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190화 (190/916)

190화. 흑곤의 위력

바닥에 착지한 쌍수부시교의 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러자 붉은색과 녹색의 머리 두 개를 가진, 교룡의 모습을 한 법상이 나타났다.

바로 그 순간, 법상 뒤에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연나가 나타났다. 연나의 손에는 하얀 화염이 활활 타오르는 새로운 창이 들려 있었다.

연나가 팔을 휘두르자 빼곡히 나타난 창영이 교룡을 뒤덮었다.

교룡의 붉은색 머리가 뒤로 고개를 돌려 입에서 보라색 화염을 뿜어내자, 화염은 곧 일 장에 달하는 불의 뱀으로 변해 창영을 향해 돌진했다.

창영과 닿는 순간 폭발한 불의 뱀이 거대한 보라색 화염으로 변해 창을 덮쳤다.

치익!

창을 감싸고 있는 하얀 화염이 빠르게 어두워지더니 곧 창끝부터 부식이 시작됐다.

급하게 창에서 손을 뗀 연나의 몸이 하얗게 반짝였다. 이어 연나의 뒤에 흰 궁의를 입은 소녀의 모습을 한 법상이 나타났다.

소녀는 나타나자마자 나풀나풀 춤을 추며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마치 천상의 소리와도 같은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주위에 울려 퍼졌다.

갑자기 쌍수부시교의 주위에 하얀 꽃잎들이 가득 나타나 흩날렸다. 꽃잎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고, 그것은 아름다운 노랫소리와 뒤섞여 쌍수부시교의 정신을 파고들었다.

쌍수부시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영혼의 화염이 굳어지더니 움직임을 멈췄다.

그 사이 하얀 빛의 점들이 연나의 손에 모여들어 하나로 합쳐졌고, 새로운 창이 생겨났다. 연나는 쌍수부시교의 머리 중 하나를 노리고 하얀 화염이 타오르는 창을 찔렀다.

창의 화염은 쌍수부시교의 주위를 둘러싼 옅은 녹색 연기에 닿자 다시 녹아 사라졌다.

끼익!

이어서 금속이 마찰하는 소리가 쌍수부시교의 머리 쪽에서 들려왔다.

연나의 창이 쌍수부시교의 거대한 붉은색 비늘을 찔렀다. 그러나 고작 하얗게 긁힌 자국밖에 남기지 못했다.

치익!

녹색 연기에 휩싸인 연나의 창이 빠르게 어두워지며 구멍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쌍수부시교가 영혼의 화염을 다시 들썩이며 소리 없는 포효를 내질렀다. 그러자 뒤에 있던 교룡 모습의 법상이 거세게 꼬리를 휘둘렀다.

연나는 다급히 뒤로 물러났고, 연나의 창은 이미 상당부분 부식되어 사라진 상태였다.

연나는 거세게 다가오는 꼬리를 향해 창을 휘둘렀다.

퍽!

거대한 힘에 밀려 창을 놓친 연나가 뒤로 밀려 날아갔다.

이어서 교룡의 꼬리가 맹렬한 기세로 연나를 쫓아갔다.

그 순간, 연나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모습을 감추었고, 간발의 차로 연나를 놓친 교룡의 거대한 꼬리가 허공을 갈랐다.

교룡의 녹색 머리가 입을 벌려 녹색 연기를 뿜어내자, 연기에 완전히 뒤덮인 쌍수부시교의 거대한 몸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 * *

반 시진 후, 석림에서 수십 리 떨어진 어느 산의 정상.

연나는 산 정상의 거대한 바위를 향해 마구잡이로 창을 휘두르고 있었다. 창이 바위에 닿을 때마다 돌조각이 날리고 먼지가 피어올랐다.

한참 후, 움직임을 멈춘 연나는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 가만히 서서 영혼의 화염을 들썩였다.

* * *

깊은 밤, 한 동굴 안에서 석목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의 흑도와 곤봉은 뒤쪽 벽에 세워져 있었다.

사흘 전, 백봉진을 떠난 석목은 후새뢰의 안내에 따라 비성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수백 장 높이의 커다란 산을 지나던 그들은 밤이 되기 전 천연동굴을 발견해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동굴의 안쪽에는 개인적인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는 또 다른 작은 동굴이 여러 개 뚫려 있었다.

석목이 그중 가장 큰 공간을 사용했고, 후새뢰는 주위 동향을 경계하겠다며 동굴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곳을 골랐다.

지난 며칠간 후새뢰는 기회가 생길 때마다 석목에게 충심을 표현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채아에게 한소리씩 들었다.

