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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210화 (210/916)

210화. 배에 오르다

무진도인이 무언가 전음을 날리는 듯 갑자기 입술을 달싹거렸다.

그러자 여섯 사람 중 세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들은 무진도인에게 인사를 한 뒤 아래로 뛰어내렸다.

곧 아래의 제자들이 소란스러워지더니 말에 탄 천여 명의 사람이 곡양성을 향해 달려갔다.

반고봉 북측의 검은 옷을 입은 제자들의 상공에는 길이가 이십 여 장에 달하고 검은 연기가 감도는 파초선이 떠 있었다. 그 위에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이 나란히 서 있었다.

삼십 대로 보이는 남자는 태연자약한 표정으로 전방의 회색 산봉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자는 검은색 망토를 두르고 있었으며, 망토 안쪽의 금색 옷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녀의 얼굴은 요염하고도 아름다웠다.

두 사람은 천마종의 종주 사도호와 금소채였다.

그 뒤에는 덩치가 커다란 사람 십여 명이 있었다. 그들의 전신에서는 검은 기운이 감돌았으며, 모두 무뚝뚝한 표정과 차가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이곳이 명월교의 총단입니까?”

금소채가 물었다.

“정확히 말하면 동주대륙 내 명월교의 총단이지.”

사도호가 말했다.

“설마 서하대륙에도 명월교의 세력이 있나요?”

“맞다. 따지고 보면 이들은 명월교 세력의 일부분일 뿐이지…. 소채야, 사람을 찾는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는 현재 곡양성에 있을 것이다.”

금소채가 더 묻기 전에 사도호가 화제를 돌렸다.

“만약 이곳에서 그를 만난다면 한 번만 너그럽게 봐주세요.”

금소채가 말했다.

“그 역시 우리 천마종의 사람이다. 그러니 그가 상식에서 벗어나는 일을 하지 않는 이상, 나 역시도 그를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네가 선천후기의 경지에 올랐다고는 하나 무진도인이 이미 사람을 보내 곡양성을 포위했으니, 만일에 대비해 천마위(天魔卫) 두 명을 붙여주마.”

사도호가 그렇게 말하며 한 손을 들자, 뒤에서 두 사람이 다가왔다.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금소채는 고개를 돌려서 뒤의 두 사람을 한 번 보더니 말했다.

금소채가 거대한 파초선에서 뛰어내리자 두 사람의 천마위도 그녀를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바로 그때, 산자락에서 우렁찬 호각소리가 들려왔다.

아래에 있는 천마종의 제자들 사이에서 수십 장 크기의 인형 이십 여 구가 나타났다. 호랑이, 곰 등 다양한 괴수의 모습을 한 그것들은 전신에 검은 비늘 갑옷을 입고 있었으며, 강력한 영압을 내뿜고 있었다.

그것들은 천마종이 자랑하는 영기급 전투 인형이었다. 성계술사 열 명이 조종하는 인형은 대량의 영석을 사용해야 가동시킬 수 있었으며, 움직임은 느렸지만 아주 견고했고 지계강자 수준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진격하라!”

사도호의 목소리가 위쪽에서 들려왔다. 그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아래 있는 모든 사람의 귀에 뚜렷하게 들렸다.

천마종 제자들의 표정이 돌변하더니 괴수 인형을 둘러싼 채 산의 정상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멀리서 보면 마치 검은 파도가 산 정상을 향해 밀려드는 것처럼 보였다.

산 정상을 보호하는 호교대진에 가까워지자 괴수 인형들이 입에서 두꺼운 빛의 기둥을 쏘았다. 동시에 선천무인과 성계술사들도 공격을 퍼부었다. 공격이 회색빛의 장막과 충돌하며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괴수 인형들의 쏜 빛의 기둥은 회색빛의 장막과 충돌하는 순간 가루로 변해 흩어져 사라졌다.

동시에 거대한 빛의 장막 안쪽에서 발사된 공격 술법들이 천마종의 제자들을 향해 폭우처럼 쏟아졌다.

하지만 미리 대비를 하고 있었던 듯 몇몇 제자가 대형 보호 술법을 신속하게 전개해 공격을 막았다. 동시에 지계무인들도 앞으로 달려 나와 제자들을 보호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공격을 막아냈음에도 빈틈으로 파고든 공격에 상당수의 천마종 제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한편 산봉우리 반대편에서도 통천선교가 진격을 시작한 듯, 커다란 폭발음과 무수한 법력의 파동이 전해져왔다.

두 세력의 거센 공격에 명월교의 호교대진은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며 공명음을 냈다.

