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화. 우두머리를 잡다
마을사람들의 얼굴에 두려움이 더욱 짙게 드리웠다. 몇몇 사람은 참지 못하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후새뢰는 석목을 힐끔 보더니 입 꼬리를 비죽이며 말했다.
“내가 싫다면?”
그러자 흑금강이 벌컥 화를 내며 외쳤다.
“죽음을 자초하는구나! 가서 저 놈들을 모조리 잡아 죽여라!”
그의 뒤에 있던 도적 무리는 후새뢰와 마을사람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그 광경을 본 후새뢰는 전혀 동요하지 않고 팔을 휘둘렀다.
휙! 휙! 휙!
그의 뒤에 있던 마을사람들 중 일부가 화살을 쏘았다.
흑금강은 콧방귀를 뀌었다. 오랜 기간 동안 살육을 일삼아온 도적들에게 이 정도의 화살은 별 것 아니었다.
역시나 화살 대부분은 도적들이 휘두르는 무기에 튕겨져 날아갔다. 재수 없는 도적 두세 명이 화살에 맞았으나 상처는 심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의 분노만 더욱 키우는 꼴이 되었다.
그러자 후새뢰의 뒤에 있는 마을사람들은 더욱 겁을 먹었다. 만약 그 자리에 후새뢰가 없었다면 진즉에 사방으로 도주했을 것이다.
“촌장님, 이제 어떡하죠?”
한 마을사람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후새퇴는 석목을 힐끔 보았다. 그는 석목이 나설 기색이 전혀 없어 보이자 살짝 초조해졌지만, 감히 재촉하지는 못했다.
도적들은 이미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고, 후새뢰가 이를 악물고 핏빛 영패를 꺼냈다. 그의 앞에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허공에 거대한 해골이 반짝하고 나타났다.
키가 족히 이 장은 넘는 해골은 뼈 갑옷을 입고 있었으며, 검은 화염이 타오르는 거대한 도끼를 들고 있었다.
그 해골은 파란색 영혼의 화염을 가진 선천의 전사였다.
쿵!
거대한 해골이 바닥에 착지하자 거대한 소리가 울리며 지면이 흔들렸다.
뒤쪽에서 지켜보던 마을사람들은 잠시 멍청한 표정을 짓고 서 있다가 곧 폭발적인 환호성을 내질렀다.
반면 그 광경을 본 흑금강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후새뢰가 주문을 외우며 팔을 휘두르자 회색빛이 날아가 해골의 체내로 흡수됐다.
거대한 해골이 돌연 파란 영혼의 화염을 마구 들썩이며 도적들을 향해 달려갔다.
후천의 경지에도 도달하지 못한 도적들은 감히 거대한 해골에게 맞설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들은 우왕좌왕하며 도주를 시도했으나 멀리 도망가지 못했다.
거대한 해골이 포효를 지르며 검은 도끼를 휘둘렀다. 검은빛이 반짝이는 순간 허리가 끊긴 도적들의 시체가 이리저리 날아갔다.
그 광경을 보고 겁을 집어먹은 도적들은 더욱 필사적으로 도망갔다.
바로 그때, 검은색 도광이 선천해골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날아왔다.
선천해골의 지력은 비록 높지 않았지만, 전투에 대한 본능은 일반적인 선천무인에 비해 전혀 뒤처지지 않았다. 해골은 크게 포효하며 날아오는 도광을 향해 거대한 도끼를 휘둘렀다.
쾅!
거대한 해골의 몸이 흔들리더니 뒤로 몇 걸음을 밀려났다.
도광이 흩어진 자리에서 흑금강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는 사람보다 커다란 검은색 도를 들고 있었는데, 도신의 끝에 뱀의 이빨 같은 가시가 박혀 있는 특이한 형태였다.
뒤로 몇 걸음 뒷걸음질 친 뒤 균형을 잡은 그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러자 삿갓을 쓴 남자가 미간을 찌푸리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의 지팡이가 검은 빛으로 반짝이더니 지면에 검은 진법이 생겨났다.
이어 진법에서 해골 군마를 탄 해골기사가 나타났다.
일 장 길이의 창을 들고 있는 해골기사는 영혼의 화염은 파란색이었으며, 뿜어내는 기운의 강력함은 거대한 해골에 전혀 밀리지 않았다.
해골기사가 흑금강과 앞뒤로 포위하자 거대한 해골은 살짝 불안을 느낀 듯, 두 손으로 도끼를 꽉 쥐며 몸에서 검은빛을 뿜어냈다.
“어르신!”
