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198화 (198/916)

198화. 국경까지 밀려오다

“시작!”

심판을 맡은 중년의 남자가 크게 외치며 뒤로 물러났다.

순간 금발의 청년이 기합을 지르며 검은 지팡이를 휘둘렀다.

푹! 푹!

그의 앞에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더니 덩치가 커다란 해골전사가 걸어 나왔다. 해골들은 전신이 검었고 손에는 도를 들고 있었다.

“흑골고루(黑骨骷髅)다!”

“흑골고루 두 구의 실력은 선천의 존재와 맞먹지. 맞은 편의 저 놈이 패할 게 불 보듯 빤하구나.”

주위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은 금발머리 청년이 우쭐해졌다.

이 해골들을 얻기 위해 많은 공을 들인 가치가 있었다.

금발의 청년이 지팡이를 휘두르자 해골들이 무기를 휘두르며 석목에게 달려들었다.

석목은 빠르게 다가오는 해골들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제자리에서 두 눈을 감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 순간 그의 뒤에 붉은 빛이 연달아 반짝이더니 세숫대야만한 화염구 여섯 개가 나타났다. 뜨겁게 활활 타오르는 화염구는 상당히 강력한 법력의 파동을 뿜어냈다.

“가라!”

석목이 팔을 휘두르자 여섯 개의 화염구가 마치 유성이 떨어지듯 엄청난 소리를 내며 두 구의 해골을 향해 날아갔다.

그 모습을 본 금발의 청년이 멍청한 표정이 되었다. 석목의 화속성 원소 친화력에 깜짝 놀란 것 같았다.

일반적인 영계술사로서는 사람의 머리만한 크기의 화염구를 만들어 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일이었다. 저 정도 크기의 화염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화속성 친화력이 최소 5단계를 넘거나, 성계술사의 경지에 올라야 했다.

청년이 지팡이를 휘두르자 해골들이 화염구를 향해 회색빛을 내뿜는 도를 힘껏 휘둘렀다.

석목이 눈을 가늘게 뜨자 그의 동공에 희미한 빛이 감돌더니, 허공에 보이지 않는 얇고 기다란 줄 여섯 개가 생겨났다.

그 순간 여섯 개의 화염구가 마치 놀란 꿀벌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러자 해골들의 도는 단 하나의 화염구도 베지 못하고 허공을 갈랐다.

화르륵!

해골들을 지나쳐 한곳에 모인 여섯 개의 화염구가 한 줄기의 화염의 물결로 변했고, 그것은 엄청난 속도로 금발머리 청년의 코앞까지 날아갔다.

팍!

놀란 금발머리 청년이 다급하게 소리를 지르자 그가 들고 있던 지팡이에서 빛이 터져 나와 거대한 뼈 방패로 변했다.

콰르릉!

그러자 방패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산산이 부서졌다.

금발머리 청년의 몸이 화염의 파도에 집어 삼켜지기 직전, 심판을 맡은 제자가 그의 몸 앞을 가로막았다.

심판의 손에서 회색빛이 뿜어져 나와서 빛의 장막을 형성했다.

콰르릉!

화염의 물결이 빛의 장막에 충돌하자 회색빛의 장막이 흔들리며 빠른 속도로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화륵!

하지만 화염의 물결 역시 위력이 상당히 약해져 있었던 터라, 회색빛의 장막이 부서지기 바로 직전에 먼저 꺼졌다.

심판이 숨을 길게 내뱉었다. 그의 안색은 살짝 창백해져 있었으며 몸 앞의 장막은 아주 얇아진 채였다.

만약 화염구의 위력이 조금만 더 강했어도 빛의 장막이 먼저 부서졌을 것이다.

팔을 휘둘러 빛의 장막을 흩어버린 심판이 석목을 유심히 보더니 선포했다.

“이번 시합은 목석의 승리다.”

금발머리의 청년은 얼굴이 잿빛이 된 채 지팡이를 휘둘러 검은 해골을 사령계로 돌려보내고 연무대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석목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천천히 연무대 아래로 걸어 내려갔다.

최근 통천어령결을 열심히 수련한 그는 제어할 수 있는 화염구의 수량이 여섯 개로 늘어난 상태였다.