통천선교와 천마종의 중하급 제자들이 회색빛의 장막 앞에 다가가 맹공을 퍼부으려는 순간, 갑자기 그들 앞에 검은색 연기가 솟아났다.

곧 사령계의 기운이 퍼지더니 기괴한 모습의 강시와 해골들이 나타났다. 그중에는 선천무인 수준의 해골 장군과 검은 강시가 상당수 있었으며, 심지어 지계무인 수준의 해골왕, 강시왕도 몇몇 있었다.

소환된 사령생물들은 즉시 두 종문의 제자들과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명월교의 제자들은 돌파를 당하는 순간 죽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광기에 찬 표정으로 진기와 법력을 아끼지 않고 공격을 퍼부었다.

하지만 인원수의 차이가 너무 컸다. 각각 천여 명에 달하는 제자들이 죽은 뒤, 두 세력은 점점 싸움의 주도권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점점 더 많은 공격이 쏟아지자 회색빛의 장막은 천천히,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 * *

명월교 총단의 어느 거대한 밀실 안.

둘레가 백 장 가까이 되는 육각형 진법이 바닥에서 은은한 핏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진법 위에는 영석이 빼곡히 박혀 있었으며, 육십사 명의 제자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들은 모두 붉은색 두개골을 들고 있었는데, 두개골에서 붉은 빛의 기둥이 뿜어져 나와 진법 곳곳에 흡수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제자들의 얼굴은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쇠약해지는 중이었다.

진법의 한가운데에 앉아 있는 백발의 노인 앞에는 부문이 가득 새겨진 붉은 구슬이 떠 있었다.

백발의 노인은 바로 명월교의 우호법이었다

우호법이 주문을 외우며 수인을 맺을수록 구슬은 점점 빠르게 회전하며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주문을 외우던 그가 갑자기 입을 벌려 피를 뿜어냈다.

그 순간 구슬에서 두꺼운 붉은 빛의 기둥이 발사됐다. 그 빛은 밀실의 천장을 뚫고 올라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유안,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구나….”

우호법의 낯빛이 창백해지더니 체내의 생기가 빠르게 시들어갔다.

* * *

반고봉의 격전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거대한 회색빛 장막 밖에는 통천선교와 천마종의 제자와 사령생물의 시체가 쌓여 있었다.

하지만 반고봉 남측의 무진도인과 북측의 사도호는 모두 나서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는 것에 별다른 감흥이 없는 듯 표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그때, 산의 정상을 덮고 있던 회색 연기들이 갑자기 모여 들더니 산 정상에 있는 거대한 괴수의 해골에 흡수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늑대 같기도 하고 호랑이 같기도 한 괴수였다.

그와 동시에 괴수의 해골이 핏빛으로 빛나더니 텅 비어 있던 두 눈에 커다란 은색 영혼의 화염이 생겨났다. 괴수 해골은 막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머리를 가볍게 흔들었다.

이어 수면에 파문이 이는 듯 어마어마한 법력의 파동이 사방으로 확산되어 산봉우리 전체를 뒤덮었다.

괴수가 울부짖는 소리가 반고봉의 정상에 울려 퍼졌다.

괴수 해골이 몸을 일으키며 산에 박혀 있던 거대한 오른쪽 앞발을 뽑아냈다. 괴수의 전신에는 회색 연기가 감돌고 있었다.

괴수가 천마종 진영을 향해 오른쪽 앞발을 휘두르자 허공에 파동이 일며, 스무 개가 넘는 거대한 회색 조영이 몰아쳤다.

회색 조영은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호랑이 모양의 인형 앞에 나타났다.

호랑이 인형이 두 앞발을 모으자 집채만 한 녹색 빛의 방패가 나타났다.

쾅! 쾅! 쾅!

거대한 회색 조영이 녹색 빛의 방패에 연달아 부딪치며 폭발을 일으켰다.

녹색 빛의 방패는 공격을 절반 가까이 막아낸 뒤 깨졌고, 남은 십 여 개의 조영이 그대로 호랑이 인형의 몸을 가격했다.

쾅! 쾅! 쾅!

호랑이 인형의 전신 곳곳에서 회색빛이 폭발했고, 거대한 힘에 밀려 날아간 호랑이 인형이 허공에서 산산 조각이 났다.

그러자 비명이 울려 퍼지며 인형 안에 타고 있던 열 명의 성계술사, 그리고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십여 명의 제자가 한꺼번에 즉사했다.

이어 괴수의 해골은 고개를 돌려서 거대한 입을 벌렸다.

해골의 입에서 핏빛이 반짝이더니 두꺼운 붉은 빛의 기둥이 발사됐다. 순간 주위의 공간을 비틀며 엄청난 기세로 날아오는 빛의 기둥을 본 천마종 제자들의 표정이 굳었다.

