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화. 해상 격전
한편 여인은 한해거주로 돌아와서 단약을 먹고 법력을 어느 정도 회복했다.
그러나 그녀도 함부로 바다 속으로 뛰어들지는 못했다. 지계의 경지에 오르거나 특별한 수속성 심법을 수련하지 않은 이상, 바다 속에서는 행동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여인은 고개를 돌려 22호 한해거주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지금 도사와 싸우고 있는 청년이 그곳에서 나온 것을 똑똑히 보았다.
그 청년은 분명 그녀의 기억에는 없는 사람이었다.
여인은 생각했다.
‘설마 이것도 유 전주가 계획한 것인가?’
다른 배에 타고 있던 후새뢰와 여의는 경악하고 있었다.
“방금… 그 사람… 목 형이었죠?”
여의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리며 후새뢰를 보았다.
“저를 쳐다봐도 소용없어요. 여 형보다 조금 먼저 알게 되었을 뿐이지, 저 역시 목 형에 대해 잘 알지 못해요.”
후새뢰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것은 진심이었다. 후새뢰는 석목을 한동안 따라다녔지만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은 거의 없었다.
채아는 한해거주의 가장 높은 돛대 위에 앉아 있었다. 하얀 빛이 감도는 눈으로 바다 속을 들여다보던 채아가 갑자기 기쁜 표정을 지었다.
쾅!
그 순간, 수면의 소용돌이가 요동치더니 두꺼운 물기둥이 솟구쳐 올랐다.
동시에 붉은 비단과 엉켜 있던 은색 채찍이 빛을 잃고 바다 속으로 떨어졌다.
여인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붉은 비단을 회수하면서, 다시 잔잔해진 수면을 바라보았다.
쾅!
그때 수면을 뚫고 날아오른 석목이 한해거주의 갑판에 내려섰다. 옷이 너덜너덜해지고 왼팔에는 긴 상처가 나 있었지만, 그는 흥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채아의 투시 능력 덕분에 석목은 바다 속에서도 평지에서와 똑같이 본연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건방진 청년 도사도 절대 약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석목을 상대로는 결국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명월교 제자들은 마치 괴물이라도 본 듯 놀란 표정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후새뢰와 여의도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저는 명월교의 방옥입니다. 교우는….”
회색 옷의 여인이 석목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확신이 없는 듯 말끝을 살짝 흐렸다.
“제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들에게 적의가 없다는 것만 알아 두세요. 지금은 통천선교의 손에서 어떻게 벗어날지가 중요해요.”
석목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여인은 육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서는 여전히 굉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 초조한 표정이 떠올랐다. 거리가 너무 먼 탓에 그녀의 눈으로는 그곳의 상황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무진도인과 그의 수하는 유안과 나 전주에게 발목이 잡혀 있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좋지 않아서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겁니다.”
석목이 말했다.
채아와 시야를 공유한 석목은 육지의 상황까지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
나 전주와 그가 소환한 지계의 사령생물은 통천선교의 두 도사를 가까스로 잡아두고 있었지만, 이제 거의 한계에 달한 것 같았다.
허공에 뜬 채 찬란한 빛을 뿜어내고 있는 무진도인의 모습은 마치 선인 같았다. 반면 유안의 금색 도깨비 머리는 힘이 거의 다했는지 뿜어내는 빛이 상당히 어두워져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여인의 표정이 흐려졌다.
“이 틈에 조금이라도 멀리 달아나지 않는다면 분명 몰살당할 겁니다. 무진의 다음 목표는 우리일 테니까요.”
석목이 여인에게 말했다.
여인은 이를 악 물더니 몸을 돌리며 큰 소리로 외쳤다.
“전속력으로 이동하라!”
곧 진법을 다시 발동한 한해거주는 먼 바다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육지 쪽을 보던 석목은 몸을 흠칫 떨었다.
석목이 있는 곳에서도 뚜렷하게 보일 정도로 두꺼운 빛의 기둥이 하늘 높이 솟구치고 있었다.
* * *
해안가의 상공에 떠 있던 무인도인이 먼 바다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그의 얼굴에 분노한 표정이 스쳐지나갔다.
무진도인은 지름이 수십 장에 달하는 하얀 빛의 기둥 사이에 있었다. 그의 머리 위에 커다란 도장이 천천히 선회하고 있었고, 빛의 기둥은 바로 그 도장이 뿜어내는 것이었다.
그의 앞에 있는 유안의 전신은 곳곳의 상처에서 흐르는 피로 물들어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두 손을 휘두르며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그 순간, 도깨비 머리가 입에서 짙은 핏빛 연기를 뿜어냈다.
