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200화 (200/916)

200화. 묘공대사

“그나저나 눈은 어떻게 된 거야?”

석목이 시선을 돌려 채아를 보며 물었다.

“이건…. 나도 잘은 모르겠어. 잠에서 깨어난 후 두 눈이 맑아진 것이 느껴지더니 멀리까지 볼 수 있게 됐어. 어때? 대단하지?”

채아가 말했다.

석목은 채아의 머리에 자란 하얀 깃털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곧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총단의 사자 모습을 한 후새뢰가 나타났다.

석목을 보고 기쁜 표정으로 다가오던 그가 석목의 어깨에 앉아 있는 채아를 보더니 순간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채아가 깨어났습니까?”

후새뢰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응. 방금 깨어났어.”

석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로 온 거지?”

채아가 후새뢰를 흘겨보며 물었다.

후새뢰는 채아를 무시하고 품속에서 검은 옥판을 꺼냈다.

“말씀드릴 것이 있어 왔습니다.”

“이게 어쨌다는 거지?”

석목이 후새뢰의 손에 들린 검은 옥판을 보며 물었다.

“이 옥판은 단순히 대회에 참가한 제자들의 이름을 기록하는 법기가 아닙니다. 총단과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는 기능도 탑재되어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이 무언가 짚이는 것이 있는지 눈썹을 치켜 올렸다.

“그 말은….”

“맞습니다. 방금 명월교 총단에서 보낸 전언을 하나 받았습니다.”

후새뢰가 손으로 검은 옥판의 한 군데를 몇 번 찍었다. 그러자 곧 옥판의 표면에 옅은 흰 빛이 감돌더니 그 위로 글자가 몇 줄 나타났다.

내용은 간단했다. 예선에서 승리한 자들을 곡양성으로 최대한 빨리 데리고 오라는 것이었다. 글에서는 무언가 급박함이 느껴졌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후새뢰가 옥판을 거두며 물었다.

“무언가 일이 발생한 것 같군. 서하고국도 평온하지는 않은 모양이야.”

석목이 낮에 본 흑익사취를 떠올리고 말했다.

후새뢰도 석목과 같은 생각인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곡양성에 도착하면 기회를 봐서 변장을 풀도록 해.”

“예.”

석목의 말에 후새뢰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답했다.

그동안 사자의 신분에 익숙해진 그는 고위층의 생활을 만족스럽게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걸 포기하려니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후새뢰는 곧 터무니없는 생각을 내려놓고 석목에게 인사한 뒤,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석두, 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 그리고 여기는 어디고?”

채아가 멀어지는 후새뢰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석목은 웃으며 하늘에 가득한 별을 잠시 보았다. 그리고 말을 끌고 돌아가는 길에 채아가 기절해 있는 동안 일어난 일들을 간단하게 설명해줬다.

“그렇군.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네….”

채아가 석목의 어깨 위를 돌아다니며 말했다.

“모든 일이 잘 풀리면 얼마 지나지 않아 서하대륙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

석목이 반짝이는 눈으로 서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 * *

서하고국 동남쪽과 육산왕조 사이에는 위국(卫国)이라는 소국이 있었다.

위국의 국토는 좁고 길며 구불구불한 모양이었으며, 서하고국의 동림과 임해 두 성과 맞닿아 있었다. 위국에는 밀지종(密支宗)이라는 중간 규모의 종문이 단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위국의 국교이기도 했다.

이 종문은 명월교와 통천선교 모두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 사이에서 오랜 세월 무탈하게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위국 변경의 일부 성과 마을에는 통천선교의 파란색 옷을 입은 도인이 눈에 띄게 늘어 있었다.

그중에는 무인과 술사 모두 있었지만, 등에 도, 검, 곤, 창 등의 법기를 메고 있는 무인의 수가 더 많았다. 그들은 후천무인부터 선천무인까지 경지가 다양했고, 위국 변경에 있는 모든 객잔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위국의 황실과 밀지종 모두 이 사실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는 것처럼 침묵을 지키는 중이었다.

