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187화 (187/916)

187화. 강시의 습격

석목은 남자에게 천천히 다가가며 말했다.

“할 말이 있나?”

남자는 두려움에 찬 표정으로 석목을 보며 고개를 연달아 끄덕였다. 그리고 자신의 상황을 낱낱이 설명했다.

남자의 본명은 후새뢰였고, 명월교의 혼사 제자였다. 왕영은 기존 촌장의 이름이었으며, 후새뢰는 그의 모습과 이름을 훔쳐 촌장 행세를 하고 있었다.

마을 주위에서 떠도는 사령생물, 그리고 방금 전의 사령은 이미 그에게 복종하고 있었다.

명월교의 교도는 일부 생물이나 시체, 해골을 제물로 제사를 올려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했다. 생전에 강했던 제물일수록 효과가 크며, 죽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았을수록 효과가 좋았다.

과거에 명월교의 교도는 모든 동주대륙을 떠돌며 고대 유적을 탐색하거나, 과거 강력했던 사람의 무덤에 찾아가 제물로 삼을 수 있을만한 것들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심지어 자신의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백성을 살육하는 일마저 마다하지 않는 자도 있었다. 이는 명월교가 동주대륙에서 이단으로 여겨지는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곳곳을 떠돌던 후새뢰는 백봉마을을 지나다가 마침 마을이 강시의 습격을 받는 것을 발견하고 그들을 도왔다.

그는 자신의 뛰어난 역용술이라면 촌장의 모습을 흉내 내 마을사람들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일정시간마다 마을사람들을 한 명씩 살해해 자신의 제사를 위해 사용했으며, 함정을 설치해 마을을 노리는 명월교의 제자를 살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강해봤자 고작 후천무인이나 영계술사 수준이었다.

그래서 그는 성계술사인 석목을 보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석목을 산 제물로 삼으면 단번에 성계술사의 경지로 뛰어오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후새뢰의 말대로라면 그는 촌장으로 변신해 많은 주민을 살해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그는 마을 주위에 자신의 강시가 있기 때문에 산적이 침입할 엄두를 내지 못했고, 더욱 악랄한 명월교 교도들의 손에 당하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했으니 목숨만은 살려주시기 바랍니다.”

후새뢰가 말했다.

“내일 아침이 되면 네가 한 짓을 마을사람들 모두에게 알리고 그들에게 판결을 맡기도록 하겠다.”

석목이 말했다.

“아…안 됩니다! 그들은 제가 그들을 위해 한 일을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역용술에 능하고, 또 서하고국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으니 어르신을 따르게 해주십시오. 제가 길을 안내한다면 여정이 굉장히 편해질 것입니다. 여기 서하고국의 지도가 있습니다. 간략하지만 도움이 될 것입니다.”

후새뢰가 다급하게 말하며 품속에서 가죽지도를 꺼내 석목에게 건넸다.

지도를 받아 든 석목은 그것을 살짝 보더니 저장반지에 넣고 고민에 잠겼다.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후새뢰는 이를 악 물었다. 그리고 품속에서 흰색 옥구슬을 꺼내 석목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것은 금신주(禁神珠)라는 명월교의 법기 입니다. 타인의 원신(元神)을 가둘 수 있죠. 이것을 파괴하면 안에 담긴 원신 역시 사라져버립니다. 제 원신의 삼 할을 드릴 테니 목숨만은 살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석목은 흰색 옥구슬을 받아들고 잠시 만지작거리다가 말했다.

“그럼 앞으로 나를 따르도록 해라. 일이 끝나면 놓아주겠다.”

그러자 후새뢰는 수인을 맺으며 주문을 외우더니 갑자기 고통에 찬 표정을 지었다. 곧 그의 코에서 녹색 빛이 뿜어져 나와 옥구슬에 빠르게 흡수되었다.

석목은 정신력을 이용해 후새뢰의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뒤, 금전검을 회수했다.

후새뢰는 안도의 한숨을 쉬더니 탈진한 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석목은 객잔에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후새뢰의 거처에 머물렀다.

하늘에 짙게 깔린 검은 구름이 달빛을 완전히 가리고 있어서, 석목은 탄월식을 수련하지 못하고 휴식을 취했다.

* * *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한밤중.

주민들이 모두 잠이 든 마을에는 불빛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때, 마을 바깥의 동쪽에서 갑자기 불빛이 나타나더니 마을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불빛은 시간이 흐를수록 많아져서 수십 개로 늘어났다.

