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215화 (215/916)

215화. 돌아가다

“나는 동의하지 않네!”

그 말을 꺼낸 것은 곱슬머리 청년 창랑전주 곽청이었다.

다른 전주들이 동시에 그를 바라보았다.

“한 사람의 말만 듣고 이 많은 사람을 고생시키려 하다니, 너무 겁이 많은 것 같네. 길을 돌아가면 여정이 최소 열흘은 늦어진다는 것을 알기는 하는가?”

“그럼 곽 전주 생각에는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유안이 물었다.

“앞쪽에 해수가 있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고, 설령 있다고 해도 뚫고 지나가면 될 일이네.”

곽청이 말했다.

석목은 그 청년의 경지가 매우 높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여기 모인 전주들 사이에서 오직 그만이 유안과 견줄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창랑전주, 지금 제자들의 목숨을 가지고 도박을 하자는 것인가?”

유안이 말했다.

“곽청, 지금 명월교가 이 지경이 됐는데도 아직까지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하려 하는가?”

유안 옆에 있는 붉은 눈썹의 남자 적봉도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크흠, 창랑전주의 말이 매우 일리가 있네. 만약 그 열흘 때문에 통천선교와 천마종에게 추격당한다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을 것이네.”

곽청 옆에 있는 외눈의 중년 남자가 헛기침을 한 뒤 말했다.

“길을 돌아가겠다면 우리는 함께하지 않겠네. 서하대륙에서 다시 만나도록 하지!”

곽청은 그렇게 말한 뒤 몸을 돌려 훌쩍 떠났다. 외눈의 남자 역시 곽청을 따라갔다.

적봉과 방옥 등 남은 다섯 명의 전주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유안은 두 사람이 떠나는 것을 보기만 할 뿐 말리지 않았다.

곽청과 외눈의 남자가 멀리 떠난 뒤, 유안은 몸을 돌려 석목에게 말했다.

“앞쪽 해역의 상황은 석 형만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있는 한해거주에 와서 해수를 피해갈 수 있는 항로를 안내해줄 수 있겠습니까?”

“좋습니다.”

석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각자의 선박에 돌아가서 1호 한해거주를 따라 움직이도록 지시를 내리게.”

유안이 다른 전주들에게 말했다.

전주들이 일제히 대답하고 각자의 배로 향했다.

유안이 손을 휘두르자 발아래에서 회색 구름이 솟아올라 그와 석목을 태우고 날아갔다.

항해 중 안전을 위해 선박들은 서로 백여 장의 거리를 벌리고 이동하는 중이었다. 그렇기에 석목이 타고 있는 22호 한해거주와 유안의 1호 한해거주까지의 거리는 이천 장이 넘었다.

거센 바람이 불고 하늘에 닿을 듯이 높은 파도가 치는 바다에서, 공중으로 이동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유안이 한 손을 휘둘러 두 사람의 앞에 회색빛의 장막을 펼쳤다.

빛의 장막 덕분에 강풍의 영향을 벗어난 회색 구름의 속도가 급격히 빨라졌고, 금세 1호 한해거주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가장 위층에 있는 선실로 들어갔다. 그곳은 시야가 탁 트여 있어서 앞쪽 해역이 한눈에 들어왔다.

유안이 옥간을 하나 꺼내 법력을 주입하자, 두 사람 앞에 서해의 해도가 펼쳐졌다.

잠시 후, 선박의 행렬이 천천히 둘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항로를 바꾼 열여섯 척의 한해거주가 좌측으로 방향을 돌렸으며, 남은 여섯 척은 그 자리에 멈췄다.

여섯 척의 한해거주 중 가장 앞쪽 배에는 곽청과 외눈의 남자가 있었다. 그들은 방향을 돌려 먼 곳으로 향하는 배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곧 곽청이 콧방귀를 뀌더니 명령했다.

“출항하라! 계속 전진한다!”

그의 지시에 따라 여섯 척의 한해거주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곽 전주, 이렇게 가도 괜찮겠나? 정말로 앞에 해수가 있기라도 한다면….”

외눈의 남자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석목이라는 자의 말은 믿을 것이 못 되니 안심하게. 우리의 입지를 뺏기 위한 유안의 계략이 분명하네.”

곽청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외눈의 남자가 조금 안심한 기색이 되었다.

“혹여 정말 해수가 있다고 한들 우리 실력으로 그깟 것들을 상대하지 못하겠나? 알다시피 내 소환수는 해상에서도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으니 전부 죽여서 제물로 삼으면 될 일이네.”

