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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204화 (204/916)

204화. 지략을 쓰다

저녁 무렵, 말 한 마리가 곡양성의 동문을 지나 동쪽으로 빠르게 질주하고 있었다.

말에는 석목이 타고 있었으며, 그의 어깨에는 채아가 앉아 있었다. 늘 가지고 다니던 운철흑도와 운철곤봉이 없어서 말이 달리는 속도는 매우 빨랐다.

“채아, 흑익사취를 한 번에 잡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너에게 달려 있어.”

석목이 말했다.

“걱정 말고 나에게 맡겨!”

채아가 말했다.

석목은 앞쪽을 바라보았다. 천마종은 흑익사취를 보내 서하고국 곳곳의 길목과 핵심 구역을 감시했지만, 서하고국의 수도인 곡양성까지는 침투시키지 못했다.

석목의 계산대로라면, 이 큰 길을 따라 동쪽으로 며칠 이동하면 운이 굉장히 나쁘지 않은 이상 흑익사취 무리를 만날 수 있었다.

“석두, 천마종의 흑익사취를 죽이면 그들을 완전히 적으로 돌리게 되는 것 아니야?”

채아가 말했다.

“그러면 또 어때? 천마종은 아무 이유 없이 나에게 수배령을 내렸고, 그것 때문에 가하관에서는 당주의 습격을 받았어. 이번 기회에 그동안 쌓인 분을 좀 풀어야지.”

석목이 말했다.

* * *

이틀 후, 석목은 어느 황폐한 산맥의 한 산봉우리를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었다.

도와 곤봉이 없어서 움직임이 이전보다 훨씬 빨라진 그의 모습은 마치 길게 늘어진 한 줄기 그림자처럼 보였다.

산맥의 상공에는 검은 점처럼 보이는 흑익사취 다섯 마리가 하늘에서 선회하고 있었다.

석목은 조심스럽게 흑익사취에게 접근했다. 그는 이곳에 오기 전에 이미 상당한 조사를 한 상황이었다.

흑익사취를 사냥하기가 극도로 어려운 이유는 비행속도가 매우 빠르고 지속력이 강해 장시간 하늘에 떠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흑익사취는 시력이 매우 뛰어나 지상에서의 미미한 움직임도 놓치지 않았다.

잠시 후, 석목은 주위에서 가장 높은 산의 정상에 올랐다. 그리고 커다란 돌 뒤에 몸을 숨긴 뒤 하늘을 비행하는 흑익사취를 바라보았다.

그때, 석목의 곁에는 채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 * *

흑익사취는 날개를 쫙 펴고 허공을 선회하고 있었다.

몸길이가 삼 장 가까이 되는 흑익사취는 몸통과 날카로운 뒷발은 사자의 모습이었으며, 머리와 앞발과 양 날개는 독수리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전신에는 쇠와 같이 두꺼운 깃털이 빽빽했고, 날카로운 두 눈은 약한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흑익사취들은 모두 머리에 검은 두건을 두르고 있었는데, 그것에는 주먹만 한 크기의 붉은 광석이 박혀 있었다. 이 매끄러운 광석은 마치 거울처럼 아래의 모든 것을 비추고 있었다.

흑익사취들은 선천등급의 강력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으며, 눈이 매우 맑은 것으로 보아 다른 괴수와는 다르게 상당한 지력을 지닌 듯했다.

그때, 그들 중 가장 큰 흑익사취의 두건에 끼워져 있는 광석이 갑자기 핏빛으로 반짝였다. 흑익사취는 광석을 통해 무언가 명령을 받은 것인지 입을 벌려서 듣기 거북한 괴성을 질렀다.

그 소리를 들은 주위의 다른 흑익사취들도 괴성을 질러 응답했다.

잠시 울음소리를 주고받던 흑익사취들은 흩어져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중 한 마리가 마침 석목이 있는 산봉우리 위를 지나갔다.

그 광경을 본 석목은 기뻐하며 파천궁을 꺼내들었다. 곧 푸른빛이 반짝이며 활의 크기가 사람의 절반 만하게 커졌다.

석목이 추풍전 세 개를 꺼내 활시위에 걸며 주문을 외우자, 하얀 빛의 사슬이 나타나 추풍전을 감았다.

흑익사취는 괴수의 직감으로 무언가를 느꼈는지 흠칫 몸을 떨었다.

