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183화 (183/916)

183화. 두 여인

여러 번의 시도를 통해 석목은 자신의 현재 정신력으로는 최대 세 개의 화염구를 오 장 거리까지 제어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제야 만족한 석목은 산 아래로 내려가 산자락에 위치한 임시 거처로 향했다.

앞서 석목은 기운술을 사용해 대진국과 육산왕조의 국경선을 따라 몇 달 동안 날아갔다. 귀찮은 일이 발생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비록 빠르게 소모되는 법력을 보충하기 위해 상당한 영석을 들여야 했지만, 수많은 영석을 가지고 있는 그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한 달 후, 석목은 육산왕조와 대진국, 서하고국의 국경선이 만나는 곳에 도착했다. 그리고 인적이 드문 화령산맥(火灵山脉)을 발견했다.

석목은 고민 끝에 그곳에 임시거처를 만들었다. 서하고국에 들어가기 전에 폐관수련을 통해 실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였다. 서하고국은 명월교의 발원지인만큼 많은 준비를 해가는 것이 옳다고 판단한 것이다.

석목은 현재 온신술 12단계에 올라 있었으며, 대력마원탈태결은 6단계의 정점에 올라 7단계까지 벌모세수만을 남겨놓고 있었다.

일 각 후, 석목은 돌침대 한 개만 놓여 있는 누추한 석실에 나타났다.

그곳은 마치 화로처럼 뜨거워서 보통사람은 도저히 생활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석목은 돌침대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숨을 가다듬었다. 몸을 최적의 상태로 만든 그는 진묘계에서 황옥 호리병과 흰색 옥병을 꺼냈다.

그리고 하얀 병을 다리 위에 올려놓고 왼손으로 호리병의 뚜껑을 뽑았다.

호리병에서 비린내를 풍기는 붉은 연기가 솟아나와 입구 주위를 감돌았다. 그 연기는 곧 살아 있는 것처럼 생생한 작은 원숭이의 형상으로 변했다.

석목은 진기를 쏘아서 작은 원숭이 모습의 연기를 흩어 다시 호리병 안으로 들어가게 했다.

그 후 신속하게 하얀 병의 뚜껑을 열고, 호리병에 들어 있는 적미미후의 정혈을 전부 병 안으로 쏟아 부었다.

그러자 병 안에 들어 있던 검은 연기 형태의 마살지기가 즉시 격렬하게 끓어올랐다. 그것은 검은 구렁이의 모습으로 변해 붉은색 원숭이와 싸우기 시작했다.

크기가 작은 원숭이는 잠시 발버둥 치다가 곧 검은 구렁이에게 잡아먹혔다.

그 후 검은 구렁이는 다시 검은 연기로 변했는데, 이전과 다르게 붉은 빛이 섞여 있었다.

석목은 다급히 흰색 병의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그것을 한쪽에 놓아둔 뒤, 두 눈을 감고 대력마원탈태결의 6단계 법결을 외우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의 체내에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결정이 나타났다. 자연의기가 그의 몸 주위에 천천히 모여 들었으나 주위를 끊임없이 배회할 뿐, 체내로 진입하지는 못했다.

그때 석목이 갑자기 두 눈을 뜨더니 하얀 병의 뚜껑을 열고 진기를 주입했다. 그러자 병에서 검은 연기가 솟아나와 그의 전신을 감싸기 시작했다.

이어서 석목의 체내에서 콩을 볶는 것처럼 무언가 탁탁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석목은 식은땀을 흘리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고통은 이미 예상하고 있던 것이었다. 석목은 즉시 진혼주를 외우기 시작했다.

고통에 차 있던 석목의 표정이 천천히 편안해졌다. 그러나 체내에서 나는 소리는 점차 강해졌고, 동시에 피부에서 검은 때 같은 것이 나오기 시작했다.

두 시진 뒤, 석목의 전신을 휘감고 있던 연기는 결국 흩어지기 시작했다.

석목은 안색이 살짝 창백했지만 만면에는 웃음을 띠고 있었다.

그는 드디어 대력마원탈태결 7단계에 오른 것이다.

이전에 6단계에 오를 때보다 두 배 이상 고통스러웠으며, 그것이 지속되는 시간 역시 훨씬 길었다. 하지만 그만큼 수확도 컸다. 석목의 몸에는 이전과 비교해서 질적인 변화가 생겼다.

