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인원선발
한 달 후, 석목과 후새뢰 두 사람이 말을 타고 달리고 있었다.
그들의 앞쪽에 회색의 성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성은 매우 낡았고 넓지 않았으며, 성벽의 높이도 겨우 몇 장밖에 되지 않았다.
“앞쪽에 보이는 성이 바로 비성입니다.”
후새뢰가 전방의 성을 가리키며 말했다.
석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때, 뒤쪽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오더니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탄 말이 옆으로 휙 지나갔다.
순간 석목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비성에 접근할수록 길에 사람이 점점 많아졌다. 게다가 그들은 모두 평범한 백성이 아닌 수련을 한 자들이었다.
“길에서 마주친 사람들이 전부 비성으로 향하는 것을 보니, 저 성은 상당히 번화했나보지?”
석목이 물었다. 그러나 후새뢰 역시 영문을 모르는 것 같았다.
“비성은 작은 성입니다. 이전까지 이런 상황을 겪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저 역시 조금 이상하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됐다. 성에 들어가 보면 알 수 있겠지.”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비성의 성문에 도착했다.
성문은 매우 낡았지만, 밖에는 외지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석목과 후새뢰는 서로를 마주보았다. 성에 무언가 일이 발생한 것이 확실한 것 같았다.
두 사람은 말에서 내려서 줄의 가장 끝에 섰다.
성문에서는 검은 옷을 입은 명월교의 제자들이 성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을 엄격하게 조사하고 있었다. 외지인은 모두 그들에게 상당히 오랜 시간 검문을 받아야 했다.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쓸데없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잠시 명월교의 제자를 사칭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후새뢰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석목은 고개를 끄덕이며 명월령을 꺼냈다.
방금 전 그들은 명월교의 한 제자가 명월령을 보여주고 검사 없이 성에 들어가는 모습을 목격했다.
일 각 후, 석목과 후새뢰의 차례가 돌아왔다.
석목이 명월령을 들어보이자 영패의 붉은 별 문양 세 개가 반짝였다.
성을 지키는 명월교 제자의 표정이 순간 바뀌더니, 즉시 공경한 태도로 석목에게 인사했다.
석목과 후새뢰는 그렇게 해서 성 안으로 들어왔다.
성 안으로 들어온 석목은 주위를 둘러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내부는 밖에서 봤을 때보다 더 엉망이었다.
성 안에 길이라고는 돌을 깔아서 만든 울퉁불퉁한 길 딱 하나뿐이었다.
그 양쪽에는 건물들이 있었는데, 모두 이삼 층으로 크지 않은데다 매우 낡아 있었다.
성에는 건물들 말고도 넓은 공터가 있었다. 그 공터들은 모두 질퍽한 소택지였으며, 그 때문에 공기 중에는 썩은 내가 진동했다.
석목의 미간이 확 찌푸려졌다. 이곳의 환경은 너무나 열악했다. 육산왕조의 성은커녕 대제국의 성들과 비교해도 훨씬 떨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성 안에는 수많은 사람이 모여 북적거리고 있었다. 그들 중 상당수는 흥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명월교의 제자였다.
“앞으로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후새뢰가 석목을 보며 물었다.
석목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이곳에 무슨 일이 있든 우리와는 상관이 없다. 이곳에 친구가 있다고 했으니 그 자를 찾아가 바다를 건널 방법을 알아보도록 하지.”
후새뢰는 대답을 하고 앞장서서 걸었다.
두 사람은 모퉁이를 몇 번 돌아서 작고 혼잡한 광장에 도착했다.
광장 주위에는 검은색 건축물이 일렬로 세워져 있었다. 그것들은 주위의 다른 건물보다 훨씬 깨끗했으며 명월교의 제자들이 수시로 들락거렸다.
“이곳은?”
석목이 물었다.
“명월교의 분단입니다. 이곳의 선배 한 명과 친분이 조금 있으니 그에게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후새뢰가 대답했다.
두 사람이 검은색 건물 앞으로 다가간 후, 후새뢰가 혼자 안으로 들어갔고 석목은 밖에서 기다렸다.
