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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216화 (216/916)

216화. 시폭술(尸爆术)

물소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십여 마리의 뼈 새가 폭발과 함께 가루가 됐다.

화가 난 곽청이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 순간 물소의 주위에서 회색 연기가 솟아오르더니 몸길이가 십여 장에 달하는 거대한 뼈 구렁이가 나타났다.

전신에 회색빛이 감도는 거대한 구렁이는 물소와 비등한 기운을 뿜어냈다.

구렁이는 물속을 자유자재로 헤엄쳐 물소에게 달려들었고, 기다란 몸으로 물소의 몸을 휘감았다.

구렁이가 물소의 목을 필사적으로 물어뜯자 분노한 물소도 포효하며 구렁이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곧 주위 바닷물이 새빨간 핏빛으로 물들었다.

곽청이 한숨을 돌리기도 전에 주위 수면이 넘실거리더니 거대한 해수 다섯 마리가 나타났다. 그것들이 뿜어내는 기운은 하나같이 물소만큼이나 강했다.

“이런, 후퇴하라!”

깜짝 놀란 곽청은 더 이상 체면을 고려하지 않고 다급히 명령했다.

동시에 곽청이 지팡이를 거세게 휘두르자 허공에 검은색 원형 진법이 그려졌다. 그러자 뼈로 된 교룡과 살이 전부 부패한 거대한 새가 소환됐다.

곽청의 얼굴이 조금 창백해졌다. 연속으로 강력한 사령생물을 소환하며 법력을 과하게 소모한 탓이었다.

양 날개를 펼친 거대한 새는 해마 모습의 해수를 향해 날아들었고, 교룡은 바다 속으로 뛰어들어 문어 모양의 해수에게 달려들었다.

지계의 두 사령생물과 거대한 뼈 구렁이는 필사적으로 거대 해수들을 저지했고, 그동안 여섯 척의 한해거주는 뱃머리를 돌리기 시작했다.

“후퇴하라! 후퇴해!”

외눈의 전주가 가장 뒤쪽에 있는 한해거주로 돌아와서 큰 소리로 외쳤다.

“유 전주에게 구조요청을 보내라!”

외눈의 전주가 옆에 있는 제자에게 말했다.

놀란 제자가 외눈의 전주를 멍청히 쳐다보았다.

“어서 움직이지 않고 뭐하느냐!”

외눈의 전주가 사납게 외쳤다.

“아…. 예!”

순간 정신을 차린 제자는 다급히 옥판을 꺼내들었다.

* * *

석목은 1호 한해거주의 갑판 현측에 서서 서북쪽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비록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속은 굉장히 복잡했다.

석목은 채아의 시야를 통해 멀리 있는 여섯 척의 한해거주가 해수 무리와 맞닥뜨린 것을 보고 있었다.

미리 알고 있었지만 직접 보니 해수의 수와 강함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석목의 충고를 무시한 것은 저들 자신이었기에 지금 벌어지는 일은 자업자득이나 마찬가지였다.

“이것이 해족의 진정한 힘인가 보구나!”

석목은 혼잣말을 하다가 문득 향주를 떠올렸다.

바다에서 시선을 거둔 석목은 선수갑판에 뒷집을 지고 서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피처럼 붉은 장발을 바닷바람에 휘날리며 서북쪽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 * *

여섯 척의 한해거주는 해수가 나타난 구역 밖으로 달아났다. 그러나 해수들은 그들을 전혀 놓아줄 생각이 없는 듯 여전히 끈질기게 달려들었다.

그때, 외눈의 전주가 거대한 검은색 뼈창을 두 개 소환했다. 그 창은 길이가 십 장 가까이 됐으며 두께는 물통만큼이나 굵었다.

그가 손을 휘두르자 두 창이 바다를 향해 빠르게 날아가서 거대한 은색 상어와 문어의 머리를 꿰뚫었다.

창에 꿰뚫린 두 해수는 잠시 몸부림쳤지만 결국 숨이 끊어져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외눈의 전주는 최후방의 한해거주에 타고 있었다. 그래서 행렬이 배를 돌린 지금은 가장 앞쪽에 있었다.

외눈의 전주는 거대한 뼈창을 연달아 날려서 달려드는 해수를 한 번에 한 마리씩 처치했다.

