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205화 (205/916)

205화. 밀렵

어두침침한 하늘 아래, 검은 산맥이 마치 소의 뿔처럼 구불구불 이어져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평평한 협곡을 사이에 두고 두 거인이 옆으로 누워 마주보고 있는 것 같았다.

협곡 밖의 허공에 검은색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그 사이에서 연나가 걸어 나왔다. 연나의 손에는 은은하게 붉은 빛을 뿜어내는 영패가 들려 있었다.

손에 들린 영패를 잠시 보던 연나는 고개를 돌려 협곡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검은 연기가 다시 솟아올라 연나의 몸을 뒤덮었다.

곧바로 서늘한 바람이 불고 지나가며 연기를 흩어놓았지만, 연나의 모습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협곡의 중앙에는 백골로 만들어진 거대한 제단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그 제단의 주위에는 회색 연기가 감돌고 있었고, 상공에는 거대한 회색 진법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따금 제단 위의 회색 진법 속에서 시체들이 생겨났다. 그 크기와 모습은 제각각이었으며, 사람의 것도 있었고 괴수의 것도 있었다.

회색 연기에 휩싸인 시체들은 가죽과 살이 빠르게 말라붙어 강시가 되기도 했고, 혹은 가죽과 살이 사라져서 해골로 변하기도 했다.

새롭게 생겨난 사령생물들은 옅은 녹색 영혼의 화염을 미약하게 반짝이며 비틀비틀 일어났고, 협곡의 깊은 곳으로 향했다.

그것들의 목표는 협곡의 깊은 곳에 있는 광활한 호수였다. 붉은 빛을 살짝 띠는 호수의 표면에는 옅은 붉은색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호수 주변 수백 장 이내는 바람에 퍼진 붉은 연기에 덮여 있었다. 호수와 가까운 곳일수록 연기는 더욱 짙었다.

연기 속에는 강시와 해골 등 사령생물이 빼곡하게 모여 있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거의 빈틈없이 모여 있는 그것들은 입을 여닫기를 반복하며 붉은 연기를 삼키고 있었다.

사령생물들의 영혼의 화염은 색깔이 모두 달랐지만, 대부분 녹색이나 푸른색이었으며 파란색도 일부 있었다. 영혼의 화염이 짙은 사령생물일수록 호수와 더 가까운 곳에 서 있었다.

하지만 호수와 가장 가까운 반경 십 장 이내는 휑했다. 그곳에는 세 구의 사령생물만이 있었는데, 그것들은 서로 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었다.

그중 호수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은 전신의 뼈가 수정처럼 투명한 해골이었다. 해골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으며,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연보라색 영혼의 화염이 타오르고 있었다.

호수의 좌측에는 몸길이가 일 장 가까이 되는 푸른색의 뼈 늑대가 있었다. 늑대의 영혼의 화염은 보라색을 띠었으며, 뿜어내는 기운은 수정 해골보다 더욱 강력했다.

마지막으로 호수의 우측에는 몸길이가 육 장 가까이 되는 거대한 강시 악어가 엎드려 있었다. 그것의 전신은 주먹만 한 크기의 검은 비늘에 덮여 있었다.

바로 그때, 수정 해골의 뒤에 하얀 갑옷을 입은 연나가 나타났다.

그와 거의 동시에 연나의 뼈창이 하얀 궤적을 그리며 수정 해골의 뒤통수를 향해 뻗어나갔다.

수정 해골은 몸을 돌리며 녹색 화염이 타오르는 두 손을 합장했다. 그러자 강력한 법력의 파동이 일며 하나로 합쳐진 녹색 화염이 커다란 두개골의 모습으로 변했다.

녹색 화염의 두개골이 입을 콱 다물며 날아오는 창끝을 물었고, 그러자 녹색 화염은 창끝을 타고 올라가 창 전체로 퍼져나갔다.

녹색 화염으로 불타오르는 뼈창의 표면이 빠르게 녹색으로 얼어붙었다.

바로 그때, 연나의 영혼의 화염이 솟구치더니 뼈창의 표면에 하얀색 화염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쨍강!

녹색 얼음이 깨지고, 창을 뒤덮고 있던 녹색 화염은 창끝으로 퍼져나가는 하얀 화염에 닿는 순간 힘없이 꺼져버렸다. 곧 창끝을 물고 있던 녹색 두개골도 하얀 화염에 휩싸여 괴성을 지르며 사라져버렸다.

녹색 두개골을 소멸시킨 뼈창은 순식간에 수정 해골의 두개골까지 꿰뚫었다.

