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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211화 (211/916)

211화. 막바지 단계

22호 선박이 다가와 사다리를 내렸고, 석목은 첫 번째로 배에 올랐다.

막 갑판에 오른 순간 석목의 표정이 갑자기 굳었다.

그의 앞에 은색 옷을 입은 붉은 머리 남자가 뒷짐을 지고 서 있었기 때문이다.

이마에 있는 붉은 달 문양이 있는 그 남자는 바로 유안이었다.

그는 마치 석목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웃으며 말했다.

“석 형, 정말 오랜만이군요.”

석목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뒤이어 배에 오른 제자들이 그 광경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유안은 전임교주 동방세천의 대제자로, 10전 중의 으뜸인 파군전(破军殿)의 전주였다. 명월교에서 그의 지위는 좌․우호법의 바로 다음이었으며. 동방교주의 후계자라는 사실은 명월교 내의 대다수 사람이 알고 있을 만큼 유명했다.

그들은 유안처럼 지위가 높은 사람이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석목에게 먼저 인사를 하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선발전에 참여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군요. 설마 우리 명월교에 들어오고 싶어진 것인가요?”

유안이 웃으며 물었다.

“만약 아니라고 한다면 배에서 내리게 할 생각인가요?”

석목이 물었다.

“하하, 그럴 리가요. 안심해도 됩니다. 이번 원정은 여정이 굉장히 길고 험난할 텐데, 석 형과 긴 이야기를 하며 혼사의 깨달음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으니 기쁘군요.”

유안이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이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저는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있으니 잠시 후 다시 대화를 나누도록 하죠.”

유안은 석목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더니 선박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석목은 잠시 유안의 뒷모습을 보다가 안으로 걸어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다른 사람들도 각자 배에 올랐고, 배는 곧 가득 찼다.

석목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배에는 석목을 포함한 이백 명의 시합 참가자 외에도 명월교의 집사들이 일부 있었다. 그들은 선박을 조종하는 임무를 맡은 것 같았다.

집사들은 차분한 표정이었지만, 종종 불안한 눈빛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보는 방향에는 안개가 자욱한 거대한 산맥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곳은 바로 명월교의 총단이 자리 잡고 있는 음시산맥이었다.

석목은 어렴풋이 무언가를 느끼고 미간을 찌푸렸다.

세 척의 배는 제자들이 전부 승선하자 움직이기 시작해서 육지와 조금 거리를 벌렸다.

제자들을 안내한 여인은 배에 오르지 않고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다.

바로 그때, 유안이 여인에게 다가왔다.

아직 비어 있는 세 척의 선박 사이에서 나온 건장한 중년의 남자도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남자의 얼굴은 이마부터 턱까지 이어진 칼자국으로 인해 매우 섬뜩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거대한 기운을 뿜어내는 지계무인이었다.

“유 전주.”

여인과 중년 남자가 유안에게 인사했다.

“방 전주, 그대가 담당하는 한해거주 세 척에 사람이 가득 찼으니 출항하게.”

유안이 여인을 보며 말했다.

“유 전주는요?”

여인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나와 나 전주는 마지막 제자들을 챙겨야 하니 먼저 가게. 나중에 바다 위에서 만나세.”

유안이 멀리 자욱한 안개에 뒤덮인 음시산맥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곳의 안개는 어쩐지 이전보다 조금 희박해진 것 같았다.

여인은 잠시 생각하다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몸을 돌려 석목이 타고 있는 22호 한해거주에 뛰어 올랐다.

“출발!”

여인이 지시를 내리자, 거대한 한해거주 세 척이 돛을 펴고 천천히 바다를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여인은 회색 나침판을 꺼내 주문을 외우며 그것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그 순간, 한해거주의 표면에 새겨진 부문들이 빛나더니 돛 주위로 바람이 일었다.

돛이 팽팽해지며 항해속도가 대폭 증가한 한해거주 세 척은 전방의 다른 한해거주를 일렬로 뒤따라갔다.

“마지막 세 척만 남았구나. 늦지 않았기를 바라야겠군.”

멀어져가는 한해거주를 보며 유안이 살짝 한숨을 쉬었다.

석목이 타고 있는 한해거주를 포함한 총 스물두 척의 한해거주는 사천여 명의 명월교 정예 제자를 태우고 바다로 나갔다. 와해 직전에 있는 명월교가 이 정도를 해낸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를 위해 적지 않은 대가를 치렀지만, 덕분에 서하고국이 멸망하더라도 명월교의 명맥이 이어지게 됐으니 재기에 대한 희망이 생긴 것이다.

