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202화 (202/916)

202화. 서노자

“여 형, 예전에 들어보니 곡양성의 지리를 비교적 잘 알고 있는 것 같던데, 혹시 연기(炼器)상점이 어디 있는지 아나요?”

석목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물었다.

“연기상점이요? 법기를 사려는 겁니까?”

여의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석목이 등 뒤에 메고 있는 도와 곤을 보았다.

“그건 아니고 정련을 하려고 합니다. 등급을 높일 수 있다면 더욱 좋겠죠.”

석목이 말했다.

잠시 생각하던 여의가 흥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군요. 실력 있는 연기사(炼器师)를 찾는 것이라면 추천 드리고 싶은 곳이 하나 있습니다. 비용이 상당하지만 그의 실력은 성 내에서 단연 최고입니다.”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호기심이 생긴 석목이 물었다.

“성 동쪽 구역의 서광가(西匡街)에 천오상점이 있습니다. 곡양성 최대의 연기상점이지요. 상급 법기를 제작할 수 있으며, 필요한 재료만 전부 가지고 있다면 영기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여의가 말했다.

“영기를 만들 수 있다고요? 천오상점이라면…. 설마?”

석목이 말했다.

“맞습니다. 그곳은 천오상회가 곡양성에 세운 분점이에요. 일 년 내내 연기사가 자리하고 있지요. 이곳뿐만 아니라 동주대륙 전역에서 장사를 한다고 하니 천오상회는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여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석목은 살짝 놀랐다. 이제껏 그는 천오상회를 그저 육산왕조 내에서 가장 유명한 상회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을 뿐, 세력이 이토록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이 정도면 동주대륙 제일의 상회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을 것 같았다.

“그곳에서는 무기를 만들어 판매할 뿐만이 아니라 단약이나 부적, 심지어 각종 정보까지 거래합니다.”

여의가 덧붙여 말했다.

“그 말을 들으니 더욱 흥미가 생기는군요.”

석목이 말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하늘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두 사람은 대화를 조금 더 나누다가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이른 아침.

잠에서 깬 석목은 바로 서광가로 향했다.

거리에 도착한 그는 그리 어렵지 않게 천오무기상점을 찾을 수 있었다. 대륙 전역에 명성을 떨치는 상회답게 거리에서 가장 좋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상점은 굉장히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으며,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오가는 것으로 보아 장사가 매우 잘되는 것 같았다.

상점의 내부는 인파로 북적거렸으며 다양한 물건이 있었다. 진열대 위에는 도, 창, 검, 곤처럼 일반적인 무기부터 유성추 등 특이한 무기까지 가득 전시되어 있었다.

무기들은 한눈에 봐도 하나같이 탁월해보였다.

“찾는 무기가 있습니까?”

동그란 얼굴의 남자가 다가와 친절한 태도로 물었다.

“뛰어난 무기들이지만 모두 평범한 것들이군요. 법기는 진열해놓지 않나요?”

석목이 상점 안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곳에 처음 오셨나보군요? 법기는 모두 안쪽 방에 있습니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남자가 말했다.

석목은 얼굴이 동그란 남자를 따라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안쪽 방은 면적이 바깥보다 훨씬 작았다. 진열대가 몇 개 놓여 있었으며 진열대 하나에 법기가 네다섯 개씩 놓여 있었다. 표면에 부문이 빼곡히 새겨진 법기들은 은은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또 모든 진열대에는 방어 진법이 설치되어 하얀 빛의 장막으로 뒤덮여 있었다.

진열대에 진열된 다양한 법기들을 하나씩 구경하던 석목이 마지막 진열대 앞에 섰다.

그곳에는 붉은색 단창과 파란색 군도, 그리고 검은색 채찍 세 개만 놓여 있었다.

그러나 세 법기가 뿜어내는 빛은 이전에 본 것들 보다 훨씬 강했다. 빛의 장막에 막혀 있는데도 강력한 법력의 파동이 어렴풋이 느껴질 정도였다.

“상급 법기….”

석목이 작게 말했다.

