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197화 (197/916)

197화. 예선전

석목은 무표정한 얼굴로 금전검을 회수하고 남자의 시체에 다가가 몸을 뒤졌다. 그는 검은 지팡이 하나와 약병 세 개, 영석 열 몇 개, 검은색 옥판 한 개, 명월령을 소지하고 있었다.

새까만 지팡이는 대나무처럼 반들반들했으며 가장 끝단에 흑수정이 달려 있었다. 흑수정의 안에 검은 진기가 반짝이는 것으로 보아 평범한 물건은 아닌 것 같았다.

매우 특수한 재질로 만들어진 것 같은 검은 옥판에는 암홍색 보름달 문양이 새겨져 있었는데, 어디에 쓰이는지는 알 수 없었다. 지팡이와 옥판을 제외한 다른 것은 모두 평범한 물건이었다.

약병 안에 들어 있는 해독약과 치료약은 효과는 매우 평범했다. 열 몇 개의 영석도 중급 화속성 영석 하나를 제외하고는 전부 하급 영석이었다.

“겨우 이것밖에 없다니….”

살짝 실망한 석목은 검은 옥판을 집어들고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이 옥판은 대회의 예선 참가자와 시합 결과를 기록하는데 사용하는 법기라고 합니다.”

후새뢰가 말했다.

석목은 고개를 끄덕이며 검은 지팡이를 후새뢰에게 던져주었다.

“이 물건은 나에게 쓸모없으니 너에게 주마.”

석목이 말했다.

“감사합니다!”

후새뢰는 기뻐하며 지팡이를 받아들고 그것을 자세히 관찰했다.

그 지팡이는 후뢰새가 기존에 사용하던 것보다 성능이 훨씬 뛰어났으며. 끝에 달린 흑수정에는 정순한 음속성 영력이 담겨 있었다.

석목은 남자의 회색 옷을 벗긴 뒤 두 구의 시체를 걷어차서 후새뢰에게 날렸다.

“이 시체들은 명월교 교도에게 상당히 괜찮은 제물일 테지. 그들을 사용해 제사를 올리면 실력을 꽤나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석목이 말했다.

“후한 선물에 감사드립니다!”

후새뢰는 잠시 멍청한 표정을 짓더니 석목에게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했다.

생전에 실력이 강했던 이 시체들로 제사를 올린다면 그의 실력이 크게 증가할 것이 분명했다.

석목은 손사래를 친 뒤 옆으로 걸어갔다.

흥분한 후새뢰는 품속에서 도구를 꺼내 방 안에 제사진법을 그리기 시작했다.

진법은 매우 복잡했기 때문에 반 시진이 걸려서 겨우 완성됐다.

후새뢰는 시체 두 구를 진법 위에 올린 뒤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진법에서 검은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옆에 서 있던 석목이 부적 몇 장을 방 구석구석에 날려 결계를 펼쳤다. 그 결계는 후새뢰가 제사진법을 가동시키며 뿜어내는 법력의 파동이 흘러나가지 않도록 완전히 차단했다.

석목은 제사 과정을 이미 한 번 본 적 있었으나, 당시에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지금처럼 자세히 보지는 못했다.

후새뢰가 주문을 외우자 그의 명월령이 붉은빛을 뿜어내기 시작했고, 이어 진법에서 핏빛 화염이 솟아올라 시체를 뒤덮었다. 곧 빛이 반짝이더니 시체들이 화염 속에서 자취를 감췄다.

뒤이어 진법에서 회색 빛줄기들이 솟아나와 후새뢰의 몸 안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의 몸 주위로 회색빛이 일며 강력한 법력의 파동이 파도처럼 주위로 뿜어져 나갔다.

후새뢰는 엄숙한 표정으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두 눈을 감았다.

주위의 회색빛이 그의 머리 뒤로 모여들어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했고, 곧 사람의 머리만한 회색 소용돌이가 형성됐다.

시간이 흐르고 천천히 회전을 멈춘 소용돌이는 흐릿한 구름 모양으로 변했다. 이어 구름 사이에서 별 하나가 천천히 빛나기 시작했다.

석목은 그 광경을 묵묵히 바라볼 뿐 전혀 놀라지 않았다.

영계술사의 끝자락에 있는 후새뢰는 원래 작은 계기만 있다면 성계술사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제사에 사용된 두 제물의 경지가 뛰어났으니 성계술사가 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일 각이 더 지난 후, 후새뢰는 눈을 떴다.

그는 멍청하게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보더니 미칠 듯이 기쁜 표정을 지었다.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후새뢰가 석목에게 다시 한 번 허리를 깊이 숙이며 인사했다.

