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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214화 (214/916)

214화. 숨겨진 위기

좌호법이 손을 들어 유안의 앞을 막으며 말했다.

“이곳은 나에게 맡기고 넌 저들을 데리고 먼저 떠나거라.”

그러자 무진도인이 한 손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누구도 살아서 이곳을 떠날 생각을 하지 말거라! 노부가 오늘 너희 모두를 죽일 것이다.”

순간 하얀 도장이 그의 머리 위로 날아와 허공을 선회하기 시작했다. 그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더니 곧 도장 주위에 하얀 불꽃이 일기 시작했다.

동시에 무진도인의 손이 반짝이더니 푸른 검이 나타났다. 그 검은 순수하기 이를 데 없는 진청색 검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유안이 굳은 표정으로 천귀번을 꺼냈지만, 이미 영성을 크게 잃어서 빛이 상당히 어두웠다.

그때 좌호법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 무진 이놈아, 내가 왜 소환수도 없이 홀몸으로 왔는지 모르겠느냐?”

그 말을 들은 무진도인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바로 그 순간, 무진도인의 옆에 갑자기 하얀 빛의 구가 나타나더니 그곳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를 들은 무진도인의 낯빛이 흐려졌다. 그는 곧바로 하얀 빛을 뿜어내 두 제자를 감싸고 음시산맥을 향해 날아갔다.

유안이 그들을 뒤늦게 막으려 했으나 너무 늦었다. 좌호법은 막을 생각이 없는지 그들이 떠나가는 것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사숙, 어째서 저들을 막지 않았습니까?”

유안이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물었다.

좌호법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유안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한 번 물으려 했다.

그때, 노인이 갑자기 비틀거리더니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놀란 유안이 황급히 노인을 붙잡았다.

“사숙, 괜찮습니까?”

유안이 깜짝 놀라 소리치며 좌호법을 안은 채 한해거주에 착지했다.

한해거주에 타고 있던 제자들도 깜짝 놀랐다.

“무진이 눈치 채기 전에… 어서 이곳에서 벗어나라….”

좌호법이 힘겹게 말했다.

그의 말에 따라 한해거주 세 척이 재빨리 출발했고, 금세 수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석목은 한해거주의 갑판 위에 서서 선수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유안이 검은 진법을 펼쳐 쓰러진 좌호법의 몸을 덮고 있었다. 회색 옷을 입은 여인은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진법에서는 검은 연기가 계속 피어올라 좌호법의 체내로 흡수되고 있었다.

하지만 좌호법의 상태는 전혀 호전되지 않았고, 오히려 점점 쇠미해갔다. 눈동자만 움직이지 않는다면 죽은 사람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였다.

“소용없다…. 금지된 술법을 사용해 강제로 천위의 경지에 오른 뒤, 성석으로 백호귀왕(白虎鬼王)을 소환하며… 얼마 남지 않은 수명을 전부 소진했다…. 하지만 너희를 구해냈으니 후회는 없구나….”

좌호법의 목소리는 아주 미약했다.

그 말을 들은 여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유안은 아무 말 없이 진법을 전력으로 가동했다.

“안아, 괜한 힘 빼지 말거라…. 서하대륙으로 가는 길은 굉장히 험난해 네 힘이 꼭 필요할 것이다…. 명월교는 너에게 맡기겠다….”

좌호법은 점점 희미해지는 목소리로 말을 잇다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화르륵!

갑자기 그의 몸에서 검은 화염이 솟구치더니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여인이 깜짝 놀라서 화염을 끄려 하자 유안이 막았다.

“금지된 술법을 사용한 대가로 영혼까지 태워버리는 이 업화마염(业火魔焰)은 시체를 전부 태우기 전까지 절대 꺼지지 않네.”

유안이 말했다.

화염에 타오른 좌호법의 시체가 곧 잿더미로 변했다.

유안은 입술을 떨며 유골을 모아 작은 단지에 넣은 뒤, 뒤로 한 걸음 물러나서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여인과 선상의 다른 제자들도 그 단지를 향해 절을 했다.

석목은 절을 하지는 않았지만 허리를 숙여 예를 표했다.

석목은 명월교의 행동과 원칙에 대해서는 여전히 납득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그동안 여러 가지를 보고 들으며 동주대륙에서 가장 큰 세 세력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먹구름이 짙게 깔린 하늘 아래, 강풍이 격노한 괴수의 포효 같은 소리를 내며 온천지를 휩쓸었다.