석목은 명월령을 가지고 있었지만 성문 경비를 속이는 정도로 사용했을 뿐이었다. 명월교의 지부에서 태연하게 교도를 사칭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이 각 후, 입구에 나타난 후새뢰가 석목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석목은 그의 뜻을 이해하고 빠르게 안으로 들어갔다.
누추한 방에 들어가니 회색 옷차림의 얼굴이 하얗고 수염이 없는 중년의 남성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중년의 남자는 석목을 한 번 보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후새뢰를 바라보았다.
“이 분이 바로 제가 방금 말한 목 선배님입니다. 검성(黔城) 지부에 속해 있으며 저와는 깊은 친분이 있지요. 비성까지 오는 길에 대화를 나누던 도중 출항에 관한 질문을 하길래 바로 권 집사님을 떠올렸습니다. 출항에 관한 일은 예로부터 총단의 소관이니, 수완이 뛰어나고 총단에 친구가 많은 권 집사님이라면 잘 알고 있겠지요.”
후새뢰가 남자에게 아첨하며 말했다.
석목은 미소를 지으며 남자에게 인사하고 명월령을 건넸다.
석목은 무인의 기운은 감추었지만 술사의 기운은 감추지 않았다. 그래서 성계술사가 되어야 가질 수 있는 법력의 파동이 몸에서 은은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아, 만나서 반갑습니다. 바다에 나가 해수를 사냥하려나 보죠?”
남자는 석목의 손에 들린 명월령을 눈으로만 보고 건네받지는 않았다.
“맞습니다. 정말 뛰어난 안목을 가지셨군요.”
석목이 명월령을 챙겨 넣으며 말했다.
“바다에 나가 해수를 사냥하기 위한 절차는 어려운 것이 없습니다. 곡양성에서 신고만 하면 두 달에 한 번씩 출항하는 거대한 배에 탑승할 수 있지요. 하지만 최근에는 상황이 바뀌어서 가봤자 헛걸음을 할 테니, 가지 않는 것이 좋을 겁니다.”
남자가 말했다.
“그 말이 무슨 뜻이지요?”
석목이 멍청한 표정이 되어 물었다.
“아직 총단에서 공개하지 않은 일과 관련되어 더 이상은 말하기 어렵습니다.”
남자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니 귀하께서 가르쳐 준다면 감사하기 그지없겠습니다.”
석목이 진묘계에서 하급 영석 열 개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하는 수 없군요. 어차피 특별한 기밀도 아닐뿐더러 외부인도 아니니….”
남자는 은근슬쩍 눈앞의 영석을 챙기더니 목소리를 살짝 낮추며 말했다.
석목과 후새뢰가 황급히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남자의 설명에 따르면, 최근 명월교에서 서해 건너편에 있는 서하대륙에 사람을 보내 탐색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곳에는 수련 자원이 동주대륙보다 풍부하고, 또 대량의 괴수를 제물 삼아 제사를 올릴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인원의 제한이 있는 탓에 비무를 통해 이백 명의 정예 제자를 선발하기로 했고, 이 탐사를 위해 한동안 바다에 나가는 게 전부 금지됐다고 했다.
또 선발대회는 반년 후 서하고국의 수도인 곡양성에서 거행된다는 이야기도 했다.
선발전이 열리기 전 열 개의 성에서 예선이 치러지는데, 비성도 그 예선이 열리는 곳 중 하나였다. 예선은 한 달 후에 시작되며 승자는 다 함께 곡양성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남자의 설명을 듣고 난 석목은 감사 인사를 한 뒤 후새뢰와 함께 건물을 나섰다.
석목이 후새뢰에게 물었다.
“이번에 진행된다는 선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지?”
후새뢰가 석목을 보며 반문했다.
“선발대회에 참여하실 생각이 있나 보군요?”
“그렇다.”
석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중요한 선발대회 같은 경우 예선이 시작되기 전에 신분을 엄격하게 확인할 것입니다. 명월령만으로는 속일 수 없을 테니 아예 명월교에 가입하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후새뢰가 가까이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명월교에 가입하는 것이 그리 간단하지는 않을 텐데?”
석목이 물었다.