위국과 서하고국의 동림성이 맞닿은 국경선에는 그 길이가 얼마나 되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두 산맥이 나란히 가로지르고 있었다. 두 산맥 사이에는 백 장 너비의 길이 있었으며, 그 길로 통하는 입구에는 흰색 천막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 길은 평지를 통해 서하고국의 동림성에 진입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자 교통의 핵심이었다. 과거에는 입구의 주둔지에 위국 황실과 밀지종 사람이 많이 주둔했으나, 양국 간의 충돌이 전혀 일어나지 않자 주둔하는 사람이 점차 줄어서 지금은 거의 텅 비어 있었다.

작열하는 태양이 대지를 뜨겁게 달구는 정오, 그 주둔지를 향해 한 아름다운 소녀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얼굴을 얇은 천으로 가리고 녹색 옷을 입고 있었으며, 등에는 작은 배낭을 메고 있었다.

그때, 무척 조용한 주둔지 안에서 한 대머리 승려가 나타났다. 그는 사십 대의 나이로 보였는데, 뒤룩뒤룩 살이 쪄서 입고 있는 노란 승려복이 터질 것 같았다.

그의 머리에는 계인이 하나 찍혀 있었고 목에는 검은 구슬 목걸이가 걸려 있었는데, 큰 것은 주먹만 했고 작은 것은 성인의 엄지손가락 정도였으며, 표면에는 어렴풋한 금색 무늬가 있었다.

매끈매끈한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몇 걸음 걸어 나온 승려는 아직 수십 장 떨어져 있는 소녀에게 큰소리로 외쳤다.

“멈추시오!”

녹색 옷을 입은 소녀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한 것처럼 오히려 더욱 빠른 속도로 걸어왔다.

“그쪽 아가씨에게 말하는 겁니다. 이 깊은 산 속에 당신 말고 다른 사람이 또 있어요?”

뚱뚱한 승려가 답답한 듯 말했다.

“아, 멈췄어요.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녹색 옷을 입은 소녀가 발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그녀와 승려의 거리는 이미 오 장도 채 남지 않았다.

“…어디를 가려는 것이죠?”

승려가 눈앞의 녹색 옷을 입은 소녀를 바라보며 머리를 긁적이더니 물었다.

“서하고국이요.”

소녀가 말했다.

“돌아가세요.”

승려가 말했다.

“뭐라고요?”

“돌아가라고 했어요.”

“어째서죠? 위국은 서하고국에 진입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는데요.”

“그건 맞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현재 너무 혼란스러워요. 도처에 강시와 해골, 산적이 즐비한데 여인 혼자 그곳에 가서 무엇을 하려는 겁니까?”

“상관없어요.”

“….”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면 대사님께서 길을 비켜주셨으면 합니다. 갈 길이 바빠서요.”

소녀가 말하며 승려의 옆을 지나가려 했다.

“이런, 사실대로 말할 테니 서하고국은 가지 마시죠. 보아하니 방금 묵진(墨镇)을 거쳐 오는 것 같은데, 마을에서 무언가 이상한 것을 느끼지 못했습니까?”

그 말을 들은 소녀가 발걸음을 멈추고 승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서 곧 큰 소란이 일어날 거예요. 소란에 휘말려 당신이 뜻밖의 사고라도 당한다면 빈승의 마음이 편치 못할 겁니다.”

승려가 합장을 하며 말했다.

“대사님의 충고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저는 반드시 서하고국으로 가야만 해요.”

소녀는 승려에게 인사를 한 뒤 그를 지나쳐 갔다.

하지만 그녀가 몇 걸음 가지 않았을 때, 승려가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빠른 움직임으로 앞을 막아섰다.

“대사님, 이게 무슨 짓이죠?”

소녀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렇게 서하고국에 들어가고 싶다면 우선 빈승의 심사를 통과하시지요. 빈승에게 일격을 적중시키거나 옷자락만이라도 건드린다면 지나가게 해주겠습니다.”

승려가 말했다.

“좋습니다!”

소녀는 대답을 하는 동시에 선천무인의 기운을 뿜어내며 승려를 향해 팔을 뻗었다.

