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184화 (184/916)

184화. 기회를 놓치다

바로 그 순간, 멀리서 파란 옷을 입은 사람이 천천히 날아와서 여섯 사람 앞에 착지했다. 눈처럼 하얀 불자를 들고 있는 그는 통천선교의 교주 무진도인이었다.

주위 사람들이 모두 공경한 눈빛으로 일제히 무진도인을 바라보았다.

“오늘로서 승선대전은 전부 끝났다. 자질이 뛰어난 이 여섯 사람은 앞으로 선인이 되기 위해 수행을 하게 될 것이다.”

무진도인이 여섯 사람을 보며 말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주위에서 폭발적인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반 년 전 명월사교가 천우성의 수많은 백성을 해한 사건은 하늘이 용납하지 못할 일이었다. 앞으로 남은 명월사교의 잔당을 전력을 다해 추격할 것이다. 그래서 국내에 있는 모든 사교도를 깨끗이 섬멸할 것을 노부가 이 자리에서 약속하겠다.”

무진도인이 숙연한 표정으로 힘 있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천우성의 시민들은 갈채를 보냈고, 광장의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너희는 잠시 후 노부와 함께 선교의 본교로 가서 목욕재계를 한 뒤, 천존(天尊)에게 삼배를 하고 통천선법(通天仙法)을 하사받게 될 것이다. 그 후 장생전에 들어가 폐관수행을 하게 될 것이다. 빠른 시일 내에 깨달음을 얻어 선계에 올라 우리 육산왕조의 백성들을 보우하기 위함이다.”

무진도인이 몸을 돌려 여섯 사람에게 말했다. 여섯 사람은 흥분한 표정으로 일제히 대답했다.

“예.”

바로 그때, 종수가 갑자기 외쳤다.

“무진도인님, 잠시 기다려주세요!”

무진도인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종수를 바라보았다.

“질문이 있다면 해도 좋다.”

무진도인이 온화하게 말했다.

“제가 이번에 선택받을 수 있었던 것은 운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자질만 따진다면 월예공주가 저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종수가 말했다.

“그 말은 무슨 뜻이지?”

무진도인이 흰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수차례 숙고했지만 제가 선택을 받기에는 과분한 것 같아, 승선 자격을 포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종수가 말했다.

그녀가 그 말을 내뱉자 순간 광장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내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니겠지?”

“승선 자격을 포기하겠대!”

“이…이런 일은 이제껏 들어본 적도 없어….”

각 종문의 천재들이 승선 자격을 얻기 위해 삼십 년에 단 한 번 열리는 승선대회에 모여 싸우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훗날 선인이 되어 천지와 같은 세월을 살며, 해와 달과 함께 빛나는 것은 엄청난 영예였다.

그런데 그것을 얻고서도 스스로 포기하는 사람이 있다니!

무진도인 역시 놀란 표정으로 종수를 바라보며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승선대전이 진행된 이래 이런 일이 발생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종수와 함께 서 있던 다섯 사람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월예공주도 손으로 입을 가리며 경악한 표정이 되어 종수를 보았다.

“잘 생각하고 결정한 것인가? 선인이 되는 것은 어린아이의 놀이가 아니다. 순간의 충동으로 경솔하게 행동하지 말게.”

무진도인이 종수를 보며 천천히 말했다.

“충분히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에요. 저는 포기하기로 했으니 무진도인께서는 이 자격을 월예공주님에게 주도록 하세요.”

종수가 확고한 투로 말했다.

놀란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에 주위가 점점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조용!”

무진도인이 한 손을 휘두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무형의 파동이 순식간에 광장 구석 곳곳으로 퍼져나가자 소란이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무진도인은 고개를 돌려 종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뜻대로 하여라.”

종수는 무진도인을 향해 인사한 뒤 자리를 벗어났다.

“종수가 승선의 자격을 포기했으니, 순위에 따라 그녀의 자리는 4등인 월예공주가 채운다.”

무진도인이 큰 소리로 선포했다.

월예공주가 기뻐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그녀는 무언가를 떠올린 듯 용포를 입은 중년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부황, 설마 전부 부황께서 계획한 것인가요?”

그러나 용포를 입은 중년의 남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상하네요. 그럼 그녀가 어째서 갑자기 승선자격을 포기했을까요? 부황, 어찌됐든 종수가 기회를 포기한 덕에 제가 자격을 얻었으니, 저를 대신해 종수에게 감사의 선물을 전해주세요.”