방금 연무대에서 간단하게 시험해봤을 뿐이지만 효과는 확실히 뛰어났다.

연무대 주위 사람들이 석목을 바라보는 눈빛은 방금 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일부 사람들은 석목의 신분에 대해 추측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비성에는 각지에서 명월교의 제자들이 모여 있는 상황이었고 그중 가입한지 얼마 안 된 제자도 상당수 섞여 있었다. 그 때문에 특정한 사람의 내막을 알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석목이 후새뢰가 있는 단상 위에 올라가 승부에 대한 결과를 보고했다.

“좋다. 사흘 후 정오에 이곳에 모여 함께 곡양성으로 갈 것이니 준비하고 있어라.”

후새뢰가 말했다.

“예.”

석목은 대답을 한 뒤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 * *

시합은 사흘 동안이나 이루어진 뒤 종료됐다.

사흘 뒤 정오, 비성의 광장에 오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에 모인 이들은 대부분 흥분한 표정으로 서해대륙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백 년 전 일어났던 전쟁 이후로 명월교의 세력은 날이 갈수록 약해졌고, 그로 인해 제자들의 수련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아서 상당수 사람들이 이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영기가 충만하고 괴수가 곳곳에 널려 있는 소문 속의 신대륙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신세를 고쳐볼 생각에 모두 몸이 달아올라 있었다.

석목은 구석에 서서 주위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경지가 높았으며, 그중 술사의 비율이 높았다. 전체의 칠 할 이상은 영계술사였다.

석목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이런 광경에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바로 그때, 얼굴에 푸른색 문신을 한 청년이 다가와 석목에게 인사했다.

“목석 형, 만나서 반갑습니다.”

석목은 그 자를 보고 물었다.

“그쪽은 누구죠?”

“하하, 제 이름은 여의입니다. 어제 목석 형의 시합에서 보여준 엄청난 무위를 봤습니다. 화속성 술법의 조예가 정말 깊더군요. 덕분에 시야를 크게 넓혔습니다.”

문신을 한 청년이 웃으며 말했다.

“과찬입니다.”

석목이 살짝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청년은 석목이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지만, 전혀 기분 나빠하지 않고 웃으며 무언가를 더 말하려 했다.

바로 그때, 총단의 사자로 변신한 후새뢰가 비성 지부 집사들의 안내를 받으며 광장으로 다가왔다. 그 모습을 본 오백여 명의 인파가 대화를 멈추고 분주히 몰려갔다.

“예선을 통과한 것을 축하한다. 본교의 정예라 불러도 손색이 없겠더군.”

후새뢰가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특사님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후새뢰를 향해 고개 숙여 인사했다.

후새뢰가 만족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 사람들을 침묵시킨 뒤 큰 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곡양성에서 이루어지는 비무야말로 가장 중요하니, 아직은 교만하거나 성급해서는 안 된다. 모두가 용감히 풍랑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 명주에게 충성하고 본교를 위해 힘쓰길 바란다. 지금 바로 곡양성을 향해 출발하겠다!”

며칠 동안 적응을 마친 후새뢰는 지금의 모습에 상당히 익숙해져 있었다. 그의 동작 하나하나에서 거드름이 느껴졌다.

“예!”

사기가 크게 진작된 사람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후새뢰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자 옆에 있던 한 집사가 다가와 작은 소리로 물었다.

“대인, 곡양성까지 대인과 함께 저들을 인솔할 사람을 지부에서 몇 명 붙여 드릴까요?”

“괜찮다. 나 혼자면 충분하다.”

후새뢰가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아첨을 하려던 집사는 단숨에 거절을 당하자 시무룩한 표정으로 물러났다.

“그럼 대인께서 가시는 길 평안하기를 기원하겠습니다.”

키 작고 뚱뚱한 집사가 다가와 말했다.

후새뢰는 고개를 끄덕인 뒤 커다란 말에 올라 성문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곡양성까지는 걸어서 두세 달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말로 이동하면 한 달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

오백 명이 넘는 사람이 말에 올라타 성문 밖으로 우르르 달려 나갔다.