그 순간, 수면 아래에서 헤엄치던 해수들이 동시에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곧이어 이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 광경을 본 외눈의 전주는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쳤다.

그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주위 수면이 갑작스럽게 소용돌이치며 한해거주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촤악!

수면에서 어마어마한 두께의 집게다리가 불쑥 솟아올랐다. 한해거주와 비슷한 크기의 집게다리는 마치 거대한 도끼처럼 배를 내려찍었다.

콰직!

한해거주는 거대한 집게다리에 의해 눈 깜짝할 사이에 두 동강이 나서 바다 속으로 잠겼다.

배에 타고 있던 명월교의 제자들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바다 속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들과 그들이 타고 있던 한해거주의 잔해는 금세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 사라졌다.

간발의 차로 회색 구름을 타고 허공으로 몸을 피한 외눈의 전주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소용돌이 속에서 게의 모습을 한 엄청난 크기의 해수가 나타났다. 몸길이가 백 장이 넘는 게의 집게다리는 한해거주만큼이나 거대했으며, 나머지 여덟 개 다리의 두께도 십 장 가까이 됐다. 게의 이빨은 무척이나 날카로웠으며 검은 껍질도 상당히 단단해 보였다.

거대한 게가 뿜어내는 기운은 무진도인 같은 천위의 존재보다는 약했지만, 그 차이는 크지 않았다.

가장 후방의 한해거주에 타고 있던 곽청은 게의 엄청난 기운을 느끼고 앞쪽으로 날아왔다.

거대한 게의 입에서 탁하고 모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인류… 죽어라….”

이어 게는 긴 잔상을 남기며 엄청난 속도로 움직였다.

저토록 거대한 게의 움직임이 그렇게 빠를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외눈의 전주는 다급히 옆으로 몸을 피했다.

푹!

그러나 외눈의 전주가 미처 방어하기도 전에, 게의 집게다리가 그의 몸을 꿰뚫어 거의 두 동강을 냈다.

그 광경을 보고 놀란 곽청이 움직임을 멈췄다.

키에엑!

게는 괴성을 지르며 다른 한해거주를 덮쳤다.

퍽!

집게다리에 맞고 날아간 한해거주는 바다에 떨어지기도 전에 날아오는 다른 집게다리에 두 동강이 났다.

곽청의 얼굴은 이제 절망으로 인해 새하얗게 질렸다.

바로 그때, 먼 곳에서 날아온 누군가가 게를 향해 핏빛 도광을 날렸다.

두 시진 후, 망망대해 위에서 한해거주 열여섯 척이 서남쪽을 향해 천천히 항해하고 있었다.

행렬의 앞쪽에서 뒤쪽까지의 길이는 십 리가 넘었다.

제일 앞에 있는 1호 한해거주의 갑판 위, 석목은 넘실거리는 파도를 보며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날아온 채아가 석목의 어깨에 앉았다.

“어때?”

석목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바로 물었다.

“석두, 전방 백 리 내에는 거대 해수가 전혀 없어. 아무래도 주변 해역의 해수들은 전부 그곳으로 모여든 것 같아. 그나저나 유안도 참 대단해. 그렇게 많은 해수를 순식간에….”

채아가 살짝 흥분한 말투로 말했다.

“이 해수들은 네가 순찰하며 발견했던 서해의 해족들이 조종하고 있는 것 같아. 명월교가 지속적으로 바다에 나와서 해수를 사냥해 제사를 올리고, 그 시체를 소환수로 만들어버리니 이전부터 원한을 가지고 있었겠지.”

석목이 채아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석두, 뜬금없이 그게 무슨 말이야?”

채아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만약 우리가 해수를 발견했을 때, 모든 한해거주가 방향을 돌렸다면 어떻게 됐을 것 같아?”

석목이 물었다.

“내 생각엔… 아마 우릴 쫓아왔겠지.”

채아가 말했다.

“맞아. 해족들이 이렇게 많은 세력을 동원한 이유는 아마 한해거주를 일망타진하기 위해서였을 거야. 그러니 목적을 이루지 못한 이상 절대 포기하지 않겠지. 당장의 위기를 넘겨도 두 번째, 세 번째 습격이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몰라.”

석목이 말했다.