흑익사취가 주위를 둘러보려는 순간, 어느새 근처에 나타난 앵무새 한 마리가 매우 빠른 속도로 날아들었다. 머리의 흰색과 붉은색 깃털이 매우 눈에 띄는 앵무새였다.

“비천한 천마종의 노예들이 신성한 서하고국에서 겁도 없이 무엇을 하는 것이냐! 명월교를 수호하는 고귀한 호교신조(护教神鸟)인 내가 오늘 명주를 대신해 너희를 없애버리겠다!”

앵무새가 고함을 쳤다.

그 순간 앵무새의 몸이 붉은빛으로 반짝이더니 입에서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흑익사취는 어느 정도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람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해서 앵무새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흑익사취가 앵무새인 채아를 무시하는 눈빛으로 흘겨보았다. 채아의 화염은 불을 붙이는데도 사용하지 못할 정도로 약했다.

흑익사취가 두 날개를 펄럭이자 광풍이 몰아쳐서 화염을 꺼트리고, 동시에 시끄러운 앵무새까지 멀리 날려버렸다.

바로 그때,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며 세 개의 푸른 화살이 삼각형 대형을 이루며 날아왔다.

화살은 마치 푸른색 번개처럼 엄청난 속도로 흑익사취의 두 날개와 가슴의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화살 뒤로는 하얀색 구름을 탄 사람이 빠르게 날아오고 있었다.

놀란 흑익사취는 두 날개를 거세게 펄럭여 방향을 틀었다. 목표를 놓친 세 개의 푸른 화살이 흑익사취의 몸을 스치듯 지나갔다.

그러나 그 광경을 본 석목은 씩 웃으며 손가락을 하나 폈다.

그 순간, 화살에서 하얀 빛의 사슬이 뻗어 나와 순식간에 흑익사취의 몸을 묶었다.

흑익사취가 놀라서 소리를 지른 순간, 흑익사취의 몸에서 검은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피부 위에 몸을 보호하는 장막을 형성했다.

세 줄기의 하얀 사슬은 꿈틀거리며 조여 들었지만 검은빛의 장막에 가로막혔다.

하지만 사슬을 완전히 막아낼 수 없었는지, 비행에 제약을 받은 흑익사취는 천천히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휙! 휙! 휙!

석목의 곁에 일고여덟 개의 세숫대야만한 화염구가 나타나 흑익사취를 향해 날아갔다.

그와 동시에 석목이 다시 파천궁에 화살을 걸어 날렸고, 푸른 화살 세 개가 허공에 궤적을 그리며 날아갔다.

흑익사취는 깜짝 놀랐다. 비행은커녕 몸을 피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던 흑익사취는 입을 크게 벌려서 검은 화염의 기둥을 뿜어냈다.

쾅! 쾅! 쾅!

검은 불기둥과 화염구들이 충돌하며 주위로 화염이 솟구치더니, 결국 동시에 흩어져 사라졌다.

그 순간, 솟구치는 화염 사이를 뚫고 날아온 푸른 화살이 흑익사취의 검은보호막에 명중했다.

쨍그랑!

빛의 장막이 깨지며 하얀 빛의 사슬이 흑익사취의 한 쪽 날개를 강하게 묶었다. 균형을 잃은 흑익사취의 몸이 마치 돌덩이처럼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석목은 기뻐하며 한 손을 휘둘렀다. 그의 손에서 금색 빛줄기가 날아가 추락하는 흑익사취의 몸을 관통하고 지나갔다.

사방으로 피가 흩날리며 흑익사취의 커다란 머리가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손을 흔들어 금전검을 회수한 석목도 하강하기 시작했다.

삐이익!

멀지 않은 곳에서 상황을 깨달은 흑익사취들이 날아들고 있었다. 그 속도는 매우 빨랐지만, 사냥의 과정은 이미 물 흐르듯 매끄럽고 빠르게 진행되어서 미처 손을 쓸 틈도 없이 끝나 있었다.

그래서인지 흑익사취들은 허공을 선회할 뿐 아래로 내려와 석목을 공격하지는 않았다.

지상에 내려온 석목은 하늘의 흑익사취들을 보며 웃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서 땅에 떨어진 흑익사취의 시체에 다가갔다.

* * *

이틀 후 깊은 밤, 곡양성의 동쪽 구역 서광가.

“하하, 이렇게 빨리 흑익사취를 구해오다니, 이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가졌는 줄은 몰랐군요.”

천오무기 상점에서 서노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나머지 일은 서 대사님에게 맡기고 저는 열흘 후에 다시 오겠습니다.”

