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175화 (175/916)

175화. 법보의 위력

사령계, 어느 거대한 해골 제단의 위.

제단 위의 상공에 떠 있는 검은 구름 사이에서 검은 번개가 어렴풋이 반짝였다.

제단 위에는 두껍고 큰 백골 여덟 개가 세워져 있었다. 그것들은 회색빛을 뿜어내며 하나의 진법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때, 회색 진법이 발동되며 허공에서 시체가 한 구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체가 제단 위로 떨어지자 주위에서 회색 연기가 미친 듯이 모여들었다. 연기는 곧바로 시체의 안으로 파고들었고, 그러자 시체는 빠르게 쪼그라들어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변했다.

잠시 후, 시체들은 팔다리를 비틀거리며 일어나기 시작했다.

* * *

다시 보광각 안.

회색 진법 속의 시체가 점차 사라지자 핏빛 영패에서 회색 연기가 피어올랐다. 연기는 얼굴을 가린 여인과 다른 세 사람의 몸에 흡수됐다.

그러자 네 사람이 몸에서 뿜어내는 회색빛이 더욱 밝아졌고 기운도 점차 강해졌다.

회색 진법이 밝아지며 화염이 점점 거세게 타오르자, 시체는 더 빠른 속도로 사라져갔다.

반 각도 지나지 않아 진법 속에 있던 수천 구의 시체가 전부 사라졌고, 회색 진법도 천천히 흩어졌다.

몸에서 회색빛을 뿜어내는 네 사람은 이전보다 기운이 확연히 강해져 있었다.

그중 이미 성계술사의 정점에 올라 있던, 얼굴을 가린 여인은 월계술사에 오른 듯했다.

붉은 얼굴의 사내가 흥분한 표정으로 무언가 말하려 했다.

그 순간 밖에서 갑자기 천지를 진동하는 커다란 소리와 함께, 나천귀왕의 포효가 들려왔다.

보광각이 격렬하게 진동하더니 한쪽 벽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며 세 사람이 들어왔다.

얼굴을 가린 여인은 그쪽으로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세 사람은 모두 도복을 입고 몸에서 눈부신 하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들은 통천선교의 지계장로였다.

세 장로는 빠르게 실내를 둘러본 뒤, 중앙에 있는 핏빛 달 아래의 공간 통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바로 그때, 공간 통로의 앞쪽에서 회색빛이 터져 나오더니 거대한 금색 해골이 나타났다. 해골이 가로로 휘두른 금색 창이 허공에 금색 궤적을 그리며 지계장로들과 충돌했다.

쿵!

금색 해골의 거대한 몸이 뒤로 한 걸음 밀려났다. 하지만 통천선교의 세 장로 역시 뒷걸음질쳤다.

곧바로 자세를 다잡은 세 장로는 몸에서 하얀 빛을 더욱 강하게 뿜어냈다.

“황금 해골왕!”

한 중년 남자가 놀라서 외쳤다.

그와 동시에 공간의 통로 앞에서 검은 빛이 연달아 반짝이더니 거대한 사령생물 두 구가 더 나타났다.

하나는 키가 팔 장 가까이 되는 녹색 털을 가진 강시였으며, 다른 하나는 머리 두 개가 있는 부시랑이었다.

둘 모두 황금 해골왕과 비슷한 수준의 기운을 뿜어내고 있는 지계의 실력자였다.

그 순간 얼굴을 가린 여인과 세 사람은 재빨리 몸을 움직여 공간통로 앞을 막았다.

사령생물들은 울부짖으며 통천선교의 세 장로들에게 달려들었다. 장로들은 어쩔 수 없이 각자 거대한 법상을 만들어내 사령생물들과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싸우는 와중에 지면이나 벽으로 빛줄기가 떨어지며 굉음을 냈다.

두껍고 커다란 검광이 한쪽 벽면을 가격하자,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있던 보광각은 격렬하게 흔들리더니 더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얼굴을 가린 여인과 세 사람은 거대한 회색빛의 방패를 만들어 낙석으로부터 공간통로를 지켰다. 붉은 얼굴의 사내는 검은 털의 강시로 변해서 떨어지는 돌들을 가격해 가루로 만들었다.

보광각 안에 있던 다른 사령생물들은 상당수가 떨어지는 돌에 깔렸다. 그러나 여섯 지계의 존재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격렬한 전투를 이어갔다.

보광각이 무너지자 주위가 밝아졌다. 얼굴을 가린 여인과 세 사람도 그제야 바깥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공간의 통로가 열린 뒤 지금까지 거의 만 구가 넘는 사령생물이 몰려나왔고, 그것들은 천우성 곳곳으로 퍼져나간 상태였다. 보광각 주위에 있는 거리의 사람들은 이미 사령생물들에게 전부 살해당했다.