월예공주가 말했다.

“좋다. 네가 말하지 않아도 그럴 계획이었다.”

용포를 입은 중년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을 들은 월예공주가 한 발로 바닥을 찍었다. 그러자 주위에 노란 빛이 나타나서 그녀의 몸을 떠받들고 등선대를 향해 날아갔다.

* * *

반나절 후, 종수가 머무는 숙소.

종수는 여행에 필요한 짐을 꾸리고 있었다. 그녀는 잠시 무언가 생각하다가 짐에서 붉은 영석을 꺼내 챙기고 문 밖으로 나갔다.

마당에는 묘음종의 녹색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초조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는 종수가 나오는 것을 보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사매, 어째서 갑자기 승선자격을 포기한 거야? 이런 기연은 원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중년의 남자가 말했다.

“사형, 이제 와서 더 말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종수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남자는 무언가 더 말하려 했지만, 그 순간 다른 한 남자가 마당으로 걸어 들어왔다.

노란 옷을 입고 있는 그 남자는 한쪽 팔이 잘린 듯 왼쪽 소매가 텅 비어 있었다.

그는 바로 월예공주를 모시고 경매에 참여했던 지계의 존재였다.

종수와 녹색 옷을 입은 중년 남자는 그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선천무인인 두 사람조차 다가오는 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귀하는 누구시죠?”

종수가 물었다.

“나쁜 뜻을 가지고 온 것이 아니니 경계할 필요 없습니다.”

외팔의 중년남자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저는 육산왕조의 장로 비청입니다. 오늘 종수 소저께서 승선 자격을 양보하신 덕에 월예공주가 선택받을 수 있었습니다. 왕의 명령을 받아 종수 소저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중년 남자는 품속에서 작은 선물함을 꺼내 종수에게 건넸다.

종수는 예상이라도 한 듯 태연하게 손을 뻗어 그것을 받아들였다.

“경지가 높고 자질이 뛰어난 월예공주님께서 승선자격을 얻는 것이 당연하지요. 귀하께서 저를 대신해 감사의 말을 전해주세요.”

종수가 말했다.

외팔이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바로 자리를 떠났다.

종수가 상자를 열자 그 안에는 은색 반지가 들어 있었다.

“저장반지!”

녹색 옷을 입은 중년의 남자가 깜짝 놀랐다.

종수는 평온한 표정으로 반지를 집어 들고, 그것에 피를 떨어뜨린 뒤 반지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반지 안에는 단약과 영석, 법기 등 수많은 수련 자원이 들어 있었다.

그녀는 잠시 침묵하다가 반지를 손가락에서 빼내고 피의 연결을 끊었다.

“사형, 이 안에는 수련 자원이 많이 들어 있어요. 귀찮겠지만 스승님에게 전달 부탁할게요.”

종수가 반지를 남자에게 건네며 말했다,

무의식적으로 반지를 받아 든 남자는 그녀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사매, 설마 종문에 돌아가지 않으려는 거야?”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일이 있어 한동안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때가되면 돌아갈 테니 염려하지 말라고 스승님께 전해주세요.”

종수가 말했다.

남자는 종수를 설득하려고 입을 열었으나, 그녀의 결연한 표정을 보고 결국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럼 부탁할게요.”

종수는 남자에게 인사하고 밖으로 나갔다.

* * *

비슷한 시각, 대진국 북부.

그곳은 동주대륙의 최북단으로 언제나 폭설이 쏟아지고 찬바람이 몰아치는 곳이었다.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온통 하얀색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곳에는 거대한 산맥 하나가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다. 산맥의 이름은 흑수산맥(黑水山脉)이었다.

흑수산맥 아래로는 혹한에도 전혀 얼지 않는 거대한 검은 강이 거세게 흐르고 있었다. 산맥의 이름은 바로 이 검은 강에서 따온 것이었다.

검은 강이 흘러 들어오는 산맥의 넓은 평지에는 거대한 건물들이 빼곡히 서 있었다.

그중 가장 커다란 건물은 하늘을 뚫을 듯 높은 탑이었다. 높이가 몇 백 장에 달하는 그 탑은 주위의 거대한 산봉우리와 비교해도 전혀 낮지 않았다. 탑은 찬바람이 칼처럼 몰아치는 이 혹한의 땅에서 오랜 세월 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며, 꼭대기는 마치 태양이 걸려 있는 것처럼 눈부신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탑 아래 불을 밝힌 거대한 건물들 사이로는 수많은 사람이 오가고 있었다.