그 핏빛 연기 사이로 수많은 악귀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으며, 귀곡성이 들려왔다.
유안이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핏빛 연기가 요동을 치더니 한데 뭉쳐 수십 장 크기의 두개골 모습을 형성했다.
솟아나온 어금니가 흉흉해 보이는 그 두개골은 핏빛 화염에 활활 타오르고 있었으며, 흉포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무진도인은 가소롭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주문을 외우며 맞잡은 두 손을 위에서 아래로 휘둘렀다.
그러자 거대한 빛의 칼날로 변한 빛의 기둥이 그의 움직임에 따라 유안을 향해 베어 내려갔다.
“가라!”
유안이 손을 휘두르자 거대한 두개골이 빛의 칼날을 향해 날아갔다.
쾅!
천지를 뒤울리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충돌이 일어난 주위로 공간이 찢어지기라도 한 듯 거대한 균열들이 생겨났다. 바다에도 거대한 파도가 일었다.
인근에 있는 두 척의 한해거주에 타고 있던 명월교의 제자들은 엄청난 굉음에 고막이 파열되고 칠공에서 피를 쏟았다. 일부 약한 제자들은 격렬한 법력의 파동을 견디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죽어버렸다.
거대한 두개골은 충돌과 함께 폭발하면서 다시 핏빛 안개로 흩어졌다.
몸을 떨며 피를 뿜어낸 유안은 마치 줄 끊어진 연처럼 멀리 날아갔다. 천귀번 역시 다시 작은 깃발로 변해 날아갔는데, 이미 영성을 크게 잃은 듯 주위를 감도는 붉은빛은 많이 어두워져 있었다.
유안은 뒤로 수십 장이나 날아간 뒤 가까스로 몸을 가누었다.
무진도인은 유안이 쓰러지지 않자 의외라는 표정으로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하늘을 뚫을 것 같은 날카로운 검기를 뿜어내는 푸른 검이 허공에 나타났다.
그것을 본 유안은 숨을 깊게 들이쉬며 재빨리 검은 부적을 꺼내들었다.
그 순간, 부적에서 검은 빛이 솟아나와 순식간에 유안의 몸을 감싸더니, 먼 바다를 향해 놀라운 속도로 쏘아져 날아갔다.
무진도인은 검은 궤적을 그리며 멀리 날아가는 유안을 잠시 바라보다가 푸른 검을 거두더니, 두 도사와 격전을 벌이고 있는 나 전주에게 시선을 돌렸다.
무진도인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 나 전주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쾅!
나 전주의 몸에서 회색 화염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화염 인간으로 변한 그의 기운이 이전보다 두 배 가까이 강해졌다.
나 전주는 분노에 찬 고함을 지르며 화염에 뒤덮인 손을 뻗어 남자 도사의 머리를 잡아채려 했다.
놀란 도사가 나 전주의 손을 향해 보랏빛 검을 날렸다.
깡!
하지만 그의 검은 나 전주의 손을 잘라내지 못하고 튕겨져 멀리 날아갔다.
회색 손이 도사의 머리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그 순간, 하얀 빛에 둘러싸인 도장이 나 전주를 향해 날아왔고, 어느새 맷돌만한 크기로 커진 도장이 나 전주를 거세게 들이받았다.
퍽!
나 전주의 몸이 수박처럼 터지며 사방에 피가 흩날렸다.
일격에 숨진 나 전주가 바다로 추락하자 그가 소환한 뼈 새도 회색 연기에 휩싸여 사령계로 돌아갔다.
“스승님!”
두 도사가 무진도인에게 날아왔다.
“저 두 척의 한해거주를 처리한 뒤 따라오거라.”
무진도인은 두 도사에게 이르고 석목이 타고 있는 한해거주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날아갔다.
천위의 존재인 무진도인의 속도는 실로 엄청났다. 그는 석목이 타고 있는 22호 한해거주를 순식간에 따라잡았다.
그가 무표정한 얼굴로 한 손을 들어 올리자 머리 위 도장의 크기가 수십 배로 부풀었고, 그것은 석목이 탄 한해거주를 순식간에 덮쳤다.
이에 놀라서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방옥이 하얀 도장을 향해 자신의 영기를 날렸다.
펑!
방옥의 붉은 비단은 도장과 충돌했지만, 그 기세를 조금도 꺾어놓지 못하고 수십 갈래로 찢어졌다.
푸욱!
