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총단에 돌아오다
유안은 옆의 소녀를 한 번 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는 그날 천우성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대략적으로 설명했다.
소녀는 슬픈 표정으로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듣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은 남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다른 사제들이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유안을 구했다는 말을 들을 때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제가 너무 자만에 차 있었습니다. 나천귀왕의 힘만 빌린다면 통천선교와 맞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하다못해 안전하게 빠져 나올 수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무진도인의 힘이 그렇게 강력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어요. 제가 사제와 사매들을 죽인 거나 다름없습니다.”
유안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유 사제, 자책할 필요 없어. 아직 우리가 남아 있으니 언젠가 반드시 통천선교에게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할 수 있을 거야.”
남자가 말했다.
그때 갑자기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적 전주님의 호기는 한결 같군요. 그런데 대체 무슨 방법으로 통천선교에게 복수하겠다는 것이죠?”
문이 열리며 곱슬머리 청년이 걸어 들어왔다.
“곽청, 네 창랑전에나 박혀 있을 것이지 이곳에는 뭘 하러 온 것이지?”
남자가 분노한 표정으로 일어나며 말했다.
“술 냄새가 지독해 나 역시 오고 싶지 않았네. 유 전주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접한 우호법이 10전의 전주를 모두 소집했어. 그 소식을 전하라는 명령을 받고 온 것이야.”
곱슬머리 청년이 한 손으로 코를 비틀어 막고 다른 한 손으로 코앞을 부채질하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세 사람은 살짝 멍한 표정을 지었다.
곱슬머리 청년은 차갑게 웃으며 유안을 한 번 보더니 곧바로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대사형.”
곱슬머리 청년이 나가자 소녀가 걱정 어린 표정으로 유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괜찮다. 걱정할 필요 없어.”
유안이 평온한 표정으로 소녀를 안심시켰다.
“견 사매, 걱정할 필요 없어. 우호법은 그저 천우성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 물으려는 걸 거야. 이번에는 잘못한 것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기고만장하던 통천교의 위세를 꺾어놨으니 모두 이해하겠지.”
남자가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소녀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일 각 후, 유안 일행은 웅장한 대전 앞에 도착했다. 대전의 중앙에는 ‘명신전(冥神殿)’이라고 적힌 거대한 편액이 걸려 있었다,
또 대전의 양쪽에는 신의 모습을 조각한 몇 장 높이의 웅장한 상이 세워져 있었다. 그중 하나는 얼굴이 세 개에 팔이 여섯 개 있었으며, 초승달 모양의 날을 가진 창을 하나 들고 있었다.
다른 하나는 상반신은 자애로운 얼굴을 가진 여인이었으나 하반신은 물고기인 반인반어로, 병처럼 생긴 물건을 하나 들고 있었다.
두 조각상은 뛰어난 장인이 만든 듯 살아 있는 것 같은 생동감과 은은한 압박이 느껴졌다.
세 사람은 이 두 조각상이 익숙한 듯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대전 안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대전 안쪽의 공간은 매우 넓었으며, 두꺼운 돌기둥 몇 개가 천장을 받치고 있었다. 네 벽면에는 월광석이 몇 개 끼워져 있긴 했지만 다소 어두워서 엄숙함이 느껴졌다.
대전의 양쪽에는 커다란 돌 의자가 열 개 놓여 있었는데, 이미 절반 정도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중에는 예의 그 곱슬머리 청년도 있었다.
대문의 맞은편에 위치한 주석은 비어 있었으며, 바로 오른쪽의 검은 의자에는 수염이 하얗게 센 노인이 앉아 있었다. 얼굴에 깊은 주름이 가득한 노인은 상당히 나이가 많아 보였다.
백발의 노인 맞은편에 있는 다른 검은 의자는 비어 있었다.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자 사람들은 제각각의 표정을 지으며 소리가 난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유안이 우호법을 뵙습니다.”
유안이 백발의 노인에게 인사했다.
“유 전주, 이곳을 떠난 이후로 십 년 만이군. 몇 년만 더 늦게 돌아왔다면 아마 이 노인을 다시는 볼 수 없었을 것이네.”