후새뢰는 처음에는 채아를 두려워했지만, 몇 마디 말대꾸를 해도 석목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는 채아와 다투기도 했다.

늦은 밤이었지만 동굴 밖에는 후새뢰가 소환한 두 마리의 하얀 강시가 순찰을 돌고 있었다. 또 채아도 동굴 밖에서 자기 때문에 석목은 마음 놓고 수련을 할 수 있었다.

그때, 석목의 앞에 갑자기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그 사이에서 하얀 갑옷을 입은 연나가 나타났다.

석목은 갑자기 나타난 연나를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최근 수차례 소환을 시도해도 무시했던 연나가 갑자기 스스로 나타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곤봉을 빌려줘.”

석목이 질문하기도 전에 연나의 목소리가 그의 머릿속에 들려왔다.

석목은 멍청한 표정으로 운철흑곤을 바라보았다.

“빌려줘. 사용하고 돌려줄게.”

연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연나, 이걸 빌려주면 이전과 같은 녹색 꽃을 하나 더 가져다줄 수 있어?”

석목이 물었다.

연나는 잠시 침묵했다.

“좋아.”

잠시 후, 연나의 목소리가 다시 석목의 머릿속에 들려왔다.

석목은 기뻐하며 등 뒤의 운철흑곤을 집어 연나에게 던져주었다.

“영석.”

운철흑곤을 받아 든 연나가 다시 말했다.

“영석으로 뭘 하려고?”

석목은 의아했지만, 결국 영석이 가득 담긴 주머니에서 중급 영석을 하나 꺼내 연나에게 던져주었다.

그러자 연나는 영혼의 화염을 반짝이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석목의 옆에 다가와 영석 주머니를 낚아채갔다. 석목이 미처 반응하지도 못할 정도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무언가 말하려던 석목은 연나의 행동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연나가 영석 주머니를 열어 그 안에 운철흑곤을 쑤셔 박은 것이다.

이어서 연나는 영석 주머니를 던져버리더니 검은 연기와 함께 모습을 감췄다.

다급히 몸을 일으킨 석목은 주머니에 들어 있는 영석을 전부 바닥에 쏟아 부었다. 두세 개의 하급 영석을 제외하고는 전부 회색으로 변해 있었다.

석목은 멍한 표정으로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 *

쌍수부시교는 검은 석림의 중앙에 위치한 이삼백 장 크기의 붉은 못 속에 들어가 있었다.

쌍수부시교는 몸의 대부분이 물에 잠긴 채 흉악하고 추한 머리 두 개만 내놓고 붉은 연기를 끊임없이 빨아들이고 있었다.

해골과 강시로 구성된 삼백 구가 넘는 사령대군은 못의 주위를 목적 없이 떠돌고 있었다.

바로 그때, 못의 상공에서 갑자기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더니, 그 사이에서 삼 척 길이의 운철흑곤을 든 연나가 나타났다.

쌍수부시교가 고개를 들더니 연나를 향해 소리 없는 포효를 했다.

물가에 있던 사령대군 역시 연나를 향해 각자의 무기를 겨누고, 입을 여닫으며 소리 없는 포효를 했다.

촤악!

물 위로 솟아오른 쌍수부시교의 전신이 반짝이더니 머리가 두개인 교룡 모습의 법상이 나타났다.

교룡의 두 머리가 무언가 주문을 외우는 듯 입을 동시에 달싹였다. 그러자 그것의 전신이 녹색과 붉은색 빛에 감싸였다.

이어 교룡의 크기가 두 배로 커지더니 몸을 덮은 비늘에 붉은색과 녹색 부문이 무수히 생겨났다. 그리고 교룡은 일격에 말살하려는 듯 연나를 향해 엄청난 기세로 돌진했다.

그 사이 두 손으로 운철흑곤을 들고 있는 연나의 몸에서 회색빛이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운철흑곤에서 놀라운 양의 영기가 쏟아져 나왔고, 그것은 순식간에 하얀 빛으로 변해 운철흑곤을 감쌌다.

곧 하얀빛이 사라지며 다시 모습을 드러낸 운철흑곤의 모습은 전과 크게 달라져 있었다.

곤봉은 전체가 검게 빛나고 있었으며, 그 주위로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흐릿한 빛무리가 감돌았다.

연나가 교룡 모습의 법상을 향해 운철흑곤을 세차게 휘둘렀다.