“유 전주도 출발하게. 마지막 남은 제자들은 내가 반드시 안전하게 보내겠네.”

얼굴에 칼자국이 있는 나 전주가 말했다.

“괜찮네. 방금 시합이 끝나고 마지막 제자들이 오고 있다는 소식을 받았네.”

유안이 말했다.

그의 말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이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려 보니 오륙백 명의 제자들이 회색 옷을 입은 중년 남자의 안내를 받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중년의 남자가 두 사람을 보고 다가와 인사했다.

“마지막 시합 통과자 총 오백육십칠 명을 데리고 왔으며 나머지는 곡양성에 남겨뒀습니다.”

“잘했다. 즉시 출항할 것이니 제자들을 최대한 빨리 배에 태워라!”

유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지시했다.

“예!”

회색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대답을 한 뒤 제자들을 배에 태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유안은 어째서인지 모를 불안감에 명월교 총단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느낌은 점점 강해졌다.

그가 고개를 돌려보자 한해거주 두 척이 이미 가득 차 있었고, 남은 수십 명의 제자가 마지막 남은 한 척에 바삐 올라타고 있었다.

먼저 떠난 세 척의 한해거주는 이미 어느 정도 거리를 이동한 상태였다.

“끝날 때가 다 되어가니 겁이 많아졌나보군.”

시선을 거둔 유안이 혼잣말을 했다.

현재 상황으로 봤을 때 계획은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통천선교와 천마종의 주력은 이미 명월교 총단과 교전하는 중이었다. 적들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총단은 우호법이 직접 지키고 있었고, 호교대진이 뒷받침을 해주고 있으니 쉽게 점령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조금만 더 시간을 끌어 마지막 제자들까지 바다로 나간다면, 두 세력이 아무리 강력하다 한들 손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잠시 후, 마지막 제자가 한해거주에 오르자 나 전주가 유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유 전주, 모두 승선했네!”

“즉시 출항하라!”

한해거주에 뛰어올라 나 전주 옆에 나란히 선 유안이 외쳤다.

그 순간, 위엄 가득한 외침이 멀리서 들려왔다.

“어딜 가려 하느냐!”

곧 나 전주와 유안의 시야에 멀리서 거대한 하얀 빛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고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하얀 빛이 둘러싸고 있는 것은 파란색 조롱박이었으며, 그 위에는 네 사람이 올라타고 있었다. 그중 가장 앞에 있는 사람은 하얀 불자를 손에 들고 있는 백발의 정정한 노인이었다.

유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무진!”

그 이름을 들은 나 전주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 전주, 내가 시간을 끌 테니 배에 타고 있는 제자들을 부탁하네!”

유안이 즉시 말했다.

“하지만….”

“빨리!”

나 전주가 머뭇거리자 유안이 소리치며 하얀 빛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러자 나 전주는 몸을 돌려 큰 소리로 외쳤다.

“전속력으로 항해하라!”

한해거주의 조종을 맡은 집사들이 다급하게 움직였다. 곧 한해거주의 부문이 빛나기 시작하더니 배가 먼 바다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안이 입에서 작은 암홍색 깃발을 뱉어냈다. 나타나자마자 반 장 길이로 커진 깃발의 중앙에는 흉악한 금색 도깨비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그것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생생했다.

유안이 깃발을 허공에 던졌다.

쾅!

유안의 손을 떠난 깃발이 몇 장 크기로 커지더니 순식간에 활활 타오르는 핏빛 화염으로 변했다. 화염 사이에서 마치 사람이 슬피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곧 화염 사이에서 엄청난 영압이 뿜어져 나오는 동시에, 삼 장 가까이 되는 거대한 금색 도깨비의 머리가 나타났다.

쩌억!

입을 크게 벌린 금색 도깨비가 날아오는 하얀 빛을 향해 두꺼운 핏빛 화염기둥을 뿜어냈다.

그걸 보고 하얀 빛은 놀란 듯 비행을 멈추었다. 곧 하얀 빛 사이에서 푸른 검영이 쏘아져 나와 핏빛 화염기둥을 향해 정면으로 날아갔다.

쾅!