그 순간, 해골의 머리가 폭발하더니 연보라색 빛의 구가 나타났고, 그것은 연나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어 머리를 잃은 수정 해골은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그 순간, 상당히 두꺼운 검은 빛의 기둥과 푸른 검영 수십 개가 연나의 양측에서 빠르게 덮쳐왔다.

그러자 연나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와 몸을 감쌌다.

그와 거의 동시에 빼곡한 검영과 검은 빛의 기둥이 검은 연기를 휩쓸고 지나갔지만, 연나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호수 양쪽에 있던 푸른 뼈 늑대와 강시 악어가 수정 해골이 쓰러진 곳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푸른 늑대의 뒤에는 호랑이의 몸과 늑대의 머리를 가진 법상이 나타나 있었고, 강시 악어의 뒤에는 본체의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는 거대한 악어의 법상이 있었다.

그때 강시 악어가 무언가를 느낀 듯 법상과 함께 몸을 돌렸다.

악어가 막 몸을 돌렸을 때, 검은 연기 사이에서 나타난 연나가 번개 같이 빠른 속도로 뼈창을 찔러왔다.

악어의 법상이 입을 쫙 벌리자 입 안에서 검은빛의 소용돌이가 일었다. 그리고 소용돌이 속에서 검은 빛의 기둥이 발사됐다.

충돌한 뼈창과 검은 빛의 기둥은 서로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팽팽하게 대치했다.

그 순간, 연나의 등 뒤에서 하얀 빛이 솟아올랐고, 그 빛은 하얀 궁의를 입은 아름다운 소녀의 모습을 한 법상으로 변했다.

그녀가 옷자락을 펄럭이며 나풀나풀 춤을 추자 마치 천상의 소리 같은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고, 주위에 하얀 꽃잎들이 흩날렸다.

곧 강시 악어의 보라색 영혼의 화염이 굳어버렸고, 검은 빛의 기둥이 힘없이 흩어져 사라졌다.

저항이 사라지자 연나의 뼈창은 강시 악어 본체의 머리를 향했다.

바로 그 순간, 갑자기 호수의 수면이 갈라지더니 회색 연기가 감도는 거대한 부영(斧影)이 연나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날아왔다.

그 위력이 얼마나 강력한지 주위의 공간마저 일그러져 보였다.

놀라서 황급히 창을 거둔 연나의 전신이 검은 연기에 휩싸이더니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촤악!

거대한 도끼가 연나의 몸을 순식간에 세로로 반 토막을 내고 지나갔다.

하지만 그저 잔상에 불과했던 연나의 몸은 곧 흐릿하게 사라져버렸고, 도끼의 잔영은 하늘까지 닿을 기세로 날아가 떠다니는 회색 구름을 반으로 갈랐다.

그때, 호수에서 전신에 회색 연기가 감도는 거대한 괴물이 솟아 나왔다.

그 괴물은 사람의 몸에 소의 머리를 가졌으며, 가슴 아래는 실체 없는 검은 연기로 이루어져 있었다. 오른손에는 십 장이 넘는 길이의 커다란 뼈도끼를 들고 있었다.

만약 석목이 그 괴물의 모습을 보았다면 깜짝 놀랐을 것이다. 그 괴물은 바로 과거 천우성의 경매에서 통천선교의 교주인 무진도인에게 육신을 잃은 나천귀왕이었기 때문이다.

나천귀왕은 그동안 몸을 어느 정도 회복한 것 같았다. 비록 뿜어내는 기운이 이전보다는 한참 못했지만, 그 위압감은 여전했다.

나천귀왕이 나타나자 강시 악어와 푸른 늑대는 겁을 먹은 듯, 자신의 법상을 없애고 영혼의 화염을 떨었다.

호수 주위의 무수한 해골과 강시 등 사령생물도 무형의 위압감에 눌려 군주에게 절하듯 일제히 바닥에 엎드렸다.

나천귀왕은 연나를 찾는 듯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허사였다.

“분수도 모르는 것이 감히 본좌의 휴식을 방해하다니! 다음에 만나면 가만두지 않을 테다!”

분노한 나천귀왕의 천둥 같은 포효소리는 사방으로 메아리치며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엎드려 있던 해골과 강시들은 영혼의 화염을 반짝이며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같은 시간, 협곡과 멀리 떨어진, 검은 물거품이 가득한 어느 늪지대에 갑자기 커다란 호랑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하늘은 검은 구름으로 빼곡했다. 그러나 검은 구름은 여전히 사방에서 계속 모여들고 있었다.

그 순간, 두려울 정도로 강력한 기운이 늪에서 뿜어져 나오더니 순식간에 늪 전체를 뒤덮었다. 늪은 이 기운의 영향을 받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곧 늪 전체에 커다란 소용돌이가 형성됐다.