“석두, 그 말은 유안이 일부러 곱슬머리와 애꾸눈을 미끼로 보냈다는 거야?”

채아가 말했다.

“내가 알기로 유안이 방금 시전한 비술은 시폭술이라 불리는 명월교의 상급 사술(邪术)이야. 명월교의 정예 제자 팔백 명과 살해당한 해수들의 시체를 이용해 해수들을 일망타진한 것이지.”

석목이 말했다.

“유안은 정말 무서운 사람이었구나! 석두, 명월교에 가입하지 않기를 잘한 것 같아. 자기편마저 필요에 의해 죽이다니, 정말 사악해!”

채아가 온몸을 떨며 말했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더 많은 사람이 죽었을지도 모르지.”

석목이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채아가 석목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듯 다시 물으려 할 때, 갑자기 주위가 소란스러워졌다.

석목이 고개를 돌려 서북쪽 방향을 보니 검은 점 두 개가 있었다.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한해거주들이었다.

순간 석목의 두 눈에 금빛이 감돌면서 배 위의 모든 상황이 한눈에 들어왔다. 한해거주들의 표면에는 격전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제일 앞쪽 선박의 선수에는 은색 옷을 입은 유안이 덤덤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의 뒤에는 창백한 얼굴의 곽청이 있었다. 곽청에게서는 이전의 오만방자한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바로 그때, 후방의 한해거주에 있던 적봉 등 다섯 전주가 1호 한해거주로 날아왔다.

그들은 멀리서 다가오는 두 척의 한해거주를 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두 척의 한해거주가 가까이 다가왔다.

유안이 몸을 날려 1호 한해거주로 넘어가자, 곽청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의 뒤를 따랐다.

그 모습을 본 다섯 전주가 유안과 곽청에게 다가갔다.

“곽청, 우 전주는? 나머지 한해거주 네 척은 어디 있지?”

적봉이 곽청에게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곽청이 얼굴을 붉히며 적봉의 시선을 피했다.

그러자 유안이 말했다.

“내가 갔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네. 해수의 습격을 당해 네 척의 한해거주가 침몰하고 그곳에 타고 있던 제자들과 우 전주가 목숨을 잃었지.”

다섯 전주는 이미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유안의 말을 통해 확인하고 나니 다시 한 번 몸이 떨려왔다.

“유 전주, 지금 그 해수들이 쫓아오고 있나?”

방옥이 무언가 생각났는지 다급히 물었다.

“그러지 못할 것이네.”

유안은 현장의 시체들로 시폭술을 시전, 해수 무리에게 치명상을 입힌 과정을 대략적으로 설명했다.

그 말을 들은 모두는 놀라서 숨을 들이켰다.

시체의 단전에 담긴 진기 혹은 법력을 터트려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는 시폭술은 상급 술법이지만, 이곳에 있는 모든 월계술사가 익힌 술법이었다. 그 위력은 시체의 수, 그리고 그 시체의 생전 경지와 관련이 있었다.

그들이 놀란 이유는 유안이 천 구에 가까운 시체로 시폭술을 시전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들 중 누구도 그렇게 많은 시체로 시폭술을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 정도라면 아무리 지계의 해수라 한들 절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은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시폭술에 사용된 것은 대부분이 명월교 제자의 시체였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해수의 손에 죽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누구도 유안의 행동을 비난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위험을 일거에 제거했으니 칭찬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고집을 부려서 벌어진 일이니 기꺼이 벌을 받겠네.”

곽청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

“곽 전주가 서하대륙에 빨리 가려 했던 것이 모두 본교를 위한 행동임을 알지만, 사건이 벌어진 이상 아무런 처벌도 하지 않을 수는 없지. 한동안 1호 한해거주에서 문을 걸어 닫고 반성하면서 상처 치료에 집중하도록 하게. 속죄는 추후 서하대륙에 도착한 뒤 공을 세우는 것으로 대신 해도 되네. 두 척의 한해거주는 각각 방 전주와 적 전주가 관리하는 것이 좋겠군.”

유안이 말했다.

“알겠네.”

방옥과 적봉이 대답했다.

“고맙네, 유 전주.”

곽청이 감격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모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도록. 더 이상은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되네!”

유안의 지시에 다섯 전주가 일제히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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