얼굴이 살짝 창백해진 후새뢰가 머뭇거리다가 도움을 구하는 눈빛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해골은 그가 가진 가장 강력한 소환수로, 그야말로 심혈을 기울여 얻은 것이었다. 그것을 잃는다면 그에게 있어서는 막대한 타격이었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리며 등 뒤에서 곤봉과 흑도를 뽑아들었다.
그의 행동을 본 흑금강이 살짝 굳은 얼굴로 무언가 말하려 했다.
바로 그때, 석목의 모습이 갑자기 자리에서 사라졌다.
다음 순간, 해골기사의 뒤에서 나타난 석목이 불빛이 터져 나오는 운철흑도를 아래로 내려베었다.
해골기사의 반응은 매우 빨라서, 군마의 고삐를 잡아당겨 옆으로 피하며 석목을 향해 창을 휘둘렀다.
하지만 석목의 속도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빠직!
운천흑도가 해골기사의 팔을 가볍게 절단했다. 이어서 운철흑곤의 푸른색 곤영이 해골기사의 머리를 가격했다.
쿵!
해골기사의 머리가 터져나가 가루가 되며 영혼의 화염이 꺼졌다.
흑금강은 입을 크게 벌리고 눈앞의 장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석목의 시선이 그에게 향하자, 흑금강은 몸을 떨더니 즉시 몸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석목은 콧방귀를 뀌며 한 손가락을 폈다. 그러자 흰색 빛이 뻗어 나와 눈 깜짝할 사이에 흑금강을 쫒아갔다.
흰빛이 반짝이더니 하얀색 사슬로 변해 흑금강의 두 다리를 묶었다. 이어서 다른 사슬이 한 가닥 더 날아와서 땅에 쓰러진 그의 두 팔을 묶었다.
분노한 그가 몸에서 검은 빛을 뿜어내며 전력으로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하얀 사슬이 천천히 벌어지자 흑금강의 표정이 밝아졌다. 조금만 더하면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곧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금색 금전으로 만들어진 검이 흑금강의 머리 위로 날아왔다.
금빛으로 반짝이니 문짝만 하게 커진 금전검이 그를 치려 했다.
그 순간, 멀지않은 곳에 있던 삿갓을 쓴 남자가 소리치며 한 손을 휘둘렀다.
“멈춰!”
검은 빛이 날아와서 금전검을 옆으로 쳐내려 했다.
이때 석목이 콧방귀를 뀌었다. 이제 거의 절반쯤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금전검은 그리 쉽게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석목이 한 손가락을 펴자 금전검이 방향을 살짝 틀더니 검은빛을 베었다.
금전검은 검은 빛을 두 동강낸 뒤 다시 한 번 흑금강을 노렸다.
착!
흑금강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몸이 세로로 갈라져서 사방에 피를 흩뿌렸다.
“영기!”
삿갓을 쓴 남자가 놀라 소리를 지르며 지팡이로 전방의 허공을 가리켰다.
그의 앞쪽 지면에서 검은빛은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그 사이에서 몸길이가 일 장에 달하는 거대한 부시랑(腐尸狼)이 나타났다. 부시랑 역시 선천의 사령생물이었다.
남자가 지팡이를 휘두르자 부시랑이 포효하며 석목에게 달려들었다.
그 사이 삿갓 남자는 갑자기 몸을 돌려 먼 곳으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멈춰!”
석목이 소리치며 그를 쫓았다.
그때 거대한 부시랑이 달려와 입을 쩍 벌리며 정면에서 석목을 물려 했다.
“꺼져!”
석목이 부시랑의 커다란 입을 피해 주먹을 내뻗었다. 옥처럼 하얀 주먹이 부시랑의 머리를 가격했다.
퍽!
부시랑의 거대한 몸이 뒤로 날아갔고, 터진 머리에서는 부패한 살과 혈액이 쏟아져 나와 사방으로 흩날렸다.
후새뢰는 그 광경을 보고 경악했다.
그는 선천 사령생물의 두려움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석목의 주먹질 한 번에 계란처럼 깨져버린 것이다.
후새뢰는 속으로 석목에게 빌붙기로 한 게 굉장히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다. 석목의 실력은 거의 지계의 존재와 필적했다.
부시랑을 일격에 살해한 석목은 바닥을 박차고 삿갓을 쓴 남자를 쫓기 시작했다.
우두머리 중 하나가 죽고 다른 하나는 도망가는 것을 본 다른 도적들은 이미 투지를 완전히 잃고 사방으로 도주하고 있었다.
신이 난 후새뢰는 거대한 해골과 함께 도망가는 도적을 순식간에 열 명 넘게 죽였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제물로 삼으면 그의 실력은 더욱 강해질 게 분명했다.
바로 그때, 몸이 완전히 뻣뻣하게 굳은 부시랑이 연기로 변해 허공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후새뢰는 그 광경을 보며 기뻐하며 중얼거렸다.