“안목이 뛰어나시군요. 이 세 법기는 모두 서노자 대사께서 제작한 상급법기입니다.”

남자가 우쭐한 말투로 말했다.

서노자는 여의가 말해준 이곳의 연기사였다. 법기들을 보니 그의 솜씨는 확실히 뛰어난 것 같았다.

“실력이 정말 대단하군요. 사실 제가 상점을 찾은 것은 무기를 구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련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석목이 말했다.

“그런 의뢰를 받기는 하나, 우선 주인의 승인이 필요합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남자는 석목의 등에 있는 도와 곤을 한 번 보더니 더 안쪽에 위치한 응접실로 안내했다.

그곳은 매우 우아하게 꾸며진 것으로 보아 귀빈을 접대하는 장소인 것 같았다.

남자가 차를 한 잔 따라준 뒤 인사를 하고 옆문으로 나갔다.

석목은 차는 건드리지 않고 잠시 눈을 감고 피로를 풀었다.

그는 남의 시선을 끌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채아에게 성 안에서 자유롭게 행동하며 후새뢰를 감시하라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파란 옷을 입은 중년의 남자가 들어왔다.

얼굴이 하얗고 수염이 없는 남자는 외모에서부터 기품이 느껴졌다.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법력의 파동을 가늠했을 때 대략 영계술사의 끝자락에 이른 것 같았다.

“귀한 손님이 오는 것도 모르고 맞이하지 못했군요. 저는 이 상점의 주인입니다. 얼굴이 낯선 것으로 보아 우리 상점에 온 것은 처음인 것 같군요.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요?”

남자가 웃으며 석목의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목석이라고 불러주세요.”

석목이 말했다.

“무기를 정련하고 싶다고요?”

남자가 바로 본론을 꺼냈다.

“맞습니다. 이것들입니다.”

석목이 등에서 도와 곤을 뽑아 탁자 위에 올려놨다.

우지끈!

붉은 나무로 만든 탁자는 상당히 단단해 보였지만, 도와 곤봉을 올려놓자 무게를 견디기 버거운지 불안한 소리가 들려왔다.

남자가 잠시 놀란 표정이 되더니 곧 진지한 표정으로 두 무기를 관찰했다.

잠시 후, 남자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곤봉을 쥐고 힘껏 들어올렸다. 그러나 곤봉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남자는 전력을 다하는 듯 그의 팔에 파란 핏줄이 솟아오르고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러자 그제야 곤봉이 조금씩 움직였다.

남자는 곤봉을 겨우 들어올렸으나 곧 몸을 휘청거리며 그것을 놓쳤다. 그 순간 석목이 팔을 잽싸게 뻗어 바닥에 떨어지려는 곤봉을 받아냈다.

석목은 곤봉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남자를 향해 웃어보였다.

남자는 잠시 겸연쩍게 웃었지만 금세 평정을 되찾았다.

“이렇게 무거운 무기를 사용하다니 정말 엄청난 힘이군요.”

남자가 말했다.

“크기가 작은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무겁다니, 이런 특수한 재질이 무엇인지 저의 좁은 식견으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석목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이 운철은 동해 부근에서만 발견되는 것 같았으니, 어찌 보면 남자가 모르는 것이 당연했다.

“그럼 의뢰는 불가능한가요?”

석목이 말했다.

“우선 서노자 대사님에게 문의를 드리겠습니다. 그분은 아는 것이 많으니 이 무기의 재질을 알아볼 수 있을 겁니다. 분명 정련을 하는 것도 문제가 없을 테죠.”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석목이 말했다.

남자가 인사를 한 뒤 방 밖으로 나갔다.

한 식경 후,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더니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노인이 상점의 주인과 함께 응접실에 들어왔다.

노인은 덩치는 크지 않았지만 팔다리가 매우 굵어서 힘이 굉장히 세 보였다.

정신력으로 그의 기운을 감지한 석목은 살짝 놀랐다.

노인은 지계의 존재였다.

“하하, 그쪽이 목석님이군요. 복장을 보니 명월교의 제자인가 봅니다.”

서노자가 웃으며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석목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앉으세요.”