석목은 체내에 충만한 힘을 쏟아내고 싶은 충동에 쇄석권을 내질렀다. 그 위력은 선천초기 무인의 호신강기를 깨뜨릴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육신이 이전보다 훨씬 단단해졌다는 것이었다. 전혀 방어를 하지 않고서도 선천초기 무인의 진기를 담은 공격에 별다른 상처를 입지 않을 정도였다.

대력마원탈태결은 7단계 오른 뒤로 단계마다 필요한 정혈의 양이 점점 늘었고, 고통 역시 점차 강해졌다. 그 대신 효과는 놀랄 만큼 뛰어났다.

석목은 7단계 수련에 필요한 정혈이 없어서 더 이상의 수련은 할 수 없었다. 그는 방 안에 미리 준비해둔 목욕물로 몸을 깨끗하게 씻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석실 밖은 수십 장 크기의 거대한 석회동굴 안이었다. 동굴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종유석과 석순이 있었다.

방 맞은편의 수십 장 떨어진 곳에는 지하로 구불구불 뻗어 있는 으슥한 통로가 어렴풋이 보였다.

석목은 통로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의 눈앞에 수백 장 크기의 거대한 공간이 나타났다.

그곳의 공기에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내부가 몹시 뜨거워서 호흡을 할 때마다 폐에 불이 붙는 것 같았다.

그 공간의 대부분은 붉은 거품이 솟아오르는 걸쭉한 붉은색 용암이 차지하고 있었다.

석목은 용암에서 십 장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방에 들어갔다.

그 방은 석목이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직접 벽을 파서 만든 곳으로, 용암의 화속성 원소가 특히 짙은 탓에 적원화경의 수련 효과가 매우 뛰어났다.

석목은 텅 빈 방의 가운데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진묘계에서 건양단을 꺼내 한입에 삼켰다.

그는 주위의 짙은 화속성 기운을 느끼며 적원화경의 7단계 법결에 따라 진기를 사지로 흘려보냈다. 진기가 전신의 경맥을 따라 흐르며 그의 몸이 붉게 변해갔다.

* * *

한 달 후, 석목이 들어간 방에서 통쾌하고 힘찬 외침소리가 들려왔다.

상반신을 드러내고 방 안에 앉아 있는 석목의 전신에는 붉은 연기가 감돌고 있었다.

석목은 그동안의 수련을 통해 결국 적원화경 7단계를 돌파해 8단계에 올랐고, 그 결과 진기가 크게 증가했다. 이는 그가 선천중기의 경지에 올랐다는 것을 의미했다.

화속성 원소 친화력 역시 상당히 증가해서 6단계에 이르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았다.

이렇게 빨리 수련에 성공할 수 있었던 건 흡일식과 이곳의 환경, 그리고 집양단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은 효과를 지닌 건양단 덕분이었다.

* * *

천우성에 있는 통천선교 분교.

백여 장 높이의 작은 산에 있는 모든 건물이 금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중 빼곡한 건물에 둘러싸인 거대한 광장이 하나 있었다.

광장의 지면에는 하얀 연기가 감돌고 있었다. 그래서 그 위에 서 있으면 마치 구름 위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느껴졌다.

광장의 정중앙에는 하얗게 빛나는 글자로 ‘등선대(登仙台)’라고 새겨진, 거대한 백옥으로 만들어진 화려한 무대가 있었다.

그 위에 세 남자와 세 여자가 서 있었다. 여섯 사람 모두 나이는 많지 않았으며, 외모가 출중했다.

세 여자 중 눈처럼 하얀 옷을 입은 여인은 자태와 외모가 아름답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러나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어서 마치 빙설선녀를 연상케 했다.

다른 한 사람은 녹색 옷을 입고 있었으며, 몸매가 아름다웠고 눈썹은 그림과 같았다. 그녀의 외모도 백의의 여인에 비해 전혀 뒤떨어지지 않았다.

두 여인은 바로 서문설과 종수였다.

보라색 옷을 입은 마지막 소녀의 외모는 서문설과 종수에 비해 상당이 부족했다. 그러나 뛰어난 기개를 뿜어내고 있어서 색다른 매력이 느껴졌다.

세 남자 역시 모두 기품이 있어 보였으며,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중 한 청년은 푸른색 옷을 입고 등 뒤에 푸른색 검을 메고 있었다. 그는 한 자루의 창처럼 자세가 꼿꼿해서, 무너지는 태산 앞에서도 꼼짝도 하지 않을 것 같았다.

옆에는 붉은 옷을 입은 붉은 머리의 소년이 서 있었다. 그의 얼굴에 붉은색 비늘 모양의 무늬가 어렴풋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다른 종족과의 혼혈인 것 같았다.