석목은 웃으며 총단 사자의 명월령과 겉옷을 그에게 던져줬다.

“역용술은 그저 흔한 잡기일 뿐입니다. 경지가 낮은 사람을 속이는 것은 간단하겠지만, 눈썰미가 좋은 사람을 만난다면 금세 들통 나죠. 그렇게 되면 대인의 거사를 망치게 될 겁니다.”

후새뢰가 말했다.

“이 성에는 이 자를 알아 볼 수 있는 자가 없으니 괜찮다. 예선이 끝나고 이 옥판을 제출할 때까지만 변장을 하고 있으면 되니 너무 걱정 말거라.”

석목이 검은 옥판을 후새뢰에게 건네며 말했다.

검은색 옥판을 보며 잠시 머뭇거리던 후새뢰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안쪽 방으로 들어간 후새뢰는 반 시진 후 회색 옷을 입은 중년의 남자가 되어 나왔다.

석목은 놀란 표정으로 남자를 위아래로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정도면 그 자와 가까운 사람이라 해도 눈치 채기 힘들 것이다. 정말 무슨 문제가 생긴더라도 내가 대신 해결해줄 것이니 안심해라.”

“예.”

석목의 말을 들은 후새뢰는 그제야 살짝 안심했다.

“그럼 나는 갈 테니 너는 이곳에 머물도록 해라.”

석목이 손을 휘둘러 방 곳곳에 부착된 부적을 회수하며 말했다.

객사를 떠나 자신의 거처로 돌아온 석목은 침상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후새뢰의 역용술은 매우 믿음직스러웠으며, 예선전만 마치면 뒷일은 쉬웠다. 다만 명월교가 어째서 갑자기 서하대륙으로 가려 하는지 궁금했다.

잠시 생각하던 석목은 곧 고개를 가로저으며 생각을 떨쳐내고 두 눈을 감았다.

며칠 후, 객사 밖의 광장에 초라한 연무대가 열 개 세워졌고, 그 주위에는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날은 바로 서하대륙 원정을 위한 선발대회의 예선전이 열리는 날이었다.

석목은 사람들 사이에 눈에 띄지 않는 위치에 서 있었다.

바로 그때, 객사 앞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명월교 비성 지부 집사들의 안내를 받아 객사에서 중년의 남자가 나오자, 몇몇 명월교의 제자가 서둘러 그의 주위로 몰려가고 있었다.

이 회색 옷을 입은 중년의 남자는 바로 변장한 후새뢰였다.

석목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후새뢰는 아직도 긴장하고 있는지 발걸음이 살짝 굳어 있었다.

후새뢰는 시선을 돌려 주위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주위의 인파 사이에는 성계술사와 선천무인이 상당수 있었다. 만약 그가 가짜라는 게 틀통나면 어떻게 될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순간 등골이 오싹해진 후새뢰가 몸을 살짝 떨었다.

“대인, 괜찮습니까?”

옆에 있던 키가 작고 뚱뚱한 집사가 후새뢰의 상태가 이상한 것을 발견하고 물었다.

“아, 괜찮다.”

깜짝 놀란 후새뢰가 다급히 말했다.

남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참, 권 집사는 왜 보이지 않는 거지?”

다른 집사가 갑자기 말했다.

“맞아, 며칠 전부터 전혀 보이지 않는군.”

“대인, 제 기억에 얼마 전에 권 집사가 대인을 뵙겠다고 찾아갔던 것 같은데, 혹시 그가 어디로 갔는지 알고 계십니까?”

뚱뚱한 남자가 물었다.

“아…. 얼마 전에 찾아오긴 했지만 곧바로 떠나서 나도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후새뢰가 살짝 당황한 말투로 말했다.

순간 후새뢰의 귓가에 석목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멍청아! 뭘 긴장하는 거야!”

“내가 곁에 있으니 안심해라. 설령 정체가 들통 나더라도 내 실력이라면 너를 데리고 충분히 도망갈 수 있다.”

석목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그 말을 들은 후새뢰는 심호흡을 하며 불안한 마음을 완전히 떨쳐 버렸다.

“대인?”

뚱뚱한 남자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됐다. 권 집사의 일은 너희가 나중에 따로 사람을 시켜 조사해보도록 해라. 오늘은 선발전이 시작되는 중요한 날이니 다른 일로 허비할 시간이 없다.”

후새뢰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예.”

집사들이 엄숙한 표정으로 황급히 대답했다.

후새뢰는 그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연무대 주위에 세워진 단상에 올라갔다.

주위에 떠들던 사람들이 그 광경을 보고 조용히 후새뢰를 바라보았다.