마을 중앙에 심어진 거대한 고목 위에 있던 채아가 동쪽을 보고 놀라 하늘로 날아올랐다.

침대에서 쉬고 있던 석목은 갑자기 두 눈을 번쩍 떴다. 그는 건물 밖으로 나와서 동쪽을 보고 금신주를 꺼냈다.

건물 아래 밀실에서 좌선을 하고 있던 후새뢰도 갑자기 몸을 떨더니 황급히 일어났다.

그가 밀실에서 나오자 석목은 이미 그곳에 서 있었다.

“분부하실 일이라도 있습니까?”

후새뢰가 공경하게 말했다.

“마을의 동쪽에 사람들이 몰려왔다. 수가 적지 않은 데다,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을 것 같지는 않더군.”

석목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후새뢰는 곧바로 반응했다. 그는 황급히 방 밖으로 나가더니 건물의 옥상으로 뛰어올라 동쪽을 보았다.

횃불을 든 사람들은 이미 마을의 입구 가까이에 도착해 있었다. 그들은 체구가 우람하고 흉악하게 생긴 사내들이었다. 모두 검은 옷을 입고 제각각 무기를 지니고 있었다.

“흑풍산(黑风山)의 도적입니다!”

표정이 딱딱하게 굳은 후새뢰가 옥상에서 뛰어내려오며 석목에게 말했다.

“유명한 이들인가?”

“그렇습니다. 흑풍도(黑风盗)는 이곳에서 유명한 도적무리입니다. 머릿수가 많고 실력도 강하죠. 소문으로는 수령이 선천무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곳은 제가 지키고 있으며, 게다가 그들의 본거지에서 매우 멀어서 이제까지는 침략을 당한 적이 없었습니다.”

후새뢰의 설명을 들은 석목은 잠시 생각하다가 지시했다.

“우선 네가 나서서 상대해라. 만약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그 때 내가 나서겠다.”

그 말을 들은 후새뢰는 매우 기뻐했다. 상대는 분명 강하지만 석목이 나선다면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들을 처치하면 상당히 큰 규모의 제사를 올릴 수 있게 될 게 분명했다.

후새뢰는 즉시 붉은 옥패를 꺼내 무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마을 입구 근처의 언덕 정상에는 백 명에 가까운 사내들이 눈을 탐욕스럽게 번득이며 눈앞의 마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큰형님, 챙길 것이 상당히 많아보입니다. 멀리까지 찾아온 게 전혀 아깝지 않군요.”

얼굴에 칼자국 흉터가 있는 사내가 흥분해서 말했다.

옆에 있던 몇몇 사내 역시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옷소매를 걷어붙였다.

그들이 큰형님이라고 부른 자는 엄청난 거한이었다. 매우 까만 피부를 가지고 있었으며, 상의를 입지 않아 드러난 울퉁불퉁한 근육은 매우 반지르르해서 마치 검은 금강석 같았다.

그 자의 이름은 오강이었으며, 사람들에게는 흑금강(黑金刚)이라 불렸다.

“확실히 매우 비옥해 보이는군. 하지만 영계술사가 이곳을 지키고 있다고 하니 방심해서는 안 된다.”

흑금강이 말했다.

“큰형님, 우리 흑풍도에 당 선생이 가입하지 않았습니까. 고작 영계술사 정도야 식은 죽 먹기입니다.”

얼굴에 흉터가 있는 사내가 흑금강의 옆에 서 있는 삿갓을 쓴 남자를 보며 말했다.

삿갓을 쓰고 있는 그 남자는 얼굴이 가려져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남자의 체구는 흑금강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주위 도적들은 그를 존경 혹은 두려움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흑금강은 그를 한 번 보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더 망설이지 않고 팔을 휘둘렀다.

“형제들이여, 가자!”

그의 말에 수십 명의 도적이 일제히 고함을 지르며 마을을 향해 몰려갔다.

고함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깬 몇몇 마을사람이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이런, 도적이다!”

도적떼를 본 사람들이 놀라서 소리치며 다시 허겁지겁 집 안으로 숨었다.

혼란에 빠진 마을의 모습을 본 도적들은 더욱 흥분해서 크게 웃으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주위의 지면에서 하얀 강시 두 구가 바닥을 뚫고 나와 도적들에게 달려들었다.