백발의 노인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
“걱정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제 잘못입니다.”
유안이 살짝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어서 앉게나. 유 전주의 자리가 아주 오랫동안 비어 있었어.”
백발의 노인이 자신의 좌측에 있는 돌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유안은 복잡한 눈빛으로 그 자리를 보더니 바로 다가가 앉았다.
붉은 눈썹의 남자는 유안의 바로 좌측 빈자리에 앉았고, 붉은 옷의 소녀는 뒤에 섰다.
백발의 노인이 잔기침을 한 번 하더니 말했다.
“변경을 지키는 거문, 무곡, 자미 3전의 전주를 제외한 모두가 모였으니 바로 시작하겠다.”
“모두 이미 유 전주가 천우성에서 행한 일에 대해서 들었을 테지.”
백발의 노인이 장내의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당연히 이미 들어 알고 있습니다. 통천선교에서 분명 이대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곱슬머리 청년이 말했다.
“최근 몇 달간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변경에 통천선교의 정찰병이 빈번히 출몰하고 있다고 합니다. 무언가 행동을 준비하는 것 같습니다.”
곱슬머리 청년의 옆에 앉아 있는 입이 큰 중년 남자가 덧붙였다.
그 말을 들은 장내의 사람들이 안색을 흐렸다.
“그 말이 사실입니까? 정찰병이 어디에 나타났죠?”
전주 중 묘령의 여인의 물었다.
“주로 동남쪽에 위치한 동림(东林)성과 임해(临亥)성에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동북쪽에 위치한 흑하(黑河)성에도 수상한 자들이 상당수 출몰하고 있습니다.”
중년의 남자가 말했다.
사람들의 표정이 더욱 굳었다. 동림과 임해는 통천선교와 근접하여 정찰병이 출몰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러나 흑하는 서하국과 대진국의 경계가 맞닿은 곳이었다.
“설마 천마종까지….”
붉은 눈썹 남자의 정면에 앉아 있는 검은 얼굴의 사내가 말을 하다가 입을 닫았다.
“천마종도 통천선교와 같이 과거 이단을 뿌리 뽑겠다는 명분하에 우리 서하고국의 영석 광산을 넘봤습니다. 그동안은 잠잠했지만, 만약 이번 일로 통천선교가 서하국에 들이닥친다면 천마종 역시 절대로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곱슬머리 청년이 시종일관 유안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
“큼! 명월교와 원수지간인 통천선교는 지금껏 우리에 대한 감시를 잠시도 소홀히 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들은 결국 언젠가 쳐들어올 것입니다.”
붉은 눈썹의 남자가 기침을 하며 곱슬머리 청년의 말을 끊고 나섰다.
“게다가 이번 유 사제의 행동은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수많은 통천선교의 젊은 세대를 죽였을 뿐만 아니라, 잠재력이 강한 그들을 제물삼아 제사까지 올렸으니 일거양득이지 않겠습니까? 속이 다 시원합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요! 설마 적 전주는 유안이 천우성에서 소란을 피워 통천선교를 도발한 게 잘한 짓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곱슬머리 청년이 말했다.
“동방교주를 위한 복수는 과거 우리 모두 동의한 일이네. 그 점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지 않나?”
붉은 눈썹 남자는 추호도 물러나지 않았다.
“그 말은 맞지만, 교내의 힘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는가. 만약 통천선교와 천마종이 연합해 쳐들어온다면 우리가 어떻게 막지?”
곱슬머리 청년이 큰소리로 말했다.
붉은 눈썹의 남자가 미간을 찌푸리며 반박하려 했다.
“됐다. 다투지 말거라.”
가장 앞쪽에 앉아 있는 백발의 노인이 입을 열자 장내가 순간 조용해졌다.
“유안이 천우성에서 벌인 일은 잘한 점도, 잘못한 점도 있다. 이 일은 추후 다시 논의하도록 하지. 이번에 모두를 소집한 것은 통천선교에 대한 대응을 논의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무진도인은 지금까지 때를 기다렸을 뿐 서하고국 점령을 포기하지 않았다. 여러 조짐을 봤을 때 전쟁은 피할 수 없을 것 같구나.”