푸른 검영과 핏빛 화염기둥이 허공에서 충돌했다.

거대한 소리와 함께 주위 공기가 격렬하게 일렁이더니 엄청난 강풍이 사방으로 몰아쳤다.

강풍에 휩쓸린 주위 수십 장 범위 내의 모든 수풀이 뿌리째 뽑히며 흙먼지가 일었다.

육지와 가장 가까이에 있던 한해거주 세 척도 몰아치는 강풍의 영향을 받아 격렬하게 흔들렸다.

하지만 다행히 배는 충돌이 일어난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으며, 방어 진법의 보호를 받아 큰 피해는 입지 않았다.

핏빛 화염기둥이 흩어지는 동시에 푸른색 검 역시 튕겨져 날아갔다.

유안이 한 손을 들자 금색 도깨비 머리가 돌아와서 그의 머리 위를 선회했다.

파란 조롱박을 감싸고 있던 하얀 빛이 사라지며 무진도인과 그의 뒤에 서 있는 세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기품 있는 도사와 외모가 준수한 청년 도인, 아름다운 여도사였다.

“천귀번(天鬼幡)이라. 정말 오랜만에 보는구나!”

무진도인이 유안의 머리 위에 떠 있는 도깨비의 머리를 보며 중얼거렸다.

“무진, 생각보다 빨리 왔지만 이곳을 지나가지는 못할 것이다.”

유안이 말했다.

“하하, 과거 천위의 경지에 오른 동방세천도 그 법기를 사용했지만 노부의 적수가 되지 못했거늘, 정말 겁도 없구나.”

무진도인이 그렇게 말하며 허공에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푸른 검이 마치 주인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듯 살짝 진동하더니 유안을 향해 날아갔다.

동시에 금색 도깨비 머리가 무진도인을 향해 날아갔다. 도깨비 머리가 입에서 뿜어난 핏빛 광선검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베었다.

무진도인은 다시 푸른 검을 조종해 유안의 공격을 막아내면서, 뒤에 있는 세 사람에게 말했다.

“여기는 내게 맡기고 가서 한해거주를 막아라!”

세 사람은 가장 가까이 있는 한해거주를 향해 즉시 몸을 날렸다.

놀란 유안이 술법을 시전해 그들을 막으려는 듯 무언가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무진도인의 열 손가락에서 푸른 빛줄기가 쏘아져 나가 푸른 검에 흡수되었다.

순간 검의 표면이 반짝이더니 푸른 명주실 같은 얇은 검기가 가닥가닥 뿜어져 나와서 도깨비 머리를 휘감았다.

유안은 놀라서 다급히 주문을 멈췄고, 더 이상 세 사람을 신경 쓰지 못하고 오직 무진도인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유안이 갑자기 입을 벌리더니 도깨비 머리에 피를 뿜었다.

그 피를 흡수한 도깨비 머리의 표면에 작은 부문들이 나타나 회전하더니, 순간 굉음과 함께 핏빛 화염이 솟아올랐다. 핏빛 화염으로 푸른 검기를 불태운 도깨비 머리가 속박에서 벗어났다.

그 광경을 본 무진도인이 감탄하는 투로 말했다.

“내가 너무 얕봤구나!”

유안과 무진도인은 공중에서 위아래로 오르내리며 격렬하게 맞붙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주위에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한편 엄청난 속도로 이동한 세 도사는 가장 가까이 있던 한해거주를 따라 잡았다.

법력으로 만들어낸 바람으로 움직이는 한해거주는 항해속도가 평범한 선박보다 훨씬 빨랐다. 그러나 지계무인의 속도에 비하면 한참 뒤떨어졌기 때문에 따라잡히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기품 있는 도사가 한 손을 휘두르자 보라색 빛이 반짝이더니, 그의 몸 앞에 보라색 검이 나타났다. 그 검은 강력한 파동을 뿜어내는 영기였다.

보라색 검이 맑은 울음소리를 내며 한해거주를 향해 몇 장 크기의 거대한 검영을 날렸다.

한해거주에 타고 있는 제자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 검영에 맞는다면 침몰하는 배와 함께 몰살당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순간 나 전주가 소리를 지르며 뛰어올랐다.

“멈춰라!”

나 전주는 날아오는 검영을 향해 누런색 고리를 날려보냈다. 검은 빛에 둘러싸인 그것은 어떤 괴수의 뼈로 만든 것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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