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189화 (189/916)

189화. 서명귀역(西冥鬼域)

“어르신, 그 술사도 죽이셨나요? 저 같은 놈보다 훨씬 강한 성계술사인데도 손쉽게 쓰러뜨리다니, 어르신의 실력은 정말….”

어느새 후새뢰가 다가와서 넉살좋게 아부를 떨었다.

그러나 석목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석목의 표정을 본 후새뢰는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 않는 것을 느끼며 표정을 굳혔다. 그는 자신이 무슨 말실수를 했는지 속으로 생각했다.

“아부할 필요는 없다. 앞으로 나와 함께 다니며 주어진 일만 잘 처리한다면, 네가 필요 없게 됐을 때 금신주를 돌려주겠다.”

석목이 말했다.

“예.”

후새뢰가 기뻐하며 대답했다.

“너희 명월교에 관한 이야기를 더 해봐라. 예를 들어…. 네가 들고 있는 그 영패는 명월교의 모든 교도가 가지고 있는 것인가?”

석목이 물었다.

서하고국을 지나 서해로 가는 여정 동안 명월교와의 접촉은 피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가 후새뢰를 거두어들인 이유 중에는 그것에 대비하기 위한 것도 있었다.

후새뢰는 고개를 숙여 붉은 빛을 은은하게 뿜어내는 영패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물건의 이름은 명월령입니다. 명월교 교도의 신분을 상징하는 물건이죠.”

그 말을 들은 석목이 붉은 영패를 꺼내들었다. 삿갓을 쓰고 있던 남자에게서 얻은 것이었다.

“평범해 보이지는 않는데 법기인가? 방금 보니 제사를 올릴 때 이 물건을 사용하는 것 같더군.”

석목이 법력을 살짝 주입하자 영패가 은은한 붉은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맞습니다. 명월령은 명월교에서 모든 교도에게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어느 생물의 뼈로 만든 매우 특별한 법기죠. 이 안에는 서명귀역의 좌표가 담겨 있어서 제사를 올릴 때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물을 서명귀역에 보낼 수 없죠.”

후새뢰가 말했다.

“서명귀역의 좌표?”

석목이 눈빛을 반짝였다.

“서명귀역은 매우 넓습니다. 모든 교도의 명월령에 좌표가 담겨 있으며 이 세계와 서명기역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죠. 방금 제가 제물로 바친 시체는 이미 명월령에 담겨 있는 서명귀역의 좌표로 보내졌습니다.”

“그렇군.”

후새뢰의 말에 석목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뿐만 아니라 명월령은 음기(阴气)로부터 몸을 보호해주기도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사실 우리 명월교의 교도도 무인과 술사로 나뉩니다. 술사는 오행술법 외에도 혼사의 술법과 저주와 관련된 음독술법(阴毒术法)을 수련하지요. 본교의 무공 중에서는 강시공이 가장 유명합니다.”

후새뢰가 계속 설명했다.

석목은 유안과 함께 있던 피부가 붉은 사제를 떠올렸다. 그는 자신의 몸을 강시의 몸으로 변화시키면서 힘을 강화하고, 피부에 도검이 통하게 하지 않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술법을 익히든 무공을 익히든 우리 명월교의 교도는 사령생물과 수없이 접촉합니다. 때문에 몸에 음기가 스며드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명월령을 가지고 있다면 그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지요.”

후새뢰가 이어서 말했다.

“명월교의 교도에게는 생명을 지켜주는 중요한 도구로군.”

석목이 붉은 영패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맞습니다.”

후새뢰가 말했다.

“명월교의 총단은 서쪽에 있기 때문에 서쪽으로 갈수록 세력이 점차 커집니다. 명월교의 제자는 대부분 이단으로 배척받기 때문에 본교의 사람이 아닌 자는 서하고국을 지나가기 힘들지요. 하지만 그것을 지니고 다닌다면 여정이 상당히 편해질 것입니다.”

후새뢰가 말했다.

석목은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 순간, 석목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손에 들린 영패를 자세히 보았다.

영패의 한쪽 구석에 일 촌 크기의 붉은색 별 문양이 세 개 그려져 있었다. 그것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발견하기 어려울 만큼 작았다.

“이게 뭐지?”

석목이 물었다.

“그것은 교도의 기여도를 나타내는 표식입니다. 교단 내에서의 지위를 나타내기도 하지요. 일, 월, 성 세 개의 등급으로 나뉘며 명주에게 제물을 많이 바칠수록 그 등급이 높아집니다.”

후새뢰가 설명했다.

석목은 후새뢰의 손에 들린 명월령을 보았다. 그의 것에는 별이 겨우 두 개밖에 없었다.

“등급이 높으면 뭐가 좋은 거지?”

“등급이 높을수록 매년 교단에서 얻을 수 있는 법기나 단약, 혹은 심법 서적 등이 더욱 늘어납니다. 일정 등급에 오르면 공간 친화력을 높여주는 단약도 얻을 수 있다고 하지요.”