스물두 척의 거대한 선박 행렬이 망망대해에서 높이가 몇 장에 달하는 거센 파도를 가르며 서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거대한 선박들은 검은 파도에 집어삼켜졌다가 높이 솟아오르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한 선박의 선실 안에서는 석목이 침상 위에서 눈을 감은 채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선내에서는 공간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선실이 굉장히 협소했고, 석목의 방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파도가 거칠어져서 대부분의 사람은 각자 방 안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몸 앞으로 들어 올린 석목의 두 손 위에는 옥 재질의 푸른 베틀 북이 둥둥 떠 있었다.

이것은 통천선교의 청년 도사를 죽이고 얻은 상당히 진귀한 비행영기였다.

지계 무인이나 월계술사, 혹은 석목처럼 일부 기연이 닿은 성계술사가 사용할 수 있는 비행술법은 단거리 비행이나 전투 중에 유용했다.

다만 진정한 비행을 하기 위해서는 천위의 경지에 오르거나, 다른 특별한 방법을 사용해야 했다.

비행법기 혹은 영기가 바로 그 특별한 방법 중 하나였다.

영기는 평범한 공격영기조차도 제작하기가 매우 어려워 아주 귀한 것이었다. 그리고 비행영기는 그것보다도 더 귀하고 수가 훨씬 적었다.

석목은 동주대륙의 중심지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이 옥 재질의 북은 그가 처음으로 본 비행영기였다.

옥 북을 길들이는 것은 금전검 때보다 훨씬 힘들었다. 석목이 오랜 시간 공을 들였음에도 겨우 이 할 밖에 진행하지 못했다.

덕분에 도사에게서 뺏은 다른 영기인 은색 채찍과 장창은 아직 손도 대지 못하고 있었다.

시간이 점점 흐르자 옥 북 표면의 무늬가 한 가닥 빛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전체적으로 뿜어내는 푸른빛이 조금 더 밝아졌다.

눈을 뜬 석목은 기쁜 표정으로 옥 북을 체내에 담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청년 도사에게서 뺏은 푸른 옥반지를 꺼냈다. 그 청년 도사는 석목이 이제까지 만났던 사람들 중 가장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세 개의 영기는 그중에서 가장 귀한 물건이었지만, 그것들을 제외하고도 그의 저장반지에는 대량의 영석과 부적, 단약이 들어 있었다.

특히 영석은 무려 사만 개 가까이나 있었다. 덕분에 석목은 호주머니가 아주 두둑해졌다.

‘그 녀석, 무진도인의 사생아는 아니었겠지?’

석목은 고개를 흔들어 쓸데없는 생각을 떨쳐버리고 침상에서 내려와 창문을 열었다.

창밖으로 거센 파도가 연달아 밀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한해거주는 이 정도의 풍랑에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출항한지 보름이 지난 지금까지 통천선교와 천마종은 추격해오지 않았다. 배는 그동안 몇 번의 거친 풍랑을 만났지만 모두 문제없이 지나갔다.

방 안을 둘러본 석목은 채아가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방에 있는 것이 지루했는지 또 제멋대로 밖으로 나간 것 같았다.

처음에 석목은 혹시라도 채아가 강풍에 휩쓸려 날아갈까 걱정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그것이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채아는 강풍 속에서 비행하는 것이 익숙한 듯, 그가 우려했던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바로 그때, 석목의 머릿속에서 채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석두, 뭔가 이상해. 네가 한번 봐.”

채아의 말이 끝나는 동시에 석목의 머릿속에 어떤 장면이 떠올랐다.

칠흑같이 어두운 바다 속에 몸길이가 삼십 장이 넘는 다양한 모습의 해수(海兽)들이 있었다. 그것들은 곡선형으로 진형을 이루며 헤엄치고 있었다.

그 주위에는 크기가 작은 해수도 무수히 많았다.

석목은 깜짝 놀랐다. 이렇게 많은 해수들이 집단으로 공격이라도 한다면 상당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채아, 주위에 해수가 더 있는지 둘러봐.”

석목이 다급히 지시했다.

“맡겨줘. 아무리 깊이 숨어 있어도 이 몸의 눈은 피할 수 없어!”

채아가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석목은 방을 나섰다. 흐린 하늘 아래 바다에는 거센 풍랑이 일고 있었다.

석목은 멀리 서쪽을 바라보았다. 가장 앞쪽에 있는 1호 한해거주가 검은 점처럼 작게 보였다.

“석두, 큰일이야! 더 많은 해수가 계속해서 모여들고 있어!”

채아가 소리를 질렀다.