소용돌이의 중심에 어느 호랑이 괴수의 것으로 보이는, 집채만큼 커다란 두개골이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의 영혼의 화염은 특이하게도 은색을 띠고 있었다.

* * *

음시산맥에 있는 명월교 총단의 푸른색 대전.

회색 옷을 입은 곱슬머리의 청년이 입이 큰 중년의 남자와 마주보고 앉아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중년 남자의 표정이 갑자기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들고 있던 찻잔을 가루로 만들었다.

“무슨 일이지?”

곱슬머리 청년이 물었다.

중년의 남자가 대답했다.

“내 수정 해골에 문제가 생겼네!”

“수정 해골? 얼마 전에 종문 제단 근처로 돌려보내지 않았는가?”

곱슬머리 청년이 물었다.

“제단 쪽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하네.”

중년의 남자가 말했다.

“말도 안 돼. 그곳은 전주와 당주들의 사령생물들이 모여 있을 뿐만 아니라 나천귀왕이 지키고 있는 곳 아닌가. 설령 누군가가 겁도 없이 덤볐다 한들 지계의 실력을 가진 수정 해골이 쉽게 당할 리도 없고.”

곱슬머리 청년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어찌됐든 수정 해골과의 연결이 끊어진 것은 사실이네. 어떻게 된 일인지 확인하러 서둘러 사령계에 가봐야겠네.”

중년의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재빨리 밖으로 나갔다.

* * *

사령계에 있는 검은 협곡의 제단 주위.

쾅!

하얀 빛 덩어리가 하늘에서 빠른 속도로 내려오더니 제단 옆에 있는 은색 해골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해골의 녹색 영혼의 화염이 사라지고 활활 타오르는 보라색 영혼의 화염이 생겨났다. 또 생겨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비틀거리던 해골의 움직임이 갑자기 민첩해졌다.

해골은 다른 사령생물들이 향하고 있는 협곡의 깊은 곳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 속도는 매우 빨라서 금세 호수 근처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붉은 연기가 가득했으며, 주위의 사령생물들이 입을 여닫으며 그 연기를 삼키고 있었다.

해골은 망설임 없이 몸을 날려 빼곡히 몰려 있는 사령생물 무리를 뛰어넘었다.

호숫가에 도착해 주위를 둘러보던 해골의 영혼의 화염이 갑자기 떨렸다.

멀지 않은 곳에 전신의 뼈가 수정처럼 투명한 해골이 누워 있었다.

그 해골의 두개골은 경추와 연결된 아래의 절반만 남아 있었다. 다른 부위에 어떤 손상이나 전투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일격에 당한 게 분명해 보였다.

* * *

며칠 후, 천오상점의 응접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린 채 상점의 주인과 무언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탁자 위의 찻잔에는 차가 담겨 있었지만, 전혀 손을 대지 않았는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잠시 침묵하던 석목이 말했다.

“그녀가 정말 서하고국에 왔을 줄은 몰랐군요…. 저를 대신해 말을 전해줄 수 있을까요?”

“가능합니다. 서 대사님께서 당부하셨으니 절반 가격인 영석 오백 개만 지불하시면 됩니다.”

상점 주인이 대답했다.

석목은 별 말 없이 진묘계에서 편지 한 장과 중급영석 다섯 개를 꺼내 건넸다.

물건을 받은 상점 주인은 석목과 몇 마디를 더 나눈 후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

석목은 나무의자에 몸을 기댄 채 두 눈을 감고 잠시 피로를 풀었다.

잠시 후, 노인의 목소리가 문 밖에서 들려왔다.

“정말 미안합니다. 급하게 처리할 일이 있어 오래 기다리게 했습니다.”

방 안에 들어온 서노자는 자리에 앉지 않고 곧장 석목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일이 바쁘시니 제가 잠시 기다리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요. 작업은 잘 끝났나요?”

석목이 물었다.

“그것은…. 말로는 설명하기 어렵군요. 직접 본다면 바로 알 수 있을 겁니다.”

서노자는 발걸음을 멈추더니 조금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좋습니다. 안내해주십시오.”

석목이 벌떡 일어나자 서노자는 몸을 돌려 응접실 밖으로 그를 안내했다.

두 사람은 창고 모양의 건물 몇 개를 지나서 어느 마당 앞의 대문에 도착했다.

열려 있는 대문 사이로 안쪽에 각종 재료가 가지런히 쌓여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안에서는 대부분 웃통을 벗은 건장한 사내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들은 손에 각종 재료나 도구를 들고 이 방 저 방을 드나드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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