“그 삿갓 쓴 놈을 죽인 것인가….”
그가 주문을 외우며 한 손을 휘두르자 거대한 해골은 사령계로 돌아갔다.
한편 마을에서 몇 리 떨어진 어느 황야에는 삿갓을 쓴 남자의 몸이 금전검에 관통된 채 바닥에 박혀 있었다.
거의 절반으로 갈라진 그의 몸에서 피가 솟구쳐 나와 순식간에 바닥을 붉게 물들였다.
“명주가… 너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남자는 힘겹게 고개를 돌려 원한에 찬 눈빛으로 석목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나 석목이 콧방귀를 뀌며 손짓했고, 금전검이 반짝이며 그의 손으로 돌아왔다.
금전검에 꿰인 채 데굴데굴 굴러온 남자의 몸에는 생기가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석목은 금전검을 회수한 뒤 시체 옆으로 다가갔다.
삿갓을 벗기자 남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는 이목구비가 뚜렷했으며 나이는 이십 대 정도로 매우 젊어보였다.
석목은 남자의 시체를 뒤지기 시작했고, 검은색 작은 배낭과 붉은색 영패를 하나 찾아냈다.
영패는 후새뢰와 유안 등 명월교의 사람들이 지니고 있던 것과 같았다. 명월교의 제자인 삿갓 남자가 어째서 도적 집단에 들어갔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석목은 배낭과 영패를 진묘계에 넣고, 화염구를 두 개 날려서 시체를 태워버린 뒤 마을을 향해 걸어갔다.
마을의 도적들은 이미 죄다 쫓겨난 뒤였다. 마을사람들은 후새뢰에게 여러 차례 감사의 인사를 한 뒤 흩어졌다.
후새뢰는 해골을 몇 구 소환했다. 그리고 해골들을 조종해서 바닥에 쓰러진 도적의 시체를 마을 내 외진 곳으로 분주히 옮겼다.
그곳에는 초라한 진법이 새겨진 검은색 제단이 하나 있었다.
후새뢰는 해골들을 지휘해 열 구가 넘는 시체를 제단 위에 올려놓은 뒤, 주위를 한 번 둘러보더니 제단 위 진법 옆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가 붉은 영패를 꺼내 주문을 외우자 제단 위에 쌓아놓은 시체 아래의 진법이 검게 빛났다.
후새뢰가 주문을 이어가자 영패가 점점 더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때, 그가 한 손가락을 펴자 한 줄기 붉은빛이 진법으로 쏘아져 날아갔다.
쾅!
폭발음과 함께 진법에서 핏빛 화염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어 후새뢰가 주문을 외우며 손을 휘두를 때마다 붉은빛이 한 줄기씩 쏘아져 날아가 진법에 떨어졌다.
그러자 진법 위에 타오르는 핏빛 화염이 점점 커지더니 곧 시체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제단 위의 시체가 전부 사라졌다.
갑자기 후새뢰의 몸 주위에 회색빛이 피어오르더니 그의 체내로 빠르게 흡수됐다.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뜬 그의 표정이 환해졌다.
비록 성계의 경지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체내의 법력은 크게 늘어났다. 이제 성계술사가 되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명월교의 제사였군?”
갑자기 그의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새뢰는 굳은 표정으로 제단에서 뛰어 내려와서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어느새 석목이 와서 호기심 넘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르신, 저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후새뢰가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겁낼 필요 없다. 저들은 네가 죽였으니 시체를 어떻게 처리할지도 네 마음이지.”
석목은 그렇게 말하며 작은 제단을 바라보았다.
“감사합니다.”
후새뢰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석목은 제단의 진법에 새겨져 있는 부문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너희 명월교의 교도는 이 진법을 사용해 명주에게 제사를 올리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석목의 물음에 후새뢰가 머뭇거림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의 명줄은 현재 석목의 손에 쥐여 있었다. 게다가 후새뢰는 석목의 성격이 까칠한 편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를 따르기로 한 마음이 한층 더 굳어져 있었다. 그러니 이제 와서 석목의 질문에 대답을 피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석목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더니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후새뢰가 수련자의 시체로 제사를 올린 뒤 법력이 대폭 늘어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고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
‘나 역시 반쪽짜리지만 명월교의 교도이니, 이 방법을 사용하면 경지를 빠르게 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석목은 그 생각을 곧 떨쳐냈다.
다른 생명을 해쳐서 자신의 힘과 바꾸는 수단은 너무 잔인했다.
게다가 이렇게 쉽게 실력을 늘려주는 방법은 알 수 없는 위험을 내재하고 있을 확률이 높았기에, 안심하고 사용할만한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