하지만 통천선교와 육산왕조의 반응은 신속했다. 이미 다수의 병사와 통천선교의 제자가 사방에서 모여들어 사령생물들과 맞서고 있었다.

성 전체는 이들의 싸움으로 혼란에 빠져 있었다.

콰르릉!

고막을 찢어 버릴 듯 우레와 같은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커다란 소리는 검고 하얀 두 빛이 격렬하게 충돌하며 몰아치는 광풍이 내는 소리였다.

거대한 충격에 얼굴을 가린 여인과 다른 세 명의 몸도 살짝 흔들렸다. 부서진 보광각의 잔해 역시 바람에 날렸다.

놀란 네 사람은 소리가 난 방향으로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멀리 떨어진 폐허 위, 회색 연기가 자욱한 곳에서 나천귀왕이 백발의 노인과 싸우고 있었다.

그 노인은 바로 통천선교의 교주인 무진도인이었다.

무진도인의 옆에는 세숫대야만한 크기의 흰색 도장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도장은 크기가 커졌다 작아지기를 반복했는데, 그것이 나천귀왕의 도끼와 충돌할 때마다 천둥소리 같은 굉음과 함께 파동이 일며 하늘로 빛이 솟구쳤다.

허공에서 일어나는 파문과 회색 안개에 뒤덮여서 둘의 모습은 흐릿하게 보였다.

석목은 먼 곳의 오 층 건물 옥상에서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천위는 이 대륙에서 가장 강한 존재였으며, 그들의 전투는 보고 싶어도 보기 쉽지 않은 광경이었다.

“석두, 그…그만 보고 얼른 떠나는 게….”

채아가 석목의 옷섶 사이에서 머리만 살짝 드러낸 채 말했다.

“시끄러워.”

석목이 채아의 말을 끊었다.

채아가 살짝 위축된 표정으로 석목을 바라보는 순간, 거대한 법력의 파동이 보광각에서 전해졌다.

놀란 채아가 다시 석목의 옷 속으로 숨었다.

무진도인과 나천귀왕의 싸움은 점차 격렬해졌다.

시간이 지나자 무진도인이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다. 그가 사용하는 흰색 도장이 하얀 빛을 발사하며 압박하자 나천귀왕은 포효하며 뒤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진도인이 짧은 시간 내에 나천귀왕을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둘과 멀지 않은 곳에서는 또 다른 혼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빛의 줄기들이 놀라운 기세로 날아가서 서로 충돌하고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격렬한 전투의 여파로 주위의 지면에는 커다란 구덩이들이 생겼다.

빛 사이로 사람이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는데,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모습이 꼭 귀신같았다.

전투의 규모는 나천귀왕과 무진도인의 그것과 비할 바가 안 됐지만, 이쪽도 치열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쾅!

양측이 다시 한 번 강하게 충돌하더니 흩어지면서 네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들은 전투를 잠시 멈추고 서로 대치에 들어갔다.

한쪽에는 유안이 있었으며, 다른 한쪽에는 거대한 기운을 지닌 세 사람이 서 있었다.

셋 중 한 사람은 통천선교의 도복을 입고 있었고, 나머지 두 사람은 육산왕조의 문양이 그려진 노란색 옷차림이었다. 이들은 모두 지계의 강자였다.

세 사람은 이미 각자의 법상을 발동시킨 상태였다.

유안은 전신에서 회색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의 머리 뒤에서 밝게 빛나는 보름달의 환영이 밝은 빛을 분출했다.

그는 이가 많이 나가서 매우 낡아 보이는 회색 검을 들고 있었는데, 검신에서는 회색 검기가 끊임없이 뿜어져 나왔다.

네 사람은 전부 창백해진 얼굴로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그러나 유안은 지계의 존재 셋을 혼자 상대하면서도 전혀 밀리지 않고 있었다.

바로 그때, 옆에서 날카롭고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나천귀왕의 고통에 찬 비명이 울려 퍼졌다.

유안은 표정이 굳어서 소리가 난 방향을 바라보았다.

비틀거리며 몇 걸음 물러난 나천귀왕의 가슴에는 뼈가 보일 정도로 거대한 상처가 나 있었다. 다만 피는 흐르지는 않았다.

나천귀왕은 분노가 가득한 표정으로 무진도인을 노려보았다. 그가 들고 있는 뼈도끼는 절반 가까이 깎여 있었으며, 그것이 뿜어내는 회색빛도 상당히 옅어져 있었다.

무진도인은 나무로 만든 오래된 검을 들고 있었다. 영성이 깃든 듯 검신이 푸른빛을 뿜어내는 모습이 매우 신비롭게 보이는 검이었다.