곽청이 자신 있게 호언장담을 했다.

“확실히 그동안 지루하긴 했지. 해수가 나타나면 답답함을 좀 풀어야겠네.”

외눈의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했다.

여섯 척의 한해거주는 파도를 가르고 계속 직진했다.

석목과 유안은 선실의 창문을 통해 그들이 전진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유안의 사매인 붉은 옷을 입은 소녀도 어느새 선실 안에 들어와 있었다.

“정말 저들이 저렇게 가도록 둘 겁니까?”

석목이 유안에게 물었다.

유안은 석목을 등진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석목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유안의 뒷모습에서 마치 검은 구름에 뒤덮인 것 같은 어두운 분위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설마 해수를 이용해 저들을 제거하려는 겁니까?”

석목이 살짝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유안은 천천히 몸을 돌려 석목의 눈을 마주보았다.

그는 갑작스레 미소를 지으며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했다.

“석 형, 천우성에서 작별한 이후 정말 엄청난 속도로 성장했군요.”

석목이 말했다.

“과찬입니다. 유 형과 비교할 바가 안 되죠.”

“참, 어쩌다가 서하고국에 와서는 우리 명월교와 엮인 것입니까?”

유안이 계속 물었다.

“유 형 덕분이지요! 승선경매에서 유 형이 한바탕 소란을 피운 뒤, 어째서인지 저까지 지명수배령에 포함되어 부득이하게 서하고국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석목이 나무라듯 말했다.

“그렇군요. 석 형까지 연루될 줄은 몰랐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유안이 사과했다.

석목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유안의 말이 어디까지가 진심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이미 여러 번 권했지만 오늘 다시 한 번 권하고 싶군요. 정말 우리 명월교에 가입할 생각이 없습니까?”

유안이 물었다.

“저는….”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하려 하자, 유안이 손을 들어 막았다.

“석 형, 우선은 성급하게 거절하지 말고 며칠 더 생각해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괴수가 넘쳐나는 서하대륙은 동주대륙보다 훨씬 위험합니다. 석 형의 실력이 뛰어난 것은 알고 있으나, 혼자서 생존하기에는 많은 불편함이 따르겠죠.

게다가 직접 봐서 알겠지만 통천선교와 천마종은 도리를 따지는 집단이 아닙니다. 죄를 뒤집어썼더라도 충분한 실력이 없다면 변론할 기회조차 주지 않아요. 이제 무진의 제자까지 살해했으니 다시는 동주대륙에 돌아가지 못할 겁니다.”

유안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생각에 잠겼다.

다른 것은 몰라도 유안의 마지막 말은 틀리지 않았다. 동주대륙 뿐만 아니라 어디를 가도 실력이 없다면 말을 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공평이라는 건 서로가 같은 위치에 서 있을 때나 통하는 말이었다.

“만약 우리 명월교에 들어온다면 즉시 전주의 자리를 드리고, 공간 친화력을 높이는 방법과 교내의 다른 비술을 전부 열람하게 해드릴 겁니다.”

유안이 계속 말했다.

“호의는 감사하나 저는 명월교에 가입할 의사가 없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석목은 결국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이미 마음을 굳힌 것 같군요. 하지만 생각이 바뀐다면 그게 언제라도 저는 환영할 것입니다. 이 배에 석 형을 위해 마련한 방이 있으니 그곳에서 머물도록 하세요.”

유안이 웃으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그럼 저는 가서 휴식을 취하겠습니다.”

석목이 인사를 한 뒤 떠났다.

그가 자리를 뜨자 붉은 옷을 입은 소녀가 물었다.

“정말 쉽지 않은 사람이군요. 저자는 본교에 가입할 뜻이 전혀 없는 것 같은데, 어찌하여 계속 권하시는 것인지….”

“현재 본교는 유능한 사람이 필요한 때다. 무공과 술법을 동시에 수련한 석목은 분명 쓸모가 있겠지. 서하대륙에 도착한 뒤 갈 곳이 없으면 결국 나를 찾아올 것이다.”

유안이 말했다.

“만약 그때가 되어도 가입을 원치 않으면요?”

붉은 옷의 소녀가 물었다.

그러자 유안은 서늘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견 사매,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고 있으니 안심해도 된다. 나는 그렇게 자비로운 사람이 아니야.”

* * *

여섯 척의 한해거주는 곽청의 인솔에 따라 서쪽을 향해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있었다.