백발의 노인이 말했다.
장내의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볼 뿐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명월교는 전대 교주가 목숨을 잃은 후 날이 갈수록 힘이 약해지고 있었다. 과거 전성기 시절에도 통천선교에게 참패했으니, 지금 다시 싸운다면 결과는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바로 그때, 유안이 말했다.
“통천선교의 힘은 이전보다 더욱 강해져 현재 우리들만의 힘으로는 대항할 방법이 없습니다. 현재 상황에서는 모험을 하는 수밖에 없어요. 통천선교가 쳐들어오기 전에 명월교의 총단을 서하대륙으로 옮겨 훗날을 기약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가 말을 내뱉은 순간 장내가 소란스러워졌다.
“바다를 건너 서하대륙으로 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모르고 하는 말인가? 서해에는 무수히 많은 해수(海兽)가 도사리고 있어. 게다가 해족과 우리 명월교는 줄곧 서로를 적대시하고 있지! 서하대륙은 괴수들이 기승을 부릴 뿐만 아니라 명월서교(冥月西教)의 근거지야. 설마 우리를 받아달라고 그들에게 간청이라도 하자는 것인가? 과거 교주님과 서하명교 사이의 일을 교주님의 제자인 네가 모를 리가 없지 않은가?”
곱슬머리 청년이 따졌다.
그러나 유안은 침착하게 말했다.
“지금은 체면을 따질 때가 아닙니다. 우선 본교의 힘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지요. 만약 스승님이 살아계셨다면 똑같은 결정을 내렸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장내의 사람들이 입을 꾹 닫고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동안 말을 꺼내지 않았을 뿐이지 그들 대부분이 생각해봤던 방법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래도 걱정된다면 제가 먼저 제자를 몇 명 데리고 서하대륙에 가서 현장 상황을 조사하고 기반을 다지겠습니다.”
유안이 백발의 노인을 향해 말했다.
“유 사제, 전대 교주가 지명한 후계자인 사제가 갔다가 무슨 봉변이라도 당한다면 어떻게 하나? 내가 제자를 데리고 가도록 하겠네.”
붉은 눈썹의 남자가 다급히 말했다.
그러나 유안은 고개를 저었다.
“적 사형은 무공을 수련해서 해수를 만났을 때 상대하기 어려울 겁니다. 제가 직접 가는 것이 낫습니다.”
붉은 눈썹의 남자는 더 말하고 싶은 것이 있는 듯했지만, 유안의 결연한 표정을 보자 더 이상 말릴 수가 없었다.
장내의 다른 사람들도 아무 말 없이 침묵했다.
명월교의 현재 상황으로는 서하대륙으로 이동하는 게 유일한 해결책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누구도 고된 일을 맡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상황을 예측할 수 없는 대륙에서 처음부터 기반을 다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명월서교와도 교섭을 해야 할 텐데, 말이 교섭이지 사실상 찾아가서 부탁을 하는 것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교내에서 중고위층에 속하는 그들은 고생을 하고 싶지도, 체면을 내려놓고 부탁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겠군. 그럼 유 전주가 제자들을 데리고 먼저 서하대륙으로 가는 것으로 하지. 그런데 유 전주, 어떤 사람들을 데리고 갈 생각이지?”
잠시 침묵하던 백발의 노인이 유안을 보고 물었다.
“교내에서 실력이 있으며 서하대륙에 가고자 하는 사람을 선발하겠습니다. 인원은 너무 많을 필요도 없고 이백 명이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유안이 말했다.
다른 전주들은 이백 명밖에 필요하지 않다는 그의 말을 듣고 순간 한숨을 돌렸다.
“좋다. 그렇게 하도록 해라. 선발과 관련된 구체적인 방법은 전부 유 전주에게 일임하겠네.”
백발의 노인이 말했다.
반나절 후, 명월교 총단에서 내려진 명령이 서하고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