빛의 기둥이 거대한 곰 인형의 머리에 충돌하려는 순간, 멀리서 수십 장 크기의 회색 방패가 날아와 인형의 앞을 가로막았다.

방패의 표면에는 어금니가 밖으로 드러난 흉악한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푹!

두꺼운 빛의 기둥이 회색 방패에 조용히 빨려 들어갔다.

방패는 어느새 산의 정상으로 다가온 사도호에게 날아가서 그 주위를 선회하기 시작했다.

사도호는 산봉우리 반대편 허공에 떠 있는 무진도인을 보며 말했다.

“동방세천이 살아 돌아오지 않는 이상 이것이 명월교의 마지막 패인 것 같네만. 사상자를 줄이기 위해 함께 진법을 파괴하는 것이 어떤가?”

무진도인이 대답을 하려는 순간, 갑자기 그의 손에 끼워진 옥팔찌가 진동했다.

훅!

동시에 허공에 작은 소환 진법이 생겨났고, 그 안에서 보라색 옥간이 나타났다.

무진도인은 그 옥간을 이마에 가져다대더니 살짝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가 유안의 양동작전에 당한 것 같구려. 명월교 정예 제자의 대부분이 이미 출항했다고 하는군. 사안이 시급하니 나는 즉시 서해안으로 가보겠네.”

무진도인은 사도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거대한 조롱박으로 돌아가 수인을 맺었다. 그러자 조롱박은 하얀빛을 뿜어내며 서해안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 * *

같은 시간, 곡양성 서해안의 어느 외진 곳.

그곳에는 오래 전 어떤 거대한 힘에 의해 파괴된 듯한 건물들의 폐허가 널려 있었다. 간간이 부는 바람소리가 마치 울음소리처럼 들려서 매우 을씨년스러운 곳이었다.

쿠구궁!

갑자기 한 폐허의 바닥이 열리며 깊은 지하에서부터 이어진 계단이 드러났다.

그곳에서 회색 옷을 입은 여인이 나왔고, 그녀의 뒤로 이백여 명의 사람이 걸어 나왔다. 그들은 바로 석목의 일행이었다.

“좀 더 서둘러 걷겠다.”

여인은 주위를 한 번 둘러보더니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모두 급히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이곳은 서해안이네요.”

여의가 코를 벌름거리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석목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 역시 공기 중의 높은 습도를 느끼고 어렴풋이 파도소리를 들었다.

“석두,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채아의 목소리가 석목의 머릿속에 들려왔다.

“나도 그래.”

석목은 명월교가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는 생각에 살짝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먼저 가서 주위를 탐색해볼까?”

채아가 말했다.

석목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아니야. 명월교가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있든 우리와는 큰 상관이 없을 거야. 우리는 어떻게든 서하대륙에 가기만 하면 돼.”

일행은 여인의 안내에 따라 해안가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오십 장 길이의 거대한 검은 배가 여섯 척 떠 있었다. 산처럼 커다란 배는 선수부터 선미까지 부문이 새겨져 있었으며, 강력한 법력의 파동을 뿜어내고 있었다.

거대한 배 뒤에는 똑같은 모습의 배들이 먼 바다로 향하고 있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법기급 선박? 아니야, 이 느낌은 영기급이야!”

석목이 눈앞의 거대한 선박을 보고 감탄하며 말했다.

해안가에는 이미 삼사백 명의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선발전에 참여한 제자인 것 같았다.

“세 번째 시합은 섬에서 거행된다. 승리한 순서대로 배에 올라라. 즉시 출발하겠다.”

여인이 발걸음을 멈추고 큰 소리로 말했다.

곧 세 척의 배가 육지에 접근해서 사다리를 내렸다.

거대한 배를 본 사람들은 시끌벅적 떠들며 차례로 배에 올라탔다.

석목의 일행은 가장 뒤에 서서 순서를 기다렸다.

배 한 척이 금세 가득 차고, 나머지 사람들이 두 번째 배에 오르기 시작했다. 여의와 후새뢰를 포함한 일행 넷이 모두 배에 올랐다.

“죄송하지만 21호 선박은 사람이 가득 찼습니다. 22호 선박에 탑승해주세요.”

명월교의 제자가 일행을 따라 배에 오르려는 석목의 앞을 막으며 말했다.

곧 사다리가 선박 위로 천천히 끌어올려졌다.

석목은 멍한 표정이 되었다. 이미 배에 오른 후새뢰와 일행도 살짝 놀랐다.

“저는 다음 배를 타겠습니다. 목적지에서 보죠.”

석목이 배 위의 일행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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