천천히 방향을 돌린 열여섯 척의 한해거주는 금세 그들에게 뒤쳐졌다.

곽청은 기분이 좋았다. 이대로 유안보다 먼저 서하대륙에 도착한다면, 기선을 잡아 그에게서 권력을 뺏어오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속력으로 전진하라!”

곽청이 소리쳤다.

바로 그때, 곽청이 타고 있는 한해거주 아래로 거대한 그림자들이 지나갔다.

쾅!

굉음과 함께 한해거주가 거세게 진동했다. 그 바람에 배에 타고 있던 제자들이 비틀거리다가 이리저리 넘어졌다.

“무슨 일이냐?”

곽청이 표정을 굳히며 소리쳤다.

그 순간 더욱 커다란 충돌음이 들리며 배가 다시 세차게 흔들렸다.

“해수! 해수의 습격입니다!”

한 제자가 옆의 수면을 손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수면 아래에서는 거대한 그림자들이 한해거주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여섯 척의 한해거주는 그림자들에게 순식간에 포위됐다.

그 광경을 본 곽청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곽 전주님, 이제 어떻게 하면 좋죠?”

한 제자가 달려와서 물었다.

“우선 모든 방어진법을 가동해라!”

곽청이 명령을 내렸다.

곧 한해거주의 부문이 금세 전부 빛나기 시작했고, 모든 배가 두꺼운 하얀 빛에 뒤덮였다.

그와 동시에 한해거주의 흔들림도 크게 줄어들었다.

쾅!

한 커다란 상어가 수면 위로 뛰어올라 한해거주를 향해 날아들었다. 상어의 이빨은 비수처럼 날카로웠다.

한해거주의 갑판 위 측면에 있던 명월교 제자들이 크게 놀라 사방으로 달아났다.

촤악!

그 순간, 회색빛의 칼날이 검은 상어의 몸통을 가르고 지나갔다.

곽청이 회색으로 빛나는 팔을 내리며 외쳤다.

“당황하지 마라! 현측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서 공격에 대비하고, 양쪽 포문을 전부 열어서 해수들을 없애버려라!”

한해거주에 타고 있는 이들은 모두 명월교의 정예 제자로, 하나같이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놀란 마음을 가라앉힌 제자들은 진기를 응결시킨 검기, 검영과 화염구, 얼음창 등 각종 술법을 마치 폭우처럼 쏟아 부었다.

한해거주 양측의 포문에서는 하얀 빛의 기둥이 끊임없이 쏘아져 나와 수면 위에서 폭발했다.

곧이어 여러 대형 해수의 시체가 수면 위로 가득 떠올랐다. 그럼에도 한해거주를 향해 달려드는 해수의 수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곽청이 지팡이를 꺼내들고 주문을 외우며 휘둘렀다.

그러자 허공에 회색 연기가 솟아오르더니 그 속에서 뼈 새들이 차례로 나왔다.

순식간에 소환된 백 여 마리의 거대한 새는 비상과 급강하를 반복하며 날카로운 발톱으로 해수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뒤에서 날아온 외눈의 전주가 곽청 옆에 착지했다.

“곽 전주, 얼마나 있을지 모르는 해수들과의 소모전은 좋지 않은 것 같네. 우선 퇴각해서 해수의 활동구역을 벗어나는 것이 어떻겠나?”

외눈의 전주가 말했다.

곽청이 망설였다. 물론 그도 그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유안과 갈라서자마자 바로 돌아가는 것은 아무래도 모양새가 너무 우스웠다.

바로 그때, 먼 곳의 수면이 넘실거리더니 덩치가 산만한 푸른색 해수가 나타났다.

온 몸이 두꺼운 털에 덮여 있는 그 해수는 마치 물소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것의 머리에는 날카롭고 긴 소뿔이 자라 있었고, 두 눈은 몹시 붉었다.

다른 해수들과는 다르게 그 물소는 엄청난 요기(妖气)를 뿜어내고 있었다.

물소의 기운을 느낀 곽청과 외눈의 전주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물소가 뿜어내는 기운은 그들 둘과 비교해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았다.

“이런, 지능을 가진 해수다!”

곽청이 소리쳤다.

물소가 괴성을 지르며 고개를 높이 쳐들었다. 그리고 공처럼 둥근 물대포를 마구 발사했다.

물대포가 날아가는 속도는 매우 빨라서 마치 파란 광선을 쏘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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