“명주에게 제사를 올리는 의식에 한 번만 참여하면 됩니다. 의식에서 영혼의 세례를 받게 되지요.”
후새뢰가 말했다.
“명월교에는 가입하고 싶지 않다. 다른 방법이 없는지 다시 생각해봐.”
석목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후새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이런 비무대회의 예선이 열릴 때면 항상 총단에서 각 성에 특사를 파견해왔습니다. 첫 경기에 참여하는 인원 역시 그 특사에 의해 결정되죠. 권 집사를 통해 영석을 좀 쥐어주면 참여명단에 이름을 넣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1차 예선 명단에만 이름이 오르면 그 이후로 다시 신분을 조사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석목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그들은 성에서 지낼 거처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반 시진 후, 석목은 성 동쪽에 위치한 객잔의 일반 객실 두 개를 빌렸다.
방은 크지 않았지만 정신력의 침입을 차단시켜주는 금제가 깔려 있었으며, 가격이 놀라울 정도로 비쌌다. 방 두 개를 하루 빌리는 데만 무려 은자 일 만이었다.
후새뢰 역시 그 가격에 깜짝 놀랐다. 아무래도 비싼 방값 역시 비무대회와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
명월교의 총단에서는 아직 정식으로 비무대회에 대해 공표하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이미 다양한 경로로 사전에 소식을 접하고 경기가 열리는 성에 모여든 것이다.
그들 중 대부분은 명월교의 제자였지만, 이 기회를 빌어서 돈을 벌어보려는 외부인도 있었다.
본래 크지 않은 비성에 한순간 많은 사람이 밀려들어오자 객실을 구하기 어려워졌고, 그에 따라서 가격도 함께 치솟은 것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만 개가 넘는 영석을 지니고 있는 석목에게 이 정도의 지출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 * *
닷새 후 저녁, 비성의 어느 외진 골목길.
회색 옷을 입은 석목이 어느 건물의 대문 앞에 나타났다. 그의 옆에 있는 후새뢰도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이틀 전, 후새뢰는 성의 교우로부터 한 가지 정보를 입수했다.
교내외 사람들이 대량으로 모여드는 기회를 노리고 성 안의 어느 세력이 지하교역회를 계획하고 있다는 정보였다. 쉽게 얻을 수 없는 물건들이 거래될 것이라는 얘기에 석목은 자연스레 흥미가 생겼고, 결국 이곳에 오게 된 것이다.
후새뢰가 다가가 건물의 문을 두드렸다. 석목은 그 뒤를 천천히 따랐다.
똑, 똑, 똑똑똑….
후새뢰는 천천히 두 번, 빠르게 세 번, 총 다섯 번을 두드렸다.
잠시 후, 대문의 문이 열리며 녹색 옷을 입은 두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석목과 후새뢰를 경계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정신력을 이용해 두 사람을 관찰한 석목은 그 둘이 모두 후천대원만의 무인이라는 사실을 즉각 알아챘다.
청년이 입을 떼기도 전에 후새뢰는 법력의 파동이 느껴지는 옥 재질의 영패를 두 사람에게 보였다. 그것을 본 두 청년이 표정을 풀며 길을 열어주었다.
잠시 후, 석목과 후새뢰는 건물 아래 지하공간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을 포함한 실내의 모든 사람은 검은 옷과 모자로 두 눈을 제외한 전신을 전부 가리고 있었다.
석목은 좌우를 살펴보았다.
지하 공간은 백 장에 달하는 크기로 매우 넓었다. 중앙에는 일 장 길이의 석제 탁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이곳에는 이미 삼사백 명의 사람이 모여 있었는데, 그중에는 강한 기운을 가진 선천무인이나 성계술사가 상당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입고 있는 검은 옷은 상당히 컸으며, 정신력의 침투를 어느 정도 차단하는 장치까지 되어 있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키를 제외하고 전부 비슷하게 보였다.
석목은 매우 흡족했다. 규모는 천우성의 승선경매처럼 크지 않을지 몰라도, 강자가 많은 것으로 보아 그의 마음에 드는 물건도 꽤나 있을 것 같았다.
석목은 후새뢰와 함께 뒤쪽 자리에 앉아 시작하기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