퍽! 퍽!

갑작스러운 공격에 대비하지 못한 두 도적이 강시에게 맞아 몇 장을 날아가 바닥에 떨어졌고, 그들은 이내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강시의 손톱에 할퀴어진 두 사람의 가슴에는 뼈가 보일 정도로 깊은 상처가 나 있었다. 상처의 주위가 빠르게 검은 색으로 변하는 것으로 보아, 강시의 손톱에는 극독이 발라져 있는 것 같았다.

도적들은 그 모습을 보고 잠시 놀랐지만 혼란에 빠지지는 않았다. 그들은 칼에 피를 묻히는 일에 익숙해진 도적들이었고, 강시와 해골 같은 사령생물은 서하고국에서는 매우 흔했기 때문이다.

도적들은 각자의 무기를 휘두르며 두 강시를 향해 달려들었다.

대부분 수련자 7,8단계에 달하는 실력을 가진 도적들 역시 약하지는 않았다. 강시의 몸은 매우 단단했지만 도적들의 공세에 조금씩 동작이 느려지더니 곧 제자리에 발이 묶였다.

“가라!”

흑금강이 큰 손을 휘두르며 외치자 도적들은 하얀 강시들 옆을 돌아서 마을 안으로 향했다.

쾅! 쾅! 쾅!

그러자 앞쪽의 지면이 연달아 폭발하더니, 흩날리는 돌과 흙 사이로 서른 구 남짓의 강시와 해골이 지면을 뚫고 나와 마을 앞을 막아섰다.

놀란 도적들이 발걸음 멈추고 흑금강을 바라보았다.

흑금강은 미간을 찌푸리며 옆에 서있는 삿갓을 쓴 남자를 보았다. 이렇게 많은 사령생물을 전부 상대하다가는 도적단의 손실도 상당할 것이 분명했다.

“사령생물들과 술사는 나에게 맡기고 너희는 마을 안의 사람들을 처리해라. 날이 밝기 전에 반드시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

삿갓 남자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그의 나이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았다.

그의 말을 들은 흑금강이 기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당 선생께 맡기겠습니다!”

삿갓을 쓴 남자가 주문을 외우자, 전방의 지면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그 속에서 사령생물들이 연달아 나타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괴수의 모습을 한 강시 이십여 구가 나타났다.

컹! 컹!

요시(妖尸)들은 나타나자마자 맞은편의 강시와 해골들을 향해 돌진했다.

강시와 해골들 역시 가만히 손 놓고 기다리지 않았다. 강시와 해골들은 달려오는 요시들을 향해 날카로운 손톱과 뼈, 도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곧 양측이 뒤엉켜 막상막하로 싸우기 시작했다.

흑금강은 기뻐하며 수하들에게 싸움을 피해 마을 안으로 돌진하라는 명령을 내리려 했다.

바로 그때, 그는 마을 안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러운 발걸음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흑금강의 안색이 순간 굳었다.

마을 안에서 백 명이 넘는 남자가 제각각 무기를 들고 입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중에는 술사학도나 수련자도 일부 있었으나, 대부분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들은 무기를 손에 들고 있긴 했으나, 흉악한 도적 무리와 사령생물들을 보고 두려움에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무리의 제일 앞에는 지팡이를 든 후새뢰가 있었다. 그는 이미 촌장의 모습으로 변신해 있었고, 석목은 기운을 숨긴 채 평범한 마을사람처럼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석목의 시선은 흑금강에게 잠시 향했다가 곧 삿갓을 쓴 사람에게 고정됐다.

몸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법력의 파동으로 미루어 그 자는 성계술사인 것 같았다.

후새뢰와 그가 이끄는 무리는 흑금강과 십여 장 떨어진 곳에서 멈춘 채 대치했다.

“이렇게 늦은 밤에 찾아오다니 어쩐 일이신지요?”

후새뢰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말고, 살고 싶다면 재물과 여인을 전부 내놓아라. 그렇게 한다면 하찮은 너희 목숨 정도는 살려주마!”

흑금강은 영계술사인 후새뢰를 제외하면 마을사람들 중 무인이 몇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외쳤다.

그러자 그의 뒤에 있는 도적들이 떠들썩하게 웃기 시작했다. 휘파람 소리와 도검을 부딪치는 소리가 섞여서 매우 위협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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