주위 사람들은 그 모습을 부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때, 사람들 사이에서 회색 옷을 입은 남자 두 명이 서로를 한 번 바라보더니 곧 인파 사이로 모습을 감췄다.

* * *

명월교 총단, 명신전.

주석과 그 왼쪽 자리는 여전히 공석이었다.

그러나 다른 십 대전주의 자리는 한 자리를 제외하고 전부 차 있었다.

“모두를 소집한 것은 변경의 상황이 급박해졌기 때문이다. 공 전주, 변경에서 막 돌아온 자네가 설명하게.”

주석의 우측 자리에 앉아 있는 백발의 노인이 한 중년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중년의 남자가 일어나 미간을 찌푸리며 설명했다.

“가장 최근 접수한 정보에 따르면 우리 동림성과 임해성 주위에 통천선교의 대군이 배치됐으며, 북쪽 흑하(黑河)성과 국경을 마주한 진국(陈国)에는 천마종 제자가 상당수 나타났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양국의 일부 작은 종문들 사이에서도 이상 징후가 발견되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던 백발의 노인을 제외한 다른 사람의 표정이 모두 어두워졌다.

“통천선교와 천마종이 국경 근처에 동시에 병력을 배치한 것으로 보아 그들이 어떤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있거나 다시 동맹을 맺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두 국가의 진군이 임박했다고 판단됩니다.”

중년 남자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입 큰 남자가 말했다.

“현재 우리로서는 앞뒤에서 동시에 몰려드는 적의 침공을 절대 막아낼 수 없을 겁니다. 아마 전쟁이 일어나고 나서 두 달이면 적의 군대가 우리 총단까지 밀고 들어올 거예요.”

전주 중 한 묘령의 여인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정면으로 맞붙을 수는 없을 겁니다. 통천선교와 천마종이 대군을 몰고 국경 가까이 밀어닥쳤으니 분명 그 내부가 텅 비어 있겠죠. 유 전주가 했던 것처럼 정예 제자를 육산왕조와 대진국의 주요한 성에 잠입시켜 뒤엎어야 합니다. 동시에 남은 교도들이 총단에서 호교대진(护教大阵)을 가동해 필사적으로 적의 공격을 막는 것이지요.”

붉은 눈썹의 남자가 말했다.

“적봉, 터무니없는 말을 늘어놓는구려! 통천선교와 천마종이 손을 잡고 총단으로 밀어닥친다면 정예 제자도 얼마 없는 상황에서 호교대진만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오? 게다가 그대가 생각한 계획을 상대가 예상하지 못하겠나? 유 전주가 천우성에서 일을 벌인지 오래되지 않아 방비를 강화했을 것이 분명하오.”

곱슬머리 청년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투항이라도 하자는 건가?”

적봉이 그를 힐끔 보더니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당연히 호교대진을 가동해야지. 그리고 전력으로 총단을 지키며 그들과 죽을 때까지 싸워야지! 좌호법이 이토록 오랫동안 폐관수련을 했으니 어쩌면 천위에 올랐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렇다면 오히려 그들에게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을 것이오.”

곱슬머리 청년이 말했다.

“만약 좌호법님이 천위의 경지에 오르지 못했다면 여기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자는 건가?”

적봉이 말했다.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 죽여 달라고 찾아가는 것보다는 낫지.”

곽청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크흠!”

적봉과 곽청이 정신없이 다투는 도중 유안이 자리에 일어나 헛기침을 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됐다,

“유 전주, 좋은 계획이 있나?”

백발의 노인이 물었다.

“육산왕조와 대진국의 국경 내에 있는 영석 광맥은 거의 고갈되었기에, 두 종문은 오랜 세월 우리 서하고국의 영맥에 눈독을 들였습니다. 그들은 이단을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손을 잡고 우리 명월교를 침범했고, 본교를 지키던 교주가 사망했죠. 곽 전주나 적 전주 모두 본교를 생각하는 마음에 하는 말이겠지만, 커다란 적을 마주하고 있는 만큼 내분을 일으켜서는 절대 안 됩니다. 그것은 적들에게만 좋은 일이에요.”

유안이 적전주와 곽청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그의 말은 듣자 적봉과 곽청을 포함한 전주들의 마음속에서 원한과 복수심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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