이곳은 천마종의 총단이 위치한 지역이었다.

한편 어느 거대한 대전에 수천 명이 모여 있었다.

대전의 중앙에는 검은 화염이 타오르는 제단이 있었다. 그리고 그 제단의 가운데에는 삼지창을 들고 머리에 뿔이 있으며, 피부가 검은 남자의 조각상이 서 있었다.

조각상 앞에는 여섯 사람이 나란히 서 있었다.

그들은 마양대전에서 각축을 벌인 끝에 승리한 여섯 명의 승자였다.

여섯 사람 중 네 명은 남자였고 두 명은 여자였으며, 모두 젊고 기개가 비범해보였다.

그들은 뒷짐을 진 채 아래 모인 사람들을 태연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섯 명 중 가장 왼쪽에 서 있는 사람은 회색 옷을 입고 있었고, 나이는 열 일고여덟 살 정도로 무척이나 어려 보였다.

만약 석목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그가 과거 풍성에서 헤어진 풍리라는 걸 한눈에 알아보고 무척이나 놀랐을 것이다.

풍리는 꼿꼿하게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감주(赣州)의 음마문(阴魔门)에 풍 형 같은 인재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군요.”

풍리의 옆에 있던 대머리 청년이 말했다.

“과찬입니다. 총단의 제자인 종 형과 비교나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풍리가 말했다.

그의 대답에 만족한 듯 대머리 청년이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때 검은 옷을 입고 기품이 있어 보이는 남자가 천천히 걸어왔다.

삼십 대로 보이는 남자는 눈썹이 위로 길게 뻗어 있었으며, 입술 위에는 짧은 수염이 자라 있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학자 같아 보이는 그는 대진국 천마종의 종주(宗主) 사도호였다.

제단 아래 한쪽 구석에는 검은 옷을 입은 세 사람이 제단 위의 여섯 사람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금소채를 포함한 흑마문 소속의 세 사람이었다.

어느새 선천초기의 경지에 오른 막녕은 위쪽에 서 있는 여섯 사람을 부러움과 질투가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영계술사의 경지에 오른 백수수는 상대적으로 평온한 표정으로 그의 옆에 서 있었다.

마양대전은 참가자의 나이와 자질을 고려해서 경지를 제한하지 않았다. 그들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 점수를 내고, 합산된 종합점수에 따라 순서대로 여섯 명을 뽑았다.

그러나 막녕과 백수수는 그 6위는커녕 30위 안에도 들지 못했다.

막녕은 시선을 돌려 금소채를 보았다.

그들 일행 중에서는 애초에 금소채만 최종 선발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마지막 시합에서 만난 강적에게 패배한 그녀는 결국 눈앞에서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비록 10위 안에 들긴 했지만, 6위 이내에 들었느냐 들지 못했느냐의 차이는 컸다.

하지만 금소채는 오히려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며칠간 이어진 시합 끝에 오늘 결국 마양대전이 종료되었고, 여섯 명의 뛰어난 인재가 선발됐다.”

사도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선발되지 않았더라도 10위 안에 들었다면 커다란 포상이 내려질 것이니, 잠시 후 집사대전(执事大殿)에 가서 수령하도록 하여라.”

금소채는 풍리를 바라보며 입술을 삐죽였다. 그녀가 마지막 대결에서 패배한 상대가 바로 그였다.

“이번 마양대전의 수확은 매우 컸다. 마신의 돌봄을 받는 우리 마문(魔门)은 세력이 날로….”

사도호의 목소리가 대전에 맴돌자 사람들이 모두 그의 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금소채만은 정신을 딴 곳에 팔고 있었다.

그녀는 손에 쥔 옥패를 가볍게 문질렀다.

옥패가 반짝이더니 그 위로 작은 글씨 몇 줄과 함께 석목의 모습이 나타났다.

‘망할 자식, 천우성에서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명월사교의 교도들과 함께 지명수배가 된 거야….’

금소채가 속으로 욕을 했다.

그 사이 사도호의 연설이 끝났다.

“이로써 대전은 끝났으니 모두 휴식을 취하거라.”

사도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차례로 대전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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