“우호법의 명령을 받들어 오늘 서하대륙 원정에 참가할 제자들을 선발하기 위한 예선전을 진행할 것이다.”

후새뢰가 큰 소리로 말했다.

그의 말을 들은 현장의 사람들이 하나같이 흥분한 표정을 지었다.

“예선전의 규칙을 설명하겠다.”

후새뢰는 말을 이었다.

“이번 선발에는 본교의 제자만 참가할 수 있다. 잠시 후 참가 신청을 받으며, 내가 직접 참가자의 신분을 검증할 것이다. 그 뒤로 추첨을 진행해 정해진 대진표대로 일 대 일 비무가 이루어질 것이다. 승부는 단 한 번이며 승자는 나와 함께 곡양성으로 가서 다음 선발전을 진행하게 될 것이다.”

후새뢰가 말이 끝나자 순간 주위가 떠들썩해졌다.

후새뢰는 사람들이 떠들든 말든 그대로 단상 중앙에 위치한 탁자에 앉았다.

곧 스무 살 정도로 보이는 젊은 명월교의 제자가 단상으로 뛰어올라 자신의 명월령을 후새뢰에게 건넸다.

집사들은 일부 지부의 제자와 함께 단상 주위에서 질서를 유지시켰다.

후새뢰가 명월령을 받아들었다. 그가 아무런 동작도 하지 않았는데 영패가 붉은빛으로 반짝이더니 그 위로 몇 줄의 글자와 영상이 나타났다.

후새뢰가 젊은 청년을 한 번 보더니 머리를 끄덕이고 명월령을 돌려주었다. 그 뒤 검은색 옥판을 꺼내 손으로 몇 번 두드리자 옥판에 작은 글자 몇 개가 나타났다.

후새뢰가 손을 흔들어 청년에게 내려가도 좋다는 손짓을 했다.

“다음.”

명월교의 다른 제자가 단상으로 걸어 올라갔다.

명월교의 제자들이 단상 아래 한 줄로 길게 줄을 섰다. 대열에 섞인 석목은 차분해진 후새뢰의 모습을 보고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십 명의 사람이 등록을 마치고 석목의 차례가 다가왔다.

석목이 단상 위로 걸어 올라가 품속에서 명월령을 꺼내 후새뢰에게 건넸다.

후새뢰가 명월령을 받자 그것이 붉은빛을 뿜어냈다.

주위의 집사들은 후새뢰의 손에 쥐어진 명월령을 보지 못했고, 애초에 그것에는 관심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후새뢰는 고개를 끄덕이며 명월령을 석목에게 돌려준 뒤, 그의 가명을 옥판에 기록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석목은 몸을 돌려 연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가장 어려운 고비를 무사히 넘긴 것이다.

두 시진 후, 모든 참가자 등록이 종료됐다. 등록을 한 사람은 천 명이 넘었다.

뒤이어 후새뢰와 다른 집사들이 대진표 추첨을 진행했다. 잠시 후, 두 명이 한 조로 편성된 거대한 대진표가 완성되어 단상 주위에 걸렸다.

명월교의 제자들이 몰려와 앞 다투어 그것을 확인했다.

“원정까지 시간이 급박한 관계로 지금 즉시 비무를 시작하겠다. 호명된 자는 연무대에 오르도록.”

후새뢰가 말하며 옆에 있는 뚱뚱한 남자에게 눈짓했다.

그 뜻을 이해한 남자가 앞으로 한 걸음 나갔다.

“일 번 연무대 감철 대 곽도해, 2번 연무대….”

뚱뚱한 남자에게 호명된 사람들이 즉시 연무대에 올라 겨루기를 시작했다.

열 개의 연무대에는 집사가 한 명씩 올라가 심판을 보았다. 시합에 참여한 이들은 모두 명월교의 제자였기 때문에 서로를 잘 알았고, 시합은 매우 빠르게 진행됐다.

반 시진 후, 이름이 호명된 석목이 연무대 위로 걸어 올라갔다.

곧 금발의 파란 눈을 가진 상대가 연무대 위로 훌쩍 뛰어 올라왔다.

정신력을 사용해 석목의 실력을 가늠해본 그의 표정에 모멸하는 듯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는 속으로 자신이 운이 굉장히 좋다고 생각했다.

석목은 연무대에 오르기 전에 미리 자신의 기운을 숨겼기 때문에,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법력의 파동은 상당히 약했다. 아마 상대의 눈에는 그의 경지가 막 영계술사에 오른 정도의 수준으로 보였을 것이다.

영계술사 사이에서도 상당히 강한 축에 속하는 금발의 청년에게는 석목이 하찮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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