그와 동시에 석목의 머릿속에 바다 속의 장면이 나타났다. 흉악하게 생긴 거대 문어와 몸길이가 삼십 장에 달하는 대형 상어, 그리고 이름조차 알 수 없는 대형 해수들이 수두룩했다. 살면서 한 번 보기조차 어려운 거대한 해수들이 수없이 많았다.

해수들은 배가 지나는 항로의 한가운데에 있어서 이대로라면 두 시진 내에 마주칠 것이 분명했다.

얼굴을 살짝 일그러뜨린 석목이 위층으로 올라가려 할 때, 거대한 파도가 한해거주를 덮쳐왔다.

석목은 빠르게 진기를 끌어올려서 두꺼운 보호막을 형성해 몸을 지켰다.

퍽!

석목을 삼킨 거대한 파도가 선박 전체를 휩쓸었다. 그러나 보호진법에 둘러싸인 한해거주는 끄떡없었다.

선박 위의 물이 빠지자 석목은 즉시 속도를 높여 달렸고, 잠시 뒤 누각의 오층 입구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회색 옷을 입은 제자 두 명이 서 있었다.

“석 선배!”

석목을 발견한 두 사람이 인사했다.

통천선교의 습격 이후 유안은 석목이 명월교의 친구라고 대외적으로 선포했다. 게다가 그가 지계의 도사를 죽인 일까지 한해거주에 소문이 퍼지면서, 일반 제자들은 상당히 공손한 태도로 석목을 대했다.

“방 전주 계십니까?”

석목이 물었다.

“안에 계십니다. 제가 들어가서 알릴 테니 잠시 기다려주세요.”

왼쪽의 제자가 즉시 대답했다.

“그럴 필요 없다.”

그때,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더니 안쪽에서 회색 옷을 입은 여인이 걸어 나왔다.

“방 전주!”

두 제자가 여인에게 인사했다.

“무슨 일이죠?”

여인이 두 사람을 향해 손을 흔든 후 석목을 바라보며 물었다.

전방에 해수가 잠복하고 있다는 석목의 설명을 들은 여인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문을 지키던 두 제자 역시 놀라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여인은 전방의 해역을 바라보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거센 파도뿐이었다. 정신력의 탐지 범위 내에도 해수의 흔적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여인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석목에게 물었다.

“확실한가요?”

“확실합니다. 제 소환수가 바다 깊숙한 곳까지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거대한 해수들이 전방의 해역에 모여 있으며 그 목표는 우리인지도 모릅니다.”

여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금까지는 무리를 이룬 대형 해수와 전혀 마주치지 않고 순조롭게 항해했다. 그러나 서해 해족의 근거지인 이곳에서는 해수들이 협공을 할 가능성이 없지 않았다.

고민하던 그녀는 고동색 종을 꺼내 법력을 주입했다. 그러자 표면에 새겨진 부문이 빛나더니 맑은 종소리가 멀리까지 울려 퍼졌다.

이 종은 명월교가 이번 항해를 위해 준비한 경보법기였다. 긴급한 상황에서 사용하면 모든 선박에 신호가 전달됐다.

종소리가 울린지 일 각도 채 되지 않아 스물두 척의 한해거주가 모두 움직임을 멈췄다. 각 배에 타고 있는 전주들이 여인이 있는 한해거주로 모여들기 시작했고, 곧 모든 전주가 한곳에 모였다.

“방 전주, 무슨 일로 경종을 울린 것이지?”

창랑전의 전주 곽청이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지?”

유안도 여인에게 물었다.

“모두와 논의해야 하는 중요한 사안이 생겼습니다.”

여인은 석목에게 들은 이야기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 전달했다.

그 말을 들은 전주들이 모두 제각각 다른 표정을 지었다.

“석 형, 확실합니까?”

유안이 석목에게 물었다.

석목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확실히 너무 조용했지. 안전을 위해 위험 해역을 피해갈 것이니, 모두 각자의 한해거주로 돌아가 배를 돌리게.”

유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짧은 시간 안에 스무 척의 한해거주를 마련해 통천선교와 천마종의 침입으로부터 명월교의 몰살을 막아냈을 뿐더러, 출항 날에 혼자 힘으로 무진도인의 발목을 붙잡은 유안의 입지는 크게 높아져 있었다.

덕분에 대부분의 전주는 유안을 은연중에 우두머리로 여기고 그의 말에 따르고 있었다.

그들은 유안의 명령조 말투에 익숙하지 않았지만, 그의 조치에 별다른 불만을 표출하지는 않았다. 이런 사안에 대해서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보다는 최대한 조심하는 편이 좋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동의하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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