석목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리고 반 시진 후, 그는 객사의 방 안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 물건들을 보며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 턱을 쓰다듬고 있었다.

이것들은 전부 석목의 저장반지 안에 들어 있던 물건이었다.

그중 각종 광석과 괴수의 몸에서 채취한 재료는 대부분 통천선교의 뚱뚱한 도인이 남긴 유품이었다.

서노자에게 영석을 지불한 뒤 석목에게는 이제 겨우 천여 개의 영석 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사용하지 못하는 물건을 전부 영석으로 교환할 생각이었다.

바로 그때, 방 안에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더니 연나가 나타났다.

연나는 이전과 같이 하얀색 전신 갑옷과 투구를 쓰고 있어서, 보라색 영혼의 화염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 전부 가려져 있었다.

그 광경을 멍청하게 보던 석목이 입을 떼기도 전에 연나가 갑자기 녹색 꽃송이를 들이밀었다. 동시에 듣기 좋은 소녀의 목소리가 석목의 머릿속에서 들려왔다.

“곤봉을 빌려줘.”

석목은 녹색 꽃을 보며 기뻐하며 말했다.

“그 곤봉은 대장간에 맡겨서 지금 나에게 없어. 열흘 뒤에 빌려줄 테니 그 때 다시 받으러 와.”

그러자 연나가 대답했다.

“알겠어.”

석목은 떠보듯 물었다.

“그럼 그 꽃을 먼저 줄 수 있어?”

“좋아.”

연나가 말했다.

석목이 녹색 꽃을 받아든 순간, 연나가 갑자기 무언가 발견했는지 어지럽게 쌓여 있는 물건들 옆으로 다가갔다.

연나는 몸을 숙여 붉은색 영패를 집어 들었다. 그것은 비성 권 집사의 명월령이었다.

연나가 영패를 이리저리 보다가 갑자기 석목에게 말했다.

“이거 빌려 줘….”

“그냥 가져도 돼.”

석목은 연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했다.

연나는 석목을 한 번 보더니 아무 말 없이 명월령을 자신의 공간반지에 넣었다.

뒤이어 연나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고, 연나는 연기와 함께 모습을 감췄다.

석목은 천천히 사라져가는 검은 연기를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째서인지 야만족 영토를 벗어나 흑마문으로 돌아가는 길에 연나와 함께 밤마다 수련을 했던 때, 그리고 흑마문의 대사형이 된 후 자신의 거처에서 연나에게 마음 속 얘기를 털어놓던 때가 문득 그리워졌다.

그 당시의 연나는 지능이 떨어져서 겨우 간단한 의미만을 표현할 수 있었지만, 지금보다는 자신에게 훨씬 친근하게 대했다.

사령생물의 경지를 끌어올리려면 명월교의 혼사가 몇 년이나 걸려 애를 써도 고작 조금 높일 수 있을 뿐이었고, 심지어 십 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연나는 십 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나약한 수련자에서 지금의 경지까지 올랐다. 이런 속도는 일반적으로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석목은 연나의 수련에 전혀 관여를 하지도 관심을 가진 적도 없었다. 지금 연나의 실력은 모두 스스로 이루어낸 것이었다.

석목은 그 비결이 무엇인지 무척이나 궁금했지만, 연나가 자신에게 가르쳐 주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실력이 강해지도록 가만히 두는 것이 잘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군.”

석목은 혼잣말을 했다.

그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떨쳐버린 뒤 들고 있던 녹색 꽃을 진묘계에 넣고 다시 방 안의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먼저 석목은 판매할 물품을 금색 반지 안에 넣고, 그 외에 쓸모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되는 물건들을 진묘계 안에 넣었다.

분류 작업을 마친 후 석목은 침상 위에 가부좌를 틀고 다시 녹색 꽃을 꺼냈다.

석목은 조심스럽게 꽃잎을 하나 떼어냈다. 그러자 떨어진 꽃잎이 깨지며 차가운 녹색 연기로 변해 그의 오른손을 감쌌고, 천천히 체내로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반 시진 후, 석목이 전신에서 강력한 법력의 파동이 솟구쳐 나와 주위에 무형의 소용돌이를 형성했다.

잠시 후 법력의 소용돌이는 다시 석목의 체내로 빨려 들어갔다.

녹색 꽃을 전부 흡수한 뒤 석목은 온신술 12단계를 돌파해서 13단계에 올랐다.

동시에 그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정신력의 구름 속에서 드디어 세 번째 별이 빛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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