤였다.

석목은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이 각 후, 무언가가 보광각의 삼 층에서 나오더니 허공을 한 바퀴 선회한 후 석목에게 빠르게 날아왔다. 바로 채아였다.

“하하, 그 멍청이! 정말 쉽게 속는구나!”

채아가 석목의 어깨에 앉으며 웃었다.

석목도 살짝 미소를 지었다.

“석두, 내 덕분에 영석 하나 사용하지 않고 이 정혈을 얻었는데 어떻게 감사할 거야?”

채아가 말했다.

둘은 서로 맞장구를 치며 신저광 앞에서 짜고 치는 연극을 한 것이었다.

석목은 웃으며 채아를 칭찬하려 했다.

“좋아, 이번에 네가 한 건 했….”

이변이 발생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붉은 태양이라도 떠오른 듯 보광각 내부가 갑자기 붉게 빛나더니, 네 출구로 눈부시게 붉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붉은 빛의 근원지는 바로 일 층의 경매장이었다.

길가에서 오가던 사람들은 모두 발걸음을 멈추고 놀란 표정으로 그곳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보광각에서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붉은 빛이 절대 좋은 징조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눈앞의 광경을 본 석목의 표정도 살짝 굳었다. 사망의 기운이 충만하게 서린 붉은 빛은 매우 음산하게 느껴졌다.

석목은 이 기운이 무엇인지 절대 모를 수가 없었다.

그것은 사령계 특유의 기운이었다.

“설마….”

석목의 머릿속에 유안의 모습이 떠올랐다.

보광각의 네 입구에 있는 병사와 통천선교 제자들 역시 이 기이한 현상을 발견하고 표정이 굳어졌다.

동쪽 출구 쪽의 한 젊은 병사가 즉시 보광각 안으로 뛰어가려 했지만, 옆에 있는 중년의 병사에게 가로막혔다.

“급할 것 없다. 보광각이 어떤 곳이냐. 설령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다 하더라도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 우리는 입구만 잘 지키면 돼.”

그러나 중년의 병사가 말을 마치는 순간, 갑자기 귓가에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그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어느새 중년 병사의 몸은 두껍고 날카로운 뼈창에 꿰뚫려 벽에 박혀 있었다.

중년의 병사는 입을 벌려 소리를 지르려 했다. 그러나 순식간에 생명력이 소진되는 바람에 입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오지 못했다.

게다가 날아온 뼈창은 한 개가 아니었다. 다섯 명의 병사가 거의 동시에 벽이나 바닥에 박혔으며, 여러 개의 뼈창에 몸을 관통당한 이들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기도 했다.

중년의 병사는 남은 힘을 쥐어짜 가까스로 고개를 들었다. 상인 복장을 한 키가 작고 뚱뚱한 남자가 보광각의 동쪽 입구로 천천히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 남자는 몸에서 회색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으며, 머리 뒤에서 여섯 개의 빛이 은은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석목은 남자의 모습을 자세히 보고 놀랐다.

“6성(星) 술사!”

유안의 사제 중 한 명인 그가 무려 6성의 힘을 가진 성계술사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석목은 이전에 서문설과 빗속을 걸으며 그녀에게 성계술사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성계술사가 되어 머릿속에 별자리가 형성되면 전투를 할 때 별의 환영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또 그 안에 저장된 태음(太阴)의 힘으로 시전하는 술법의 위력을 높일 수 있다고 했다.

환영의 개수는 머릿속의 별자리에 활성화된 별의 개수에 따라 늘어나며, 최대 일곱 개까지 만들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별의 환영은 하나당 시전하는 술법의 위력을 삼 할 가량 높여주며, 일곱 개의 환영을 전부 소환하면 술법의 위력이 세 배 가까이 증가했다. 하지만 그에 따라 법력 역시 대량으로 소모됐다.

성계술사는 필요할 때 ‘성폭(星爆)‘을 시전해 별의 환영을 폭발시킬 수도 있었다. 그렇게 하면 수련의 경지는 떨어지는 대신, 일정한 시간 동안 술법의 위력을 대폭 증가시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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