후새뢰가 흥분한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명월령의 본래 주인이 아니라면 교단에서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그렇군.”

석목은 고개를 끄덕이며 명월령을 챙겨 넣었다.

그때, 날개가 푸드덕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검은 새가 석목을 향해 날아왔다.

“누구냐!”

놀란 후새뢰가 수인을 맺자 그의 몸에서 회색빛이 뿜어져 나왔다. 술법을 시전해 검은 새를 막으려고 한 것이다.

“내가 키우는 소환수다.”

석목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후새뢰가 회색빛을 거두어들였다.

마을에 들어오기 전에 석목은 채아를 먼저 마을에 잠입시켜 놓았었다. 혹시 모를 일에 대한 대비를 한 것이다.

잠시 후, 석목의 어깨에 날아와 앉은 채아가 후새뢰를 노려보며 말했다.

“네놈도 석두를 따르기로 한 것이냐?”

후새뢰가 멍청한 표정으로 채아를 바라보았다. 말을 하는 새는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채아는 지력이 사람만큼 높아 말을 할 줄 안다.”

석목이 말했다.

후새뢰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호기심 넘치는 표정으로 채아를 바라보았다.

“보긴 뭘 봐! 잘 들어라. 내가 첫 번째고 새로 온 너는 나의 아래야.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지?”

채아가 가슴을 내밀며 꾸짖듯이 말해다.

놀란 후새뢰가 자신도 모르게 석목을 바라보았다.

“까불지 마.”

석목이 채아의 머리에 딱밤을 날리며 말했다.

“아야! 아파!”

채아가 두 날개로 머리를 감싸며 소리쳤다.

후새뢰는 조용히 고개를 돌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동쪽 하늘이 살짝 하얘지는 것을 보니 곧 해가 뜨려는 것 같았다.

“슬슬 출발해야겠군.”

석목도 하늘을 보며 말했다.

그때 후새뢰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선배님, 잠시 기다려 주실 수 있습니까?”

“무슨 일이지?”

석목이 물었다.

“제가 선배님을 따라 떠나게 되면 더 이상 이 마을을 지킬 사람이 없습니다. 전송의 자질이 그럭저럭 괜찮으니, 떠나기 전에 그에게 보호 진법을 가동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심법과 단약을 주어 스스로 수련하게 한다면 마을을 지킬 수 있을 겁니다.”

후새뢰가 말했다.

석목은 의아한 표정으로 후새뢰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다. 다녀오도록 해.”

후새뢰는 기뻐하며 석목에게 인사하고 마을로 향했다.

“석두, 정말 저 놈을 믿는 거야? 저 놈은 마을사람을 해쳐서 제물로 바친 놈이야. 착한 척 하는 것이 분명해.”

채아가 시끄럽게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석목은 살짝 웃으며 바닥에 앉았다. 그리고 회색 옥간을 꺼내 이마에 가져다 댔다.

채아는 석목이 자신을 상대해주지 않자 혼잣말을 몇 마디 더 하더니 결국 입을 다물었다.

석목이 들고 있는 옥간은 삿갓을 쓴 남자의 배낭 속에서 찾은 것이었다. 그것에는 매우 상세한 서하고국의 지도가 담겨 있었다.

석목은 백봉진의 위치를 확인하고 서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앞으로의 여정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 * *

반 시진 후, 후새뢰가 돌아왔다.

“오래 기다리시게 했군요. 모든 준비를 마치고 왔습니다.”

후새뢰가 말했다.

“그럼 출발하지.”

석목이 자리에서 일어나 마을 밖으로 향했다. 후새뢰가 분주히 그를 뒤쫓았다.

일행은 곧 새벽안개 사이로 빠르게 사라졌다.

* * *

끝없이 넓게 펼쳐져 있는 회색 황야 위에 검은 바위가 무수히 분포해 있었다.

바위는 높낮이가 제각기 달랐으며 기이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모여 있기도 하고 흩어져 있기도 했지만, 대부분이 똑바로 서서 매우 넓게 펼쳐져 있었다.

석림(石林) 밖에는 음산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또 바닥에서부터 하늘까지 이어진 회오리가 맴돌면서 흙과 돌멩이를 흩날려 천지가 어둑어둑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석림 안쪽은 매우 고요했다.

석림의 중앙에는 둘레가 이삼백 장이 되는 붉은색 못이 하나 있었다.

못 주위에는 흰색 해골과 강시, 부패한 시체의 잔해가 곳곳에 널려 있었다.

또 팔다리가 온전하지 못한 갑옷을 입은 해골 몇 십 구가 있었다. 그들은 상처가 무성한 두 해골기사 앞에 사각형으로 대열을 이루고 서 있었다.