순간 교룡을 중심으로 위쪽 주위의 하늘 수백 장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그러자 강력한 법력의 파동이 솟구치며 길이가 약 수십 장에 달하는 엄청난 크기의 검은색 곤영(棍影)이 허공에 나타났다.

곤영의 주위에는 다섯 가지 색의 수많은 부문이 감돌고 있었다.

이어서 곤영에서 터져 나온 엄청난 영압(灵压)이 거대한 파도처럼 주위 수백 장의 공간으로 퍼져나갔다. 이에 주위의 공기가 무거워지며 모든 해골과 강시는 꼼짝도 할 수 없게 됐다.

연나를 향해 달려들던 교룡은 움직임을 멈추더니 방향을 틀어 쌍수부시교에게 돌아갔다.

그와 동시에 입에서 대량의 녹색 연기를 뿜어내서 몸 아래 커다란 녹색 구름을 만들어낸 쌍수부시교가 하늘로 빠르게 올라갔다.

바로 그때, 곤영이 다섯 가지 색깔을 가진 검은 번개처럼 내리치면서 주위의 공간이 비틀렸다.

엄청난 힘의 파동을 뿜어내는 검은 곤영과 쌍수부시교와의 거리가 순식간에 십 장 이내로 좁혀졌다.

바로 그때, 쌍수부시교의 뒤에 있던 교룡의 두 머리가 입을 벌리더니 각각 초록색과 붉은색 화염구를 발사했다.

붉은색 화염구는 마치 작은 태양처럼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밝았으며, 강렬한 열기를 품고 있었다.

반면 녹색 화염구는 차갑고 어두운 성질을 띠고 있었다. 또 안쪽에는 가느다란 힘의 가닥들이 끊임없이 회전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쾅! 쾅!

검은 곤영 주위의 부문들이 반짝였다. 그러자 붉은색 화염구와 녹색 화염구가 마치 굳은 것처럼 제자리에 멈춰서더니 곧 동시에 폭발했다.

움직임을 잠시도 멈추지 않고 다가온 검은 곤영은 교룡 모습의 법상을 그대로 가격했다.

쾅!

법상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거의 동시에 쌍수부시교가 올라타고 있던 녹색 구름이 엄청난 압력에 의해서 눈 녹듯 사라졌다.

퍽!

법상을 부수고 다가온 검은 곤영이 쌍수부시교의 몸을 거세게 때렸다.

엄청난 힘이 검은 곤영을 타고 쌍수부시교의 몸에 쏟아졌다.

쌍수부시교의 몸을 덮은 비늘이 힘없이 파괴됐고, 뒤이어 이십 장이 넘는 길이의 몸이 마치 다진 고기처럼 납작해져서 아래로 추락했다.

검은 곤영은 쌍수부시교를 처치한 후에도 전혀 줄어들지 않은 놀라운 기세로 지면을 가격했다.

그러자 다섯 가지 색을 띤 영기의 파도가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하늘까지도 진동시킬 정도의 엄청난 소리가 지면에 울려 퍼졌다.

영기의 파도에 휩쓸린 수백 구의 해골과 강시가 무수한 조각으로 변해 전부 궤멸되었고, 주위 백 장 범위 내의 검은 석림은 전부 무너져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무너진 석림 위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연나가 나타났다. 연나의 손에 들려 있는 운철흑곤은 표면에 감도는 빛이 전부 사라진 상태였다.

연나가 입을 벌려 강하게 빨아들이자, 무너진 돌조각 아래 깔린 해골 조각 사이에서 수많은 영혼의 화염이 날아와 입속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원래 연보라색이던 연나의 영혼의 화염은 더 짙어져서 보라색에 가까워졌다.

연나는 몸을 돌려 다진 고기처럼 변한 쌍수부시교를 향해 빠르게 다가갔다. 그리고 운철흑곤을 거세게 휘둘러 쌍수부시교를 내리쳤다.

쾅!

쌍수부시교의 몸뚱이가 폭발하며 전신에 녹색 연기가 감도는 진보라색의 작은 쌍수부시교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나타나자마자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며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연나가 그것을 쫓지 않고 제자리에서 입을 벌렸다. 작은 쌍수부시교의 몸은 허공에서 흔들거리며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연나가 더욱 강하게 흡입하자, 쌍수부시교가 더 견디지 못하고 연나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다음 순간, 연나의 영혼의 화염이 흔들거리더니 완전한 보라색으로 변했다.

연나는 흥분한 듯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았다. 그러더니 곧 움직임을 멈추고 무언가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연나는 한 방향을 향해 곧장 달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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