서노자는 상점의 주인이 방금 전까지 앉아 있던 자리에 앉았고, 상점의 주인은 그 옆에 공손히 섰다.

“듣자하니 법기의 재질이 특수하다고 하던데, 이것들입니까?”

서노자가 검은 도와 곤봉을 가리키며 말했다.

석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탁자 위에 놓인 도와 곤봉을 살펴보던 서노자는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심각한 표정으로 그것들을 뚫어지게 노려보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는 운철곤봉을 들고 손가락으로 표면을 살살 쓰다듬었다.

일 각 후, 서노자는 그제야 곤봉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석목은 살짝 자세를 고쳐 앉으며 기대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법기의 재질이 정말 특수해 하마터면 저도 당황할 뻔했습니다.”

서노자가 말했다.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석목이 말했다.

“이것들은 저장반지에 넣을 수 없고, 시간이 흐를수록 무게가 증가하지요?”

서노자가 석목의 손에 끼여져 있는 반지를 보더니 물었다.

“맞습니다.”

“역시…. 저도 이 금속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는 못하지만, 오래 전 대륙을 유람할 때 동해의 어느 곳에서 비슷한 것을 본 적은 있습니다.”

서노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과거를 회상하는 듯한 눈빛으로 말했다.

“이 금속은 매우 단단하지만 굉장히 희귀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 많이 모아 중급 법기를 만들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이렇게 많은 양을 모으게 된 것은 운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과거 한 연기사께서 공을 들여 이 무기들을 중급 법기로 만들어주셨지만, 딱 거기까지가 한계였습니다. 더 이상은 등급을 올릴 수 없더군요. 오늘 이곳에 온 것은 이 무기들을 상급 법기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가능할까요?”

서노자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상급 법기로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재질이 특수하니 상급 술법진을 감당하는 것은 문제가 없을 거예요. 다만 금속 안에 불순물이 너무 많이 섞여 있어서, 상급 법기로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들을 전부 제거해야만 합니다.”

“그 말은 순도를 높여야 상급 법기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인가요?”

석목이 물었다.

“맞습니다. 다만 재질이 특수하니, 그러기 위해서는 독문비술을 사용해야 할 것이고 비용이 많이 들 겁니다.”

서노자가 말했다.

“영석이 얼마나 필요하죠?”

석목이 물었다.

“만 개가 필요합니다.”

서노자가 손가락을 하나 펴며 말했다.

“만 개요?”

깜짝 놀란 석목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영석 만 개는 지계의 존재에게도 굉장히 큰돈이었다. 석목은 현재 영석을 만 개 이상 가지고 있긴 했지만, 그것은 그가 지난 몇 년간 여러 선천무인과 지계의 존재를 쓰러뜨리며 가까스로 모은 것이었다.

“독문비술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대량의 영석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잘 생각해보고 결정하십시오.”

서노자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좋습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석목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결국 이를 꽉 물고 승낙했다. 이어 그가 무언가 말하며 손을 흔들자 탁자 위에 수많은 영석이 나타났다.

서노자가 탁자 위의 영석을 보며 손짓하자 상점의 주인이 앞으로 다가와 개수를 셌다. 영석을 전부 확인한 상점 주인이 서노자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두 사람은 무기에 어떤 술법을 새길지를 결정하기 위해 대화를 나누었다.

“참, 이것과 같은 재질로 만든 물건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것도 함께 녹여서 도와 곤봉에 합쳐주시기 바랍니다.”

갑자기 무언가 떠올린 석목이 허리춤에서 유성추를 풀며 말했다.

유성추는 석목의 실력이 강해진 이후로 더 이상 크게 쓸모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서노자가 유성추를 한 번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것들도 상급 법기로 만들 수 있는지 한 번 봐주십시오.”

석목은 저장반지에서 파천궁과 추풍전 십여 개를 꺼내며 말했다.

중급 법기인 파천궁은 상당히 괜찮은 법기였지만 그가 사용하기에는 조금 부족했다. 경지가 높은 술사나 무인을 만났을 때 파천궁의 위력으로는 상대의 방어를 전혀 뚫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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