여인이 입에서 피를 뿜어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때, 석목은 무진도인의 공격을 피해 황급히 바다 속으로 뛰어 들려다 말고 갑작스레 굳은 표정으로 위쪽을 보았다.
한해거주의 상공에서 회색빛이 반짝이면서 누군가가 나타난 것이다.
그 자는 하얀색 전신 갑옷과 투구로 얼굴과 몸을 완벽히 가렸고, 오른손에는 검은 곤봉을 들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석목은 그것이 연나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연나가 뿜어내는 기운을 느낀 석목은 깜짝 놀랐다. 안 본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 사이 연나는 더욱 강해져 있었다.
연나는 아래로 떨어지고 있는 도장을 보고 곤봉을 휘둘렀다. 그러자 지름이 수십 장에 이르는 커다란 곤영이 나타나 도장을 향해 날아갔다.
무진도인은 잠시 놀랐지만 곧 정신을 다잡았다. 그가 수인을 맺자 도장이 뿜어내는 빛이 강해지며 그 위력도 더해졌다.
콰르릉!
곤영과 충돌한 도장이 멀리 튕겨져 날아가는 동시에 무진도인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하지만 허공에 떠 있던 연나 역시 충격의 여파로 바다 속으로 내리꽂혔다.
한해거주 세 척에 나누어 타고 있던 육백여 명의 제자와 방옥은 그 광경을 보고 하나같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연나!”
석목은 혹여나 연나가 다치기라도 했을까봐 조급해졌지만, 금세 마음을 놓았다. 정신력을 통해 연나가 큰 타격을 입지 않았고 기운도 안정적이라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금세 자세를 바로 잡은 무진도인이 분노한 표정을 지었다.
바로 그 순간, 그의 머리 뒤에서 검은 빛이 반짝이더니 그 틈에서 마른 손이 뻗어 나왔다.
깜짝 놀란 무진도인은 빛의 방패를 만들어내는 동시에 옆으로 몸을 피했다.
쨍강!
빛의 방패가 깨지는 짧은 시간에 무진도인은 수십 장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
“누구냐!”
무진도인이 몸을 돌리며 소리쳤다.
“무진, 백년 만이구나. 설마 노부를 잊은 것은 아니겠지?”
검은 빛 사이에서 사람의 모습이 천천히 나타났다. 그는 피부가 누렇고 머리카락이 얼마 없어서, 산 사람보다는 죽은 사람에 더 가까워 보이는 노인이었다.
“네가 아직까지 살아 있었을 줄은 몰랐구나.”
무진도인이 말했다.
“과거 네 주마자(诛魔刺)에 당하지 않았다면 죽을 때까지 이 경지에 오르지 못했겠지.”
허공에 꼿꼿하게 선 노인이 무진도인을 보며 누런 눈을 반짝였다.
“천위!”
놀란 무진도인이 외쳤다.
노인은 아무 말 없이 살짝 웃었다. 그러나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대한 기운에 옷자락이 펄럭였다.
한편 바다 위로 뛰쳐나오려 하는 연나를 사령계로 돌려보낸 석목은 허공의 두 사람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무진도인의 낯빛이 흐려졌다.
상대가 뿜어내는 엄청난 위압감으로 보아, 그가 천위의 경지에 올랐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방금 자신의 일격을 막아낸 자 역시 몸에서 사령생물 특유의 기운을 뿜어낸 걸 보니, 상대의 소환수가 분명했다.
현재 그 사령생물의 존재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틀림없이 주위에 숨어 있을 테니 절대로 방심할 수 없었다.
“방옥이 좌호법을 뵙습니다!”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킨 여인이 노인을 향해 허리 숙여 인사했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노인을 알아보지 못한 듯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던 제자들도 덩달아 허리 숙여 인사했다.
그들 역시 방금 무진도인의 일격을 막아낸 것의 정체가 좌호법의 사령생물이라고 생각했다.
순간 허공에서 유안이 번개처럼 나타났다.
“사숙.”
유안이 노인을 보며 감격한 표정으로 말했다.
“안아, 돌아왔구나.”
노인이 말했다.
“사숙, 힘을 합쳐 무진 저 놈을 죽이고 사부님의 복수를 합시다!”
유안이 말했다.
바로 그때, 도사와 여도사가 날아와 무진도인에게 말했다.
“스승님, 세 척의 한해거주와 함께 오백여 명의 사교도 놈들을 전부 수장시켰습니다.”
“잘했다.”
무진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을 듣고 분노한 유안이 몸에서 검은 빛을 뿜어내며 달려들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