그것을 본 유안이 눈꼬리를 살짝 떨며 말했다.

“또 다른 법보구나!”

법기 위에는 영기, 영기 위에는 전설 속의 법보가 있었다. 그 위력은 영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으며, 그만큼 매우 희소했다.

무진도인이 사용하는 흰색 도장과 검 모두 법보였다.

나천귀왕이 가진 도끼의 위력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그래봤자 영기 중에서 가장 좋은 축에 들 뿐이었다.

유안은 머릿속으로 후퇴를 생각했다.

이번 행동의 목적을 이미 달성했다. 승선경매에 참여한 상당수의 통천선교 제자들을 살해했으며, 천우성을 극도의 혼란에 빠트리고 일대를 황폐화시켰다.

만약 지금 도주하지 않는다면 통천선교의 전력이 이곳으로 모일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명월교의 교도들은 살아서 이곳을 떠나지 못할 게 분명했다.

문득 무진도인이 보광각 쪽을 둘러보았다.

그곳에서는 여전히 사령생물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중이었다. 지계의 강자 세 명은 세 사령생물에게 발목이 잡혀 공간의 통로를 파괴하지 못하고 있었다.

무진도인은 순간 초조한 표정을 짓더니 한 손가락을 구부렸다.

그의 곁에서 비행하던 흰색 도장에서 갑자기 빛이 터져 나왔다. 그 빛은 크기가 집채만 하게 커지더니 나천귀왕을 향해 운석처럼 떨어졌다.

동시에 무진도인은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거대한 푸른색 검광이 주위의 공간에 파동을 일으키며 엄청난 속도로 나천귀왕의 가슴을 향해 날아갔다.

나천귀왕은 두려움에 찬 눈빛으로 포효하며 두 손으로 도끼를 들었다. 그의 전신이 짙은 회색 연기에 덮였다.

바로 그 순간, 무진도인이 들고 있던 불자를 흔들자 흰 빛이 반짝이며 하얀 실로 변했다. 하얀 실은 검광과 도장보다 먼저 나천귀왕에게 도달해 순식간에 그의 몸을 묶었다.

“법보가 또 있다니!”

이를 본 유안은 더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의 머리 뒤에서 보름달이 밝게 빛나더니, 오색찬란한 빛이 그의 몸 앞에 나타나 세 지계의 존재를 향해 날아갔다.

엄청난 위력의 오행술법이 한데 합쳐진 그 빛은 마치 성난 파도처럼 세 사람을 향해 몰아쳤다.

크게 놀란 지계의 존재 세 사람은 황급히 법상으로 공격을 막았다.

유안은 그들에게 일격을 날린 후, 즉시 몸을 돌려서 폐허가 된 보광각 방향으로 날아갔다.

몸이 구속된 나천귀왕은 계속 포효하며 전력을 다해 발버둥치고 있었다.

하지만 흰색 실은 매우 질겨서 나천귀왕의 힘으로도 끊어지지 않았다. 발버둥을 칠수록 오히려 더 세게 조여 들었다.

얼굴이 사색이 된 나천귀왕의 몸에서 순간 검은 부문이 떠올랐다. 그러자 그의 거대한 몸이 갑자기 삼 장도 채 되지 않는 크기로 줄어들었다.

콰쾅!

흰색 도장이 나천귀왕의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도장은 거대한 소리를 내며 지면에 삽 십 장 가까이 되는 깊은 구멍을 만들었다.

나천귀왕은 도장은 피할 수 있었지만 검광은 완전히 피하지 못했다. 그의 한 쪽 팔이 검광에 잘려 바닥에 떨어졌다.

나천귀왕은 비명을 지르며 흰색 실이 다시 조이기 전에 몸을 피했다.

아무리 용맹한 나천귀왕이라 해도 법보를 끊임없이 꺼내드는 무진도인을 상대로 계속 싸울 엄두는 나지 않았다.

나천귀왕의 몸에서 검은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그의 몸이 점차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망할 자식, 어디로 도망가는 것이냐!”

무진도인이 우레와 같은 목소리로 호통을 치며 나천귀왕을 쫓았다.

그의 옆에 있던 하얀 도장이 하늘로 솟아올라 무진도인보다 한 발 빨리 나천귀왕을 따라잡았다.

웅웅웅!

흰색 도장에서 퍼져 나온 흰색 빛이 나천귀왕의 몸과 주위를 덮었다.

그 순간 주위의 공기가 갑자기 물처럼 무거워지더니, 사령계로 돌아가는 공간의 통로가 굳어버렸다.

놀란 나천귀왕은 회색 연기를 미친 듯이 뿜어내며 주위를 뒤덮은 흰색 빛에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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