이어 해골들은 승리를 자축하려는 듯 뼈로 제작한 무기를 흔들었다.

연나는 전신을 흰색 갑옷과 투구로 감싸고 있었다. 연나의 투구 사이로 두 개의 연보라색 영혼의 화염이 보였다.

연나는 몸길이가 십 장이 넘는 거대한 곰 모양의 해골 앞에 조용히 서 있었다. 그 해골의 머리에는 수박만한 크기의 구멍이 뚫려 있었으며 안쪽은 텅 비어 있었다.

연나는 갑자기 몸을 돌려 연못을 바라보았다.

연나가 입을 벌리자 무형의 흡입력이 생겨났고, 곧 연못에서 붉은 연기가 솟아오르더니 입으로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폭발음이 들려오더니 수없이 많은 검은색 회오리 사이에서 갑자기 녹색의 구름이 나타났다.

빠르게 몸집이 커진 녹색 구름은 엄청난 속도로 못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연나는 연기의 흡수를 멈추고 고개를 돌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두 해골기사와 수십 구의 해골도 고개를 돌렸다.

녹색 구름이 가까이 다가오자 그 위에 거대한 쌍수부시교가 엎드려 있는 것이 보였다.

몸길이가 이십 장에 달하는 쌍수부시교는 커다란 두 개의 뱀 머리에 각각 한 쌍의 뿔이 달려 있었다. 네 개의 거대한 눈에는 진한 보라색 영혼의 화염이 타오르고 있었다.

몸은 온통 짓무르고 썩었으며, 일부분은 기이한 무늬를 가진 녹색과 붉은색 비늘에 덮여 있었다. 몸에서는 녹색 점액물질이 아래로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녹색 구름 아래에는 수백 구의 해골과 강시로 구성된 사령군대가 못을 향해 위풍당당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쌍수부시교의 두 머리 중 하나의 눈이 붉게 반짝였다. 그러자 못의 상공에 법력의 파동이 일더니 하늘이 어두워졌다.

어느새 나타난 암홍색 구름이 순식간에 연나 일행의 위를 덮은 것이다.

콰르릉!

구름 사이에서 사람의 머리만한 암홍색 화염구들이 마치 유성우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것을 본 연나의 몸이 검은빛으로 반짝이더니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못 주위에 있던 두 해골기사와 수십 구의 해골은 화염구를 향해 각자의 무기를 휘둘렀다.

부서진 방패를 든 한 해골이 도를 휘둘러 화염구를 베었다. 그러자 화염구가 폭발하며 터져 나온 암홍색 화염이 그 해골을 집어삼켰다.

외팔의 해골기사가 파란색 영혼의 화염을 반짝이며 창을 휘두르자, 수많은 창영이 순식간에 세 개의 화염구를 날려버렸다.

하지만 뒤이어 열 개가 넘는 화염구가 떨어졌고, 상당한 실력을 가진 해골기사조차도 우왕좌왕하다가 암홍색 화염에 집어삼켜졌다.

대여섯 번 호흡할 정도의 짧은 시간에 연나의 수하 전부가 유성우에 당해 재로 변해버린 것이다.

바로 그때, 쌍수부시교의 뒤쪽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연나가 튀어나왔다.

연나가 들고 있는 창은 전체가 하얀 화염에 둘러싸여 있었으며, 창신에 새겨진 부문도 전부 빛나고 있었다.

연나의 창이 하얀 궤적을 일자로 그리며 쌍수부시교의 머리를 노리고 뻗어나갔다.

쌍수부시교가 영혼의 화염을 들썩이자 몸 아래의 녹색 구름이 급격히 부풀어 오르더니 그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창은 마치 하얀 뱀처럼 순조롭게 녹색 구름 사이를 파고들었다.

하지만 창을 둘러싼 하얀 화염은 녹색 구름에 닿는 순간 즉시 꺼져버렸다. 창은 흩어져 사라질 것처럼 칙칙거리는 소리를 냈고, 은은한 회색 연기가 피어올랐다. 녹색 구름은 부식성이 상당히 강한 것 같았다.

놀란 연나가 창을 빼내려는 순간, 반대편에서 엄청난 힘이 창을 끌어당겼다.

그 힘에 의해 연나의 몸이 앞으로 기울어지며 녹색 구름을 향해 끌려갔다.

연나가 황급히 손을 떼자 창은 순식간에 녹색 구름 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곧 존재가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채찍의 형상으로 변한 녹색 구름의 일부가 연나를 노리고 독사처럼 뻗어 나왔다.

곧 연나의 몸이 검은 빛으로 반짝이더니 모습을 감추었다. 녹색 채찍은 연나가 사라진 허공을 가르고 지나갔다.

그때 녹색 구름이 점점 옅어지며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녹색 구름은 지면에 완전히 내려오자 매우 엷어졌고, 그러자 쌍수부시교의 거대한 몸이 완전히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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