“이크, 어찌 때리란다고 바로 때리려는 것이오? 준비할 시간은 조금 줘야하지 않겠습니까?”

승려는 놀란 듯 말하면서도 뚱뚱한 몸을 살짝 옆으로 틀어 소녀의 공격을 피했다.

바로 뒤이어 소녀의 주먹이 교묘한 각도로 날아왔다.

하지만 승려는 다시 한 번 몸을 살짝 틀어 공격을 피해냈다.

“조심하세요!”

소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한 단계 더 강해졌다. 그녀의 두 주먹이 파란빛에 감싸였고, 강력한 수속성의 파동이 뿜어져 나와 옷자락이 펄럭였다.

뒤이어 갑자기 두 배 가까이 빨라진 그녀의 두 주먹이 살짝 흐릿해지더니 열 개가 넘는 파란 권영으로 변해 승려를 덮쳤다.

놀란 듯 승려의 움직임에서 당황한 기색이 느껴졌으나, 그는 결국 옷깃조차 스치게 하지 않고 소녀의 모든 공격을 피해냈다.

바로 그때, 소녀가 갑자기 얼굴을 가린 얇은 천을 걷어내고 깨끗한 피부와 아름다운 얼굴을 드러냈다. 그녀는 바로 종수였다.

그녀가 전신에서 파란빛을 더욱 강하게 발산하며 입을 벌려 소리 없는 파동을 뿜어냈다.

찰나의 순간,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던 파란빛이 종수를 중심으로 확산되어 파란 물빛으로 변했으며, 그 물빛에서 반투명한 하늘색 파도가 일어나 승려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몰아쳤다.

“벽음만파공!”

승려가 소리를 지르며 급하게 뒤로 후퇴하려 했지만 한 발 늦었다. 하늘색 파도가 몸에 닿는 순간 그의 두 눈이 게슴츠레해졌다.

바로 그때, 그림자처럼 다가온 종수가 승려의 가슴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주먹이 승려의 가슴에 거의 닿으려는 순간, 종수는 머뭇거리더니 구 할 정도의 힘을 줄였다.

그때 정신을 차린 승려의 몸이 흐릿해지더니 사라졌고, 종수의 주먹은 허공을 갈랐다. 그는 몇 장 떨어진 곳에서 다시 나타났다.

“큰일 날 뻔했군!”

승려가 다급히 한 손으로 가슴을 쓰다듬으며 놀란 가슴을 달랬다.

그 순간 종수의 주위에 가득하던 파란 물빛이 그녀의 정수리로 흡수되어 사라졌다. 마치 고래가 물을 빨아들이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종수가 무언가 말하려 할 때 뚱뚱한 승려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절묘하군, 절묘해! 3급 봉음혈맥에 벽음만파공의 조합이라니, 정말 찰떡궁합이로구나! 이렇게 젊은 아가씨가 이 정도의 실력을 가졌을 뿐 아니라 마음씨까지 고울 줄은 생각도 못했군요. 좋습니다. 서하고국으로 가는 길을 열어 드리지요.”

승려가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대사님의 실력은 정말 높고도 깊으시더군요. 제가 뭐라고 부르는 것이 좋을까요?”

“하하, 빈승은 묘공입니다. 대사라고 부를 필요 없어요. 참, 이것도 인연이니 이것을 드리지요.”

승려가 웃으며 손가락만한 크기의 검은색 구슬을 꺼내 종수에게 던졌다.

“제가 어떻게 대사님의 물건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놀란 종수가 무의식적으로 검은 구슬을 받아들며 말했다. 그것은 손에 닿는 느낌이 부드럽고 고운 것이 마치 옥 같았고, 기이한 힘을 담고 있는지 순식간에 그녀의 마음을 안정시켜주었다.

“선물이니 가지세요. 그럼 저는 자러 갈 테니, 이만.”

말을 마친 순간 승려는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고 사라졌다.

종수는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다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공손한 목소리로 외쳤다.

“감사합니다, 묘공대사님!”

이어 그녀는 손에 쥔 검은 구슬을 그대로 품속에 넣고 앞으로 뻗어 있는 길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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