또 다른 남자는 보라색 옷을 입고 있었다. 그는 풍채가 빼어났으며, 소매에는 붉은색 구름 모양의 문양이 수놓아져 있었다.

육산왕조의 각 종문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은 그 붉은 구름이 육산왕조 마운종(摩云宗)의 표식이며, 영선대전에 강림했던 신선 중 한 명이 속했던 종문이라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다.

세 남자는 앞을 보고 있었지만, 종종 곁눈질로 세 절세 미인을 훔쳐보고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서문설과 다른 두 여인은 세 남자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등선대 주위에는 수많은 관중이 흥분한 표정으로 여섯 사람을 보며 시끌벅적 떠들고 있었다.

승선대회의 참가 인원은 예전에 비해 거의 절반으로 줄어 있었다. 일전에 승선경매가 열렸을 때, 명월교가 소환한 사령생물에 의해 승선대회에 참가하는 각 종문의 청년들이 대거 살해당하는 참사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 일 때문에 통천선교의 위엄은 유례없이 추락했고, 상당수의 종문과 가문이 설명을 요구하며 성토했다. 살해당한 이들은 모두 각 종문세가에서 가장 유망한 인재들이었던 만큼 이런 사태가 달가울 수 없었던 것이다.

통천선교는 막강한 저력을 가진 육산왕조 제일의 종문답게 신속하고 대대적인 숙청 작업을 했다. 한 달 이내에 육산왕조 31부 108주의 모든 성에서 명월교의 교도 수백 명을 적발해 그들의 악행들을 공개적으로 열거했으며, 즉결처형을 진행해서 종문과 가문들의 분노를 어느 정도 잠재웠다.

게다가 경매에서 목숨을 잃은 승선대회 참가 제자에 대해서는 해당 종문이나 가문에게 일정한 보상을 해줬다. 수련 자원을 지급하거나 다음 승선대회참가 인원수를 늘려주기로 약속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종문과 가문들의 불만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어쨌든 일은 명월교가 저지른 것이고, 통천선교로서는 이렇게까지 보상했으니 모든 성의를 다 보인 셈이었다.

소란이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승선대회는 예정대로 개최되었다. 게다가 매우 성대하게 열려서 많은 사람의 마음을 안심시켰다.

여러 차례 각축이 벌어진 끝에 승선대회에서 최종적으로 뽑힌, 가장 자질이 우수한 청년들이 바로 이 여섯 사람이었다.

광장의 다른 한쪽에는 통천선교의 고위층과 육산왕조의 왕족 등이 모여 있었다.

월예공주 역시 그들 사이에 있었다. 그녀는 등선대 위의 여섯 사람을 달갑지 않은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월예공주는 대회에서 아주 근소한 차이로 종수에게 밀려 4위를 차지했고, 간발의 차이로 선택을 받지 못했다.

“예아야, 승선대전에는 뽑히지 못했지만 무진도인이 너를 제자로 받아들이겠다고 짐에게 약속했다. 열심히 수련하기만 하면 너도 언젠가 선계에 오를 기회가 있을 것이다.”

월예공주 옆에서 노란 용포를 입은 중년의 남자가 말했다. 그는 육산왕조의 왕 육선인이었다.

월예공주는 그 말을 듣고 기분이 조금 나아졌는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한편 무대 위의 종수는 서문설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서문설 사저, 통천선교가 석목에게 현상금을 내건 사실을 알고 있나요?”

그 말을 들은 서문설의 차가운 얼굴에 복잡한 표정이 스쳐지나갔다. 그녀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 일에 대에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종수가 다시 물었다.

“명월사교가 이계의 사령생물을 소환해 살육을 벌였을 때 현장에 없었기 때문에, 그가 어째서 이 일에 연루되었는지 알 수 없어. 하지만 통천선교에서 아무 이유 없이 지명수배를 내리지는 않았을 거야.”

서문설이 말했다.

그러자 종수의 말투가 점차 차가워졌다.

“우리는 모두 3국 7종 출신이잖아요. 설마 정말 석 오라버니가 사교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서문설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가 종수와 눈이 마주쳤다.

종수의 아름다운 두 눈에는 분노가 담겨 있었다.

“그날 현장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함부로 판단을 내릴 수는 없어. 하나만 충고할게. 우리는 앞으로 신선이 되기 위한 길을 걸어야해. 그러니 수행에 방해되지 않게 세속의 일에 대해서는 신경 끄는 것이 좋을 거야.”

서문설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충고 고마워요.”

그 모습을 본 종수도 시선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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